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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7/06 18:17:42
Name happyend
Subject [일반] 시헌력-동서양과학의 대충돌


이글은 swordfish-72만세님이 작성한
<아담 샬 vs 양광선- 밥줄을 위한 과학자의 정치싸움>의 보론격으로 양해를 얻어서 작성했습니다. 원글은 여기에 있습니다.
https://ppt21.com../?b=8&n=59500

1.

"이해에 (노나라에서는)윤3월을 두었는데, 올바른 방식이 아니었다. 선왕께서 때를 바로 잡음에 있어 일 년의 첫날을 올바르게 정하고 중기를 알맞게 배치하여 나머지를 모아 맨 나중에 윤달로 두었다."

기원적 250년 이전에 만들어진 책 <춘추좌씨전>에 나온 이 말이 바로 전통적인 동양 역법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체의 주기적 현상에 따라 시간단위를 정해 나가는 체계를 ‘역’이라 하고 역을 편찬하는 원리를 역법이라고 합니다. 역은 현재 달력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근대이전에 달력은 현재의 연도에 해당하는 연호, 음력, 윤달, 길한 날과 흉한 날, 절기, 일식, 행사일, 특별한 기상 변동사항 등을 일 년 단위로 묶어 책의 형태로 만들기 때문에 책력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책력은 국립 천문관청인 관상감에서 제작 배포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선물이라고 여겨 비매품이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관상감 관원들도 개인적으로 판매하여 부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동양의 달력은 태양력인 절기와 태음력인 음력을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태음태양력이라고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동양역법 최대의 주제가 발생합니다. 윤달의 배치를 어떻게 둘까 하는 문제로 말이죠. 아시다시피 서양은 태양력이기 때문에 태양의 주기를 맞추기 위해 윤년은 두지만 윤달은 없습니다.
그럼 윤달의 규칙은 어떤 것일까요?

전통역법에서는 일 년을 24개의 기로 나누어 12개의 절기와 12개의 중기로 하는 ‘평기법’을 써왔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통상 절기라고 표현합니다. 절기는 대표적인 태양력으로 태양의 운행에 맞춰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들어졌는데요, 대략적인 기후변화가 이정도의 주기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태양의 운행과는 관계없이 일 년을 무 자르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눈 것에 불과합니다. 태양궤도가 타원궤도가 아니라 완벽한 원궤도라고 가정해서 만든 것이죠.

이 24절기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은 중기가 그달이 음력 몇 월 인지를 정한다는데 있습니다. 가령,

1월 (우수가 들어있는 달)
2월 (춘분이 들어있는 달)
3월 (곡우가 들어있는 달)
4월 (소만이 들어있는 달)
5월 (하지가 들어있는 달)
6월 (대서가 들어있는 달)
7월 (처서가 들어있는 달)
8월 (추분이 들어있는 달)
9월 (상강이 들어있는 달)
10월 (소설이 들어있는 달)
11월 (동지가 들어있는 달)
12월 (대한이 들어있는 달)


물론 절기는 어디에 들어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중기에 따라 달의 이름을 정하는 이 방식은 주나라 말기에 완전히 성립한 것으로 빨라야 기원전 5세기 무렵이라고 합니다.

일년의 길이는 대략 365 1/4일이므로 이를 24로 나누면 하나의 기가 차지하는 시간 간격은 15일 2시 5각이 됩니다. 한 달 안에는 보통 하나의 절기와 하나의 중기가 들어가므로 그 둘을 합치면 30일 43각 정도죠. (전통적인 시각법인 백각법은 하루를 100각으로 나눕니다.)
그런데 음력의 기준이 되는 달이 삭망 주기는 29일 53각 정도 됩니다. 한달을 30일이라고 하면 절기에선 43각이 남고, 음력의 한달로는 46각이 모자라서 그 합은 90각 정도로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루가 100각이므로 거의 하루에 가까운 수치인 것이죠. 이것은 태양력인 절기와 태음력인 음력 달을 맞추려다보니 생긴 차이였습니다.

그런데 90각의 차이에 의해 그달의 이름을 정하는 중기가 점점 뒤로 밀리다가 중기점의 위치가 전달의 맨 끝날까지 오게 되면 그다음 달은 건너뛰게 됩니다. 한 달은 29일 53각이고 다음 중기점은 30일 43각의 뒤기 때문이죠. 중기점은 한 달을 건너뛰어 그다음 달 맨 앞에 오게 되어버리고 결국 그 사이의 한 달 동안은 중기점이 없게 됩니다. 자, 그럼, 중기점이 없는 그달은 몇월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2.

이 난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무중치윤법’입니다. 한마디로 중기가 없는 달을 없애기 위해 중기가 없는 달에 윤달을 두는 규칙입니다. 이것이 바로 맨 처음에 <춘추좌씨전>에 언급된 규칙입니다.

이 전통은 시헌력이 시행될 때까지 2000년간 수없이 역법이 바뀌면서도 변함없이 유지되어 온 방식이었습니다. 따라서 동양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장례, 제사, 혼인과 같은 의식이나 사주를 보거나 점을 치는 일등에서 사용되어오면서도 한 번도 혼란을 겪지 않게 되었죠. 말그대로 동양인들의 삶의 근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시헌력이 이것을 뒤집어 버렸습니다. 태양의 운행을 중심으로 절기법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타원형이기 때문에 태양은 북반구를 기준으로 겨울에는 빨리 움직이고 여름에는 느리게 움직이는데 이것을 그대로 반영하여 태양이 황도상에서 15도 운동하는 시간을 한 절기로 삼은 것입니다. 따라서 겨울에는 절기사이의 간격이 짧아지고, 반대로 여름에는 간격이 넓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태양의 운동을 근거로 절기를 배치하는 방법을 ‘정기법’이라고 합니다.

