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천만의 대 도시 서울. 1㎢에 1만 7천명이 사는 기형적인 도시답게 출근길은 지옥 같았다. 지하철 역 개찰구에서는 사람이 지나갈 때 나는 삑 하는 신호음 여러 개가 불규칙하게 뒤섞여 기묘한 음악을 연주했고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들의 표정은 날카로운 신경에 금이 간 유리처럼 차갑고 메말라 있었다.
최근 며칠간 계속 된 야근으로 내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서 있는 것 조차 힘들었다. 무더운 여름날의 열기와 끈적한 습기가 몸에 달라붙어 더욱 피로했다. 잠시만 눈을 감아도 곧바로 달콤한 수면의 솜털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힘겹게 걸음을 옮겨 지하철 역을 나와 회사로 이동했다. 오늘은 그 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를 윗선에 보고하는 중요한 날이었기에 회사에 도착하자 마자 곧바로 보고 준비를 위해 그 동안 작업한 문서들을 확인했다. 하지만 머리 속에는 계속해서 아침 출근길에 목격한 ‘이상한 일’이 자꾸만 맴돌아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그 이상한 사람들은 뭐였을까? 끊임없는 의문과 추리가 떠올랐지만 애써 덮어버리고 보고 준비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다행이 보고는 성공적이었고 프로젝트를 다음 단계로 진행하라는 승인을 받아냈다. 달콤한 성취감이 따스한 목욕 물처럼 전신을 감싸왔다. 이후의 회사 업무는 프로젝트의 다음 일정을 짜느라 정신 없이 바빴지만 서두른 끝에 정시 퇴근이 가능해 보였다. 잠시 한숨 돌릴 겸 스마트 폰을 서랍에서 꺼냈다. 최대한 방해 받지 않고 업무를 해야 할 때 내리는 내 나름의 특별조치였다. 스마트 폰 화면을 키자 엄청난 수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부재중 통화도 5통이나 와 있었는데 모두 친구들이었다.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채팅방에 들어가자 어처구니 없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정신병원 환자가 집단으로 탈출해서 서울 한복판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 취업준비에 미친 한 남자가 독서실에서 무차별 폭행한 동영상이 돌고 있는데 봤냐는 둥, 식당 종업원의 팔을 물어뜯으며 갑질 횡포를 벌이는 여자에 대한 인터넷 기사 주소까지. 막장 사고야 평소에도 쉽게 들어왔지만 오늘은 유독 관련 내용이 많았다. 점점 최근에 온 메시지를 읽어 나갈수록 단순한 막장 사건 공유에서 점차 서로에 대한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바뀌어 나갔다.
‘지금 판교 B스퀘어 건물 1층 카페에서 미친 남자가 묻지마 폭행 중이래 절대 그쪽으로 가지마’
‘강남역에 왠 정신병자 나타나서 사람 물어뜯고 난리도 아니라고 함. 혹시 근처 갈일 있어도 피해갈 것.’
‘야. 판교에 뭔 일 났다는데 넌 별일 없냐? 메시지 보면 연락 좀 줘’
메시지를 모두 읽고 나자 어디부터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고 심신은 너무 지쳐있었다. 적당히 바빴다는 핑계를 대기로 마음먹고 시계를 바라보니 오후 3시가 지나있었다. 긴장했던 몸이 서서히 풀리면서 묵직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간절하게 커피 생각이 났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회사 동료에게 가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딱딱 소리를 내 커피타임 암호를 보내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함께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지하 1층에 위치한 사내 카페테리아로 내려갔고 적당한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보고하는 날이었죠? 잘 했다고 그러던데 의장님이 뭐라고 하던가요?”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고 괜찮은 것 같으니 계속 진행해보라고 하시더군요. 한숨 돌렸어요. 대신 앞으로도 야근은 계속 이어지는 거죠.”
“옘병. 그래도 다행이네요. 프로젝트 드랍돼서 지옥 같은 재취업 준비하는 것 보다는 낫지.”
