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할 때 이용하는 두 인터넷 사이트. 저 사이트들을 통해서 이력서를 보내면, 이력서 검토 후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온다.
애시당초 여행이 아닌 일을 하러 왔으니 일을 구해야 했다. 당시엔 자신감만 넘쳐서, 혹은 배가 너무 불러서 무조건 호주인 식당에서 웨이터를 하려 했다. 꼬박 하루를 다 써서 이력서를 이곳저곳 인터넷으로 보내고 기다리는데 드디어 한곳에서 전화가 왔다. 자신감 넘치게 전화를 받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내 이력서를 보고 전화를 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외 나머지는 그냥 모르겠다. 아무것도 안들린다. 전화로 영어를 듣는 것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더라. 마치 영어공부 전혀 안햇던 고2때 모의고사 영어듣기를 풀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그 전화 한통화로 호주인 식당에서 서빙하는 것을 바로 포기해 버렸다. 때마침 북쪽에 농장일이 10주간 있다는 광고를 보고 농장으로 떠나기로 한다. 다시 일정을 맞춰보니 멜버른에서는 총 열흘, 브리즈번에서는 일주일 머물다가 농장을 가면 시간이 맞겠더라.
사실상 농장 실패 후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가 일자리를 구하는데 이때부터는 돈도 필요해졌고 무슨일이든 구해야 되겠다 싶더라. 청소일, 주방일, 서빙일 기타등등 내가 할 수 있을 만한데는 다 이력서를 넣었다. 역시 문제는 영어로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 이었는데, 사실 어떤 종류의 대화가 될지 뻔히 아는 상태이다보니 전화통화라도 집중만 하면 대화가 되긴 된다. 단지 가게 상호명이나, 주소와 같은 고유명사들은 죽어도 못듣겠더라. 결국 내가 시도한 방법은 일단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아서 약속을 잡는것이다. 주소도 못알아 들었는데 어떻게 약속을 잡냐고? 그건 나중에 확인하면 된다. 일단 약속부터 잡고 집으로 들어가서 스피커폰으로 전화걸어서 약속을 확인하면 된다. 그럼 주소쯤은 옆에서 호주친구가 듣고 적어준다. 이렇게 쓰고 보면 그렇게 구차하게 해야 되나 싶을 수도 있는데, 사실 전화영어라는 고비만 넘기면 외국인과도 일을 할 수 있던 나로서는 이렇게라도 해야했다.
열흘을 머물다 가도 되나? 원래 일주일만 머물기로 했으니 안되는 것 아닌가? 쭈삣쭈삣 거리다가 혹시나 해서 3일더 있다가 브리즈번으로 가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그냥 흔쾌히 승낙. 열흘을 한 곳에서 카우치서핑 하다가 가기로 했다. 정말 이 친구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이제 삼십대 후반인 리치는 10년 넘게 한 직장 다니다가 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한 두달 놀으려고 직장 때려쳤단다. 한국같았으면 절대 불가능 할텐데 뭔가 부럽다. 자긴 혼자 사는게 좋단다. 그 넓은 집에 고양이만 데리고 산다. 한국인 친구는 내가 처음이라는 리치는 세끼를 쌀만 먹는게 신기해 보이나 보다. 열흘 동안 내가 항상 음식을 해줬는데 - 그 친구는 음식 할 줄을 전혀 몰랐다. - 김치같은 찬 음식과 밥 같은 뜨거운 음식을 같이 먹는 것도 처음이란다. 그래서 한국 꼭 놀러오라 했다. 하하
이래서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아니면 사진기라도 좋아야 한다. 마지막 날 기념으로 둘이 같이 찍으려고 화장실까지 가서 허접한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하루는 그래도 한국인 초대했는데 한국영화 한번 봐야겠다고 DVD를 빌려왔다. 올드보이를 재미있게 봤다고 JSA를 빌려왔는데, 올드보이가 여기서 꽤 유명하다는 그의 말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가 DVD를 인터넷 주문으로 대여했다는 사실. DVD 소포가 왔길래 뭐냐고 물으니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집으로 배달이 오고, 다보고 다시 대여점으로 붙이면 된단다. 정말 할말이 없었다. 한국 같으면 다들 그냥 다운받아 볼거라는 얘기를 하긴 좀 창피하다. 뭐 한명이 그렇게 빌리는거 봤다고 얘네들 국민성이 낫네 마네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 DVD 대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그 곳에 충분한 수요가 있음을 뜻하는 것 아닌가? 내 상식 밖의 영업 방식이었다. 도서관에서 게임기를 봤을 때 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그렇게 열흘간 정도 많이 들었는데 브리즈번으로 더나려니까 참 슬프더라. 이 후 농장에서 문제가 많이 생겨 오갈데가 없을 때 전화하니 또 흔쾌히 다시 와서 살아도 된다고 해서 두달을 더 같이 살았다. 그러고 두번째로 헤어지면서는 만날때 헤어짐을 알듯 헤어질때 또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는 한국 말이 있다는 얘기를 해줬다. 손발이 좀 오글거리긴 말이긴 했지만 아직도 그가 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