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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7/07 16:58:28
Name 공허의지팡이
Subject [일반] 아버지의 조언
요즘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데, 그에 따라서 심리상태가 요동치고 있다. 처음에는 우울과 폭식 때문에 찾아갔는데 얼마 전에는 조증이 오더니 조증이 더 심해져 과대망상까지 온 듯 하다. 그 와중에 이상한 생각이 떠오르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한 소리는 아니지만 그 소리를 듣고 아버지는 화를 내었고 어찌 넘어가기는 했다.

일주일 뒤 아버지께서 부르더니 요즘 어떠냐고 물으시길래 이래 이렇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성질이 좀 그렇고, 너도 나이가 먹었고, 그래서 한동안 이야기 하려다가 참았다."

로 시작한 이야기는 또다시 훈계의 시간이 찾아왔음을 나는 느끼게 되었다. 과거에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쳐 내려고만 했는데 이번에는 받아들이려고 노력을 해봤다. 마음을 열고 들으니 예전에는 간섭으로만 소리가, 아들에 대한 걱정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늘 걱정되는 게 있는데 너는 사내자식이 너무 심약해. 세상 살다 보면 거짓말도 하고 그러면서 살아남는 건데 너는 너무 깨끗하게 살려고 해. 이 세상천지에 거짓말 안 하는 놈 어디 있느냐? 그런데 너 혼자 깨끗하게 살려 하면 어떡하느냐. 몰라도 아는 척하고, 거짓말도 하면서 사는 거다."

(중략)

"남자는 거짓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여자한테 거짓말을 잘 해야 된다."

(중략)

"집안에 어른이 왜 있느냐? 네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어른들이 해결해주고 그러는 거니 혼자서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살아라."

이야기를 듣고, 곱씹으면서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서 내가 곡해한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 아버지와 화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거짓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연애를 제대로 못 하는 것이 거짓말을 잘하지 못해서가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들.

"나랑 결혼하면 고생 안 시키고 호강시켜줄게"

사장님이 여자한테 이런 말을 잘할 수 있어야 된다고 했던 소리. 여자들은 이런 말에 넘어간다고. 또한,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끝이 없다. 거기에 초짜이니, 모르는 것 천지다. 그로 인해서 받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화제를 전환해서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결혼했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어머니는

'선 자리에서 눈썹 진하고, 얼굴이 하해서 결혼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생 파운데이션 바르고 나온 거더라. 그때는 뚜쟁이들이 결혼 성사시키려고 과장을 많이 했는데, 집에 소가 100마리 있다는 둥, 논밭이 넓다는 둥.  외할아버지가 다 알아보고 거짓말인 거 알았는데, 아버지를 보더니 마음에 들어서 결혼을 승낙해줬다.'

그렇게 어머니는 개고생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고, 언젠가 아버지에게 물어봤더니, 뭐 그런걸 물어보느냐는 식으로 회피하더니

"서울에서 일할 때, 주말에 고향으로 가면 선을 봤다. 점심 중간 저녁 하루에 3번씩 선도 봤는데, 그중에 어머니가 집안이 우리 집보다 좋고 그랬다. 어른들이 선이 어땠냐고 하니 집안도 좋고 대학도 나왔고, 나쁘지 않았다고 하니, 다음에 오니 결혼준비가 다 되어있더라. 그래서 결혼했다."

그때는 진짜인가 싶었는데, 아버지를 생각하면, 진짜인 거 같다. 어찌 되었건 어머니는 맏며느리로 고생하고 아버지는 중동도 2번이나 가면서, 자식들 교육도 하고, 서울에 집 한 채만 있고, 힘들지만 그럭저럭 7남매의 장남 노릇을 한 것 같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참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여자가 서울에서 대학 나와서, 박물관에 취직도 했는데,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았으면, 지금  쯤 어머니의 어떤 친구처럼 우아하게 교수나, 학자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또는 조금은 현명하게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으면 편한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지금은 평범한 집 주부가 돼서 남편 자식들 밥 차려주는 신세가 되었으니.

최근에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박물관에 취직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여자는 커피 심부름만 시키고, 답사 갈 때는 여자는 열외를 시키고 해서 그만두고 선보고 결혼한 것이라고 한다.  

돌아와서, 어머니와 외가는 아버지와 친가에 속아준 것인데, 와서 겪으니, 집안 사정과 아버지의 성격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거 같고, 그 와중에 어머니는 인내하면서 집안을 꾸려갔던 거 같다. 아직 결혼도 못 한 내가 무엇을 알겠느냐만은 지금은 그렇게 생각 중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가진 채 상담을 하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버지는 아버지고 나는 나라는 것이다. 아버지나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다 보면 무리할 수 있으니 본인의 페이스대로 살라고. 지금의 내 모습이 아버지의 눈에는 부족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어떤 부모에게는 믿음직하고 자기 일을 잘하고 있는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의 과한 기대치에서 나온 이야기는 현명하게 흘려보내는 것이 좋다고.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글을 쓰면서 정리해본다. 짧지만 짧지도 않은 30 인생을 돌아보면, 내가 가장 힘들고 후회되는게, 내 욕심으로 잘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가, 나와 맞지 않아서, 또는 내가 부족해서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물러섰을 때, 그때의 좌절과 자괴감은 아직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모르고 한 소리도 있고, 알면서도 한소리도 있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 질문들을 던지며, 최소한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언젠가 내 마음에 들어왔던 짱구 아빠의 명언

하루만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라.
일주일만 행복하려면 차를 사라.
한 달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해라.
일 년을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평생 행복하고 싶으면 정직하게 살아라.