“격하게 동의합니다. 참 오늘 출근하는데 이상한 일 있었던 거 알아요?”
“이상한 일이라. 말도 안 되는 미모의 아가씨가 말이라도 걸어 왔나?”
“혼잣말 하는 척 하면서 상처 줄만한 이야길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시면 제 마음이 아픕니다. 아침에 지하철 타고 출근하는데 왠 미친놈들을 봤어요.”
내가 미친놈들이라는 단어를 얘기했지만 회사 동료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미친놈들? 대부분 ‘놈’ 단위로 등장하는 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들’ 단위로 나타나는 것도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닌데. 어떤 미친 짓을 하던가요?”
“자리 안 비켜 준다고 소리지르거나 엄연한 대중교통 좌석을 모텔 방으로 착각하는 그런 미친 짓 말고 진짜로 심각하게 미친 짓을 하더군요.”
진짜로 미친 짓에 힘을 주어 발음하자 동료는 그제서야 조금 경직된 표정으로 바뀌었다.
“왠 여자가 배가 엄청 고팠는지 입술 양 옆이 찢어져라 햄버거를 입 안에 쑤셔 넣더군요. 그러더니 갑자기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할아버지의 코를 물어 뜯었어요. 단순히 깨물어서 콧대에 구멍을 낸 정도가 아니라 살덩어리를 뜯어내 분리시켜 버리곤 목이 꿀떡 하더니 그대로 위장으로 보냈죠. 먹어 치운 거에요.
그 할아버지는 콧대가 완전 사라져서 뼈가 훤히 보이는데 피가 엄청나게 많이 흘러 내려 사방에 묻었죠. 그 미친 여자가 그 다음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요? 코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눈물을 철철 흘리며 비명 지르는 할아버지의 볼을 물어 뜯었어요.”
동료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오우. 그거 좀 심한데요? 완전 엽기적이네. 보통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게 사람을 물어뜯지는 않는데. 그 노인네가 뭐 이상한 짓 한 거 아닐까요? 아침부터 출근하느라 짜증나는데 꼰대 짓을 했다거나 그런 거?”
“아뇨 어떤 말다툼도 없이 그냥 그렇게 일이 벌어졌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여자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아까 미친놈’들’ 이라고 말한 거 기억나요? 난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빨리 그 자릴 떠야겠다는 생각만 들었고 바로 옆 칸으로 옮기려고 했어요.
그런데 옆 칸으로 이어지는 유리문을 보니 호떡 반죽처럼 살이 뒤룩뒤룩 찐 뚱뚱한 남자가 어떤 여자를 깔아뭉개곤 그 짓거리를 하고 있었어요. 그 풍경이 상상이 가요? 여잔 남자의 살 속에 파묻혀서 몸의 거의 안보였는데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고 주변에 사람들이 1미터정도 물러나 병풍처럼 쫙 둘러서서 그 둘을 바라만 보고 있었어요.
그래도 개중에 왠 군인이 갑자기 안쪽으로 들어가 강간하는 남자의 머리를 사정없이 발로 까더군요.”
“군인이라고 하면.. 전투화를 신고 있었겠네요. 전투화로 맞으면 진짜 죽는데.”
“그렇죠. 무지막지한 검은색 전투화로 머리를 때리는데 보통 그런 식으로 맞으면 고통도 고통이지만 충격 때문에 옆으로 밀려나야 정상인데 그 미친놈은 머리가 뽑힐 듯이 옆이며 위, 아래로 흔들리는 와중에도 계속 여자 위에 올라탄 상태로 허리를 들썩이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여자를 구해주려고 하나 둘씩 나타나더니 나중에는 열댓 명이 달라붙어서 그 돼지새끼를 떼어내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한 것 같았어요. 전 다음 역에서 바로 내렸지만 여자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는 계속 들려왔거든요.”
