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12/30 07:10:11
Name 트릴비
Subject [일반] 감사의 글
12월 초에 석사 논문 디펜스를 마쳤다.

심사위원 교수님들께서 이런 저런 사항을 지적해주셔서 고쳐야 했지만,
졸업하겠다고 몇 달을 삽질했는데 디펜스가 끝나자마자 당장 고칠 마음이 생길리가 없었다.

놀기도 하고 송년회도 치르고 연구실 일도 정리하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늘 새벽이 되서야 최종본을 만들었다.
그나마도 연구실에서 같이 졸업하는 친구와 오늘까진 마무리하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된거지,
아마 그것마저 없었으면 1월 막판에 입사 앞두고 논문 고친다고 똥줄 좀 태웠을 것이다.


사실 석사 학위 논문이란게 박사 학위 논문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 없는, 아마존 산림의 낭비를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다.
그냥 똥인 학사 학위 논문에 비하면 좀 낫지만, 산림을 낭비하는 물건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똥이라고 해도, 쾌변하진 못했더라도 일단 싸고나면 어쨌든 기분 좋은것 아니겠는가.

기분이 좋아지면 감사의 마음도 절로 생겨나기 마련이다.
아마도 학위 논문 마지막에 있는 감사의 글은 이런 마음을 표현하라고 있는거겠지.

즐거운 마음이 되어 감사의 글을 써내려 간다.


존경하는 지도교수님 부족하고 쓸모없는 저를 지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이 미세먼지에 불과한 저는 대형먼지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수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한 줄 더 추가합니다
연구실 누구님 감사했고 애인 생기시길 바랍니다
누구님 감사했고 술 좀 줄이시고
누구님은 감사했고 열심히 좀 하시고
누구님은 감사했고 원래 잘 하시니까 걱정도 없고
그 외에 친구님들아 고맙고
대체 어디 계신지 모를 미래의 부인님께 감사하고 싶고 (이건 처음엔 재미있었는데 나중엔 왠지 슬퍼서 결국 지웠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믿어주시는 사랑하는 부모님 으앙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해가며 한마디 두마디 덧붙이다 보니,
새벽 2시쯤부터 쓰기 시작한 감사의 글이 새벽 6시가 되서야 완성이 되었다.
내용은 B5로 4장이나 된다. 세상에 감사할 일이 참 많았나봐. 아 보람찬 인생.


감사의 글을 써내려 가는 동안 생각한답시고 피지알만 십분마다 한번씩 들락날락했다.
이 애증의 사이트.
가입한지는 한 2년 되었지만, 사실 눈팅을 그것보다 더 오래해왔다.

스타즈 빠돌이가 되어 구경오기 시작한 사이트에서 불판글을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승부조작이 터졌을 때 분노했던 한 눈팅 유저는,
이젠 웅진 스타즈 해체에 슬퍼하며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고,
라일락을 가루가 되도록 까는 평범한 아이엠 팬이 되었다.

몇 년간 게임 게시판의 글을 눈팅만 해오던 유저는,
이젠 자유 게시판과 유머 게시판도 밥먹듯이 들락날락하는 평범한 피지알러가 되었다.

논쟁이란걸 싫어하고 싸우기를 귀찮아 하던 눈팅 유저는,
젊은이라면 마땅히 취해야 할 합리적인 중도 보수(a.k.a. 생각이 없으나 있어보이고 싶어하는 종자) 포지션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가끔 댓글도 다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피지알이 그나마 상대방의 의견을 잘 받아들인다거나, 합리적이라거나, 예의가 있다거나 하는 내부 평가(?)에는 그다지 동의하지는 않는다.
글을 읽고 댓글을 읽고 하면서 참 기분 나쁜 경험을 한 적도 있었고,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많이 봐왔으니까.

근데 뭐 원래 모든 커뮤니티란게 다 그런거다.
재미있다가도 싸우고 정떨어지고 탈퇴하고 어쩌다보니 또 들어가고 아님 다른 커뮤니티로 가버리고 그런거다.
정확하게는 사람 모인데는 다 그런거겠지..


그래도 아직까지는 정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이놈의 남색(구 똥색) 사이트를 여전히 들어온다.
연구실 출근하면 일단 글들을 쭉 보고, 일하다가도 하기 싫을때면 들어오고, 걸어가다가도 심심하면 핸드폰으로 들어온다.
대학원 생활 2년동안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아마 곧 들어갈 회사에서도 뻔질나게 드나들거다.



