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07/07 02:05:16
Name 스무디킹
Subject [일반] 자괴감이 드는 밤이네요. 그냥 하소연 글입니다..
여느때처럼 가게마감을 하고 피지알 첫글을 변기에 앉아서 쓰게되네요..

제가 생애 처음으로 겪은 사건은 집에 오는길에 발생했습니다.
저희 집앞 지하철역은 마감시간엔 에스컬레이터가 운행을 안합니다.
계단처럼 올라가야하죠.  경사도 상당히 가파른 편입니다.

여느때처럼 아무생각없이 귀에 이어폰을 꼽고 지하철에서 내려 어슬렁어슬렁 걸어갔습니다.
제가 몸에 열이 워낙 많아서 날씨를 불문하고 조금만 빨리 걸으면 땀이 비오듯이 쏟아지는지라
천천히 걷는게 습관이 되어있습니다.

저 앞에 키가 매우 작아서 걸음이 느릴수밖에 없어보이는 치마입은 여성분이 걸어가고 있었고
그뒤를 남자 두명이 쫒고 그 뒤에 제가 있었습니다.
근데 앞을보면서 걷다보니 뭔가 이상합니다.
분명 걸음 속도로 보면 남자들이 여성분을 제끼는건 시간문제인데 에스컬레이터에 접근하면 할수록 걸음 속도가 확연히 떨어집니다.
결국 여성분이 맨 앞에서 계단을 올라가는 모양새가 됩니다.
에스컬레이터 폭이 매우 좁아서  필연적으로 줄줄이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근데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반 조금 덜된 지점에서 고개를 드니 여성분 바로 뒤를 따라가는 남자 각도가 이상한겁니다
분명 제 시야에 여성분이 안보여야 정상인데 공교롭게도 남자 두명이 왼쪽으로 밀착해서 걷는통에 여성분이 시야에 포착됩니다.
이무생각 없이 다시 고개를 숙이려는 찰나 바로 뒤편 남자 손 각도가 이상해보입니다.
정신차리고 다시봤습니다.

손에 핸드폰이 있고 치마속을 찍는게 확실해 보이네요.
절대 그 각도로 핸드폰을 들고 갈 일이 없습니다.
폰을 든채 자연스레 흔들리는 손이 아니라 부자연스럽게 한 지점에서 고정되어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몰카 찍는건가? 근데 만약에 오해라면? 그리고 맞다고 해도 나한테 저걸 저지할 권한이 있는가?
여러 생각을 하는순간 남자가 폰을 회수하고 무언가를 조작하네요.

결국 다 올라와서 역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합니다.
다른 사람도 많은 가운데 몰카범이랑 피해자 여성분 그리고 목격자인 저까지 모두 함께 나란히 버스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막차시간이라 버스가 오려면 좀 걸립니다.
이순간에도 고뇌는 계속됩니다.
여자한테 말해야 하나? 아니면 몰카범에게 조용히 가서 찍는거 봤으니까 지우라고 할까? 경찰에 신고?  오만가지 생각을 했네요...
고민하다보니 만약 몰카가 제대로 찍히지 않아서 저장을 안했을경우 증거가 없어서 제가 곤란해 질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경찰이나 몰카범에 직접 말하는건 제외시켰습니다.

여성분에게 말할까 했는데 잠시 고민하다가 이것도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습니다.
여성분이 알아봐야 할수있는 행동도 제한적인데다가 (위와 마찬가지 경우로..)
괜히 기분만 잡칠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결국 그냥 저만 아는 비밀로 간직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에서도 그 여자분이랑 나란히 서서왔네요.
죄책감인지 뭔지모를 감정이 드는데 참 몸들바를 모르겠더라구요.
결국 일찍내려서 세정거장 정도 걸어왔습니다.

걸어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제 행동중 베스트는 찍는걸 발견하는순간 뭐하시는거냐고 현장을 잡는거란 결론이 나왔습니다.
근데 난생 처음 본 추행범이라 그런지 남자인 저도 머릿속이 하얘지고 어쩔줄 모르겠더라구요.
여자들이 성추행을 당하면 몸이 굳는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실감나게 이해가 갔습니다.