시헌력 주장자들은 이 정기법이야 말로 시헌력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은 ‘무중치윤법’의 규칙이었습니다. 태양태음력의 전통을 파괴할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바로 이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습니다. 시헌력 사용 직후인 1646년 11월에 대설, 동지, 소한의 세절기가 들어가 버렸습니다. 지금껏 없었던 최초의 사태가 벌어지자 반대론자들의 상소가 빗발쳤습니다.
1661년에도 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8월에 중기가 없어서 이달을 윤달인 윤7월로 삼았는데 같은 해 12월에도 중기가 없었던 것이죠. 시헌력은 이달을 윤달로 삼지 않았습니다. <춘추 좌씨전>에서 제시된 2000여년간의 전통의 대원칙이 무너진 순간이었습니다. 중국의 시헌력 반대론자들은 속을 부글부글 끓이며 반격의 기회만 노리게 됩니다.

바로 그때, 문제의 양광선과 아담 샬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청나라에서는 1664년에 이전 황제의 아들인 영친왕의 장례일을 일부러 나쁜 날로 잡았다며 흠천감 관원들이 고발되었습니다. 8개월간의 취조 끝에 시헌력을 만든 아담 샬과 다른 관원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황태후의 배려와 때마침 일어난 지진덕분에 아담 샬은 살아났지만 흠천감에서 쫓겨나고 시헌력 반대론자인 양광선이 흠천감 대표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들은 시헌력을 폐지하고 대통력으로 바꾼다고 선포하게 됩니다.

대통력과 시헌력의 싸움이 발단이 된 것은 ‘무중치윤법’의 대원칙과 태양의 실제운행에 맞는 절기배치법이라는 동서양 과학적 전통의 대충돌이었습니다. 과연 이 싸움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3.

보통 새로운 왕조의 성립과 함께 새로운 역법을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에는 모두 48가지의 역법이 알려져 있습니다. 최초의 역법은 기원전 104년에 만들어진 태초력이고 최후의 역법은 1645년 서양인 선교사인 아담샬(중국명 탁약망)이 만든 시헌력입니다. 시헌력은 서양과학에 기반을 둔 것이므로 나머지 동양 역법만 보면 창조적 가치가 있는 것은 10여 종이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역법은 3가지인데, 그것은 기원전 104년에 만들어진 태초력과 당나라 때인 729년에 만들어진 대연력, 그리고 수시력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모든 역법들의 평균 사용시간은 대략 30년 정도인데요, 그 중 오로지 <수시력>만이 1281년부터 1644년까지 364년 동안이나 사용됩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 역법이 얼마나 우수하고 가치가 높은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시력>만이 실제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역법입니다.

수시력 이전에 역법은 경험과 기록된 사실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행성운동이나 천체운동은 일정한 주기로 움직이므로 이것을 꾸준히 관측해서 그 변화를 일종의 데이터로 남겨둡니다. 그것을 가지고 뛰어난 천문학자가 세차운동이라거나 메톤주기와 같은 천문학적 상수들을 찾아내어 달력제작에 사용하였습니다.

중국 송나라는 통일 이후 어떤 때보다 천문학에 투자를 많이 하였는데 1010년부터 1106년 사이에 5차에 걸쳐 대규모 항성 위치 관측을 합니다. 이것은 중국 천문역산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할 만큼 광범위하고 정밀한 것이었죠. 특히 요순보라는 천문학자는 가장 정확도가 높은 관측값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천체들의 위치가 변하는 이유가 하늘이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관측의 중요성을 일깨우기도 합니다. 이 데이터가 수시력 탄생에 기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는 세계의 정복자답게 가장 완벽한 역법을 원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참여하게 되는데, 주도적인 역할은 곽수경과 왕순이 맡았습니다. 곽수경은 10여가지 천문기구를 만들어 사천대를 건축하고 관측하는 일을 했으며 수학적 계산은 왕순이 담당하였는데 도중에 왕순이 사망함에 따라 곽수경의 책임아래 일이 진행되었고, <수시력>의 완성자로서 명예로운 이름을 얻게 됩니다.

수시력은 방대하고 정밀한 관측 데이터와 함께 고차방벙식인 초차법과 구면삼각법인 호시할원술이라는 수학적 계산법을 도입함으로써 평면운동이 아니라 곡선운동을 이해할 수 있는 수학적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수시력을 받아들인 조선에서도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들어 연구했지만, 이 수학적 계산법만은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정도로 동양수학과 천문학의 정점이 곽수경의 손에 의해 완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곽수경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더 이상 뛰어난 천문학자가 등장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더 이상 발전된 역법도 나오지 않았는데요, 오죽하면 이런 논평이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천명을 받으면 제도를 고친다는 이념으로 새 역법을 편찬하려고 해도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너무도 뛰어났기 때문에 이를 능가할 수 있는 천문학과 수학은 동양전통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수시력의 대체자는 시헌력이었습니다.

4.

