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외로움이 목을 타고 신물처럼 올라온다. 지난 월요일에는 집에서 고즈넉한 음악을 틀어놓고 술을 잔뜩 마신 채, 어떻게 잠든 지도 모르게 잠들었다. 한참 달게 자고 있는데, 뱃속에서는 한바탕 전쟁이었다. 흡사 3차 대전이라도 벌이는 모양이었다. 총소리에 맞춰 다, 다, 다. 걸음아 나 살려라 화장실로 뛰었다.
먹은 안주를 확인하려고 변기를 꽉 부여잡자, 아뿔싸. 안주는커녕 필사적으로 조여놨던 외로움이 뭉텅뭉텅 응어리져서 변기로 쏟아졌다. '아니, 이게 뭐야!' 피를 한 바가지 흘려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을 텐데. 깜짝 놀라 물을 내렸는데, 그만 변기가 콱 막히고 말았다. 내 마음도 먹먹해져서 콱 막히고 말았다. 변기에 물이 내려가듯 콸콸 눈물이 쏟아졌다.
인류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그냥 외로워서, 사랑받고 싶어서 안달 난 채, 양손을 날개처럼 펼친 날짐승의 형상이다. 서로 가만히 눈을 맞추고 보고 있자면 까닭 없이 가여운 마음이 들어 서로 쓰다듬어 주고, 보듬어 주고 만다. 누가 미움받고 싶겠느냐마는. 때때로 사랑받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상처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얼음에 대고 심장을 비비듯 가슴 한켠이 싸늘해진다.
신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만물을 창조했다는데. 그들의 피조물인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몸은 세월이 지나며 자라고 시들겠지만 외로움은 그렇지 못하다. 잭의 콩나무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기만 한다. 올곧게 자라면 보기라도 좋지. 형편없이 삐뚤삐뚤 자란다. 마치 미운 3살, 떼쟁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마냥.
인류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보라. 나처럼 술로 적당히 이겨보려는 비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사로 젖먹던 힘까지 다해 조여놓은 사람도 봤다. 끼니마다 밥에 말아 후룩, 삼키는 사람도 있었다. 지구만 한 상자를 만들어 차곡차곡 담는 사람도. 찔리면 반드시 죽을 것 같은 대바늘로 몇 년인가 외로움을 담을 주머니를 만드는 사람도 봤다. 그들은 성공했을까?
아마 실패했겠지.
나처럼 술로 이기려는 사람은 적당히 바보 같은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나사는 헐거워지고 녹이 슬어 결국 풀려버렸다. 끼니마다 밥과 함께 꾸역꾸역 삼키던 사람은 비만과 각종 성인병을 앓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구만 한 상자는 이미 이 억만년 전 가득 차버려서 지금은 우주만 한 상자를 주문했다고 한다. 대바늘로 주머니만 짜던 사람은 손이 남아나질 않은 모양이다. 암, 그 바늘이면 강철로 만든 골무도 뚫을 기세였으니까.
특히 골방에 박혀 외로움 주머니와 씨름하던 그는 며칠 전 내게 "이 대바늘로 심장을 콱 찔러 죽고 싶다고", 엉엉 울면서 내게 전화했다. 난 친절하게 소주와 맥주를 말아주며 '외로움은 인류가 앓고 있는 일종의 선천적 질병'이라고 말해주며 잘 아는 바텐더를 소개시켜 줬다. 부디 그가 다시 무덤덤하게 주머니를 짜러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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