아무튼 찍는 순간을 놓친 저로서는 비겁하지만.. 무언갈 할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후에 따라올 귀찮음이 싫었을수도 있겠죠.. 아마 알게모르게 그 마음이 제일 컸을겁니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현장을 잡으면 바로바로 행동 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막상 또 그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ㅜㅜ

하여간 오늘처럼 제 자신이 비겁해 보이긴 처음입니다.
여러분은 저런 상황이 닥치면 저처럼 얼음이 되지 마시고 바로바로 행동할 준비를 해두세요.
머릿속으로라도 시뮬레이션 해본것과 갑자기 닥친상황은 정말 천지차이같습니다.
여성분들도 항상 뒤 조심하시구요.
긴 뻘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대경성
15/07/07 02:09
수정 아이콘
그럴수도 있습니다
비겁한거 아니에요.
스무디킹
15/07/07 02:13
수정 아이콘
네 감사합니다ㅜㅜ
근데 저도 지금까지 남을 돕다가 피해본 사례를 워낙 많이 들어서
귀찮은 일은 피하자는쪽이었는데... 막상 겪으니까 다르네요.
15/07/07 02:13
수정 아이콘
심증과 정황상 스무디킹님이 생각하신 상황이 맞는 것 같지만 정말 참견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만에 하나 아닐 경우는 정말 서로에게 안좋을 수도 있구요.
비겁한 행동은 아니었고 세상에 치한 행위하는 남자들이 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죄없는 피해자도 생겨나고 너무 사회적인 피로도 크게 만드는것 같아요. 절대 스무디킹님이 자괴감을 가지실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무디킹
15/07/07 02:16
수정 아이콘
네 맞습니다!!이번에 절실히 깨달았네요.
그인간은 그거 집에서 보면서 행복할까요? 자괴감들꺼같은데...
세츠나
15/07/07 09:55
수정 아이콘
죄책감이 없으니 자괴감도 없죠. 혹은 죄책감까지 즐기고 있거나?
저 신경쓰여요
15/07/07 02:13
수정 아이콘
누구나 재빨리 행동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저도 얼마 전에 길을 가던 중 어린 여자아이랑 그 아버지가 무거운 걸 계단을 통해 옮기기에 마음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도와주고 싶었는데 결국 잠깐 고민하는 사이에 다 올라와서(계단 바로 위에 짐을 놓고 내려가더군요) 맘이 안 좋았었어요.
스무디킹
15/07/07 02:18
수정 아이콘
네.. 어렸을땐 분명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가던 때가 있었는데
나이먹으니까 확실히 생각이 많아지네요.
15/07/07 03:32
수정 아이콘
참견하다가 피해자가 될수도 있습니다.
나서지 않는게 나을수도 있어요.
클라스
15/07/07 04:23
수정 아이콘
안도와주신게 백번 나아요.
Flash7vision
15/07/07 06:25
수정 아이콘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접할 때는 머릿속에 새하얗게 되거나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비겁하다고 여기실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광개토태왕
15/07/07 07:04
수정 아이콘
잘 참으셨습니다.
제로로꾸
15/07/07 08:51
수정 아이콘
그 몰카 하는 상황을 몰카 하셨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티이거
15/07/07 09:08
수정 아이콘
몰카는 차라리 참는게 나은거같아요.. 성추행과 다르게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모르니깐요.. 저같으면 저럴때 가해자옆에가서 조용히 이럴거같네요 "에휴.. 남의 더러운팬티 보는게 그렇게 좋냐"
단호박
15/07/07 09:47
수정 아이콘
몰카은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성추행보다 피해자한테 최악의 상황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죠...
15/07/07 09:28
수정 아이콘
cctv는 없었나요? 지하철 계단 출구는 없는 경우가 많은데 에스컬레이터 있으면 cctv도 보통 있더라구요.
mapthesoul
15/07/07 10:11
수정 아이콘
비겁하지 않습니다.
저라도 스무디킹 님과 동일한 선택을 했을겁니다.
함부로 나서기엔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많아요.
동일한 상황이 또 발생하더라도 그저 지나치는게 현명한 선택일겁니다.
적어도 지금의 한국에서라면요.
세종머앟괴꺼솟
15/07/07 11:30
수정 아이콘
잘하신겁니다.
루카쿠
15/07/07 15:05
수정 아이콘
괜히 나섰다가 봉변당하면 얘기 달라지죠. 그리고 그런거 봐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모르는 척 하는 사람이 태반 아닐까요?