명나라가 건국되면서 새로운 왕조는 새로운 역법과 함께 한다는 전통에 따라 <대통력>을 만들었습니다만, 그것은 수시력의 기본구조는 거의 건드리지 않고, 약간의 계산상의 편의를 위해 무시할만한 수치인 <세실소장법>을 폐지한 것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세실소장법>은 우리에겐 아주 최근에 경험하게 한 <윤초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세차운동 때문에 지구 자전속도가 100년에 8초 정도 느려지는데, 이것을 보정하기 위해 지난 7월 1일에 1초의 윤초를 두었던 것이 바로 이 <세실소장법>입니다. 대통력은 이것을 없앴지만, 명나라의 사대관계였던 조선은 오히려 이 <세실소장법>을 부활시킨 <칠정산>을 사용함으로써 일종의 명분보다는 과학을 선택하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시력은 동양의 전통 천문학과 수학의 기반위에서 만들어져서 그것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수준에 오른 것에 불과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기하학적인 수치모델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비교라면 우리가 맨 처음 함수를 배울 때 X->Y로의 대응을 나타내는 두 개의 정의역과 치역의 다이어그램을 배우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동양의 수학입니다. 반면 서양의 수학은 x축과 y축 위에 이 함수를 그래프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규칙성을 찾아낼 수 있기는 합니다만, 전자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생깁니다. 변수가 생겼을 때 수정할 근거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이 약점은 그대로 수시력에 반영됩니다.

또 파이 값을 3으로 둠으로써 작은 오차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마어마해지게 되고, 특히 일식과 월식의 예측에선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명나라도 조선도 일월식의 계산은 서양 기하학에 기반을 둔 아라비아 역법인 <회회력>을 사용한 것도 이때문이고, 대통력이 폐기되고 <시헌력>이 공표되게 된 것도 아담 샬이 일식을 정확하게 예측하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5.

명나라 말기에 북경에 들어온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자명종을 황제에게 바치면서 신임을 얻었습니다. 그는 황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뜻을 펼칠 방식으로 서양과학을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요구하는 서양과학은 역법계산을 정확하게 해줄 천문학자였고, 다른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마테오리치는 유클리드 기하학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과 같은 중세천문학과 수학의 기초교과서 정도만 공부한 초급과학도였기 때문에 이 요구에 부응할 수 없었죠. 그래서 교황청에 천문학에 조예가 깊은 선교사를 요청합니다.

마테오 리치가 세상을 떠난 후 북경에 들어온 예수교 선교사인 아담 샬은 수준 높은 천문학자였습니다. 그는 1629년 여름의 일식을 유일하게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단번에 황제의 신임을 얻고 새로운 역법을 만들 임무를 부여받는데요, 그것이 <숭정역서>로 명나라 황제 숭정제에게 바친 역서였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한 역법은 만들어지지 못한 채 명나라가 망해버렸지만 뒤를 이은 청나라에서는 아담 샬의 능력을 높게 사서 <숭정역서>를 바탕으로 다시 역서를 쓰게 했는데 그것이 <서양신법역서>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나온 역법이 시헌력입니다.

시헌력의 과학적 바탕이 되는 <서양신법역서>의 수학이론은 유클리드 체제를 거의 벗어나지 못했지만 천문학은 덴마크의 천문학자인 티코 브라헤와 그의 추종자인 롱고몬타누스의 이론들입니다. 이들이 살았던 시기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였으니 <서양신법역서>는 말 그대로 최신 서양과학인 셈이었죠.

그러나 시헌력은 서양과학에 바탕을 둔만큼 동양의 태양태음력에 대응할만한 완벽한 체계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절기법의 문제가 그것이었습니다. <무중치윤법>이라는 대전제가 도전받게 되면서 중국의 전통 역법가들은 시헌력을 공격할 수 있는 여론과 무기를 손에 쥐게 된 것입니다. 양광선은 바로 그런 여론을 등에 업고 시헌력의 허점을 파고든 것입니다.

아담 샬은 양광선의 고발로 감옥에 갇혔다 옥사하였지만, 강희제는 대단히 명민한 황제로, 양광선이 가진 약점을 제대로 파악했습니다. 사실 시헌력과 대통력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였는데, 그만큼 수시력 체계가 가진 위력이 어마어마한 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강희제는 몇가지 천문학적 실험을 거치게 한 뒤 시헌력의 손을 들어주었고, 양광선은 파직되었습니다. 그 후 양광선은 사형은 겨우 면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다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로서 중국에선 시헌력이 다시 대통력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6.

하지만 중국인들의 자존심으로는 서양과학의 위대성을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매문정입니다. 매문정은 서양수학의 장점인 기하학은 동양의 구고술(피타고라스정리)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며, 진시황의 분서갱유때 이 비밀을 간직한 역법계산원들이 서역으로 도망친 것을 서양에서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른바 <서양과학의 중국원류설>을 주장합니다. 동양수학의 시작점인 <구장산술>과 천문학의 시작점인 <주비산경>에 이미 모든 내용이 들어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들어온 서양천문학과 수학의 내용을 완벽하게 독파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론, 이후 케플러의 타원궤도를 도입하기 위해 서양인 선교사의 손을 빌기는 하지만 이작업이 끝나자 서양인 선교사들을 거의 추방하고 자신들의 손으로 역법을 만들어나갑니다. 그리고 세상의 위대한 것은 모두 중국에서 비롯되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고증학에 빠집니다. 자신들이 고대부터 이뤄놓은 문헌들을 뒤지면 모든 진리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러한 착각은 백년간 이어지다 결국 아편전쟁으로 끝이 났고, 시헌력도 서양 달력인 그레고리역에 의해 대치되게 됩니다. 역사에 만약이란 것이 없지만, 그대로 서양과학의 흐름을 따라갔다면 동서양의 과학이 그토록 처참한 차이로 결말이 났을까요? 이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말해서,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수학을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약삭빠른 자들의 학문’이라고 경시하면서 심지어 수학교과서도 조선에서 역수입할 정도로 폄하가 심한 풍토가 있었습니다. 천문학은 왕실천문학으로 오로지 역법계산외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개인의 호기심,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줄 후원자인 상인이나 권력가가 없었습니다.

