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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6/24 16:06:25
Name 그러려니
Subject [일반] 어느 부부(응가)이야기9



하나. 아빠이야기

3년전 즈음의 어느 날.
운동이 하고 싶어 죽겠는데 퇴근시간은 늘 늦고, 무리인걸 알면서도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밤늦게 아내랑 함께 집 근처 24시간 헬스를 탐방하러 간적이 있다.
위치 확인하고, 주차장 시설 대충 훑어보고.
워낙 차량이 많은 동네라 분명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밀린다 싶을 정도로 차들은 빼곡하고,
그렇게 다소 더디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잉........'
'지잉'말고는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신호다.
얼른 집으로 가자는 생각 하나로 입 다물고 운전에만 열중해도,
그것이 열중한다고 되는 일이던가.

"저기 신호 멈추면 운전대 좀 잡아"
"응?"
"화장실"
"응 알았어"
긴박한 몇마디가 오가고, 죽겠구나 싶다가 또 좀 가라앉는다.
"가만 있어 봐"
그래. 이 대로에 내려서 화장실을 시간 내에 찾을 수 있겠니. 집에 가자!! 집 말이다!!!!
'지잉......"
아니야 아니야 집이고 나발이고!!!
다행히 지하철역 사거리다. 천운이다!!!!
"간다"
아내가 운전대는 제대로 잡는지 어쩌는지 알게 뭔가. 니 일은 니가 알아서 하라고!! 가자!!!! 얼른 가자!!!!!

.
.
.


하하.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이렇게 세상이 달라 보일 수가.
신호 멈춘 곳에서 우회전 해서 잠깐 정차해 있으라는 곳에 아내는 보이지 않고 다른 차들이 빼곡하다.
차 댈곳이 없어 순회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아뿔싸, 차에서 내릴때 핸드폰을 챙기지 못했다.
곰팅이 같이 몇백미터 되는 대로를 왔다 갔다 몇번 하다, 염치 불구하고 가판대 아주머니에게 전화기를 빌려 아내와 연락이 닿았다.
있으라는 곳에 아내가 없으면 어떻고, 이 야밤에 체조하듯 뛰어댄게 대수냐.
지금 홀가분한 내 몸만으로도 너무 유쾌하도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부부가 좋다고 계속 낄낄대누나.



둘. 엄마 이야기.

작년 이맘때 즈음.
동네 포장마차에서 홍합과 해물칼국수 시켜 놓고 부부가 소주잔을 기울이던 야심한 밤.
과연 저녁을 먹은게 맞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젖가락질을 해대던 아내의 표정이 순간 굳는다.

"오빠. 나 화장실"
미안한 표정이다.
"얼른 갔다 와"

무슨 군말이 필요하랴.
우리 집 여기서 300m밖에 안되잖아. 어느 정도 상태인지 모르지만 넌 할 수 있다. 얼른 갔다 와라.

자리를 뜬 아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종종걸음을 한다.
갈 수 있다고, 괜찮을 거라고 되뇌이지만 점점 자신이 없다.
아니 어떻게든 아파트 건물까지는 도착했다고 치자.
그러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10층까지 올라가는 그 시간만큼은 지금 이 상태로 도저히 불가능이다.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방향을 꺾는다.
고기집.
저기 화장실이 있을 것 같긴 한데 점원들 회식 분위기다.
아무리 급해도 저긴 아니야. 그렇게까지 망가질 순 없어.
다음 건물을 슬쩍 치켜보니 화장실 문이 보인다.
있긴 있는데 저 문이 잠겨 있다면 그걸로 끝이다.
제발, 제발!!!
열려 있다. 빙고!!!!!
문 닫고 고리를 잠그는데 호흡은 최고조로 불규칙해지고, 수전증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손이 덜더러덜덜 더덜덜덜 떨린다.

.
.
.


아내가 씨익 웃으며 포장마차 안으로 다시 들어온다.
"진짜 시원하지"
"어. 장난 아니야"
세상 모든 잘못을 다 용서할 수 있을 듯한 그 기분.
아내는 무용담 얘기하듯 응가와의 한판승부로 열변을 토한다.



셋. 아들 이야기

바로 엊그제.
그날도 엄마는 급식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들을 데리러 간다.
그런데 늘 교실 앞에서 만나는 아들 녀석이 교문을 들어서니 저 멀리에서 현관을 뛰어 나온다.

"왜 엄마 안 기다리고 그러고 나와??"
"그냥요"
"급식은 다 먹었어?"
"배가 아파서 다 못먹었어요"
"왜 또 배가 아퍼어..."

