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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8/02 23:58:09
Name Artemis
Subject [일반] [잡담] 익숙한 곳과의 이별
익숙함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런고로 사람들과 만날 때에도 늘 익숙한 장소를 선택하게 됩니다.
늘 가던 순댓국집, 늘 가던 치킨집, 늘 가던 고깃집, 늘 가던 와인집, 늘 가던...

그런데 어느 순간 늘 가던 집이 하나둘씩 없어지더라고요.
사람들이 놀러와 같이 즐겨주던 우리 동네의 꼼장어집, 해물탕집, 아지트와도 같았던 종로 모 술집의 지하층, 소개팅 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았던 케이크가 맛있던 홍대의 모 카페.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5년 이상 다녔던 술집이 다른 집으로 바뀐 것을 알았습니다.
2주 전에 그 앞을 지나면서 불 꺼진 술집을 보면서 "오늘은 쉬는 날인가 보다" 하고 지나쳤는데, 일주일 사이 그 집은 다른 집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자스민주가 기가 막힌 그 집은 저와 제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지트와도 같던 곳이었습니다.
한때 날이 새도록, 가게 주인이 이만 문을 닫아야 한다며 우리를 쫓아냈을 정도로 즐기던 곳이었지요.
아마 PgR 몇몇 분들은 어떤 집인지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주인이 한 번 바뀌고 인테리어가 바뀌긴 했지만, 간판도 그대로 메뉴도 그대로였던 집이었고, 1차는 다른 데에서 놀아도 2차 혹은 3차로는 꼭 가던 곳이었어요.
시키는 메뉴도 늘 같았고...
그런데 주인은 내가, 우리가 단골인지 모르는 이상한 집이기도 했지요.

제가 서울에 살면서 5년 이상 간 집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행동 반경이 홍대인 관계로 매우 자주 찾던 곳이었고, 사람들과의 이야기와 추억이 많이 쌓인 곳이라 없어지니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이제 어딜 가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설 만큼.

안 그래도 트위터에 그 집이 없어졌다고 글을 남기니 "안 돼~"라고 외쳐주시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좋은 집이었고, 나름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그런 데가 없어지니 쓸쓸하더라고요.
어쩌면 하나씩 둘씩 없어지는 장소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던 차에 그 정점을 찍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영원한 것은 없다고, 시간이 지나면 바뀌고, 상업적인 동네가 되어버린 홍대에서 술집 하나가 없어지고 새로 생기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자꾸만 없어지는 장소에 대해서는 미련이 많이 남아요.
무엇보다 '내 입에 딱 맞는 그 맛'을 이제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미련이 가장 크겠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쌓일 수 없다는 아쉬움도.

그러고 보니 전 남자친구가 나 보고 '마이너스의 손'이 아니냐며, 어떻게 가는 곳마다 다 없어지냐고, 앞으로 다니는 데 잘 보라고 해서, 아니다, 여기랑 여기는 몇 년 이상 갔는데 안 없어지지 않았느냐, 그랬는데 이래 놓고 보니 진짜 그런가 싶어서 기분이 묘하기도 하네요.

뭐 어떻게 보면 이번 기회에 새로운 도전(도전이라고 말하기에는 우습지만)을 할 수 있으니 그걸로도 괜찮은가요?
앞으로 괜찮은 집을 또 찾아내기 위해서는 한동안 고생을 할 듯도 합니다.

어쨌거나 익숙함을 벗어난다는 건, 그게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불편하고 아린 것 같아요.
그곳에 쌓인 나의, 우리의 시간도 이젠 정말 가슴속으로나마 기억하게 되겠네요.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내게 남아 있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고.
고작 식당 하나, 술집 하나 없어지는데도 이렇게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드는데, 사람은 오죽할까요.

뭐, 그냥 그렇다고요.^^;;

-Arte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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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03 00:00
수정 아이콘
어젠가 휴대폰 A/S 맡기러 가면서 10년 쪼금 더 전에[ㅠㅠ] 졸업한 초등학교 앞을 슥 지나는데 예전에 있던 문방구가 아직도 있더라구요.
그때는 늘상 보던 곳이었는데 지금 보니 생경스러운 것이..

