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지인의 갑작스런 추천으로, 난생 처음 소개팅 자리를 가질 기회가 있었습니다.
첫 소개팅이라는 설렘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인의 추천을 믿고 그냥 맘편히 만나는 자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걱정도 조금 됐지만, 그래도 뭐 잘 되겠지...싶으며 한주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당일날, 제 걱정이 무색하게 나름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고,
처음인 소개팅이라는 말도 무색하게 정말 어색할 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연락처도 주고 받으며, 귀가 후 안부 문자도 제대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항상 그래왔듯이, 그 뒤가 문제였습니다.
...
제게는 도무지 문자 전송버튼을 누를 용기가 없습니다.
아직 만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귀가 후 안부문자 정도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 감정세포가 리셋이 되고 나면, 도저히 문자를 보낼 용기가 나지를 않습니다.
물론 무지 친한 친구들 한정으로 가능하기는 하지만,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는 꿈속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소개팅 썰은 잠시 접어두고, 잠깐 옛날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2]
약 6년전의 이야기입니다.
어려서부터 오랜시간의 외국생활 후, 한국에서 반년정도 묵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경우라면, 어린시절을 전부 해외에서 보냈기에 한국에 친구가 없는게 정상이지만,
해외에서 외국인 신분으로써의 생존을 위한 사교성 스탯 올인 + 인터넷 동아리 버프를 통해,
한국에서도 적게나마 친구들을 만들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남초인 동아리 속에서도,
저는 드물게 있는 보석(!)과도 같은 그녀를 발견했고,
호감을 가지고 날마다 연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스마트폰 시대 이전이라 네이트온 메신저 외의 것들이 활성화 되기 이전인데,
꿩대식 닭인 네이트온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저는 단기 (반년동안) 체류인 관계로, 또 그분은 집안 사정상 핸드폰이 없었고,
그래도 우리는 메신저 만으로도 좋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상대방의 로그인 알림음을 맞춰 서로 "하이!" 를 날려주는게 어느새 일상이 되었고,
그분과는 온라인 뿐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만해도 연락 공포증 따위는 없었던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어찌됬건 저는 반년후면 다시 떠나야 할 사람이였고,
결국 썸탈듯 말듯한 상태속에서 저는 대학교 공부를 위해 다시 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우린 반년후에 다시 만나자는 작별 인사를 하고,
이미 익숙하지만, 또 약간은 낯선 온라인 상으로만의 연락을 했습니다.
조금은 힘들지만, 12월에 다시 돌아간다는 약속을 했고, 그 시간만 바라보고 지냈습니다.
11월 초 무렵, 저에게 어떤 생일선물을 주면 좋을까? 라는 고민을 하며 저에게 생색을 냅니다.
12월에 올 생일이 너무나도 기대되면서 한편은 이번에야 기필코 마음을 전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난 11월달 말, 12월 중순의 한국행 티켓을 끊고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분명 상태 표시로는 온라인인데, 답장이 오지를 않습니다.
항상 일상처럼 보내던 "하이!" 한마디 조차도, 답장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녀의 답변을 보지 못한채 3주동안 한국에서 시간을 보냈고,
끝내 떠날때 까지도, 저는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분과 함께 알던 지인들도 그분께 연락을 취해봤지만,
역시나 연락이 되지 않는답니다.
저로써도 지쳐갔습니다. 매일마다 하던 연락이 어느새..
3일마다 한번으로,
1주마다 한번으로,
1달에 한번으로.
결국 그 다음해 중을 끝으로,
저는 그녀에게 더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3]
나중에 어느정도 후에야 그분의 지인한테서 들은 이야기지만,
그분이 수능시험 준비로 집안과 트러블이 있던 도중, 메신저에서 학교 친구를 제외한 모든 사람,
즉 제가 활동한 동아리 사람들을 포함한 사람들을 전부 차단하였고,
그 결과 그분의 폰번도 없는 저는 영문도 모른체 허공에 메시지를 반년동안 날렸던 것입니다.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결정은 아니지만,
차단되도 좋다는 정도의 사람밖에 아니였다는 약간의 실망감 속에서,
결국 그분에게는 다시 연락하지 않았고.
동아리 친구와도 더이상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아마도 그때쯤 인것 같지만,
제가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일은 그 뒤로부턴 없었습니다.
가끔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듣습니다.
너는 지독하게도 연락 안한다고. 근데 연락해주면 무조건 나오니 매번 부르게 된다고.
근데 만나면 말은 또 엄청 한다고. 이런 내가 너무 모순적이라고.
근데 사실 저는 그때의 사건 이후로, 믿기 힘들겠지만 이상한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문자를 보내도 어짜피 답장이 없겠지 싶은 트라우마.
문자나 온라인상으로 아무리 친해져도 결국 실제로 친한건 아닐것 같은 트라우마.
물론 이런 자신을 고치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나 봅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게 기억납니다:
걱정 말라고. 결국 정말로 용기를 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생기면, 그것조차도 극복할 거라고.
[4]
어제 오후 2시경, 소개팅에서 만난 그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무언가 엄청난 고민후에 용기를 내었지만, 결국 용기내어 첫 문자를 보낼수 있었습니다.
뭔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해낸듯한 후련함이 듭니다....만.
결말은 피지알스럽게도, 새벽 2시경인 지금 이시간도 그놈의 1표시는 지워질 생각을 안합니다.
뭐 이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첫걸음 정도인가 봅니다.
쳇. 그게 어디입니까! 다음이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