이슬람의 천문학은 그들 종교의 특별한 기도법 때문에 칼리프들의 대대적인 후원으로 발전하다가 800년전에 정체와 도태를 경험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슬람 천문학은 세계최고였습니다. 곽수경이 이룬 경지도 이슬람 천문학에 빚을 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교적 폐쇄성이 두드러지면서 후원자를 잃은 천문학자들은 일거리를 잃었습니다.

서양의 천문학의 발전은 오로지 영토분쟁과 대항해시대의 덕분이었습니다. 항해술에 필요한 경도와 위도의 파악은 당시로서는 별자리를 이용한 것이 거의 유일했기 때문입니다. 영토분쟁으로 인해 경계선을 긋기 위해서도 위도와 경도를 확정할 별자리가 필요했습니다. 어마어마한 후원에 힙 입어 티코브라헤가 정밀한 관측데이터를 얻고, 운 좋게 그 조수역할을 했던 케플러가 그 데이터를 고스란히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 개인 후원자들에 의해 얻은 성과와 그에 만족하지 않는 호기심 넘치는 천문학자들의 활약으로 서양천문학이 동양을 능가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인 동양은 필연적으로 서양과학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던 것이지요. 반대로 그 국가적 지원이 곽수경을 낳은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문제에는 양측면이 있는 법이니까요. 곽수경이 이룩한 뛰어난 경지가 오히려 동양천문학의 발전을 가로막았다고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당시까지만 해도 동양의 천문학은 세계최고였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왕실천문학자들은 곽수경을 팔아 직업적 안정을 구가하면 되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방법이 동양천문학에선 더 이상 없었습니다.

시헌력이 도입되었을 때 서양과학이 동양과학이 추월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만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달력만 정확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헌력은 정확한 태양태음력을 제공했고, 지동설이나 우주론이나 타원궤도나 만유인력과 같은 운동의 문제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달력만드는 방법 자체가 당시 도입된 서양천문학과 수학정도를 마스터 하면 될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죠. 매문정과 중국의 천문학자들은 그 이상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도대체 달력에 만유인력이 왜 필요할까요? 우리가 수학시간에 미적분을 배워서 뭣에 쓰게?하는 질문을 그들도 했겠지요.

하지만....과연, 미분적분이 반드시 무슨 용도가 있어서만 배우는 것일까요?



덧)))
1.절기법관련한 이후의 문제, 조선의 수학과 천문학사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너무 디테일한 문제라 원하실지도 모르지만.흐흐흐

2.너무 오래간만에 글을 쓰다보니....저의 열렬한 독자셨던 orbef님이 탈퇴하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떠나고 들어오고....참으로 쓸쓸했던 제 고향의 부둣가 같으면서도, 바로 그 곁에 많은 것들이 넘치던 오일시장같은 곳이 pgr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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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이리
15/07/06 18:19
수정 아이콘
선추천후감상..
Orbef님 근데 다시 가입하셨습니다.
happyend
15/07/06 21:29
수정 아이콘
아.그렇군요.흐흐
swordfish-72만세
15/07/06 18:45
수정 아이콘
정말 잘 읽었습니다. 어설프게 아는 저보다 백배 나으시네요.
happyend
15/07/06 21:30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은 자신이 정말 재밌어 하는 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swordfish-72만세님의 글에는 그런 느낌이 강했습니다. 저도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15/07/06 19:28
수정 아이콘
해피앤드님의 정말 오랜만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감개무량합니다. 오덕처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happyend
15/07/06 21:3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신의와배신
15/07/06 20:14
수정 아이콘
위대한 동양의 천문학이란 존재한적이 없다는 제 기존의 주제를 고수하려고 합니다.

1. 곽수경이 주체가 된 수시력은 기존의 동양 달력 제작법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수시력은 고래의 윤달의 법칙에 따라 윤달을 삽입했을뿐 그 바탕은 회회력 다시 말해 프톨레마이오스의 태양력입니다. 서양의 천문학을 최고 수준으로 이해한 곽수경이란 학자가 있었을 뿐입니다

2. 윤달을 넣는 무중치윤법이 나타나는 처음의 노나라 역법에 대한 언급에서 제3자가 옳고 그름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달력 제작에 있어 도그마가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즉 동양의 달력 제작법은 처음부터 옳고그름의 문제였음을 다시말해 정치학의 한 분파였음을 보여줍니다.

3. 왜 곽수경의 계승자는 없었는지
수시력은 시헌력과 비교해서 우열을 가릴 수 없었습니다. 이는 주전원을 도입한 천동설과 타원을 사용한 지동설과 관련된 과학논쟁에서 둘간의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과 완전히 동일한 문제입니다.

둘의 차이는 주전원의 삽입을 천문학자가 자의적으로 할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심지어 계산의 편의를 위해 주전원의 주전원도 넣을 수 있습니다.

주석없는 컴퓨터 코드는 타인이 읽는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동양의 윤달룰에 맞춰서 톨레미의 천문학을 요리조리 바꾼 뒤 달력만 남겨놓았다면 후대의 누가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적어도 달력의 문제에 있어서 동양은 어떤 방식의 역법을 만들어내는게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음력은 본질적으로 양력을 이길 수가 없는데 그건 우리 지구가 달이 아닌 태양을 돌기 때문입니다.