말해놓고보니 반대 상황이군요? [...]
릴리러쉬
10/08/03 00:02
수정 아이콘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하루키
10/08/03 00:09
수정 아이콘
공감이 많이 되네요. 저도 저런 생각 정말 많이 한답니다. 발전이 되면 좋은거도 있지만 씁쓸함도 배가되더라구요. 그래서 전 서울에
정이 안가더군요.
좋은풍경
10/08/03 00:18
수정 아이콘
음 잘 읽었습니다. 그런일 참.. 허전하죠.

그건 그렇고...

여... 여성분이셨군요. 덜덜.
이영호 팬이신지라 명확히 아이디를 기억하는지라.

피지알은 생각보다 여성분이 좀 있군요.
저는 뭐랄까. 게임(특히 전략류)과 여성분은 거의 지구와 달처럼 멀다고 생각해왔어서..
최소 주변에서는 게임을 좋아하기는 커녕 겜하는 남자를 싫어하는 여성분(중독문제 때문에)가 대부분인지라...
10/08/03 00:24
수정 아이콘
조금은 비슷한 경험을 오늘 했네요

결혼하고 휴가때면 해마다 가던 곳이 있어 오늘도 다녀왔는데
갑작스레 좀 변했더라구요. 얄미운 상술도 등장하고 해서 마음 한구석이 살짝....

설레임을 주는 변화도 있지만 서운함이 남는 변화도 있는거 같아요
KillerXOver
10/08/03 01:18
수정 아이콘
10년 넘게 다니던 옛동네 곱창집이 없어졌을 때..
고딩동창놈들과 굉장히 아쉬워 하면서..술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었죠 -_-;;

..세상은 변하고, 앞으로도 변하겠지만..
옛것을..정겨움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점점 더..변화의 속도에 힘겨워 할테겠죠 나자신은.....
마녀메딕
10/08/03 03:07
수정 아이콘
글을 보니 저도 아르님때문에 처음 가보게 된 그곳 말씀이신것 같네요.
없어지다니 몇 번 가보지 못한 저도 참 아쉽습니다.
그래도 뭐 워낙 좋은데 잘 찾아주시는 아르님이시니(주말에간 풍천장어집처럼요^^) 홍대갈땐 아르님만 믿고 있습니다~
저도 요즘 가끔 그런생각합니다. 전 단골만드는걸 싫어해서 얼굴익었다 싶으면 다른곳으로 갈아타는 이상한 성격이지만,
그래도 한동네에서 25년을 넘게 살다보니 내 나이만큼 나이들어가는 사람들 혹은 건물들 혹은 장소들을 보게 되는데...
요즘은 그런것들을 인식하게 될때마다 괜히 센치해지기도 하고그럽니다요.
Into the Milky Way
10/08/03 08:12
수정 아이콘
좋은글이네요.

저도 이사가고 아무도 모르는 동네에서 외로움을 달래주던 참치집이 갑자기 없어졌을때의 충격이란

마음 한구석이 무척 아프더라구요. 아 사장님 뵙고 싶네요.
껀후이
10/08/03 09:53
수정 아이콘
흑...진짜~공감 100000000000%네요...
특히 인심 좋고 맛도 좋던 음식점이(말씀하신 꼼장어집이나 해물탕집 같은...!!) 사라지면
그 허탈감은 비할 데가 없더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10/08/03 12:22
수정 아이콘
시간이 지나면 주변에 있는 사람도 바뀌더군요.
이게 나이를 먹는건가 하다가 괜히 울적해지곤 합니다.
옛말엔 산천은 유구 하다고 했는데 요즘엔 산천마저 바껴버리니 원...
abrasax_:JW
10/08/03 18:35
수정 아이콘
조금 다른 리플일까요.
어릴 때, 슬레이트지붕 집들이 모여있는 곳에 살았습니다. 제 출생지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으로 이사 오고나서 형의 치과 치료 때문에 그곳에 갈 일이 있었는데,
어딘가에 가던 중 멀리 떨어져서 봤지만 아예 흔적도 없이 그곳이 사라졌더군요. 대신 높은 아파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요.
"허무함"이 무엇인지 그 어린 나이에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10/08/03 21:07
수정 아이콘
세월은 정말 많은 걸 바꾸나 봅니다.
자주 가던 커뮤니티가 이런 저런 이유로 없어질 때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더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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