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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10 00:40
솔직히 눈에 보이는 것과 안보이는 것에 저는 우선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박테리아가 고통스러워 하며 죽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없지요.
그리고 상코마네님의 가설때문이라면 인간의 생명이 가장 무겁다는 생각이 드는데 전쟁 범죄, 고문 등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솔직히 고통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자신 외의 생명체의 생사에는 본질적으로 무관심하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10/01/10 00:45
제가 상당히 자주 하는 생각이네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생명, 하잖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생명. 다 같은 생명... 뭐가 다른가? 진짜 몇년을 의식, 무의식적으로 생각해 왔지만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요. PENTAX님의 생각이 제가 평소 해왔던 생각과 거의 일치하네요. 종교적으로도 생각을 많이 하는데, 요건 패스~
10/01/10 00:51
PENTAX님/ 고문을 하더라도 침팬치에 하는 것이랑 개구리에 하는 것이 다르지 않나요?
저는 침팬치에 고문하는 것이 더 제 마음을 괴롭게 할 것 같습니다.
10/01/10 00:56
첫째,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치타가 좋아요... 치타가 죽는 거 동물의 왕국에서 보면 넘 슬퍼요... 그렇지만 원숭이는 별로... 슬프지는 않아요...)
둘째, 내 생명에 유익이 되는 지 되지 않는지(죽일 경우에... 그렇지만 돼지 잡는 거 실제 보고 고기를 일년동안 먹지는 못했어요. 돼지가 죽는게 불쌍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그냥 죽음 앞에서 숙연해 지더군요...) 단 두 분류에서 예외적인 것!! 사람... 사람의 생사여부는 신에게 달려있다고 보기때문에, 다른 생물체도 마찬가지지만 인간이 결정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꾸만 요즘에는 단두대도 필요한게 아닌가 싶어서 씁쓸해요...
10/01/10 00:58
형태상의 차이 때문입니다. 인간과 비슷할 수록 동질감을 느낍니다. 전혀 형태상 유사점을 찾을 수 없는 돌과 뭔가 꿈틀거리는 구더기와 눈, 코, 입이 달린 악어와 귀엽게 생긴 코알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지죠.
10/01/10 01:01
생명의 무게에 경중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식으로 분류 해 놓으니 아니라고도 말 못하겠군요. 그래도 생명체를 죽이고 살리는데 있어서 목적 여부에 따라 그 죄책감의 무게는 다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생사여부의 목적이 공공 혹은 개인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행위이냐 아니냐에 따라 생명의 경중도 달라지지 않나 싶네요. 이것도 결국 케바케...
10/01/10 01:04
상코마네님// 저는 어차피 생명의 경중을 따지지 말고 다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인간이고 살아야 하니까 그게 지켜지지 않는 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어린이가 햄스터를 렌지에 돌린것은 생명을 존중하지 않아서 입니다. 그런 아이가 원숭이라고 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까요? 아뇨 원숭이가 있고 큰 렌지가 있으면 똑같은 행동을 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존중에 대한 개념 자체가 그 아이에게는 없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개구리는 해부도 해보고 쥐꼬리에 불도 붙여봤습니다. 개구리와 쥐는 우선 생김새가 안 귀엽고 쥐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이기에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보면 인간이 자연의 생물에 있어 생존의 유무를 결정할 정도의 동물인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단지 뇌용량이 좀 더 크다는 이유로 인간에게 해롭다는 이유로 생과사를 결정하고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동물 실험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명의 경중을 따지는 자체가 오만한 행동이고 그냥 인간으로 태어났음을 감사하며 최대한 필요없는 살생을 자제하며 살자가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기약, 바퀴약은 항시 뿌리죠. 역설적이지만 이게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10/01/10 01:18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가도 서구사람 몇명 죽은 것보다도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죠.
사람목숨에도 무게가 있는데(있는것처럼 느껴지죠) 인간외의 존재들이야 말할것도 없겠죠.
10/01/10 01:26
Jnine님// 포유류 동물은 비명을 지르죠. 그리고 우리는 육회를 먹죠...
고로 어류가 비명을 지를 수 있어도 횟집은 존재하겠죠...
10/01/10 01:31
안그래도 이 주제로 글을 하나 쓰려고 했었습니다.