급식에 먹기 싫은 것 나오면 종종 배 아프다며 안 먹는 녀석인지라 예사로 들은 엄마는 룰루랄라 집으로 향한다.
아이스크림 먹을까 소리에 평소 같으면 신나 할 녀석이 웬일로 안 먹겠단다. 뭐지.
신호등 건너고 한 100m 쯤 걸었을까.

"으잉! 으잉잉!!!"
아들이 오만상을 하고 징징거리며 걸음이 빨라진다.
"왜? 왜 그래?"
"배.. 배 아파.. 응가.. 으잉!!!"
순간 엄마는 머리 속이 하얘진다.
과연 내일이 올까 싶은 이 암흑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을 8살 짜리 녀석이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아아..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그 고통이 찾아왔다...!
"어어.. 그래.."
아들과 엄마가 함께 종종걸음을 한다.
가다 싸면 뭐부터 해야 하지 하는 생각에 엄마는 정신이 없다.
아들이 얼마를 쫑쫑거리더니 잠시 진정이 됐는지
"이젠 괜찮을 것 같아여어.."
말은 그렇게 하는데 여전히 죽을상이다.
다행인가 싶어할 새도 없이 또 죽는소리 시작이다.
"으잉!!! 으으잉!!!!"
다시 빨라지는 걸음걸이,
엄마는 잠시 '업고 뛸까?' 생각하다, 아니다 업으면 엉덩이에 힘 주기가 어렵겠지? 그럼 바로 나올거야 그지?
엄마는 이도 저도 못하고 그냥 아들 손을 잡고 뛸 태세다.
"뛰지 마여어잉!!! 이잉잉!!!!!"
하며 짜증을 쏟아내고 손을 뿌리치는 아들.
아 맞지.
대놓고 뛰면 안되지.
미안해. 미안하다.
걷는 건지 어쩌는 건지 그렇게 정신없어 하는 사이 고맙게도 저 멀리 반가운 과일가게가 보인다.
"아줌마!! 우리 애 화장실!! 열쇠요!!!"
과일가게 아주머니는 한마디 말도 없이 열쇠 있는 곳을 다급히 가리킨다.
"빨랑 와 빨랑!!"
엄마는 아들을 재촉한다.

.
.
.

어른도 참기 힘든 걸 별 일 없이 겪어낸 녀석이 너무나 기특하다.
아들 녀석 등짝을 보니 옷이 땀으로 흥건하다.
딱한 것.

"정말 잘 참았어.. 너 지금 세상에서 제일 참기 힘든 거 참은 거야."

아들은 엄마의 말이 뭔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끄러미 쳐다본다.
그러고는 이내 주저없이 뱉어내는 한마디.


"엄마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

-_-
.
.
.



..................................................................................................

더운 여름 배탈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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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zardMo진종
09/06/24 16:17
수정 아이콘
더운 여름... 배탈...

안돼...
감전주의
09/06/24 16:24
수정 아이콘
"정말 잘 참았어.. 너 지금 세상에서 제일 참기 힘든 거 참은 거야."
이 한줄의 글을 보고 웃음과 울음이 순간 교차했습니다..
아~ 참을수 없는 이 고통이여~~
Zeegolraid
09/06/24 16:34
수정 아이콘
하,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장르의 글을 무척 좋아하는지라....^^;;
저도 과민성대장증상 때문에 글쓴분께서 경험하신 일을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평생 안고 가야할 숙제 같습니다.

ps. 프로필에 써놓으신 글귀가 무척 인상깊네요.
권보아
09/06/24 16:37
수정 아이콘
크크크 다들 한번씩 이런 생리현상으로 괴로워해보신적 많을거 같습니다~!

특히 저같은경우 배에 찬바람이 들어가면..

죽습니다 -_- 뛰어야 합니다!!!!!!!
09/06/24 16:49
수정 아이콘
하하하 재밌게 잘 쓰셨네요. 저 본인은 사흘에 한번 응가하는 스타일이라 저런 경험이 평생 다 합해서 세번이 안되는 것 같지만, 아들놈은 아직 어려서 그런지 결정적인 순간 2초전까지도 한마디도 안하다가 바로 '응가!!! 빨리!!' 자꾸 아래버려서 아주 죽겠습니다 ^_^
여자예비역
09/06/24 16:52
수정 아이콘
아하하하.. 저도 어릴적이 생각나서 넘 재밌게 읽었네요.. 흐흐흐
달덩이
09/06/24 16:52
수정 아이콘
하하하하하.. 아드님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네요.