그러니까,
가끔 마음에 안드는 사이트지만,
나도 가끔 마음에 안드는 회원이겠지만,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싸이유니
13/12/30 08:23
수정 아이콘
회사 적응좀하심뒤면 어느샌가 출근하고 pc를 키자마자 pgr을 하고 계실거에요....
13/12/30 08:52
수정 아이콘
윗 댓글 격하게 공감합니다. 크크크

일단 논문 탈고 축하드립니다. 제 주위 몇몇 사람들도 요즘 논문 때문에 엄청고생하고 있더군요.

글쓰신분 말씀대로 석사 논문은 '똥'이라고 생각하는데 몇몇 실험실 후배들이 '형 논문 많이 참고 했어요' 라고 할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석사학위 취득한지가 벌써 3년이 넘어가는데 제 논문 단 한장도 본적이 없습니다.

여하튼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사회 생활 잘하시길 바랍니다.
13/12/30 09:41
수정 아이콘
저는 그 똥 싼지 너무 오래되어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왕똥 쌀때도 쾌변하고 나면 모든게 끝일거라 생각했는데, 야생에 나가보니 그 똥들 기다릴때가 그립더라는...
늘지금처럼
13/12/30 09:57
수정 아이콘
저는 아직 똥을 싸는중입니다 ㅠㅠ 마무리 잘하셨다니 축하드리고 부럽네요~
FastVulture
13/12/30 14:06
수정 아이콘
수고하셨습니다 흐흐
강가의 물안개
13/12/30 15:11
수정 아이콘
세상에 2시에 시작된 감사가 6시에 끝나셨다구요? 와~~보람찬 인생 맞네요.크크
수고 많으셨어요.
논문 통과하신것 축하드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8997 [일반] 역대급 가요대전 [35] 오즈의마법사10113 13/12/30 10113 0
48995 [일반] 김성균&도희/박새별/길학미의 뮤직비디오와 걸스데이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14] 효연광팬세우실6028 13/12/30 6028 0
48994 [일반] 취직했습니다~ [87] bbog5832 13/12/30 5832 6
48993 [일반] 1달쯤 전에 일어난 교통사고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20] 마음속의빛5334 13/12/30 5334 0
48992 [일반] 차 사고를 냈습니다. [102] 글곰8025 13/12/30 8025 3
48991 [일반] 이제 지긋지긋한 스팸전화에서 해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14] 광개토태왕7551 13/12/30 7551 2
48990 [일반] 내 맘대로 뽑은 2013년 일본 애니메이션 BEST 50 [40] 오우거7683 13/12/30 7683 5
48989 [일반] 철도 민영화에 대한 친구와의 대화 [36] 고구마팔아요6133 13/12/30 6133 1
48988 [일반] 변호인 어디까지 실화일까 (변호인 2번 봤습니다) [21] Duvet11104 13/12/30 11104 6
48987 [일반] 與野, 철도민영화방지 소위 구성 잠정 합의 [33] 효연광팬세우실5045 13/12/30 5045 0
48986 [일반] 감사의 글 [6] 트릴비6337 13/12/30 6337 2
48985 [일반] [공지] 더 지니어스 게시판 신설 (임시 게시판) [39] Toby9167 13/12/30 9167 3
48984 [일반] 가장 외로웠던 장례식. [8] nickyo5895 13/12/30 5895 14
48983 [일반] 꾸준히 그리는 것의 중요성 [9] 김치찌개4084 13/12/30 4084 0
48982 [일반] 나트륨 함량이 가장 많은 외식 음식 Top10 [26] 김치찌개6343 13/12/30 6343 0
48981 [일반]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억만장자들의 집 Top10 [3] 김치찌개3702 13/12/30 3702 0
48980 [일반] 처음 가본 서코 후기 [35] 오즈s6646 13/12/29 6646 1
48979 [일반] Let's 古 시간탐험대 보시나요?(약간스포) [32] 팥빙수6056 13/12/29 6056 1
48978 [일반] 삼성라이온즈 단신 [21] style6386 13/12/29 6386 0
48977 [일반] [해축] [이적시장 D-3] BBC해외축구 가쉽 [25] V.serum4215 13/12/29 4215 0
48976 [일반] 고려, 30년에 걸친 왜구의 사슬을 끊어내다 - 이성계의 황산대첩 [14] 신불해8372 13/12/29 8372 4
48973 [일반] 2013년 숨은 명곡들을 소개합니다. [13] Hobchins6360 13/12/29 6360 0
48971 [일반] 강희제 아저씨에 대한 서양 예수회 선교사들의 반응 [14] 신불해7929 13/12/29 7929 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