시헌력이 아니라 수시력때 이미 동양에서는 내부적으로 음력을 버린 것입니다
소독용 에탄올
15/07/06 20:46
수정 아이콘
애초에 동양-서양의 경계 자체가 명확하지 않았고, 특히 그 '경계부분'에 있어선 더욱 그러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태양력이 이슬람동네(유럽 아재들한테는 동양..)에서 발달하고 해당 정보가 '곽수경'에게 전달되어 '역법'을 만들었다면,
구태여 해당 부분에 동서양의 구분을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또한 현대사회에서도 올바름/그름의 문제에서 '과학'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못합니다.
현재도 과학자 양반의 '활동'은 '과학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면서 '정치/경제적'이죠.
신의와배신
15/07/06 21:51
수정 아이콘
동서양의 구분이 문제있다고 지적하시는데 톨레미의 천문학과 케플러의 천문학이 근본인지 그 이외의 시스템이 근본인지로 구분해서 말씀드리는겁니다. 수시력은 톨레미 시헌력은 케플러가 근원이라는 점에서 '서양'의 천문학이라고 하는겁니다. 무슨 단어를 택하든지간에 중국이나 인도 몽골 고려 일본에서 유래한 풀이 방법으로 만든 역법은 12세기에 이미 포기되었다는 뜻입니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는데 본문과 댓글의 흐름에서 옳다그르다는 단 하나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무중치윤법에 합당한가 아닌가?

톨레미의 주전원 체계는 있어야할 태양의 위치와 현재 존재하는 태양의 위치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지금 태양의 위치는 A라고 해도 있어야할 위치는 주전원의 중심인 B이므로 있어야할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할때 무중치윤법에 맞는 윤달삽입이 가능합니다. 반대로 케플러의 타원궤도 모형에서는 태양의 위치는 지금 있는 위치 하나뿐이므로 무중치윤법에 따라 달력을 만들 수 없습니다.

천문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춘추좌씨전의 저자가 한 말이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었으므로 정치학의 영역이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의 과학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투스등 고대의 문외한인 위대한 자의 말과 비교해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나요? 과학의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한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적어도 달력의 문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보고있습니다.
소독용 에탄올
15/07/07 03:53
수정 아이콘
애초에 상호교류가 있던 둘 이상의 집단들중 일부에서 시작된 물건을 '동양/서양'이라는 잘 나눠지지도 않는 형태의 범주화를 써서 분석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역법'이라는 영역은 '과학사'에 제한된 분석이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해당하는 분류'가 더 부적합할 수도 있습니다.

천문학과 역법에 대한 역사적인 변화는 현재 한국인 '지역'과 가까운 동네들을 중심으로 볼 때, 중국/인도/몽골/고려/일본의 개별적인 동시에 부분적으로 상호작용하던 사회 각각에서 외부로부터 전래된 지식에 대응하는 형태에 가깝다고 봅니다.
역법이 '포기'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전래된 지식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죠.
역법은 '과학'적 확동의 '결과물'인 동시에, 사회적인 관계와 의미부여의 체계이기도 합니다.
12세기 언저리에 내용을 구성하는 '방식'은 변화했지만, 구성되는 역법이 '의미체계'그리고 사회와 가지는 관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물경 21세기인 현재도 '음력'이라고 부르는(...) 역법이 사회와 가지는 관계에도 12세기 '이전'에 굴러먹던 양상이 남아있을 정도니까요.

현대과학이 '고대의 문외한'인 양반들하고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지는 않지요.
하지만 현대과학 역시 '현대의 도덕/윤리와 관계를 가집니다.
해당 '지역'의 천문학에 대한 '윤리/도덕'적인 영향에 있어서 나타나는 경로는 '춘추좌씨전'의 저자 양반의 한 말이 '당대의 윤리관'에 영향을 주고, 해당하는 기준을 바탕으로 '바람직하고 부적절함'으로서의 옳고 그름이 결정되는 형태입니다.
물론 현대과학은 상대적으로 더 '윤리/도덕'의 영역에서 '분리된'형태를 가지며, 이는 사회가 보다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되었기 때문입니다.
happyend
15/07/06 21:37
수정 아이콘
'기존의 '란 표현을 쓰셨는데요, 제가 글과 댓글을 제대로 읽을 형편이 못되어서, 모르는 논쟁이 있었나봅니다. 그러니 이문제는 패스
1.수시력이 프톨레마이오스이 태양력이라는 주장은 오늘 여기서 처음 봅니다. 그 근거가 되는 논문이나, 혹은 작성하신 논문이 있으시면 소개해주신다면, 좋은 공부가 되겠습니다. 수시력은 제가 아는 한은 (이은경,문중양,전용훈,정성희,박성래,북학사회과학원의 논문을 토대로하여) 동양전통의 역법입니다.
곽수경 독자의 작업도 아니었고, 본문에도 있듯이 전통적인 천문학적 성과와 송나라때의 관측치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2.동양의 달력 제작은 정치학의 한 분파라고 한다면...이세상 어떤 과학도 정치학의 한분파가 아니었던 적이 있나요. 지금 현재까지도.
3.시헌력과 수시력이 논쟁이 붙었을 때의 시헌력의 체계는 지동설의 타원궤도가 아니라 티코브라헤 체계였습니다. 따라서, 논점 자체가 이해가 안됩니다. 다시 한번 제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시헌력도 태음태양력입니다. 음력은...심지어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게 동양아닌가요? 제 생일도 음력입니다만....
신의와배신
15/07/06 22:05
수정 아이콘
지구는 달을 돌지 않습니다. 태양을 돕니다.
따라서 절기를 맞추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태양력을 쓰는겁니다.

그런데 음력을 써야만 한다면 그 달력은 늘 보수하고 또 보수해야만 합니다. 평균 수명 30년짜리의 달력을 만들어야합니다.

해결책은 내부적으로 태양력을 만들고 그걸 음력으로 컨버젼하는겁니다. 실제는 태양력인데 음력인척 하는겁니다. 말씀하신 태음태양력은 겉보기는 음력이지만 실제는 태양력입니다. 저는 그게 수시력때부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회회력을 참고했다는데 음력이 태양력을 참고하는 방법은 단 하나 베끼는겁니다.