“아 다음 역에서 바로 내렸어요? 하긴 그런 상황이면 언제 이상하게 말릴 지 모르니 피하는 게 맞긴 하겠네요.”
“그게 그때는 이런 상황에선 일단 피하자 라든지 뭐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냥 너무 무서웠고 어떻게든 그 자릴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그 미친놈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요? 하나같이 엄청나게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는 거에요. 웃겨서 웃는 거랑은 달랐어요. 욕망과 광기로 일그러진 섬뜩한 눈을 가진 웃음이었어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사람이 웃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얼음이 반쯤 녹은 커피를 마셨다. 달아오른 얼굴이 조금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동료에게 말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침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며 흥분한 모양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타고 있던 지하철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 경찰이라거나 안전요원 같은 사람들이 오던가요?”
“경찰요? 에이 왜 그래요. 한국 일 이년 사신 것처럼. 안온 거 뻔히 아시면서. 지하철이 멈춰 선 곳이 강남역이었는데 평소처럼 어마어마한 인파가 지하철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문이 열리기도 전에 엄청나게 밀어대면서 어떻게든 빨리 빠져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문이 열리자 마자 샴페인 병에서 거품 쏟아지듯이 뻥! 하고 쏟아져 나오는데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도 조금 놀란 눈치였어요.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평소의 출근시간 엄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절박함이 보였으니까요.
비극적인 건 그 사람들이 이상한 상황을 의심하는 데서 멈췄다는 거에요. 그냥 평소처럼 습관적으로 지하철 안으로 들어간 거죠. 유난히 텅 빈 지하철 내부를 보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고 깨닫기 시작했고 그땐 이미 늦었죠.”
“안에 그 놈들이 있었군요.”
“맞아요. 제일 먼저 들어간 한 남자는 대학생 같았는데 약간 덕후 같은 타입 있잖아요. 큼직한 헤드셋을 쓰고 무슨 음악인지 다른 사람들도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볼륨을 엄청나게 높여서 듣는 그런 부류.
엄청나게 비트가 울리는 헤비메탈 같은 노래였는데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무슨 고릴라처럼 우! 우후! 빵! 빵! 우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거구의 남자가 휘두른 소화기를 머리에 맞고 몸이 붕 떠서 2미터쯤 날아가 쓰러지더군요. 장담컨대, 그 헤드셋 쓴 남자가 들어온 음악 중에 최고로 강력한 비트였을 거에요.
사람들의 얼굴에 빠른 속도로 공포가 퍼져나갔어요. 지하철을 내린 사람과 타려던 사람 모두 밖으로 나가려고 난리였죠. 전 마침 환승 구간이기도 해서 그대로 신분당선 쪽으로 빠져 나와 그대로 출근하긴 했지만.”
“네? 그대로 평소처럼 지하철 타고 왔다고요?”
“그럼 어떡해요. 거기서 강남역 출구로 올라가봤자 사람 엄청나게 많을 텐데. 절대 택시고 버스고 못 탔을 거에요. 그렇다고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는 거고. 오늘 보고하는 날인데 연차 쓰고 집으로 갈 수도 없고. 돈 벌려면 출근해야죠.”
“하. 맞는 말이긴 한데 이게 맞는 말이라는 현실이 슬프네요. 그런데 나도 비슷한 얘길 친구들한테 들은 것 같은데”
동료가 쓴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 출입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카페테리아 내부에 울려 퍼졌다. 외부인 접근을 막기 위해 사원증이 없으면 들어올 수 없는 구조여서 가끔 사원증을 깜빡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만 다른 사람이 문을 열고 출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저렇게 무턱대고 두드리는 일은 없었기에 매우 빠른 템포로 울리는 쾅쾅쾅쾅 소리가 사람들의 주의를 점점 문 쪽으로 끌어당겼다. 점차 불안한 표정으로 바뀌는 가운데 두 남자가 커피잔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가려는지 출입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