개먹는다고 뭐라하는 이다도시에게 할리씨가 프랑스인도 달팽이 먹지 않느냐고 했더니 이다도시가 개는 우리의 친구잖아요 했더니 할리씨가 한마디 했다고 하죠. "달팽이도 우리 친군데예~"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일화입니다. 살생은 선일까요 악일까요. 애초에 약육강식은 자연의 섭리이고 살생은 불가피합니다. 생태계 전체적인 측면을 봤을때 '살생'은 분명히 가치 중립적이며 종족 유지와 번식을 위한다는 측면에서 '인간적 잣대'로 보면 오히려 선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인간들 사이에서 살생은 분명 금기사항이며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를 위해 죽이면 법에 저촉될 정도로 '악'입니다. '먹어도 되고 죽여도 되는 생명' 잣대도 고무줄이라서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결국 저는 생물을 죽이는데 불가피한 살생과 '악'으로 치부되는 살생을 구분짓는건 그저 자연의 한조각일 뿐인 인간의 지극히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에 의거한 잣대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투우쇼나 햄스터 믹서기나 결국 재미를 위해 생명을 죽인다는건 같을 뿐 햄스터 믹서기가 잔인해보이는건 단지 죽이는 방법이 비일반적이고 햄스터가 작고 귀엽게 생겼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연민일 뿐일거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피살동물이 받았을 고통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믹서기에서 운명한 햄스터가 하루에도 수천마리씩 죽어나가고 있을 실험용 쥐보다 오히려 더 고통없이 순식간에 갔을거라고 봅니다. 쓰다보니 난잡해졌는데 결론을 내려보자면 인간들은 식용이든, 실험용이든, 유희용이든 어차피 다른 동물의 생명을 이용하고 착취하면서 거기에서 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도덕이라는 탈 뒤에 숨어 주제넘게도 생명의 무게를 위태위태하게 '저울질'하고 있다고나 할까요...제 생각에 생명은 평등하다고 봅니다.
10/01/10 01:45
생명체를 죽일때 '목적'이 무었인가가 기준이 이닐까요. 사람이 살기위해서 동물을 죽이는 것은 비난받을 수 없지만 사람이 재미있기 위해서라는 비난을 받아야 된다고 봅니다.
10/01/10 02:20
완소탱님//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먹는 고기의 95% 정도는.. 살기위해서 먹는다기 보다는.. 더 좋은 "맛"을 얻기 위해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10/01/10 02:48
생명의 무게요? 당연히 다르죠~ 저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을 기준으로 유사성, 해로운 정도 등등에 따라서 당연히 다릅니다. 예전에 어떤 글에도 쓴 적이 있는데 생명의 무게가 모두 같다면 바퀴벌레 한마리를 죽이는 것도 도덕적 비판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종이를 얻기 위해 나무를 베는 것도 똑같은 선에서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식물도 생물인데요. 생명의 존엄성을 내세워서 모든 생명은 소중하니 하는 건 제가 보기엔 위선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타 종을 이용할 뿐입니다.
10/01/10 07:05
'인간'의 기준이니까 인간과 유사한 쪽에서 더 죄책감을 느끼고 무게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 곤충 중에 이성을 가진 부류가 있다면 당연히 다르게 생각할 거구요. ^^;
10/01/10 07:16
Jnine님//
재밌는 생각이네요 ^^; 정말 어류가 비명을 지른다면 아무도 횟집에 안 갈듯. 아니 횟집이라는 것 자체가 특별히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한 업종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동네사람들은 집값 떨어진다고 횟집 이전하라고 집단행동에 나서고... 본능적으로 인간과 유사한 동물에 더 연민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종족의 생존을 위한 본능일 것 같은데. 햄스터를 죽인 소년은 순전히 개인적인 유희를 위해 죽였다는 점 때문에 충격을 주는 것 같습니다. 실험용 쥐나 식용이나 모기를 죽이는 것 등은 죽이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건 아니죠. 그런데 전자렌지에 햄스터를 넣어 죽이는 건 순전히 죽이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이라고 밖엔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햄스터뿐만 아니라 개구리든, 메뚜기든 순전히 재미로 서서히 하나씩 분리시켜 나가는 인간이 있다면 무척 공포스러울 것 같군요.
10/01/10 07:22
이게 참 애매한 질문입니다.
