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는 일본의 청주인 사케에 대해 쓰려 했으나, 여친님과의 술 자리를 사랑하신다는 모님의 부탁으로 인해...
(써놓고 보니 전 30년차 대원수인데 왜 이런 부탁을 들어줬는지 의문입니다...아 갑자기 눈에 짠물이...)
급 변경된 주제, 막걸리 리뷰로 갈까 합니다.
국내에 몇 종류의 막걸리가 있을까요? 정답은 100종 이상입니다.
헐 뭐가 그렇게 많아? 하는 의문이 나올 법 하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이치입니다. 막걸리라는 상품은 만드는 사람에 의해서
기성품처럼 찍어낼 수도, 장인의 수공예품처럼 희귀할 수도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죠. 언뜻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이 말 속에
'소위 전통 막걸리의 대중화'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막걸리를 빚을 때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누룩인데, 이 누룩은 항상 일정한 품질이 생산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마치 와인의
포도밭이 그 해의 기후에 따라 최고의 빈티지가 되느냐 최악의 빈티지가 되느냐가 갈리는 것처럼, 누룩도 마찬가지입니다.
찍어내는 누룩이 아닌, 전통 누룩은 수제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대량 생산할 경우 일정한 품질을 갖는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산의 금정 산성 막걸리나, 전북 태인 막걸리 등이 소수밖에 생산되지 않는 거죠.
막걸리는 그리고 크~게 수도권 막걸리 (혹은 도시 막걸리) 그리고 시골 막걸리(지방 막걸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요즘에야 막걸리는 쌀로 만드는 거지~하겠지만, 막걸리를 오래 마셔본 분들은 지금의 막걸리 맛을 탐탁치 않아하죠.
너무 달다구요.
본래 우리나라 옛~날의 막걸리도 사실은 밀을 좀 섞었습니다. 더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나기 때문이죠. 쌀로만 만들면
깔끔하긴 하지만, 깊~은 맛은 나지 않습니다. 반면 밀이 섞이면 묵직하고 시큼털털한 맛이 강해지지만, 젊은 사람들은
기피하죠.
자 그러면 사설은 이쯤 하고, 본격적으로 막걸리 리뷰...들어가겠습니다.
(개인 주관이 지극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술을 드실때의 참고만 하시고, 저도 먹어보지 않은 술은 그저 줏어들은 것만
쓸터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1. 인월 막걸리
전북 남원의 송준수 명인의 인월 막걸리죠. 누룩 향이 좀 강하게 나고, 쓴 맛이 약간 납니다. 이는 밀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약간 싱겁다고 할까요?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막걸리일 듯 합니다.
밀이 들어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약간 텁텁하지만 구수한 맛이 있습니다.
2. 영양 막걸리
국내에서 가장~오래 된 양조장인 영양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영양 막걸리입니다. 하지만 역사와 맛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가 봅니다.
싱겁고 밍밍한 맛이 강하더군요. 젊은 사람들이라면 이름값에 끌려서 먹어보다가 '에이~'싶은 막걸리입니다.
3. 부산 생탁
생 막걸리! 이 하나로도 가치가 있지만 맛 자체가 서울 장수 막걸리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둘 다 생 막걸리네요 그러고 보니.
아무튼 탄산의 느낌이 나고, 단 맛이 강합니다. 약간 사이다? 스럽기도 하네요. 도시 막걸리 다운, 단맛의 특징이 그대로
살아있는 막걸리가 되겠습니다.
4. 국순당 생 막걸리
장수 막걸리보다는 신맛이 약간 더 강합니다. 제 개인적인 입맛에는 이쪽이 더 땡깁니다만, 감미료 느낌이 약간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단 맛은 확실히 덜하지만 그만큼 어른의 맛이랄까요? 단지 좀 단조로운 느낌은 있습니다. 맑은 술이 들어있는
윗술 막걸리로 사 놓고 냉장고에서 유통기한 1일 정도 지난 다음에 먹어보면 단맛이 많이 강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5. 호랑이 막걸리
홍대 앞의 한 퓨전 막걸리 주점에서 자체 브랜드로 만들어내는 막걸리입니다. 유명 막걸리 제조 업체들에게 OEM (주문자 생산방식)으로
제조되는 막걸리인데, 맛이 묵직한데다 굉장히 색다릅니다. 가벼운 느낌은 절대 안들고, 비싼 값을 하는구나...싶은 생각이 들죠. 마셔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목 넘김이 다르다는 걸요.
