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인가 몇주 전인가 10년을 넘게 만난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야, 10년 전이랑 지금이랑 비교해봤을 때 한국에서 가장 발전이 없는 논의가 뭘까.' 몇 가지 개념을 장난처럼 늘어놓다가 우리는 결국 두 개의 개념어에 도달했다. 한 가지 개념은 그냥 웃고 넘어간 소재라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나머지 한 개념은 폴리아모리였다. 폴리아모리. 다자간 연애, 로 번역되는 어딘가 그럴싸하고 쿨싴해 보이며 컨템퍼러리한 앰비언트가 로부스트하게 피쳐링된...아아 그만. 손가락이 썩는다(실은 이미 지난 변호인 리뷰글 쓰다가 반쯤 썩어서, 더 썩히면 곤란하다. 낄낄). 아무튼 그거. 다자간 연애. 사람 한명과 다른 사람 한 명이 독점적 섹스권과 감정보조권을 가지는 일반적인 형태의 연애가 아니라, 그 이상의 사람들이 개입되어 있는 그런 종류의 연애. 요즘은 오픈 릴레이션쉽이란 말도 많이 쓰더라.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그건 프리섹스주의, 의 현대적 어휘에 가깝겠지마는.
좀더 직관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공인된 양다리, 정도가 되려나. 물론 그보다 복잡한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양성애자 여성인 내 친구는 유럽인과 결혼했고, 후에 다른 여자 하나와 셋이 서로 승인 하에 사귀었다. 사람이 셋에 관계가 셋. 물론 그러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더 좋아해서 이혼할 뻔했다는 후문을 들었으나 어차피 이제 연락도 안 닿는 친구, 뭐가 되든 무슨 상관인가. 아무튼 그런 이야기. 나는 대충 십오년쯤 전에 어떤 글에서 폴리아모리, 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부정확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내가 읽은 글은 지금으로부터 대충 이십오년쯤 전에 쓰여진 글이 아니었나 싶은데. 아무튼 그때 읽은 글은 폴리아모리의 기본적인 몇 가지에 대해 다룬 굉장히 간략한 개론이었다.
그리고 대충 십오년이 지났고,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오랜만에 그 단어를 발견하고, 이것저것 찾고 읽었다. 아쉽게도 딱히 달라진 이야기가 없다. 서로 모두 합의해야 해요. 어쩌면 이상적인 관계일 수도 있어요. 등등. 등등. 기초적이고 개론적이고 좋은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성경 혹은 윤리교과서 혹은 공산당선언과 별 다른 차이가 없는 이야기들. 노동권의 측면에서, 10년 전에 비정규직 노조의 깃발이 올라왔다면 이제 알바노조의 깃발이 올라왔다. 페미니즘은? 파시즘은? 그런대로 지난 10년간 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추가대고 덧대졌다. 그중 몇몇은 아름다운 패치워크가 되었고 그중 몇몇은 엉망진창 프랑켄슈타인이 되었지만 아무튼 변했다, 는 것이 중요하다. 폴리아모리는. 글쎄. 젠더퀴어(성 소수자)의 영역으로 다루는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정도의 변화가 있었나. 근데 십년 전에도 젠더퀴어의 영역에서 폴리아모리를 논의하려던 시도가 없었던 것 같지는 않은 기억인데. 아, 최근의 외국 문헌을 검색해보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한국의 논의니까.
물론 어떤 이야기가 더 이상 복잡화되지 않는다고 그 이야기가 이미 죽은 이야기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끝나버린 노래도 얼마든지 매력적이다. 허나 역시 대체 왜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르지 않는 걸까, 하는 궁금증은 있는 것이다.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이글 저글 읽고 이사람 저사람과 이야기하다가, 흥미롭지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지만 글 하나 써 볼 만한 이야기는 얻어낸 것 같아서, 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세 종류였다.
1.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이미 성공적인 '내부적' 커뮤니티를 통해 스스로의 각본과 서사를 획득하고, 무난하게 살아간다. 이를테면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확립된 다른 종류의 성적 소수자인 에세머, 게이, 레즈비언들처럼, 자체적인 '커뮤니티'를 구성하며, 성-정치적 담론을 제외한 성적인 논의를 굳이 외부자들과 나누지 않는다.
2. 폴리아모리는 기본적으로 자기완결적인 서사이기에, 추가될만한 외연이 없다. '여럿이 사귄다. 공개적으로.' 그 이상의 할 말이 무엇이 있는 이야기인가.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인 연애에 어떤 사회학적 서사가 필요한가.
