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 제 아버지는 뺑소니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야간 당직을 서기위해 지하철에서 나오셔서 신호등을 제 신호에 건너려는 차에,
퀵서비스를 하는 오토바이에 치이셨죠.
운전자는 내려서 '당신이 신호 위반하고 갑자기 뛰어나왔다' 라는 헛소리를 하자 뒤에계신 목격자가 '뭔소리냐 지금 파란불인데?'
라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아버지의 미간쪽에서 피가 철철 흐르셨답니다.
그러자 운전자는 오토바이에 탔고 당연히 병원으로 대려다 주려는줄 알았는데 줄행랑을 쳤답니다.
아버지는 정신이 혼란스러운 그 상황에서도 오토바이의 4자리 숫자를 정확히 기억하시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근처 약국에 들어가 바로 그 번호를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겨우겨우 혼자 병원에 가시고 경찰서에 까지 가서 신고를 했습니다.
그 번호를 가진 오토바이가 우리나라에 1천대 가까이 있답니다.
번호가 정확한지도 경찰관들은 의심하였고, 번호 바꾸면 그만이라고 잡기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수사를 하겠다고 하셨죠.
'삼륜차와 번호 네자리' 딱 그 두가지 가지고 몇주정도 기다렸습니다.
아버지는 전치4주 부상을 당하셨지만 사정이 있으셔서 어쩔수없이 택시를 타고서라도 직장을 가셔야 됐습니다.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당장 2월달 누나의 결혼식이 있는데 큰일 앞에 두고 이게 무슨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저번주 월요일 1월 7일 범인이 잡혔습니다.
번호와 퀵서비스에 관련된 오토바이 그리고 삼륜차 라는 단서로 잡았다고 하시더군요.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 가해자와 합의를 위해 만나서 법무소에 갔습니다.
첫 인상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전혀 사람 치고 도망갈 인상이 아니었습니다. 연배도 저희 아버지와 동갑이셨고 죄송하다고 연발을 하시더군요.
저도 너무 화가나서 만나자마자 진짜 윽박 지르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려고 준비를 했다가
나이도 드신분이 고개숙이면서 정말 죄송하다고 연발하시는데 한숨만 나오더군요.
합의서를 작성하는 도중 언성이 좀 높아졌습니다.
가해자가 분명 자기는 신호가 빨간불이 될떄쯤 사고가 났다고 어이가 없는 소리를 하시더군요.
그리고 합의금 외에 '후유증이 생길시 그에 대한 부담' 에 대해서도 봐달라는 투로 말씀을 하시더군요.
뭐 고성이 오가긴 했지만 원래 합의보기로 한대로 해결 봤습니다.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합의금' 이라는게 참 아이러니 하게 느껴졌습니다.
치료비와 그외 항목이 이사건으로 인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위해 주는 돈.
그리고 그걸로 끝.
너무나 씁쓸했습니다.
물론 자신이 잘못했고 용서를 비는 의미긴 했지만 '재수없게 돈만날렸네' 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그리고 오늘 오랫동안 보려고 마음먹었던 피에타 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주인공이 사채업자의 하수인으로 정해진 돈을 못받으면 몸을 불구로 만들어서 그 보험금으로 빚을 매꾸더군요.
극중 여주인공이 돈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내립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지.. 사랑, 명예, 폭력, 증오, 질투, 복수, 죽음'
아직 사회의 발도 못 디뎌본 제가 오늘 느껴본 감정이었습니다.
합의금이라는 돈..
PS 1. 혹시라도 사고내시면 뺑소니 치지 마세요. 정말 당한 가족들 가슴 아픕니다.
그리고 정말 악연입니다. 저와 저희 가족이 무엇 때문에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와 원수를 지고 싶겠습니까..
정말 이 세상에서 두번다시 마주치고 싶지가 않습니다.
PS 2. 김기덕 감독 영화를 많이 보지만 피에타 만큼 강렬한 미장센을 연출한 영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관심이 가시는 분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과 '아리랑' 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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