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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17 01:20
이런 댓글은 원래 첫플로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소설을 읽은 적은 없지만, 소설이 끝난 시점 뒤에 주인공과 산나리는 들소 사냥이 불가능한 커플이니까 산나리가 채집하는 딸기로 연명하다가 머지 않아 굶어죽었겠군요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예술가가 아무리 예술을 위한 예술이네 뭐네 해도 다른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재화를 사용하는 이상 너무 고고한 척 하면 곤란하다는 얘기였습니다)
13/12/17 01:37
네 바로 그 부분을 소설 속에서 '큰 목소리' 가 지적합니다 ''나의 목소리가 노래 부르기 위한 노래에만 바쳐질 수 없듯이 너의 선과 색도 그림 그리기 위한 그림에만 바쳐질 수는 없어. 이 모두는 동료인 인간들을 향한 거야.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들의 이익과 관심에서 멀어져가면 이미 아무런 가치가 없어. 아니 그 이상 - 그것은 배반이야. 우리가 창 자루를 잡거나 숲을 달리며 땀 흘리지 않아도 그들이 우리에게 매일의 고기와 낟알을 보내오는 것은 분명 그런 의무와 책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야. 너의 선과 색은 절대로 너만의 것일 수가 없어..." 라고.. 말하거든요.. 그리고 들소 주인공의 그림 그리는 삶은 고고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궁상떨고 있어서... 마지막에 산나리를 두고 떠나면서 역시 산나리와 둘 사이에 낳은 자식들이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을 예상하고 괴로워하기도 하구요... 예술가의 길을 택하려면 어느정도의 경제적 어려움은 각오해야 한다.. 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듯? 하네요...흐
13/12/17 01:54
저야 뭐 소설을 읽지 않은 입장이니 주인공에 대해서 상세한 비평은 불가능합니다. 예술가에게 어느 정도의 고고함이 필요한 것도 잘 이해하고 있고요. 하지만 본인도 인간 사회의 일원이라는 정도는 이해해야 하지 않겠나, 즉 일정한 선이 있지 않겠냐는 정도의 이야기였습니다.
13/12/17 03:39
뭐, 헌데 그렇지 않으면 굳이 예술일 이유가 없으니까요. 고고한 척이 아니면 예술일 이유가 없다는 게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을 때, 소설의 방점이 전자가 아니라 후자에 있다면 그건 굳이 소설일 이유가 없어지죠. 물론 방점이 후자에 있으면서도 위대한 소설들은 있습니다만(카프카라던지 카프카라던지...), 그건 솔직히 굳이 소설로 안 써도 위대할만한 사유가 기반이 있으니 그런 거고...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소설들은 아무래도 전자에 방점을 찍어야 스스로가 소설인 이유를 증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도리어 지나치게 후자에 방점을 맞추는 때 문제가 나타나지 않나 싶습니다. 당장 국내 문단을 봐도 그렇구요. 문단에 이야기꾼이 많지 않고, 사장(김훈)과 형식(이인화)의 미감을 따질 줄 아는 이들도 몇 없죠. 주제가 내포하는 윤리적, 정치적 함의에 골몰하는 건 좋은데 그것만 있다면 왜 굳이 소설이어야 하냔 의문에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그 주제의식이 제대로 잘 쓰여진 인문학적 저술로 옮겨 쓴다고 해도 그만한 위상을 차지할 수 있겠느냐라면 아무래도 아니올시다구요.