6. 태인 막걸리(송명섭 막걸리)
언젠가 쓰게 될, 죽력고 명인 송명섭 명인이 만드시는 막걸리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단 맛이 거의 없다는 점! 이게 뭐야? 싶을 정도인데
적응이 되면 다른 막걸리 먹기가 여간 곤욕스러운게 아닙니다. 음식으로 비교하자면 청국장이나 홍어같다고 할까요? 손수 농사지은
논밭에서 나온 물건 100%로 만들기 때문에 출하량도 얼마 안되는 그런 막걸리입니다. 술 전문가들은 이 막걸리야말로 한국의 전통
막걸리 원형에 가장 가까운 막걸리다...라고 말하기도 하죠.
*사실 태인 막걸리의 모주(만들어진 상태의 막걸리...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는 도수가 좀 높습니다. 그러나 시중에 판매되는
막걸리는 일정 도수 이하! 여야만 판매가 가능합니다. 즉, 막걸리로써 판매를 하고 싶다면 물을 타서 도수를 낮춰야 한다는 얘기죠.
그래서 어떤 막걸리든지, 진정한 그 참맛을 느끼는 것은 아직까지는 많이 어려운 일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획일화된 기준 때문에
다양한 막걸리의 참모습을 즐길 수 없으니까요.
7. 이화주
이화주는 시중에는 나와있지 않고, 국순당이었나 배상면주가였나에서 복원에 성공한 막걸리입니다. (당연히 못 먹어봤습니다.) 이 이화주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짙은 농도입니다. 요구르트처럼 떠 먹어야 될 만큼 걸쭉한데다가, 영양 또한 다른 막걸리와 비교가 안되는 고급 탁주로,
일본에서 사절이 올 때 대접했던, 일종의 궁중 음식이라 보아도 무방한 고급 막걸리였습니다. 저도 한 번 쯤은 먹어보고 싶은 술입니다.
*이화주는 배꽃 냄새가 난다고 해서 이화주인데, 재료에 배는 전~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발효시키는 재료로
떡을 쓴다는 것입니다. 보통 술은 그냥 고두밥을 이용하지만 고두바, 경단, 떡, 구멍떡 등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 차이에 따라서도
술 맛이 달라진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죠.
8. 부산 금정 산성 막걸리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살아남았다는 바로 그 막걸리입니다. (이 막걸리 맛을 잊지 못해 박 대통령이 살리라고 했다나...하는 전설 아닌
레전드 이야기가 있지만 설명하기 귀찮아서 패스~) 다른 건 둘째치고 이 지역은 물이 일단 좋은데다가, 누룩 또한 특별합니다. 누룩을
만드는 곳이 따로 있는데, 이 시설이 워낙 오래돼서 다른 지역에서 동일한 조건을 가지고 누룩을 제조해도 똑같은 누룩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합니다. 한 마디로, 그 건물에 핀 곰팡이, 벽에 붙은 거미줄, 천정에 매달린 먼지...이런 것들이 산성 막걸리를 만드는 최상의
누룩을 나오게하는 조력자라는 것이죠. 이 곳을 벗어난 산성 막걸리? 그건 불가능하다는 게 학자들의 의견입니다....만 유감스럽게도
부산에 못간 관계로 이 막걸리는 마셔 보지 못했습니다.
9. 칵테일 막걸리
신천(신촌 아닙니다~신천 맞습니다~)의 Saimon Bar라는 칵테일 주점이 있습니다. 한국 바텐더 협회의 높은 곳에 계시는 분께서
지배인으로 계신 곳인데, 메뉴에는 없습니다만, 주문하면 막걸리 칵테일을 만들어 줍니다.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황진이, 하얀연꽃, 정원-가든 등 7~10 종의 막걸리 칵테일을 볼 수 있는데, 색도 매우 아름답고, 맛도 굉장히 깔끔합니다.
특히 외국술 위주로 만들어지는 일반 칵테일과 달리, 막걸리가 베이스라 입맛에도 잘 맞는 편입니다. 맛도 의외로 굉장히 세련됐습니다.
*한국에서 막걸리 칵테일을 전문적으로 파는 곳은 없습니다. 사실 막걸리는 탄산이 들어있어 칵테일 베이스로는 적합하지 않은 술입니다.
(사이다나 콜라를 흔들어서 칵테일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난리가 날 겁니다.) 사실 칵테일 베이스 자격만 보면 남한산성 소주나
안동소주가 훨씬 낫죠. 하지만 낮은 도수와 상쾌한 맛은 여성이나 가벼운 칵테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더불어 그 빛깔도 포함해서요.
10. 기타...
사실 많은 막걸리가 있습니다. 잣 막걸리, 고구마 막걸리, 복분자 막걸리, 딸기 막걸리, 머루 막걸리, 오미자 막걸리 등등...
하지만 이 막걸리들은 사실상 맛의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인 접근 원리는 동일합니다. 말 그대로 딸기 우유, 초코 우유...하는 식이죠.
큰 의미 없는 분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음엔 정말로 사케 특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