"엄마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
저도 저나이때는 그랬을 것 같아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09/06/24 17:06
수정 아이콘
얼마전 아는 부부네(일산)에 놀러 갔다가 저, 아내, 아들, 딸...일가족 넷 모두가 응가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마지막으로 응가하고 나서 "우린 일산에 똥누러 왔던거여" 그랬던 기억이...^^;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
09/06/24 17:14
수정 아이콘
어...님// 사무실 모니터에 마시던 물 뿜었습니다...-_-;;;;

저도 어릴 때 부터 저런 상황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던 관계로...

아직도 시도 때도 없이 신호를 울리는 배 때문에 괴롭습니다...ㅠㅠ

분명히 아침에 배출하고 나왔는데도 한두번씩 더 신호를 배가 밉죠...
09/06/24 17:19
수정 아이콘
한 3년에 한번 정도....다들 불가항력적으로 바지에 저리지 않나요?
그것도 꼭 문따고 집에 들어와서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 올리고....바지 내리는 와중에...

나만 그러는건 아닐꺼라 굳게 믿고 제 아래로 달린 리플은 보지 않겠습니다.
권보아
09/06/24 17:47
수정 아이콘
깜풍님//

그런적은 한번도 없......
09/06/24 17:53
수정 아이콘
깜풍님// 단호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없었습니다!!
Daywalker
09/06/24 18:02
수정 아이콘
깜풍님// 괄약근에 이상이...흐흐흐흐
더이상피치못
09/06/24 19:01
수정 아이콘
깜풍님// 괄약근 수축 운동 좀 하세요.. 대신 너무 많이하면 똥꼬 막힘다..
네오크로우
09/06/24 19:04
수정 아이콘
3년에 한번 정도는 아니지만 살면서..겪어본적은 있습니다..ㅠ.ㅠ
09/06/24 21:24
수정 아이콘
이게 말이죠 . 이른바 과민성대장증후군?? 뭐 이런거라고 할 수가 있는데...
안 겪어보신분은 모르는 그런 심각한 중증 질환입니다...

제 경우에 있어서 가장 큰 트러블을 유발하는 식품은 " 우유 " 인데요..
그것도 흰우유일 경우 섭취 20분 이내 .... 그대로 나옵니다..
100미리리터의 우유섭취시 제 생각이지만 대략 90미리리터는 ....

우유...그 순백의 색을 잃고
설사...그 고유한 황토색으로 변색되어
하수종말처리장으로 향합니다.

이건 오래된 증상이며 충분히 인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1년에 한 번 정도 우유에 도전합니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

물론 매번 ......실패합니다.
마술사
09/06/24 21:36
수정 아이콘
오랫만에 씨익 미소가 지어지는 글 잘 봤습니다.
추천 드리고 갑니다
너구리를 형으
09/06/24 21:41
수정 아이콘
오늘 학원옥상에서 담배꽁초들의 영양분을 먹고자란 산딸기(옥상딸기인가요....;;;;)뜯어먹고...
폭풍의 퐈이야~!!를 경험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길에서 아무거나 줏어 입으로 가져가시면 안됌니다....
^^;
그러려니
09/06/24 21:44
수정 아이콘
깜풍님//
저희 매형도 아마 그 증상인가 봅니다.
누나 내외가 결혼하고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신혼의 어느 날 저녁, 온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라 밖에서
"여보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옥"
하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많이 듣던 목소리라 뭔가 싶어 누나가 문은 바로 열었지만, 그렇게 엘리베이터 내리자마자 절규하며 달린 보람도 없이......
그런 식으로 버리는 속옷이 1년에 여러 벌 된다죠 아마..;

그나저나 이런 열화와 같은(?) 공감대 형성이라니..
역시.. 이것만큼 극도의 불행과 행복을 짧은 시간에 흠뻑 느끼게 하는 건 세상에 없을 듯 합니다.

에피소드 아닌 에피소드 하나 더 끄적이자면,

언젠가 어머니 아버지랑 함께 저녁 먹은 뒤 똑같은 화제로 이런 저런 경험담을 나눴더랬죠.
그때 그래서 뭐 등에 식은땀이 장난이 아니었네, 어쩌네 그러는데 아버지가 대뜸 하시는 말씀,

"그럴 때 방귀 뀌면 크은 일 난다!!"

옆에서 얘기 들으며 잠자코 웃고만 계시던 어머니,

"그 난리에 방귀 뀔 여가가 어디 있노!!!!!"

-_-
.
.
.
나두미키
09/06/25 07:29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그쵸.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이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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