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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06 23:16
이 논제는 재미있고 주제도 다양하고 결론을 뭘로 내리건 실제 규범이 바뀌거나 법이 바뀌거나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저렇게 산만한 논의가 되는게 사실 더 바람직해보입니다. 과열도 더 막는 경향이 있어서.
14/11/06 23:36
굳이 따지면 여러 커뮤니티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이런 논쟁의 결과들이 모이고 모이면
이른바 '여론의 법정'의 심증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쳐 최종적으로는 곽정은에 대한 모종의 위력으로 작용할 수는 있지 않나 싶은데 피지알 한정으로 놓고 보면 이른바 '논란'이 있을 뿐 잘잘못에 관해선 그저 '설왕설래'만 있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레지엔 님도 같은 현상을 보시고, 그게 '산만한 논의'의 긍정적 효과라고 쓰신 것 같은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산만한 논의가 그 자체로 '여론의 법정의 판결'이라고 봐야 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곽정은의 잘잘못은 모호하다' 내지 '본 법정은 이 사안에 대한 판결을 거부한다' 는 판결이 내려진 셈입니다.
14/11/06 23:40
일단 저는 사이트를 뭉뚱그리는 것이 그 자체로 굉장한 논리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부분은 의도적으로 좀 회피하는 편이고...(피지알하고 일베를 묶으면 양 사이트에서 털리고 자진탈퇴하게 될겁니다 아마-_-;) 무엇보다 '대중'이 '법정'이 되는 것 자체가 올바른 경우가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판단능력에 대해서 신뢰가 약하거든요. 그 점에서 강제력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 자체가 좋은 것이다라는 전제가 있고, 그렇다면 이 논쟁에서 얻어갈 것은 결국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과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는 것 두 가지인데, 그 점에서 논의가 산만해지는 것은 그 자체로 이점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한 커뮤니티에 국한해서 본다면, 어차피 여기에서 결론내려서 조져버리거나 면죄부 줄 것도 아닌데, 마찰의 심화로 인한 회원 간의 인격적인 갈등을 겪을 바에야 자기 할 말들 각자 던지고 판단은 각자의 속에서 끝내는게 더 바람직할 수도 있어보입니다. 물론, 특정 논점에 대해서 깊게 들어가고 싶어하는 회원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막을 이유도 없고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인데 그런 건 아래에서도 잘 진행되고 있어보이고요. 방송처럼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점이겠죠.
14/11/07 00:05
제 댓글 첫 부분에 관해 약간 오해를 하신 듯 한데(가령 '사이트를 뭉뚱그리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시는 부분..)
저 부분 표현을 자세히 읽어보면 여론의 법정이 정당하다든가 하는 얘기가 전혀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냥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묘사이죠. 다만 두번째 부분은 분명히 '여론의 법정이 보기보단 똑똑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갖고 있습니다. 근데 저도 기본적으로 여론의 법정이 멍청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어디까지나 보기보단 그렇다는 거죠. 그 외 대부분의 내용에 관해서는 동의합니다. 가령 '강제력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 자체가 좋은 것'이라거나 '논쟁에서 얻어갈 것은 결국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과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는 것'(솔직히 논쟁의 최상의 이점입니다)이라는 점. '마찰의 심화로 인한 회원 간의 인격적인 갈등을 겪을 바에야' 라는 부분도 동감하는데 사실 이 부분은 토론이나 논쟁이 갖는 한계와 분명히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결국 서로의 주장에 대한 논박은 상대의 인격에 대한 공격과 완전히 분리되기가 어려우니까요. 특히 감수성이 섬세한 사람일수록 그런 부분에 민감할텐데 그런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빈정상하는 일(=토론)을 즐기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14/11/06 23:28
본문은 마치 곽정은 글 370개의 댓글을 다 읽은 척 허세를 부리고 있으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인용 대상 댓글은 초반 댓글에 집중되고 있어 글쓴이의 부족한 독해력 내지는 집중력이 탄로나고 있습니다.
14/11/06 23:29
'저격글이네요, 불편합니다'
라는 댓글을 쓰면 그 댓글에 글의 주제와 전혀 관계 없는 댓글에 대한 댓글이 달려 댓글 수에 상당수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토론의 중재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14/11/06 23:48
'좋은 댓글 잘 보았으나 맞춤법이 틀렸네요.'