티코 브라헤는 관측만 한걸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수성 금성과 다른 행성은 태양을 돌고 태양과 그 외의 모든 별은 지구를 돈다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핵심은 주전원이 없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후에 케플러 이론으로 교체된 이유는 오차가 쌓이기 때문인거죠
happyend
15/07/06 22:43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의도가 정확하지 않아서, 정리해보면.
1. 수시력부터 태양력을 썼다. 그전에는 음력을 주로 하여 양력을 보충하였다.
:이말의 의미가 무엇인지...전혀 모르겠습니다. 수시력도 시헌력도 태음태양력이라고 하지, 태양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레고리오력이나 율리우스력처럼 서양달력만 태양력이라고 합니다.
만일에 수시력이 태양의 움직임을 근본으로 달력을 만들고, 음력은 지금의 달력처럼 작은 글씨로 사용했다는 의미로 태양력이라고 한것인가요? 아니면 절기를 태양의 주기에 맞춰서 사용한 것이 수시력이라고 주장하시는건가요? 수시력도 평기법입니다. 정기법은 이미 동양에서 오래전에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전통에 반할수 없어서 무중치윤법을 썼습니다. 그런 의미라면 인덕력도 태양력이라고 할 수 있는거 아닌가요?

2.회회력을 참고하여 일월식을 계산한 것은 베끼는 것이다라고 하면..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시력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칠정산외편입니다. 수시력은 회회력과 무관합니다.

3. 티코브라헤 얘기는 왜 하신것인지 아예 논점을 모르겠습니다.
신의와배신
15/07/07 00:06
수정 아이콘
1.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 동안 지구도 1/12만큼 태양을 돌기 때문에 달은 1/12만큼 더 돌아야만 동일한 모양을 갖게됩니다.
항성월과 삭망월이라고 하는데, 항성월이 27.3일인 반면 삭망월은 29.5일 정도 됩니다.
그런데 삭망월은 지구의 속도에 따라 좌우됩니다.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때로는 빨리 때로는 늦게 돌기 때문에 단순히 주기함수로 다루게 되면 오차가 쌓입니다. 주기함수를 이용해서 달력을 만들게 되면 결국 달력은 오차를 보이게됩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셨듯이 평균적인 달력의 수명이 30년인 이유는 그 달력을 보지 않아도 분명합니다. 주기값을 이용해서 달력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정도 시간이 지나면 하루이틀이 틀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태양력은 열며칠이 틀려도(그렇게 하려면 천년정도 지나야하지만) 사람들이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태음력은 하루이틀이 틀리면 누구라도 달력이 틀렸음을 알게됩니다. 태음력은 본질적으로 달력을 만들기에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달의 모양을 정확하게 맞추면서 절기까지 맞추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지구와 태양의 움직임을 근본으로 숨은 달력을 만들고 그 달력을 이용해서 달의 모양을 산출해야만 합니다. 원칙적으로 주기값이 아니라 천문학 이론을 통해서 실제의 위치를 계산해서 달력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저는 양쪽에 차이가 있다고 보는겁니다.

2. 수시력에 대한 원사의 언급입니다.
원사<原史> 곽수경전에 의하면 "그 실수(實數)를 측정하여 고정(考定)한 것 7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① 역계산의 기준이 되는 동지의 일시를 아주 정확하게 측정했다. ② 동지 일시를 측정하고 과거의 기록을 참고해서 1년의 길이를 365.2425일로 정한 것이다. ③ 월식을 이용하거나 별과 태양의 상거도수를 측정하여 동지에서의 태양의 위치가 기수(箕宿) 10도, 황도상 기수 9도 남짓에 있음을 구했다. ④ 달의 운행을 추적했고, ⑤ 태양과 달의 궤도를 정확히 측정하여 각각의 경사와 교점[入交]을 정했다. ⑥ 28수의 거도를 정확히 측정했으며, ⑦ 일출입의 시각을 정확하게 구했다. 수시력의 진가는 정확한 측정뿐만 아니라 계산법에서도 새로운 고안이 이루어졌다. 곽수경전에는 그 내용이 자세히 실려 있는데, 태양의 부등 운동을 계산하는 데 보간법(補間法)의 공식인 초차법(招差法)을 창안한 것, 달의 운행에 대한 계산에서 근점월을 336한으로 나누어 초차법을 이용한 것이다. 그밖에 황도·적도·백도의 상호 변환과 황도내외도의 계산에 있어서 구면삼각법에 상응하는 방법을 창안하여 사용된 것 등이다.

5번의 태양과 달의 궤도를 정확하게 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당시로선 유일한 방법이 톨레미의 천문학입니다.
곽수경전에 나온 것처럼 태양이 부등운동을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태양이 지구를 주전원위에서 돈다고 생각한 탓이지요.
또 곽수경전에서 달의 위치를 보간법으로 구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주기값을 이용하지 않고 계산된 위치를 기준으로 삭망월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달력과 달리 수백년이 지나도 정확한 값을 산출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상의 이유로 수시력은 톨레미의 천문학을 이용해서 만들어낸게 분명합니다.