이제는 내 돈으로 미용실도 갈 수 있고, 차도 있는데 행복할 때도 있고,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있다. 결혼하고 집을 산다면 인생이 행복해질까? 그러기 위해서 알면서도 모르면서 거짓말을 해야 될까?

강의를 듣다가 우연히 만난 대학 동기와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지금 강남에서 자기 가게를 열고, 외제 차도 사고, 전셋집도 강남에 있다. 자세한 재정 상황은 모르나 세금 걱정을 한다. 너무 많이 낼 것 같다고. 불과 몇 년 사이에 고민의 수준이 달라진 것을 보여 허탈했다. 그 친구는 안되는 가게를 인수했는데, 1년도 안 돼서 하루 고객이 6배나 늘었다는 것이다. 똑같은 자리에서 말이다.

"야, 강남에서 성공한 비결이 뭐냐?"
"그냥 열심히 하면 돼."
"요즘 세상이 얼마나 치열한데 그전 사람은 열심히 안 한 거냐? 비법이 뭐냐?"
"뭘 하든 똑같아. 사실 그 사람 열심히 안 한 거야"

그렇다. 그 친구는 그냥 열심히 살아온 것이 아닐까? 내가 이런저런 고민과 생각만 하는 사이,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고,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친구도 인생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원래 이런 의도로 쓴 글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런 글이 되어버렸다. 글이 어째 내 인생이랑 비슷하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때그때 느끼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는가?

끝으로 짱구아빠 성우 '오세홍'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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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ya Stark
15/07/07 17:03
수정 아이콘
다른 사람의 사정이야 어떻든 열심히 안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본인에게는 편하죠.

복잡하게 따질 필요도 없고 그냥 손가락질 하듯이 던져 놓으면 그만이니까요.

언젠가 유시민씨가 했던 말중에 "조금 비겁해지면 더 편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 세상은 편해지기 위해서라면 얼마든 비겁해지는게 마치 당연한 것처럼 되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공허의지팡이
15/07/07 17:06
수정 아이콘
그렇죠. 뭐든 개개인의 능력에 운이 맞아야 성공하는 거죠.
켈로그김
15/07/07 17:26
수정 아이콘
형태가 어떠하든, 우리는 '고객응대' 를 하고 살아야 하니까요.
열심히, 정직하게, 요령껏 하는 것은 접근방향인데,
실제로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는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에 의해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아주 장대한 계획에서 나온다기 보다는 한순간의 변덕과 짧은 기간의 실천이 굉장히 큰 변화를 가져오죠.

...그러니까.. 저도 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몰랑..
공허의지팡이
15/07/07 18:00
수정 아이콘
크크 감사합니다.
스카이
15/07/07 18:08
수정 아이콘
타인의 평가는 크게 신경 쓸 게 못 됩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내리는 타인에 대한 평가가 그리 긴 시간 고민해서 내린 평가가 아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길어야 5분이나 그 사람에 대해 고민하고 내린 평가일까요?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항상 잘 해야 된다는 뜻도 됩니다. 나는 이번 한번이고, 잠깐이지만 타인에게는 그 한번, 그 순간으로 나란 사람이 평가 되니까요.

잘 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건지는 본인이 결정해야할 문제겠죠.

그리고 저도 정직하게 사는게 길게 봤을 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성격과 가치관으로는요. 다만 약간의 허세나 허영심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몰라도 아는 척을 했다면 정말 더 잘 알도록 노력하고, 평생 고생 안 시키겠다고 했다면 정말 고생 안 시키도록 노력하는거죠.
남들보다 뛰어나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발전의 토대가 될 수도 있고요.

글쓴이 보고 원피스 얘긴가했는데 말이죠흐흐 항상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단행본 나오면 즐기는 라이트 독자라 뭐라 의견은 못 달고 있지만요.
공허의지팡이
15/07/07 18:27
수정 아이콘
사실 원피스 연구하다 나온 생각도 많습니다. 제가 못 본 부분까지 잘 정리해주셨네요. 조로의 이야기 같은거죠. 최강의 검객이 되겠다고 이야기 했으니 지키는 겁니다?크크 감사합니다.
해원맥
15/07/07 21:33
수정 아이콘
하루만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라.
-> 저는 패션을 모르니 패스..
왁스 발라주고 나왔을때 까지는 행복합니다 크크
일주일만 행복하려면 차를 사라.
-> 일단 있으면 행복하네요 어디든 맘대로 갈수는 있으니
한 달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해라.
-> 아직 안했으니 모르지만.. 많은 분들이 헬복해 합니다
일 년을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평생 행복하고 싶으면 정직하게 살아라.
-> 항상 굽히지 않고 [자신에게만] 정직한 친구덕에 아주 진저리가나게 괴로움을 얻고있습니다.
저는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선에서 정직한게 제일인거 같습니다.
다나까
15/07/08 10:33
수정 아이콘
결혼하고 '한달'은 행복합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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