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3/12/23 12:31
김재규씨에 대해서는 엄밀한 재평가가 필요할것입니다.
이지경이 된 것에 대해서는 민주화, 진보 세력도 반성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만, 부친의 불행한 과거사를 보고도 느끼는 바가 전혀 없는 레이디 박통이 점점 더 걱정이 됩니다. (하긴 그렇게 하고 싶은거 다하고 천운만 따르는 MB보면 뭐가 무섭겠습니까만...)
13/12/23 12:39
역사의 if를 말하는 것이 정말 쓸데 없다고 누군가는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거만큼 재밌는게 또 없죠. 크크크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실제 그마만큼의 학살자가 나왔다면, 지역감정에 기반한 지금의 정치판은 나오지 않고, 새누리당은 없을거라 봅니다. 하지만, 민주당이나 어디선가 또 다른 악이 나올지도 모르죠. 그리고 그만큼의 생명의 댓가를 교환할만큼 지역감정 타파가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구요. 개인적으로는 역사를 되돌리고 싶다면, 친일파 숙청부터 제대로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ㅠㅠ
13/12/23 12:41
저도 마지막글에 동의합니다. 지금의 모든것의 근원은 친일파 숙청의 실패부터 간다고 생각해요. 거기서부터 꼬인것이죠.
13/12/24 05:07
친일파 자손들 재산이라도 좀 환수했으면 좋겠습니다만 우리나라에 프랑스대혁명 같은거라도 일어나지 않는한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혁명이 만일 일어난다 치더라도 어느범위까지 친일파로 적용을 해야할지 그리고 그 격변의 과정속에서 과거 격변에서 기회주의자로 살아남았던 친일파들이 역시 교묘하게 빠져 나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13/12/23 12:40
동의할수 없는 부분은 김재규가 총으로 쏴죽이지 않았다면..
부마항쟁으로 독재가 끝났을걸로 보지 않구요.. 부산마산은 80년 광주만큼의 희생이 있었을 걸로 생각됩니다..
13/12/23 13:03
결과는 물론 그랬을 겁니다. 부마항쟁으로 시작해서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그게 전국으로 번져나간다면..
그래도 이런건 상상도 하면 안되겠죠.
13/12/23 12:42
근데.. 만약에 그럼 차지철 말을 안듣고 뭐 이차저차 어떻게 해결이 되었다.. 하면
지금도 박정희 대통령 시대로 살게 되었으려나요 아들에게 물려줬으려나..
13/12/23 12:58
김재규는 재평가 해볼만 하죠. 그런데 그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기는 하지만요.
1) 차지철에 대한 신임 때문에 갑자기 사춘기가 와서 반항을 한건지. 2) 막 나가는 정부에 대해서 본인이 직접 칼을 빼들었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인지. 뭐 1번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지만요.
13/12/23 13:01
김재규 본인도 그 시점에 들어선 민주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하더라구요. 암살 이전에도 박통에게 민주화 건의를 몇 번 했었다네요. 아마 두 가지 모두
영향이 있지 않았나합니다.
13/12/23 13:10
한홍구 <유신과 오늘>을 보면, 김재규가
긴급조치 10호를 건의 (그 내용이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했으며 , 1979년 5월에 김영삼이 전당대회에서 선출될때, 당시 가택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김재규가 눈감아줘서 단합대회에서 김영삼, 김대중이 손을 잡는게 가능했다. 는 등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조금이나마 보여줬다고 합니다.
13/12/23 13:35
개인적으로 2번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 까진 아니더라도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는 증거는 종종 밝혀지곤 하죠. 단, 체계적인 행동도 아니었고..약간의 공명심도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3/12/23 13:01
좀 더 확실한 인과관계를 봐야되죠.
1. YH사건 발발 2. 김영삼 제명 및 의원직 박탈 3. 그로 인한 부마항쟁 촉발 4. 차지철 “데모대 100만∼200만명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 발언 5. 10.26. 장하나의원 제명안 제출됬다고 하죠? 역사는 반복될까요? 아니면...
13/12/23 13:47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도 있지만 저는 김재규가 저격안했어도 박정희의 끝은 시간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장기간 독재로 인한 피로감도 높았지만 무엇보다 70년대 말 경제상황이 최악이었어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들고일어난 군중들보다 무서운 건 없습니다. 심지어 작년이었나...북한에서도 화폐개혁 실패한 뒤로 시장상인들이 보위부원한테 대놓고 개겨도 못본 척 넘었갔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기사화 된 적 있었습니다..
13/12/23 14:14
북한 경제가 어려웠던건 김일성 말부터였는데 지금까지 세습정치를 하는걸 봐서는 경제적인 문제로 민주화가 되었을거라는 보장은 없어보입니다.
13/12/23 14:31
그럴 수도 있구요. 역사에 만약은 없으니...
다만, 제 생각은 위와 같음입니다. 빵을 원하는 대중들에 의해 무너진 사례도 많아서요.
13/12/23 16:07
저도 여기에 공감하고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은 전두환이라는 유신의 사생아의 탄생을 불러왔다고 보구요 박정희가 국민손에의해서 안끌려 내려간게 대한민국역사에 큰 한?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손에의해서 내려졌어야 거의 지금 전대갈이랑 비슷비슷하게 취급 받을거 같은데 말이죠
13/12/23 19:30
김재규의 저격이 전두환이라는 사생아를 탄생시킨건 사실이지만, 그 저격 한방으로 수천 수만의 목숨을 살렸을 수도 있죠
사실 개인적으로 김재규의 총탄이 아니었다면 큰 인명 피해는 피할 수 없었다고 생각되거든요 물론 인명 피해 뒤에 국민의 손에 의해 정당하게 박정희를 심판 할 수도 있었겠지만 또 다른 인물이 그 자리를 집어 삼키고 전두환 비슷한 행태를 보여줬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김재규의 총탄+불완전한 민주주의 vs 부마항쟁으로 인한 인명피해+국민의 심판+(완전한 민주주의or또다른 독재의 시작) 이런 구도라면 김재규의 총탄은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역사에 만약은 없으니 모를 일이지요
13/12/23 21:09
김재규 씨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 저격 후 왜 중정으로 가지 않고 육본으로 갔느냐는 의문일 수 있지만 중정으로 가서 스스로 권력을 잡는 건 또 뭔가 아니다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