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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4/23 00:29:20
Name 자이체프
Subject [일반] 조선시대 대형재난 사고 - 2

세종 8년인 1426년 2월 15일, 한양은 불바다가 되었다. 점심 무렵, 한양 남쪽에 사는 노비 장룡의 집에서 난 불이 때 마침 불어온 바람에 힘 입어 한양을 휩쓴 것이다. 때 마침 세종은 사냥을 떠나서 한양에 없는 상태였다. 금방 잡힐 줄 알았던 화마가 거세지자 관료들은 사색이 되었다. 중전은 다른 건 다 포기하더라도 종묘는 반드시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궁궐 수비대까지 총 동원된 사투 끝에 겨우 종묘가 잿더미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밤까지 타오른 불길이 겨우 잡히고 나자 피해상황이 집계되었다. 운종가의 행랑 백여칸과 시장을 관할하는 경시서가 잿더미가 되었고, 중부의 민가 1,630호와 남부의 민가 350호, 동부의 민가 190호가 불타버렸다. 인명피해는 남자가 9명, 여자가 23명이었는데 그나마 시신이 확인된 것이고, 완전히 불에 타버린 사람은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2년 후인 1428년 한성부가 세종에게 한양의 주택이 16,921호라고 보고한 사실이 있다. 2천채가 불타버렸으니 한양 안의 민가 열 채 중 한 두 채가 잿더미가 되어버린 대참사였다. 다음날 또 불이 일어나서 민가 2백호가 불타는 추가 피해가 일어났다. 전쟁을 제외하고는 한양이 입었던 가장 큰 피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부랴부랴 사냥터에서 돌아온 세종은 담당관청인 예조로 하여금 피해자의 구호를 지시한다. 화상을 입은 사람은 의원에게 치료하도록 하고, 화재로 인해 집을 잃은 이재민들에게는 일단 식량을 공급하게 했다. 아울러 사망자들의 장례를 치룰 수 있도록 관청에서 쌀과 종이를 나눠줬다. 가족을 찾을 수 없었던 사망자는 관청에서 주관해서 장례를 치뤄주었다. 아울러 계속해서 식량과 집을 지을 자재를 공급해주는 등 후속 지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화재를 막을 전담부서인 멸화군의 창설을 지시했다. 일단 발생한 화재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와 제도적인 문제점을 보완해나가는데 주력한 것이다. 앞서 소개한 태종때의 해상 재난 사고가 인재였다면 이번 사건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종은 화재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한편,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발빠르게 취했다. 물론 왕정 시대와 공화정 시대인 오늘날을 동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의 품격과 자질, 그리고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면 무리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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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23 00:30
수정 아이콘
요순같은 훌륭한 지도자만이 계속 존재하는 보장이 있다면, 왕정은 아마 가장 완벽한 체제라는 점에 동의하는지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대처 자체는 매우 아쉬운건 사실이지만요.
Amor fati
14/04/23 00:39
수정 아이콘
저도 동의합니다. 훌륭한 지도자라는 가정만 있다면 전제군주가 가장 이상적이죠.
알킬칼켈콜
14/04/23 00:49
수정 아이콘
저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SF나 판타지에서 이런 체제(완벽한 초인이나 신神인이 왕인 제국) 그려내면 무지하게 까이거나, 작품 내 등장인물들이 알아서 부정하더라고요(...)
14/04/23 00:52
수정 아이콘
아마 완벽한 정치체제란 존재하지 않을겁니다. 왜냐면 아무리 좋은 체제가 있어도 그걸 다루는 인간이 완벽하질 않으니까요.
알킬칼켈콜
14/04/23 00:56
수정 아이콘
요순 같은 훌륭한 지도자만 계속 나온다라는 가정 자체가 '인간이 완벽하다면' 에 가까운, 그냥 상상이지요. 거의 완벽한 인간이 계속 왕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니..
자이체프
14/04/23 00:58
수정 아이콘
같은 생각입니다. 지도자의 능력과 품성에만 기대야 하고 제어장치가 전혀 없는 왕정과 공화정을 단순비교할 수는 없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일 수 밖에 없고, 그걸 보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정치체제를 시험하다가 정착된 것이 지금의 체제니까요. 하지만 세종대왕께서 지금 대통령을 해도 잘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건 저 뿐만은 아니겠죠?
14/04/23 01:07
수정 아이콘
세상은 잘놈잘이니까요
14/04/23 01:07
수정 아이콘
세상은 잘놈잘이니까요
14/04/23 03:16
수정 아이콘
좀 덕스러운 얘기지만 은하영웅전설을 읽고 감명을 받는다고 쓰고 라인하르트 빠돌이가 된 오노 후유미가 "저런 완벽한 사람이 백년만년 다스리면 어떨까"라는 발상에서 쓴 게 십이국기라고 하더군요
자이체프
14/04/23 13:06
수정 아이콘
유독 일본에서는 그런 의견들이 많네요. 저 역시 세종 대왕을 존경하고 좋아하지만 정치 체제는 군주정보다 공화정이 여러모로 좋다고 봅니다.
꽃보다할배
14/04/23 13:14
수정 아이콘
라인하르트가 이성적인 군주임은 틀림없으나 라인하르트가 군주가 되기 위한 과정을 보시면 완벽하다 할 수 없었을텐데요. 절세미모 누나를 황제의 욕정으로 공녀가 되버린걸 분개하여 황제의 목을 베기 위해 스스로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나를 염모하던 절친 키르히아이스를 잃었구요. 라인하르트는 명군이 아니라 천재일뿐입니다. 제갈량보다도 아래라고 보고, 가장 비슷한 유형으로는 나폴레옹이 있겠네요.
진정한 롤 모델이라고 한다면 라인하르트가 아니라 얀웬리죠. 현대 민주주의의 표본을 찾으려면 얀 웬리를 들여다보는게 더 맞을겁니다.
Je ne sais quoi
14/04/23 08:21
수정 아이콘
조선시대 가옥이면 불만 붙으면 정말 집이 폭싹이겠네요 ㅡ.ㅡ
하야로비
14/04/23 08:35
수정 아이콘
원래 전근대의 화재진압법은 불이 옮겨붙는 걸 막기 위해 옆집을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불이 붙은 집은 답이 없어요...
자이체프
14/04/23 13:07
수정 아이콘
그래서 당시 멸화군들이 했던 건 불을 끄는게 아니라 다른 집으로 옮겨붙지 못하도록 하는 정도였을 겁니다. 아예 불붙은 집을 무너뜨려서 번지지 않게 하는 방법도 썼던 것 같습니다.
꽃보다할배
14/04/23 09:18
수정 아이콘
어떠한 명군이라도 민주주의보다 뛰어날순 없습니다 심지어 중우정치라 비난받더라도요
근세에 박정희가 받는 비난이 실정보다 유신을 근거한 종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성군만 있는 왕정 체제를 옹호할순 없죠
그리고 세종이 애민하는거야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위의 예시도 사후 약방문이죠 지금도 사후 약방문은 계속되고 있구요
자이체프
14/04/23 13:09
수정 아이콘
맞는 말씀입니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죠. 위의 사례 역시 재난 자체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후 처리가 합리적이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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