*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리뷰] 가위손(1990) - It's not your fault
어린 시절 팀 버튼의
[가위손]을 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주인공 에드워드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불편하고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 하얗게 뜬 얼굴도, 부릅뜬 검은 눈도, 헝클어진 머리칼도, 날카로운 가위손도 모든 게 기괴하고 흉측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어쩌면 영화를 보기도 전부터 나도 모르게 에드워드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뒤늦게 찾아본 이 작품은 전혀 흉측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영화
[가위손]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한 슬픈 동화이다.
화장품 방문판매원 펙(다이앤 위스트)은 어느 날 우연히 마을 구석에 있는 낡고 허름한 고성(古城)에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가위손' 에드워드(조니 뎁)를 만나게 되고 그를 마을로 데려와 함께 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에드워드가 지닌 신기에 가까운 조경 실력과 미용 실력에 매료되어 그를 찾게 되고 어느덧 그는 마을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존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에드워드는 그가 남몰래 사랑하던, 펙의 딸 킴(위노나 라이더)으로부터 도둑질을 제안 받고 그녀를 위해 실행에 옮기지만 상황이 꼬이면서 에드워드만 경찰에 붙잡히게 된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에드워드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마을사람들은 그를 위험인물로 낙인찍고 거칠게 몰아세운다. 결국 주변사람을 도울수록 스스로 상처받게 되는 현실에 성으로 도망치게 되는 에드워드. 그 와중에도 꿋꿋이 그를 믿고 사랑해주는 킴과 성에서 다시 재회하게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안을 수도, 지켜줄 수도 없는 에드워드는 킴과의 이별을 택하고 작별의 키스를 마지막으로 성에 홀로 남게 된다.
우리는 에드워드인가, 마을 사람들인가
영화
[가위손]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 동화이지만, 동시에 우리 네 삶에서 흔히 보고 겪을 수 있는 인간관계의 상처와 아픔을 다룬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을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에드워드는 '가위손'이란 흉측한 외양의 장애인이고 외부에서 갑자기 흘러들어온 낯선 이방인이다. 그런 에드워드의 효용가치를 알아본 그들은 득달같이 그를 이용하지만 결국 에드워드에게 문제가 생기고 위기에 빠졌을 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를 배척하고 낙인찍기에 바쁘다. 마음속에 뿌리 깊게 숨겨져 있던,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불신과 편견이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와 그를 향한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버린 것.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선량하고 순수한 에드워드를 범죄자로 모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비순수한 마을사람들의 비뚤어진 시선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사실상 가장 위험한 것은 에드워드가 지닌 가위손이 아니라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주변인들의 일방적인 편견의 칼날인 것이다. 어쩌면 진짜 장애는 에드워드의 손이 아닌 마을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듯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경계하고 배척하고 선을 긋는 현실 속 우리들의 모습을 팀 버튼은
[가위손]이란 동화를 통해 개성적이면서 독특하게 풀어내고 있다. 결국 현실 속의 우리는 에드워드이기도 하고, 또 마을 사람들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안의 가위손
이렇듯
[가위손]은 인간관계 속 편견과 배척의 칼날에 대한 사회적 함의를 다룬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순수한 로맨스, 그러니까 한 남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포스터 문구처럼 '사랑을 만질 수 없는 남자'인 에드워드. 가위손을 지닌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존재이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마음껏 사랑할 수 없는 그는 천사 얼음상을 조각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달랜다. 슬픔에 잠긴 에드워드가 만들어내는 얼음조각상의 눈꽃에는 순수한 에드워드의 영혼과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기도 하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눈꽃에 반해 다가오던 킴의 손에 상처를 입히는 그의 가위손. 교통사고 위험에 빠진 케빈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려 함께 뒹굴면서도 그의 가위손은 케빈의 얼굴을 다치게 만든다. 이렇듯 자신이 그 누군가를 마음껏 안을 수도, 지킬 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한 에드워드는 킴과의 작별 키스를 마지막으로 홀로 성에 숨어살게 된다.
이렇듯 한 편의 슬픈 동화처럼 느껴지는 이들의 이야기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비단 에드워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결국 이러한 '가위손'은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는, 상처입은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존재한다. 의도치 않은 말과 행동으로 상처받는 주변 사람들과 이러한 현실로 인해 상처 입는 우리 자신은 가위손 에드워드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한 것. 결국 이러한 상처의 주고받음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염증에 빠져 각자의 외로운 동굴로 숨고 도망치기에 바쁘다. 초중고로 이어지는 학창시절과 대학교, 군대, 직장 생활 등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을 통해 우리가 배워가는 것은, 인간관계를 통해 누군가를 얻는 방법이 아닌 평생에 거쳐 누군가를 천천히 잃어가는 방법은 아닐까. 각자가 스스로를 지키기에도 바쁜, 각박한 삶의 현실 속에서 자기자신을 외로운 성에 가두는 우리 안의 가위손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It's not your fault
결국 영화
[가위손]의 에드워드라는 캐릭터는, 서툰 관계 형성 속에 속마음과는 다르게 의도치 않게 상처 입히고 상처받는 현실 속 우리들의 아픈 마음이 물리적으로 형상화된 그런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케빈을 다치게 한 거니?" 라는 에드워드의 물음에 "아냐,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킴의 존재가, 그래서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에드워드와 킴의 모습을 보며 며칠 전 감상한
[굿 윌 헌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눈에 띄는 특출난 천재성과 이에 동반된 의도치 않은 공격성으로 주변을 상처 입히고 때로는 이용당하며 스스로 상처받고 혼란스러워 하는 윌 헌팅(맷 데이먼)에게 숀 교수(故 로빈 윌리엄스)가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 "It's not your fault."
나도 언젠가 외딴 성에서 홀로 얼음상을 조각하고 있는 에드워드를 만나게 된다면 꼭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괜찮아, 에드워드. 네 잘못이 아니야."
이 한마디가, 에드워드에게 뿐만 아니라 내 안의 가위손을 지닌 채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게 관계를 맺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 서로에게 꼭 필요한 한마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