3. 폴리아모리를 이야기하던 꽤 많은 친구들은 어깨가 덜 오그라들면서도 사태의 본질을 더욱 명확히 꿰뚫는 어휘를 사용하며 삶에 대한 논의들보다 삶 그 자체에 더 집중한다. 나 바람펴, 한마디 하고 두 번째 애인을 만나러 송년회 회식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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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은 부분적으로 내가 예전에 쓴 논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한국 성 소수자의 성 파트너링 유형 파악-수정된 성각본 이론을 바탕으로>라는는 제목이었는데, 요점은 '사회적 층위'의 명확한 각본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 (이성애자-모노가미를 제외한 경우. 본 논문에서는 게이/레즈비언/바이섹슈얼) 에서 게이/레즈비언은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그 커뮤니티 내의 각본을 성 행동의 주된 각본으로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젠더퀴어 영역은 이를 통한 함의를 도출해 볼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이를테면 에세머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친구 중에 '백과사전 섹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녀석이 있다. 그는 백과사전에 필적하는 성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지만-섹슈얼리티로 논문을 쓴 나보다 훨씬-저 별명은 그래서 붙은 별명이 아니라, 백과사전을 사용하는 breath-play를 즐기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새디스트다, 이 말씀. 한때 SM 커뮤니티에서 꽤나 활동했고, 관련 분야(섹슈얼리티와 사회학의 거리만큼 멀긴 하지만)의 석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학구적인 친구다. 무튼, 나는 그와 이야기하면 여러 가지를 배운다. 한달 쯤 전에는 그에게 몇몇 SM 커뮤니티의 유행 경향 중 하나인 ruined orgasm (섹스를 하되, 사정을 지연시키고, 결국 사정을 좌절시키는 행위를 통해 쾌감에 도달하는 남성-마조히스트의 방식)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SM의 외부에서 SM에 대해 꽤 많은 관심을 가진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즉, 외부로 돌 만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게이-레즈비언의 이야기야 이젠 워낙 일상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연구와 일상을 통해 꽤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어디까지가 안의 이야기고 어디까지가 밖의 이야기인지에 대해 좀 헷갈리기도 하지만, 분명히 안의 이야기와 밖의 이야기 사이에는 모종의 벽이 있다(고 적어도 나는 느낀다). 폴리아모리도 이를테면 이런 상황일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폴리아모리를 둘러싼 철학/사회학적인 문제와 구체적인 행동양식에 대해 논의하며, 필요하다면 정치적 시민권을 위한 투쟁의 양식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이야기는 대체로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외부자인 내가 몇년간 추가된 논의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2. 가능할 수 있는 논의라고는 생각하지만, 나는 이 견해에 거의 동의하지 못한다. 연애는 개인적인 관계일 수 있지만, 뒤르켐이 말했듯 '사회적 속성은 사회적 관계에서 새로이 등장하게 되는 발생적 개념이다'. 연애는, 아니 당장 폴리아모리의 저편에 존재하는 모노가미는 얼마나 많은 사회학적 기층 위에 존재하는가. 지도교수의 명언을 빌려보자면, '무인도에 고립되어 자위를 하는 남자를 생각해보자. 이 행동은 사회적인가? 그 행동은 100% 사회적인 행동이다. 그가 어떤 자세로, 무엇을 떠올리며, 어떠한 방식과 빈도로 자위를 행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무수한 사회적 설명을 제시해 볼 수 있다.' 사회적 사실을 제외하고 연애를 고민하는 것은 누군가의 표현처럼 중력을 빼고 천문학을 논의하는 것과 가깝다.
