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 천안함 사태 관련해서, 중앙일보에서 기가 막힌 사설이 하나 올라왔죠. 밑에도 관련 글이 있습니다만
못 보신 분은 링크로 직접 보시고...
http://news.joins.com/article/806/4190806.html?ctg=2001
글 중에 유화정책의 역사상 최고 실패 사례로 (잘못) 꼽히곤 하는 뮌헨회담이 인용되어 있어서
여기에 대해서부터 몇 자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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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개요는... 뭐 외교사 아시는 분들이야 잘 아시겠습니다만,
1938년 9월에 오스트리아 뮌헨에서 독일(히틀러), 이탈리아(무솔리니), 영국(체임벌린), 프랑스(달라디에) 4자가
체코슬로바키아 수테덴란트 사태에 대해 합의를 본 회담입니다.
당시 히틀러 통치 하의 독일이 수테덴란트를 장악하려는 시도에 대해, 일단 이를 인정해 주되
추가적인 영토 확장은 없도록 독일이 약속한다... 는 합의가 이루어졌죠.
물론 이후의 역사를 보면
얼마 못 가서 체코슬로바키아 전체가 독일에 의해 장악되고, 이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게 됨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뮌헨 회담 1년 후인 1939년 9월에 세계2차대전이 터지게 됩니다.
뮌헨 회담 체결 당시에 영국 수상 체임벌린이 '우리 시대의 평화는 이루어졌다'라고 선언했는데
1년만에 전쟁에 돌입하게 되면서 저 선언은 역사상 가장 우습게 취급당하는 선언 중 하나가 되었고,
체임벌린 자신은 프랑스의 항복과 함께 사임(1940.5), 이후 영국은 대독일 강경파로 널리 알려진 처칠 아래
Battle of Britain으로 시작하는 기나긴 2차세계대전의 고난을 치르게 되죠.
이런 사정이 있고 해서, 대개 뮌헨회담 내지 체임벌린 하면 유화정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이야기되곤 하고,
특히 한국 내에서 외교사 서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김용구 교수의 '세계외교사' 같은 책을 보면
호구란 말만 안 썼다 뿐이지 문맥을 따라가다 보면 호구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책이 쓰여 있습니다.
김용구 교수님 자신의 의견이 아닐 순 있습니다만 그렇게 읽히기 쉽게 쓰여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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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뮌헨 회담 및 세계2차대전의 발발 과정을 조금만 더 꼼꼼히 되짚어 보면,
꼭 유화정책이 실패했다거나 체임벌린이 호구였다거나 하는 식으로 단정짓기는 어려운 면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세계2차대전 초기에 독일군이 거둔 최초의 패배이자, 독소전 지연, 미국 참전 등의 계기를 마련한
Battle of Britain이 여러 모로 아슬아슬한 승부였는데 (관심 있으신 분은
http://airwar.hihome.com 들르셔서
세계2차대전사 영국본토항공전 부분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때 영국의 승리를 가능하게 만든
영국 공군의 급속한 재정비가 체임벌린 집권 시기에 이뤄졌습니다. 실제로 회담 끝나고 돌아와서
'우리 시대의 평화'를 선전하는 뒤로 공군 재정비를 재차 지시하기도 했구요.
세계1차대전에만 해도 전투기라고 하면 저속복엽기 내지 삼엽기였고, 화력도 보잘것 없었습니다만
1차대전의 패배 후 와신상담하던 독일은 누구보다도 빨리 고속단엽기로 기종전환을 이루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독일 공군은 뮌헨 회담 당시에도 진행중이던 스페인 내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입니다.
정찰, 제공권 장악은 물론 지상공격에도 큰 성과를 누리게 되죠. 급강하전술폭격기 Stuka와
제공전투기 메셔슈미트(Bf109)의 신화가 이 때 전 세계로 퍼집니다.
이에 경악한 다른 나라 국가들도 단엽기로의 체제 전환을 서두르는데,
프랑스는 워낙 나라가 어수선하고 기술력도 그렇고 육로로 이어져 있기도 하고 해서
독일 육군/공군의 합동공격에 그냥 쓸리고 맙니다.
