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같은 데 보면 신원 불명의 유골이 발견되었을 때 유골의 나이를 비교적 정확하게 추정하는 방법으로 유골의 치아상태를 살펴보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방법은 상당히 정확해서 유골의 나이를 꽤 근사치로 맞출 수 있다고 합니다.
고대 인류의 유골들의 치아들을 가지고 이런 연구를 해보면 한가지 두드러진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고대 인류들은 침팬지나 고릴라, 오랑우탄과 같은 유인원들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모두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늦어지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고 합니다. 아주 옛날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이었을 때는 침팬지나 고릴라와 비슷한 시기에 빠르게 성년으로 넘어갔었는데 호모 속으로 진화하면서 청소년기가 더 길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런 진화의 최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인간은 만 18세에서 20세 정도가 되어야 육체적인 면에서 완전한 성인의 수준에 다다르게 되지요.
이런 진화의 방향이 갖는 강점은 어린 시절이 길어지면서 성인 개체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뇌가 폭발적인 수용 능력을 발휘하는 시기가 길어지면서 마치 스펀지처럼 지식을 흡수할 수 있고 그를 통해서 창의성이 발휘될 여지가 생기면서 기존의 문화나 생활 패턴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어린 세대에서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진화의 방향과 유일하게 반대로 간 고대 인류가 있으니 바로 네안테르탈인들이었습니다. 즉, 네안데르탈인들의 경우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빨라지는 쪽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는데 그러나 여기에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한 편의 비극적인(?)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진화의 방향을 역으로 튼 것은 바로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추운 유럽 지역과 서아시아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냥하는 동물들의 대부분은 몸집이 크고 사나운 놈들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네안데르탈인들이 쓰는 창은 던지는 형태가 아니라 찌르는 형태였기에 근접전이 불가피했습니다. 그에 따른 부상이나 사망의 위험도 아주 컸습니다. 따라서 부족의 일원은 빨리 커서 성인이 되어 한 몫 거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빨리 성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일찍 죽는다는 의미도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빨리 타올랐다가 빨리 시드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그런데 이렇게 아동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기간이 짧다 보니 어린 세대들에게 교육해 줄 수 있는 내용도 최소한 생존에 직결되는 기본적인 것에 한정될 수 밖에 없었고 그걸 배우고 나면 바로 성인이 되어서 실전(?)에 투입되다 보니 어린 세대들에게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또래 아이들끼리 서로 놀면서 사회성과 창의성을 길러야 되는데 그런 충분한 여유 없이 바로 성인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성인 개체들도 빨리 죽다 보니 급하게 죽은 사람들을 대체해야만 했습니다. 차분히 문화를 발전시키거나 복잡한 사회체계를 만들 여유가 없이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던 것입니다. 위 세대에서 아래 세대로 전달되는 내용도 늘 동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들의 차이는 그들이 도구를 발전시킨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두뇌 용적이 오히려 호모 사피엔스들보다 더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십 만 년의 시간 동안 그들의 도구를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옛날 네안데르탈인들이나 비교적 후대 네안데르탈인들이나 비슷한 수준의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물론 상당히 뛰어난 것들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른 발전은 거의 없었습니다.
반면 비교적 긴 아동기, 청소년기를 갖는 호모 사피엔스들은 창의성, 사회성을 키울 수 있었고 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의 지식과 문화의 전달이 상대적으로 용이했습니다. 앞 세대의 발전상이 다음 세대로 이어졌고 다음 세대는 그것을 더 발전시켰던 것이지요. 도구나 사회상, 문화에 있어서 큰 발전이 이루어 질 수 있었습니다. 두 인류의 이러한 차이는 결국 처한 환경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의 환경에서는 어린 세대가 빨리 성장해서 어른의 몫을 해주는 것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수십 만 년 동안 그렇게 성공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네안데르탈인들도 환경이 바뀌고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호모 사피엔스들과 만나는 순간 멸종의 그림자로 사라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애초에 창의성과 사회성에다가 머릿수로 무장한 호모 사피엔스의 적수가 될 수 없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은...어떻게 보면 참 불쌍한 인류였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