다만 저 명제를 '연애란 개인사적인 영역이고, 만일 그에 대한 사회적 설명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결국 연애는 두 사람의 문제이며, 그것은 윤리의 영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폴리아모리의 기반과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영역을 논의하는 것은 반칙이다'의 수준으로 해석한다면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있으며, 동시에 '왜 이 영역의 논의가 추가되지 않느냐'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훌륭한 설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공격적인 문장에서 예상해볼 수 있듯이, 어쩌면 이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꽤 많은 친구들이 삶 속에서 폴리아모리스트를 만났다. 아쉽게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아아, 사랑은 비둘기여라 그대는 매가 아니다, 하는 이소라의 노래를 한 번 읆조리고. 그리고 결과는, 대체로 안 좋았다. 동의해보려고 노력해 본 케이스도 있고 뭐야 썅 하고 바로 헤어진 케이스도 있다. 가장 웃긴 케이스는, 바람피다 쳐걸려놓고 '실은 제가 폴리아모리스트 데헷' 하면서 만나던 두 여자에게 똑같은 편지를 보내고 '니들 맘대로 해라 나 이런 놈이니 사귈래면 사귀고 말래면 말고' 해서 남게 된 한 명의 여자와 사귀게 되었다는 쓰레기같은 케이스다. 물론 ''너만은 날 이해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너에게 상처받았어' 라며, 폴리아모리스트인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윤리와 논리를 모노가미 지지자인 애인 3번에게 방기하는 테러를 저지른 케이스도 있다. 뭐, 살다보면 다들 한번 폴리아모리스트나 프리섹스주의자들에게 한 번은 데이게 되는 게 인생이지. 두 번 데일 수도 있고. 아무튼, 좋은 이야기를 들은 기억은 몇 개 없다. 물론 그들은 다만 바람둥이였으며, 바람피다 걸렸을 때 방패로 써먹을 가장 좋은 개념으로 폴리아모리를 전유했던 저열한 쓰레기였을지도 모르며, 진지하게 폴리아모리에 대해 고민하며 실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 내에서 더욱 정교화된 이론과 행동을 고민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그 커뮤니티에 들어가거나, 커뮤티니의 사람과 소통할 기회가 있느냐 하는 건 역시 또다른 문제겠지만.
물론 이러한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내가 아는 전라도 사람들은 다들 통수의 대가더라' '내가 아는 게이들은 다 문란하고 아무데서나 끼떤다' 그러므로 전라도와 게이는 멀리해야 된다. 이런 식의 멍청한 논의로 흘러갈 위험이 있는 것이다. '내가 만난 폴리아모리 지지자들은 그냥 다 발기성 해면체같은 놈들이니, 폴리아모리는 발기성 해면체같은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자는 것이 아니다. 허나 내적 연관성이 있다면 어쩔 건가. 이를테면 최근 젖병테러와 호빵테러를 저지른 일간뭐시기 회원이 총파업 집회판 인근에서 노점치킨을 판다고 하며 '폐유를 쓰거나 일부러 맛없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치킨에 좌우가 어디있냐' 라는 글을 쓴다면 나는 딱히 그를 비난하거나 비판하거나 불매 운동을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마따나 치킨에 좌우가 어딨냐. 이상한 짓만 안하면 치킨 팔 수도 있지. 다만 일간뭐시기가 평소에 보여준 노점상-을 비롯한 빈민의 탈법적 행위-에 대한 관점이나 그간 음식에 행해온 테러를 생각해볼 때, 아마 나라면 그 치킨을 절대 안 사먹을 것이다.
2번의 논의와 관련하여, 폴리아모리의 뼈대와 철학은 결코 폭력적이지도 문제적이지도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폴리아모리가 제시하는 이야기들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모노가미보다 훨씬 행복하고 편한 삶의 방식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매우 당연하지만, 그들은 게이와 레즈비언과 SMer들만큼 안전하며 무해하다. 관계의 참여자들이 잘 동의한다면, 내 동생이 그걸 하건 내 가장 친한 친구가 그걸 하건 말리거나 부정적으로 볼 생각도 없다. 하지만 '추가적인 논의가 발생하지 않고, 그것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또 자리를 메꿔서, 이야기가 더 진행되지 않고 계속 총론적인 이야기가 돌고 도는' 어떤 논의에서,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간 사람들이 보여 준 무책임한 사건들을 몇 개 접했을 뿐이다. 흠, 그러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나는. 물론 이러한 방향의 논의는 몇몇 변절자들의 더러운 사건들을 입에 올리며 '거봐 학생운동이니 정치운동이니 다 헛거라니까' 라고 하는 종류의 멍청한 태도와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음, 복잡하다. 하지만 역시 나는 폴리아모리를 이야기하는 신뢰하기 힘들 것 같다. 차라리 '나는 바람을 피고 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신뢰할 것이다. 전자는 기본적으로 지금의 내가 잘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사람인 것이 확실하고(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연애-권력관계의 우위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자이거나, 폴리아모리를 바람기의 방패막으로 사용하거나, 왜 날 이해하지 않아, 하며 자신의 윤리와 논리를 타인에게 방기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후자는 적어도 자신의 윤리와 자신의 논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게 확실하다. 물론 그 윤리와 논리가 딱히 수용 가능한 종류의 것이 아닌 게 문제겠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어느 티셔츠에 의하면 폴리아모리는 잘못된 것이란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혼합이라니. 그건 멀티아모리나 폴리필리아여야 한다는데. 언어학자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만. 뭐,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