위 댓글에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나왔는데, 정말 용감한 행동을 결단하신다면 범행을 촬영하는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무튼 스무디킹님은 비겁하지 않으셨어요. 그나저나 스무디킹 무료 쿠폰 빨리 써야되는데 상기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크.
15/07/08 00:13
수정 아이콘
그냥 자세한 상황을 무기명으로 신고했으면 CCTV잡던지 정도는 됐을지도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9644 [일반] 아버지의 조언 [10] 공허의지팡이4388 15/07/07 4388 3
59641 [일반] [쇼미더머니] 피타입 탈락, 그로부터 떠들어 본 SNP와 한국어 라임에 대해서 [35] 2210271 15/07/07 10271 16
59639 [일반] [요리] 흔한 보모의 백종원 간장 두부조림 [19] 비싼치킨7755 15/07/07 7755 6
59638 [일반] [해축 오피셜] 아르다 투란 바르셀로나 이적 [37] 고윤하5156 15/07/07 5156 0
59637 [일반] 1 [167] 삭제됨7556 15/07/07 7556 0
59636 [일반] 유승민의원 결국 강제로 밀어내기 당하는군요 [125] 능숙한문제해결사14179 15/07/07 14179 2
59635 [일반] [기사펌] 액티브X, NPAPI, 실버라이트 퇴출... 플러그인의 최후가 다가오나 [54] swordfish-72만세6423 15/07/07 6423 3
59634 [일반] 불멸의 세포 - 우리는 영생할 수 있을까? [19] 삭제됨4479 15/07/07 4479 7
59633 [일반] 이거 어장관리인가요?!(끝) [57] 잠이오냐지금7885 15/07/07 7885 3
59632 [일반] [해축] 어제의 bbc 이적가십 및 선수이동 [17] pioren3371 15/07/07 3371 1
59631 [일반]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77] 삭제됨17639 15/07/07 17639 239
59630 [일반] 걸스데이/김예림/하이브로우X이해리의 MV와 인피니트/에이핑크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51] 효연광팬세우실5868 15/07/07 5868 0
59629 [일반] 최근 1년간 가장 많은 돈을 번 유명인사 Top10 [5] 김치찌개3465 15/07/07 3465 0
59628 [일반] 비정상회담 멤버 교체에 대해서 가지는 불만. [36] 세이젤8933 15/07/07 8933 2
59627 [일반] 자괴감이 드는 밤이네요. 그냥 하소연 글입니다.. [19] 스무디킹7015 15/07/07 7015 8
59626 [일반] 고영민의 다리 블록킹 [55] 로사12053 15/07/07 12053 1
59624 [일반] 나는 이성애자가 불편하다. [48] 저글링앞다리9922 15/07/06 9922 73
59623 [일반] 2015년 상반기 현금으로 가장 비싸게 팔린 게임 아이템 Top10 [29] 김치찌개7231 15/07/06 7231 0
59622 [일반] 아시아에서 재산이 가장 많은 IT계열 부자 Top10 [5] 김치찌개3612 15/07/06 3612 0
59621 [일반] 북미 흥행수입 4억 달러를 가장 빨리 돌파한 영화 Top10 [10] 김치찌개3919 15/07/06 3919 0
59620 [일반] 이걸 덴마가? [70] 만트리안9944 15/07/06 9944 6
59619 [일반] [WWE] Moment of the Year 2015 상반기 #2 [10] 태연­3235 15/07/06 3235 0
59618 [일반] 약간 뒷북 문단의 미문주의에 대하여 [14] 능숙한문제해결사4797 15/07/06 4797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