3. 티코브라헤의 얘기는 시헌력을 만들 때 티코브라헤와 그의 계승자의 이론을 통해 만들어냈다는 부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티코브라헤의 이론이 기존의 천문학 이론과 차이가 나는 부분은 주전원을 사용하지 않은 원궤도 모형이라는 점입니다. 천동설이라는 점은 기존의 이론과 같지만 주전원이 들어가지 않았으나 오차가 거의 없는 모델이었습니다. 태양궤도 계산에 28초(각도 1도의 1/3600을 말합니다)가 틀리다는 이유로 케플러가 타원궤도를 도입하게 된 일화가 있습니다.
주전원이 들어가면 달력제작자가 무중치윤법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태양의 위치를 쓰거나 태양의 주전원의 중심의 위치를 쓰거나 둘중 한값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전원이 없게되면 태양의 위치는 단 하나밖에 상정할 수 없어서 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게됩니다. 지동설이냐 천동설이냐보다 실제로는 주전원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되었을겁니다.
천문학의 오차가 쌓이기 전에 케플러의 이론으로 대체가 되었지요.
happyend
15/07/07 07:22
수정 아이콘
아이고.
쪽지로도 이글로도
일관되게 곽수경이 톨레미의 주전원을 이용했기때문에 수시력이 정확하다.는 주장이신데요

태양의 부등속운동은 이미 오래전에 알았 습니다.곽수경이 안게 아니고요
곽수경의 위대함은
정확한 관측.관측값의 수학적처리
에 있고
톨레미.즉 유클리드 기하학을 알았다면 좋앟겠지만 불행히도 기하문제를 전부 대수적으로 풀기위해 초차법과 호시할원법을 썼고
그한계로 일월식 계산은 틀리는 경우가 많아서 회회력을 조선도 명나라도 썼습니다.
이쯤 하시고
주전원이나 서양천문학사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글을 쓰시는게 좋을듯하고요
더 논의하시고프면
이은희가 쓴 칠정산내편연구를 구해서 보시고ㅡ
수학적 검증 부분이 실린 수시력이거든요.
그책을 이용하혀 반박하시면 될듯 합니다.
저자와 직접 토론하시고 싶다면 제가 안내해드릴수도 있습니다.
happyend
15/07/07 11:29
수정 아이콘
한가지만 더 부연하자면

동양의수학과 천문학의 성과인 수시력이 톨레미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논증은 수시력을 수학적으로 논증할때 의미가 있습니다.
만일 그것을 논증해내시거나 수시력시 톨레미체계를 대수적으로 풀어냈다는것을 증명해내시면 사건입니다.과학사를 뒤엎을.도전해소시기바랍니다

수시력에 사용된 수학은 기하학없이 이뤄낸 쾌거입니다.동양은 기하학이 없엏기에 대수학에선 17세기까지도 서양에 뒤지지않을 성과를 원나라때 이뤄놓습니다.
태양.달.행성궤도를 오로지 방정식으로 구해낸것이니까요.곡선운동을 이해하기위해 삼차방정식까지의 해를 구하는 제곱근법인 개방술이나 그이상의 십차방정식을 풀기위한 조립제법인 증승개방법까지도 원나라때 이미 정리해놓았어요.
오로지 폄하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시라면 증명을 부탁드립니다.수학적으로요.
신의와배신
15/07/07 13:18
수정 아이콘
일년의 길이는 순수 태음력과 순수 태양력 간에 약 11일의 차이가 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19년을 주기로 7번의 윤달을 넣게되면 양자가 일치함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고 이를 메틴의 원리라고 합니다.

태음력을 쓰는 나라들은 이 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윤달을 넣는 시기는 지방군주의 마음대로 정했습니다. 춘추좌씨전에서 옳고 그름을 논한 것도 이 부분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에미르가 맘대로 윤달을 넣게되자 사도 마호멧이 윤달을 아예 폐지합니다. 천문학이 발달하게된 계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알마게스트를 공부하고 이에 통달한 사람들이 이슬람 문화권에서 갑자기 등장하게 되는 계기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슬람은 아직도 순수 태음력을 씁니다.

원나라에서 달력이 만들어질 때 쿠빌라이는 이슬람인 천문학자를 데려와 곽수경 등을 지도하게 합니다. 자말 웃딘 또는 자말루딘 이란 이름을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곽수경을 지도한 이슬람과학자입니다. 이희수 교수님의 책에서 원사를 인용할 때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기하학 없이 방정식만으로 라는 부분에서 그냥 웃고 갑니다. 고등학교 수학에서 기하학과 방정식은 동전의 양면이라는걸 계속 배우는데 잊으신것 같네요.
happyend
15/07/07 15:13
수정 아이콘
하하하. 같이 웃죠. 동전의 양면이란걸 우리는 압니다만, 마테오리치가 자신이 배운 고등학교수학정도의 내용을 구술한 것을 서광계가 받아적은 <기하원본>을 펴낼 때까지, 동양에선 몰랐거든요.이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이므로.더이상 얘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를 위해서라면 기본적인 개념들은 길게 안쓰셔도 됩니다. 저도 나름 서울 모대학 천문학과 동문입니다. 기본개념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논의를 좁혀서요
1.이슬람천문학자들이 원나라 수시력 개력에 도움을 주었다.
2.따라서 수시력은 톨레미의 주전원을 이용하였다.
3.그러므로 수시력이 정확했다.
이게 주장하는 바이신듯한대요, 여기서 1번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슬람 천문학의 발달과정에 대해선 저도 익히 아는바이니 부연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곽수경이 만든 천체관측기기는 이슬람에서 발달한 거대한 천문관측기기들의 영향입니다.
만일에 이슬람의 기하학이 수시력계산에 이용되었는지에 대해서 논의하자면, 영향이 없을 수 없습니다. 호시할원술자체가 그런 영향의 한 단면이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도인이 중국역법을 만든 것을 가지고 그것을 인도역법이라고 하지 않듯이, 이슬람의 천문학이 영향을 끼쳤을 수는 있지만 2,3번으로는 비약이 존재합니다.
2.톨레미의 주전원을 수시력이 사용하였다면, 그것은 증명하시면 됩니다. <수시력에 표현된 톨레미의 주전원>이라는 주제로 논문이나 저서를 내시면 됩니다.그럼 저도 매우 유용하고 주의깊게 보겠습니다. 일본의 한 물리학과 출신이 사설학원강사가 개인적인 작업으로 자기력이 케플러의 타원궤도 탄생에 미치 영향을 증명해낸 책을 저는 매우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과학사란 그런 작업들로 풍부해지니까요.
톨레미의 주전원을 이용해(신의와배신님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서)만든 역법이 회회력입니다. 회회력이 수시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증명하시면 쉽겠네요. 둘은 달라도 너무 달라서, 따로 활용되었습니다. 명나라도 우리나라도.
따라서 3번의 결론은 옳지 않거나 증명되지 못한 가설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희수 교수는 천문학과나 수학과 관련된 증명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패스하겠습니다)
신의와배신
15/07/07 15:36
수정 아이콘
기하학과의 관계는 알마게스트와 알지브라를 같이 공부한 이슬람 천문학자에게는 당연한 사실이었죠. 보간법이 어디에 쓰일까요?