같은 포유류라도 소, 돼지와 같이 우리에게 음식을 제공해주는 동물들의 생명과, 개나 고양이처럼 우리가 애완동물로 키우는 동물들의 생명이 다르게 생각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죠. 가축동물들은 우리에게 수천년동안 식용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인간이 생각하기에 그들이 우리에게 음식을 제공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애완동물들은 우리에게 친구 혹은 가족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생명의 가치가 더 존중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 돼지, 닭 등이 도살당할 때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먹진 않지만, 개나 고양이가 죽으면 가족이 죽은 것처럼 슬퍼하는 것처럼요. 어찌보면 특정 동물의 생명보다는 목적에 더 초점이 맞춰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축동물과 어류, 조류는 우리에게 음식을 제공하거나, 당연하게 실험체로 쓰이거나(ex. 소, 돼지, 닭, 양, 대부분의 어류, 쥐 등), 혹은 인간과 거의 없다시피 하는 연관성(모든 동물들이 인간에게 목적을 부여해주진 않죠. ex. 독수리, 까마귀, 갈매기, 상어 등) 때문에 생명의 무게가 가볍다고 느껴지고, 같은 포유류나 어류, 조류인데도 어떤 동물들은 인간에게 물질적으로 무언가를 제공한다기 보다는 감정적 교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히 애완동물들. ex. 개, 고양이, 금붕어, 앵무새) 다른 동물들보다 생명의 무게를 더 무겁게 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동물 자체의 존엄성이나 생명존중보다는 그들이 인간에게 주는 목적성에 의해 생명의 가치가 무거워지거나 가벼워지는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10/01/10 07:57
살생유택이라고, 동물을 살상하더라도 방법이나 목적에 있어서 잔인하거나 무의미하게 죽여선 비난을 받습니다.
예를들면, 위에 믹서기에 갈아버리는것, 꼬마애들이 개구리 갖고놀다가 죽이는것 생명은 소중하니까요. 헛된 생명은 없습니다
10/01/10 11:48
인간인 이상, 우리가 세계의 조물주가 아닌 이상에야 생명의 무게에 대해서 차등을 둘 수 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를 초월하여 모두에게 존경받는 성인들은 항상 이야기합니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고 말이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이 있는 생명의 희생이라면 큰 비난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며 인간만이 아니라 어떠한 생물체도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하지만 그 희생이 단지 한 생물의 유희와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겠죠. 저 소년의 이야기를 보면서 굳이 생물체의 등급에 대한 차등을 두기 보다는 유희로써 함부로 생명을 빼앗는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더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생명체라도 살아갈 이유가 있고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니까요.
10/01/10 11:53
아무리 하찮은 동물이라도 해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도 살아갈 권리란게 있는 것이고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 해도 아무 이유없이 이러한 동물들의 권리를 뺏을수는 없는 겁니다.
다만 이유가 있을 경우에 한해 살생이 허용되는데 2가지입니다. 1. 잡아 먹기 위해서 2.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생물일 경우 따라서 개고기의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서양인들에게 개는 애완동물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먹기위한 용도도 되니까요. 문화의 차이입니다. 원숭이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요. 얼마전에 시위도중 새끼돼지 찢어죽인거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면 차라리 시위대중 한명을 찢어죽이던가 애꿎은 돼지가 무슨 죄인지. 고기를 얻기 위해 돼지를 도축하는 건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어쩔수 없는 일이고 약육강식의 당연한 섭리지만 이유없이 죽이는건 안되죠. 장난으로 동물을 죽인다는 건 그 의도와 본질에 있어서 살인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10/01/10 12:21
글쎄요. 이런 경우는 과학적 진리로 표현되는 '사실의 문제'나 도덕적 진리로 표현되는 '당위의 문제'를 넘어서.. '바람'이라고 할까요.
만약 모든 생물 하나하나에 무게를 느끼며, (진중권씨의 말을 빌리자면 '아우라'를 느끼고) 소중히 생각해 보려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면, 나도 진심으로 소중히 여겨주지 않을까. 함부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해 봅니다
10/01/10 12:40
글쓴분의 생각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한 개체의 의미가 큰 생물일 수록 죄책감이 더 든다.* 입니다.