그나마 독일 공군만을 상대할 수 있었던 영국이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추는 데 성공해
Battle of Britain을 극적인 무승부로 이끌게 되죠.
그리고 이 무승부로 하늘을 찌를 것 같던 독일군의 기세가 꺾이고,
결국 1차대전과 유사한 동-서 양면전이 펼쳐지면서
장기전의 준비가 부족했던 독일 제3제국은 멸망의 수순을 밟게 됩니다.
뮌헨 회담은 유화정책이 보기 좋게 실패한 사례로 인용되곤 합니다만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살펴보자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시점이 오기까지의 시간벌이였다고도 볼 수 있겠죠.
실제로 체임벌린이 그저 사람 좋기만 한 사람이었고 싸움을 피하기만 하는 나약한 사람이었으면
폴란드가 침공당하던 말던 알 게 뭡니까? 한 번 쪽팔린 것 또 참고 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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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시면서 어떤 분들은 약간 불편해하실 수도 있는 것이,
사실 저는 절대평화주의자는 아닙니다. 싸워야 되는 전쟁이란 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영국인들이 2차대전 초기에 나치 독일과 휴전조약을 맺었다면
독일은 소련을 더 좋은 조건에서 더 빨리 침공할 수 있었을 것이고, 영국을 불침항모로 활용할 수 없는 미국은
유럽전선과 태평양전선 양쪽에서 더 소극적으로 나왔을 공산이 큽니다. 어쩌면 저도, 저 김모 논설위원도
일본어로 글을 쓰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런 면에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싸울 때 싸우더라도 앞뒤 따져 가면서 싸워야 하는 법이죠.
싸우는 것도 총칼을 부딪히고 피를 튀겨야만 싸우는 것도 아니고.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현실주의 이론가들은 양극체제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혹은 일본이나 다른 세력이 핵무장해서 다극체제로 전환될 것인가를 놓고 싸우고 있었습니다만
그러던 와중에 소련이 혼자서 주저앉고 말았죠.
적어도 그 직전까지는 '앞으로 한참 더 갈 것이다'라는 게 국제정치학계의 대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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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약한 정책인지, 무엇이 강경한 정책인지,
그리고 실제로 효과를 보는 정책은 어떤 것인지...
이런 사항들은 리플레이를 돌려보는 역사가들조차도 알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공정책은 기본적으로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는 것이고,
더군다나 지지 않으려고 하는 상대가 있고, 서로 속고 속이는 게 기본인 '전쟁'이라는 분야에서는
더더욱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는 것이겠죠.
북한이 소련 식으로 갑자기 저절로 무너질지,
아니면 우여곡절을 거쳐 국제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거듭날지,
그것도 아니면 끝끝내 누군가와 한판 붙고야 말 것인지, 그것은 신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가급적이면 평화가 지속되기를 바랍니다만, 평화공존이 정착되거나 평화적 통일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만
혼자서 착하게 얌전히 산다고 남이 좋게 봐 주는 것만도 아니니 싸워야 할 땐 싸울 줄도 알아야겠죠.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정말 백번 양보해서 언젠가 싸워야 한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군, 정부 전체를 포함해 국방 체제에 구멍이 뻥 뚫린 게 여실히 드러난 시점 아닌가요.
'한 판 붙는 게 정답', '국민 여러분 3일만 참아 주세요'라고 외칠 시점은 아닌 것 같다는 게 제 상식적 판단인데
그 상식적 판단이 국내 굴지의 신문사 논설위원님의 상식적 판단과 달라 보이니
제가 전략게임을 배우고 역사를 배우면서 뭘 잘못 배운 것인지 참 갑갑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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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있으면 선거네요.
민주주의는 최선을 택하는 게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것이라고도 하죠.
아무리 맘에 쏙 들고 생각에 딱 맞는 후보자가 없더라도,
그나마 덜 맘에 안 드는 후보자는 있을 수 있겠죠.
그것마저도 없으시면 무효표라도 만들고 나오세요.
그러면 적어도 '난 정치에 관심은 있지만 니네가 맘에 안 든다'라는 의사표시는 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이 글 보시는 분들은
인류가 수천년간 피흘리며 싸워 얻어 온 권리를
방 안에서, 휴양지에서 포기하는 일만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