칠정산이 내외편으로 나뉘어 외편에서 회회력을 공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편은 대통력(수시력의 명나라 수정판)을 공부했는데 왜 회회력을 따로 공부할까요? 일월식 계산때문일까요? 수시력의 이해를 위해서일까요?

왜 회회력이 일월식 계산에 유리할까요? 컨버젼 되기 이전의 수식이 아니면 계산이 너무 복잡하니까요. 달라도 너무 다른게 아니라 역함수를 구하는게 너무 어려우니까요
신의와배신
15/07/07 15:51
수정 아이콘
제가 연구주제를 드릴께요
수시력 바탕에 깔린 천체모형이 무엇인가? 과학사는 그런 연구를 통해 발전하는거니까요
루크레티아
15/07/06 21:34
수정 아이콘
저도 열렬한 독자인뎁쇼 헤헤헤..

개인적으로 천문학과 역법에는 수박 겉핥기의 문외한이지만, 결국 그러한 천문학과 역법은 그것이 개발된 당시의 성향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외적으로 팽창하고 발전을 원하던 왕조, 정부 시기에는 그러한 팽창을 뒷받침 하기 위해서 기존의 역법보다 획기적인 역법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송나라가 호구 중의 상호구 왕조이지만 그래도 연운 16주 정복을 위해서 벼라별 수를 다 쓰던 나라였고, 원나라는 아시아 정복의 야망을 불태우던 쿠빌라이의 나라였으니까요. 반면에 명나라와 청나라는 딱히 영토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중화 세계의 구축과 내치의 안정에 힘을 쓴 나라라고 볼 수 있고요.

만약 영락제나 강희제가 야망에 불타는 정복군주였다면 세계의 역사가 통째로 바뀌었고, 역법 역시 새로 써야 했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서양이 대항해시대를 맞이하지 않고 그저 내부의 종교전쟁에 불타올랐다면 역법이 더욱 발전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고요. 전제군주정과 개인후원자의 차이는 그닥 없을 것 같네요.
happyend
15/07/06 21:39
수정 아이콘
반갑습니다.
말씀대로...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좀 나와야...동양천문학사도, 연구할 수 있게 되겠죠.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사회문화적 의미 같은 걸 읽을 수 있는...
루크레티아
15/07/06 22:05
수정 아이콘
과학이라는 학문의 장르가 결국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 최우선이라 서양과학이 99% 이상의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현대엔 동양과학사가 도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죠. 결국 동양의 과학은 역사적 패자가 된 셈이니까요..
더미짱
15/07/07 12:47
수정 아이콘
정말 잘 봤습니다. 최근에 이 쪽에 관심이 생기고 있는데 인문학이면서 과학(수학)적 지식이 필요한 까닭에 섣불리 접근을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역산 연구에 있어서 참고할 만한 서적(조금 쉬운 전공서 혹은 조금 심도 있는 개설서) 있으시면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appyend
15/07/07 15:19
수정 아이콘
역산은 천문학과 수학의 결합이므로 동양 천문학사와 수학사를 보시면 되겠네요.
이 두가지를 가장 개설서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 니덤이 지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입니다. 이 책이 왜 개설서냐면, 우리가 배우고 익힌 개념이 서양의 과학과 수학개념인데, 바로 그 개념을 가지고 동양과학사를 분석하기 때문입니다.
천문학은 크게 우주론 우주구조론 천체운동론으로 나눌수 있는데, 앞의 두가지는 흔히 성리학자라고 하는 자연철학자들에 의해 전개되기 때문에 다소 복잡하고 지루합니다만 정성희,박창범의 책을 비롯하여 관련 논문을 찾아보시면 될 듯하고요, 천체운동론은 동양에선 달력으로 집약되므로 전용훈,문중양,이은희의 ,박성래, 전상운의 논문이나 저서를 보시면 될 듯 합니다.
북한에서 만든 <조선기술발전사>는 조금 난해하고,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지만 자료로서는 매우 가치가 높으므로 구하실 수 있으면 구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도서관에서 열람,복사에도 약간의 제약이 있긴 합니다만
더미짱
15/07/07 16:4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이후 공부에 많은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GreatObang
15/07/07 17:50
수정 아이콘
여기 열렬한 독자 한 명 추가요~크크

정말 오랜만에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자주 뵈었으면 좋겠어요~
happyend
15/07/07 22:01
수정 아이콘
반갑습니다.
잠깐 짬이 나서 가벼운 이야기 몇개 써볼까,생각중입니다.^^
연필깎이
15/07/08 00:28
수정 아이콘
관련된 정보가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던 상태였는데,
이렇게 정리된 글을 보니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기분이네요.
대단한 퀄리티의 글에 감탄하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덧1도 기대해봅니다!
happyend
15/07/08 13:1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어줍잖은 글이지만 몇가지 올려볼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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