13/12/17 04:04
그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사실 저는 예술을 보거나 듣는 능력이 0 에 수렴하는 인간인지라, 철학책을 보면 오오오! 를 연발하면서도 문학이나 미술 작품등을 볼 때에는 그야말로 멍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후자쪽에 집중하는 거 아닌가 싶네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13/12/17 01:50
만나뵌적 있는데 이것과는 좀 다른 소설이지만 제가 가장 아끼는 그의 소설인 '금시조'이야기를 하니
머쓱해하며 말을 돌리시더군요. 뭐 그렇다구요. 들소 만큼이나 전 금시조를 추천합니다. 이 소설 역시 예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3/12/17 02:57
해방 이후 소설가 중 이문열이 가장 위대한 재능인 까닭은 [황제를 위하여]에서 나타나듯, 너무나도 정치적인 한국의 근현대사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이를 모두의 희극으로서 승화시키는 예술적인 역량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유사한 카테고리에 놓일 마르케즈의 [백년의 고독]이나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등과 비교해도 충분히 자기만의 영역에서 빛을 발하죠(물론 살만 루시디의 [한밤의 아이들]은 무리입니다. 루시디는 존재가 불가해한 괴물이니까요...ㅠㅠ). 특히 연의와 소설의 톤을 혼용한 전후반부 구성의 경우 후자와 같이 서사, 주제와 호응하여 진한 형식적 쾌감을 전해올뿐더러, 실록의 한문투를 옮겨놓은 듯한 문체의 외피를 둘러 이를 한층 심화합니다. 그야말로 이 땅의 역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주제의식을, 이 땅의 역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서사에 담아, 이 땅의 역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내는데...... 내 모국어에 감사하게 되는 기쁨을 던져주죠. 이런 작가 또 없습니다.
그러나 이문열이 그 위대한 재능만큼이나 안타까운 까닭은, 그가 발표한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이러한 재능에 걸맞는 작품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에 있지요. 물론 황제를 위하여만으로도 국문학도 입장이라면 더없는 축복입니다만...
13/12/17 03:03
밀레니엄때 어떤 소설집에 낸 소설 보고
아...이 사람은 문학적으로 이제 맛이 갔구나...생각했네요. 뭐 그 전에도 우상의 눈물 열화카피 같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때문에 별로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과대평가 갑류라고 생각...
13/12/17 03:05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우상의 눈물이 열화카피라니, 문학적인 '열화'의 잣대가 무엇인지 묻고 싶어지는 댓글이로군요.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한 재능 하나만으로도 감히 함부로 논할 수 없는 게 이문열입니다.
13/12/17 03:12
'소재만 살려서 글빨 세우는' 걸 논외로 하고 소설을 이야기할 수 없으니 말이지요. 그 '정신'만을 세우려고 한다면 살만 루시디는 마르케즈의 아류일 것이며(아마 마르케즈 당사자조차 [한밤의 아이들]을 보고 그리 말할 순 없을텐데 말입니다.), 카프카 이후 수많은 소설가들이 쓰는 것에 대해 우리는 붙일 말이 없어질 겁니다. 주제가 함의하는 윤리적 물음을 극단적인 사장과 형식적 쾌감에 기대어 표현하는 레이먼드 카버나 이언 매큐언의 앞에서, 그러한 자극적 소재에 대한 물음이 학적 사유에선 이미 예저녁에 다룰만큼 다뤄서 국물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니 입 다물라고 할 순 없지 않습니까.
13/12/17 03:06
참 대단한 이야기꾼인데, 이야기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은 정치적인 동물이고... 여러 모로 아쉽습니다. 진짜 대단한데, 좋아할 수는 없는... 말씀하신 것처럼 작품 속의 얘기꾼이 돼버렸어요
13/12/17 03:12
참,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이문열도 대단한데, 이런 소개글을 쓸 수 있는 yangjyess님도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잘 읽히고 사고의 흐름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쓰신 분의 감상이 잘 드러나는 소개글도 인터넷에서는 자주 보기 힘든 것 같거든요. 결코 현학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더더욱이요. 글 잘 봤어요.
13/12/17 10:04
참 글 잘 쓰는 분인데 요즘 보면 그 정치성 때문에 의도적으로 과소평가되는게 아닌가 싶네요.
서정주 같은 극단적인 기회주의자도 아니고, 그저 우익 보수주의자일 뿐인데, 지나치게 비하되는 인상도 있구요.
13/12/17 18:50
그 비난이 진영 논리가 전혀 없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의 발언과 행태에서는 그저 우익 보수주의자라고 말하긴 굉장히 어렵죠. 쿠테타 재판에 대한 발언이나 홍위병 발언 사건때 진실을 호도한 측면이나 과한 적개심같은 건 역사상 손꼽히는 소설가가 될지어도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굉장히 회의적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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