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집행하는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여러 논란이 많은 요즈음입니다. 저 역시 그런 논란 속에서 몇 가지 판결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지고 개탄한 적도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기본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모두를 만족시킬 현명한 판결이 나온다는 것은 원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법이라는 원칙은 있으되 판결은 법관이라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헌법에는 그런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판결이라 해도 독립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3조에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불만이 있고 비판할 부분은 비판할지언정, 저의 주관과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제가 막을 수는 없으며 막아도 안 됩니다.
그런데 요즘,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독립적인 가치를 법과 원칙이 아닌 이념으로 멋대로 깎아내리기 위해 눈이 벌개진 이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먼저 어떤 정치집단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특정 세력이 장악한 법원을 국민의 사법부, 신뢰받는 사법부로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 국민적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하면서, 판결 하나하나에 대한 평가와 비판, 판사 개개인의 인성, 자질, 소양에 대한 공개적인 검증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앞서 말한 대한민국 헌법 제 103조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발언입니다. 심지어 그 집단에서는 이 문제를 '좌편향 사법사태'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 집단이 말하는 '좌편향'이라는 단어는 지금껏 그들이 사용해 온 사례를 생각해 보면 그 집단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할 때 하대하듯 부르는 욕설과 같은 말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독립적 가치를 인정받는 사법행위에 대해 국민을 볼모로 '우리 말 안 들으면 재미없어'식의 협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초법적 행동을 정치집단에서 기도했다면 언론은 언론의 본령에 따라 그런 행동에 대한 날선 비판을 해야 하는데 비판을 하기는 커녕 그런 '좌편향'이라는 욕설이 마치 정상적인 사고에 의해 판단된 정론인 양 포장하기 위해 별별 소리를 다 해대고 있습니다. 2500명 가량인 전체 판사 중 5% 남짓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이 재판을 다 조종한다는 근거가 희박한 발언을 하면서 최근 검찰의 정치적 기소에 무죄를 내린 사건 중 우리법연구회 판사와 관련이 없는 것까지 우리법연구회 판사인 양 말하는 지각 없는 정치인의 말을 받아쓰기하듯 기사화하기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언론은 '법원 좌편향'을 이야기하며 그 근거로 1990년대 후반부터 법조인 선발인원이 늘어나면서 판사들이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것이 원인이라고 하는 학설(?)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 1990년대 후반부터는 특목고와 강남3구 출신 신규 임용 판사 비율이 점점 늘어나 지난해에는 40%에 육박하여, 오히려 8학군 출신으로 판사들이 동질화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법원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을 생각하면 이런 식의 수박 겉핥기식, 주마간산식 관찰을 근거(?)로 한 자의적 해석은 이런 이슈에 대해 자세한 사실을 알기 어려운 국민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려는 사술(邪術)행위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듭니다.
심지어, 교묘한 사술(邪術)행위를 하지 못하거나 할 능력이 없는 언론은 아예 대놓고 선전선동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선고재판이 있었던 PD수첩 재판에 대한 어떤 기사의 첫머리에, 모 언론의 편집자가 달아놓은 말을 그대로 발췌해 봅니다.
[MBC PD수첩과 민동석 차관보에 대한 일차 선고재판은 1.20 (수) 11:00 서초동에 있는 서울지방법원 형사 519호 법정에서 문성관 판사 (단독) 심리로 열립니다. 참고로, 지하철 3호선/2호선 교대역 11번 출구로 나오셔서 북쪽으로 200미터쯤 올라가셔서 동편 문으로 들어가서 건물 정문으로 들어가 '형사법정' 사인을 따라 西관으로 이동해서 엘리베이터(2층)를 타고 올라갑니다. 재판이 좌익판사들에 의해서 비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흔한 점을 고려하여, 애국인사들의 많은 방청을 바랍니다.]
그런 선전선동의 힘(?)인지는 몰라도 모 폭력단체에서는 최근 무죄판결을 내린 모 판사의 집 앞에서 피켓 등을 들고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는가 하면, 오늘 벌어진 재판정에서는 모 폭력단체의 회원들이 찾아가 법정에서 고성과 야유, 욕설 등의 소란행위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모 폭력단체에서는 관련 기사를 통해 "헌법이나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적이기 때문에 법의 보호를 받아서는 안되며 우리 행동은 정당하다"라고 했다는데, 저는 그 기사를 보고 '어버이'를 단체 이름에 넣은 이 폭력단체가 대체 어느 나라의 어버이들이 모인 단체인지 잠시 헷갈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헷갈림 이후 좌우 상황을 살피고 나니 저는 그 폭력단체를 진심으로 비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를 시작으로 헌법 전문에 '모든 국민'이라는 표현이 32차례 나오고 그 조항마다 국민의 기본권과 그 기본권을 제한하는 수단이 어떻게 조심스럽고 엄격하게 집행되어야 하는지 나와 있는데, 그 '모든 국민'에는 애석하지만 그 폭력단체에서 말하는 '헌법이나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만인의 저주 속에 팔순을 맞은 반란 수괴를 포함해서요. 그러니 제가 이 단체에 있는 '어버이'들이 정말로 대한민국의 어버이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헌법이나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국가의 적으로 취급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그들이 설령 법으로 자유를 구속당했고 벌을 받는 중이라 해도,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그들 역시 헌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어떤 개인 혹은 대상이 명백히 실정법을 어긴 국가의 적이라 해도 무슨 수렵 대상인 야생동물 잡아죽이기 전에 몰이하는 것처럼 법도 뭣도 없이 우 몰려가 토끼몰이하듯 위협을 가하고 무력시위를 벌이고 신성한 법정에서 욕하고 소란을 피우는 것 역시 헌법을 부정하고 실정법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 폭력단체의 발언은 다른 누구가 아닌 '자기 자신'을 국가의 적이라고 취급한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그런 자살행위에 비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게지요.
법을 집행할 권리도 무엇도 없는 이들이 자신에게 반대되는 누구에 대해 국민의 이름을 볼모로 이념적인 사상검증을 해야 한다고 하거나 법의 보호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식의 초법적인 언행을 일삼으며, 정작 자신들은 법을 위반하는 언행을 태연하게 하고도 정당하다고 떠들어대는 것은 법과 원칙에 근간을 둔 행동이 아니라 이념의 틀에 얽매여 법과 원칙을 저버리는 병(病)스러운 기질이 다분한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런 병(病)스러운 기질이 다분한, 법과 원칙보다 이념이 우선한 행동이 최우선의 가치로 통하는 '단체'는 아직 많으나. 그런 행동이 최우선의 가치로 통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이제 단 한 곳밖에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의문이냐면, 제가 35년 간 이 나라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배운 교육 내용대로라면, 그 지구상에 단 한 곳밖에 없는, 다른 무엇보다 이념이 우선한 나라가 대한민국은 아닌데 왜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이런 병(病)스러운 짓을 행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것이죠.
혹시 병(病)스러운 행동이 통하는 나라를 하나 더 늘리는 것이 그들이 목적일까요?
그러면 그런 '국가의 적'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정신을 차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의 험악함을 표현할 때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라고들 말하는데 그 '국가의 적'들은 이미 저를 포함한 여러분들에게서 '국민'이라는 이름을 베어가 버렸기 때문이죠.
- The x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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