인간 > 포유류 > 조류 > 양서류=파충류 > 문어, 오징어 > 어류 > 식물 > 박테리아> 바이러스 이 순서에 '거의' 정확히 맞는군요. 바이러스 박테리아 식물이야 워낙 번식을 쉽게 쉽게 잘 하고, 어류도 수백개부터 수천만개의 알을 낳고, 양서류 파충류도 수십개의 알을 낳지요, 조류는 수 개, 포유류는 하나부터 수 마리까지의 자손을 낳지요. 인간은 한 번에 하나의 자손을 낳습니다.(일반적으로...) 그리고 이와 함께 생명에는 당연히 경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러스 한 마리와, 고등어 한 마리와, 사람 한 마리.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위에 쓴 바와 마찬가지로 사람 한 개체가 훨씬 의미가 큽니다. 그리고 하나의 사람은 바이러스나 고등어보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큰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지요. 성인 남자, 성인 여자, 어린이중 성인 여자와 어린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이와 같지 않나 싶습니다. 성인 여자는 자손 번식의 가능성이, 어린이는 앞으로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지요. 하지만 성인 남자는 늙어서 죽는 것... 그리고 또 한 가지. 먹기 위해서 죽인다 해도 당연하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저는 먹는 생명체에게 빚을 지는거라고 생각해요. 그 생명체 덕분에 제가 더 건강하게 힘을 갖추고 살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인생을 막 살면 안된다는 생각도 합니다.
10/01/10 13:41
영혼이 있다면 그 혼을 지닌 생명의 무게는 종에 따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른 생명체를 죽일때의 죄책감은 그 동물이 죽을때의 고통을 죽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얼마나 느껴지게 하는가에 따른것 같아요.. 파충류나 양서류이하의 동물들은 다치거나 죽을때도 느껴지는 별다른 반응이 없기에 죄책감이 덜 들지 않을까요... 포유류이상의 동물 소위 감성을 지닌 고등동물들은 죽거나 다칠때 고통을 받고 그 고통이 소리, 몸짓, 표정등으로 나타나기에 살생은 좋지 않다라고 교육받아온 인간으로 하여금 죄책감이 들게한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순식간에 살생한다해도 평소에 동물의 그런반응을 인지하고 있으니...다르겠죠... 요약하자면 살생의 죄책감은그 동물의 지능과 유전자의 동일성 등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는다는것을 살생자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줌에 비례한다고 생각해요.... 고등동물일수록 이렇게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지니 죄책감도 그에 비례해서 커지는거 아닐까합니다. 죄책감은 피드백의 메커니즘이죠...
10/01/10 13:52
덧붙여 인간종의 발전을 위한 다른종의 살생은 절대적으로 가치중립적이고 불가피한거라 생각합니다.
환경보호...멸종위기동물보호...개체수 보존...이런 주제들도 결국 인간종의 영원한 번영을 위한 수단이고 그에 따라오는 여러 도덕적 논거들도 수단해결을 위한 포장에 불과한거죠.
10/01/10 15:38
되면 다 되는 것이고 안되면 다 안되는 것이지 뭐를 위해서는 되고 뭐부터는 안되고 이런건 너무 작위적 기준입니다. 어차피 그들과 우리는 같은 종이 아니거든요. < 늑대가 토끼의 아픔에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다 > 이상의 더 복잡한 도덕적 당위가 이종간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물이 자기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죽는 것인지 즐거움을 위해 죽는 것인지 알게 뭡니까.
신약 개발을 위해 매일 대장암을 강제로 앓아야 하는 쥐들의 고통은 어마어마합니다. 몇 년 전에는 장기이식술을 멋지게 보여주기 위해 쥐 등에 사람의 귀를 이식한 사진을 찍어서 사이언스에 실렸죠. 반면에 믹서기에 갈려 죽은 햄스터는 그렇게 고통스럽진 않았을 겁니다. 애초에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별로 없습니다. 말벌은 배추벌레의 몸 속에 알을 낳아서 거기서 부화한 새끼들은 배추벌레를 산 채로 몸 속부터 잡아먹습니다. 그럼 말벌이 배추벌레한테 미안해 해야 할까요? 이것에 대한 대답이 X 라면, 인간이 동물을 죽이는 대부분의 이유가 정당화 됩니다. 사자는 배고프지 않아도 토끼같은 것을 때려죽이며 즐깁니다. 그럼 사자는 사악한 존재인가요? 이것에 대한 대답이 X 라면, 인간이 재미삼아 동물을 죽이는 것도 정당화 됩니다. 물론 곰이 동족간에 잡아먹는다고 해서 인간이 동족간에 잡아먹어도 되느냐.. 하는 질문은 조금 복잡합니다만, 이것에 대해서는 수천년간 많이들 고민해온 결과 나름의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들이 있으니 이 부분은 패스하겠습니다.
10/01/10 16:00
동물끼리는 이런 토론을 안하고 인간만이 할것 같은데, 동식물 의견을 듣지 않고 생명문제를 인간의 논리로만 어떻게 해보기엔
결론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인간기준이니까요. 제가 가젤이라고 생각해보면 육식동물은 모두 잔인하기가 끝이 없겠죠. 위에 리플중에, 아무래도 역시 어류가 비명을 지른다면 횟집은 거의 없을겁니다. 시끄럽고 거슬려서 어떻게 입맛이 나겠습니까... 적어도 도살장에서 피냄새 맡으며 직접 육회를 먹지는 않으니까요. 먹고살자고 죽이는건 괜찮고, 도락으로 죽이는건 안괜찮다는건 아닌것 같습니다. 카르마가 분명 있을겁니다.
10/01/10 16:20
개인적으로 동물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간 이외의 존재는 인간에게 효용이 있다면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동물 학대와 같은 경우 문제는 그 학대를 하는 개인에게는 효용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므로 반대합니다. 그리고 혼자서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런 행동으로 인해 인간의 성격이 더 잔혹해지고 결과적으로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반대합니다. 동물을 학대하거나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 장기적인 인간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10/01/10 18:32
동물학대에대해 말하자면 인간은 다른 모든 종들과는 다르게 이성이란 것을 가지고있습니다. 저는 이렇게생각합니다. 머리를 다쳐서 이성을 잃은 사람이 햄스터를 믹서기에 가는것과, 이성을 가진 보통의 사람이 햄스터를 믹서기에 가는것은 차이가있다고 말이죠. 믹서기사건은 어린아이가 한것같은데 잘한것은 절대아닙니다만 어린아이니까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아니죠(만약 성인이 했다면 그사람은 좀 문제가 있군요)
인간도 어쩄거나 생명체이기에 생명체를 이유없이 죽이거나 괴롭히는 행위는 그 자신들의 이성에따라 스스로 배척하려고 하는게 정상이겠죠. 동물학대를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있다면 그 사람은 이성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버튼만 누르면 어떤동물을 잔인하게 죽일수있는데, 버튼을 눌러보라고한다면 대다수의 인간들은 누르지 않을것입니다.
10/01/10 18:35
Ms. Anscombe님//
죄송한데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 효용을 얻기 위해 이용하는 대상을 '인간 이외'의 것으로 서술한 것인데, 한정할 필요가 없다면 인간도 효용을 얻기 위해 이용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당연히 그런 뜻은 아닐텐데 한 문장으로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10/01/10 18:47
Ms. Anscombe님// 인간도 효용을 얻기 위해 이용할수 있다는 말은 조금..그렇네요.
굳이 진화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효용을 위해서 인간도 이용(가죽이나 고기를)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의 사람들 역시 그 인간에게는 이용당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화의 체 에서 걸러져 나갔을 것이라 생각되네요.. 말하자면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상 세대 진행시에.. 배제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10/01/10 23:54
Christian The Poet님// 인간을 범주에서 제외하는 이유가 "불쾌감을 주므로", "인간의 성격이 더 잔혹해지고 결과적으로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등의 이유라면, '그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 사용 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만약에 "장기적인 인간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이익이 된다면 허용할 수도 있겠죠. 사실 범주에서 제외하는 이유는 '윤리적'입니다.(실제로 그것이 높은 효용성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그런데 그 이유를 효용이라는 관점에서 말하게 되면,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겠죠.
데스님// 효용을 얻기 위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그래도 된다'고 하는 건 다른 문제가 되겠죠. 우리가 '그러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건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하지만', 금지하는 것이죠. 이걸 금지하는 이유가 효용의 문제라면 애초에 금지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알아서 효용에 맞게 행동할테니 말입니다. 실제로 윤리적 금언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와 무관하게 윤리적 진술들은 효용에 '근거'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효용에 '근거'한다면 '~이어야 한다'는 진술은 불가능하겠죠. 위에 든 진술을 예로 들면, '인간을 범주에서 제외'시킬 것이 아니라, '인간 종의 이익에 위배되는 특정한 경우에는 인간을 범주에서 제외하는 것이 종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 우리들이 그러한 근거에서 인간 종을 특수하게 다루고 있는지...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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