도 비슷한 경우일 것입니다. 전형적으로 토론을 표류시키는 암초들이죠.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저격글을 엄금하는 공지사항을 폐기한다거나 아니면 '본 공지사항이 금하는 저격글이란 저격만을 목적으로 한 글을 가리킨다'고 좁혀 규정하지 않는 한 저격글도 이런 저런 동기에서 쓰여진다는 점 때문에 그런 개별적인, 그 자체로는 저격과는 무관한 토론글들을 통해서만 저격글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가 탐구될 수 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 한도 내에선, 탕수육 얘기하는 글에서 뜬금없이 저격 운운하는 것이 반드시 논점 흐리기만은 아니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14/11/07 00:20
온라인에서 대규모 논쟁은 예를 들어 '오늘은 낙태에 대한 찬반 논의를 해봅시다.'처럼 발제를 하여, 각 패널들은 순차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진행자는 적절하게 '당신이 낙태를 해봤어, 내가 낙태를 해봐서 아는데...'와 같은 임신 공격(?) 혹은 논점 이탈(?)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면서, 나온 의견들을 취합해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글쓴이가 흥미를 유발시키는 적절한 소재를 텍스트로 작성하면 여러 사람들이 그 중에서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관심있는 대목만 발췌하여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브레인 스토밍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의견에 태클을 거는 상대의 의견만 제압하면 된다라는 마인드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4/11/06 23:33
느끼긴 자주 느꼈습니다.
'이 사람들이 서로 열심히 다른 얘기를 하는군;' 이렇게 정리한 글은 처음 보네요. 좋은 정리글 잘 봤습니다. 아래 글에선 누구를 상대해야(;;) 할지 정하지도 못했습니다;
14/11/06 23:33
이 게시글이 더 재미있군요. 여기로 옮기고 싶습니다(...)
레지엔님과 제가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아마 미디어의 영향력이 어느정도인가에 대한 평가에 차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 추론해 보고 있습니다.
14/11/06 23:34
아마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지만, 저같은 경우에는 '예능 방송은 허구를 전제한다'고 봐서 저런 결론으로 나왔습니다. 말씀하신 영향력에 대한 부분이 이런 쪽에서 반영됐겠죠.
14/11/06 23:40
'예능은 허구를 전제한다'는 지점에서 레지엔님과 저는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그 허구가 엄청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고 보고 있는 거겠죠. 후후.
14/11/06 23:41
저는 반대로 시청자의 입장에서, '대체 그런 거에 뭘 움직이냐 진중하지 못하게...' 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론 자체에 대한 반감이기도 하죠.
14/11/07 01:09
저도 사실 이 논쟁 글 올리고 싶었는데
늦었으니 댓글로 몇자 남기고 갈게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애들도 침대얘기좀 알면 어떠냐 중딩때 어지간히 다 찾아 봤을텐데" 라는 주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의 정서상 15세 프로그램에서 할 만한 발언은 아니었다고봅니다. 다만 이건 15세 프로그램에 곽정은이라는 다분히 성인컨텐츠를 만드는 칼럼니스트를 불러 놓고 발언을 그대로 방송한 제작진이 본인의 포지션의 역할을 한 곽정은씨 본인보다 문제라고 봅니다. 여기까진 제 기본적 자세고 사실 진짜로 하고싶은 말은 남자가 여자한테 이렇게 했으면 난리났을꺼고 그러니까 역차별이다. 이 논리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요 사실 저 문장에 대해 반박하기가 어렵고 타당한면이 있는데 저는 뭔가 저 논리에 찝찝함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남자가했으면 큰 문제가됐을 발언인건 분명한데 대부분 남자들이나 장기하씨가 곽정은씨의 발언에 대해 성적 수치심이나 경멸을 느끼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고(이 부분은 물론 이견이 있을 수있다고 봅니다) 보면 결국 딱히 기분나쁜사람은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성적인 주제에 대한 남녀차이가 존재하고 이를 무시하기엔 그게 작지 않다고생각합니다. 만약 누군가 남자들의 유두 노출은 자유로운데 왜 여자들은 안되냐 여자들도 방송에 유두노출을 허용하자거나 남자들의 유두 노출을 금지하자 이런 주장을 한다면 어쩌면 평등해보이긴 하지만 정서적으로 봤을때 뭔가 이상하고 적당하지 않은 느낌을 줍니다. 분명 남녀는 평등한 존재이지만 정서적으로 다른부분이 분명 존재하며 남성이 여성에 대한 성적 이야기를 하는것이 그 반대보다 민감한것이 사실 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저 정서적 차이를 인정하고 곽정은씨의 발언이 사회적으로 성희롱의 영역까지 들어가는 발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장기하씨가 불쾌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14/11/07 04:45
그런 발언을 들은 남자가 딱히 기분나쁜 사람은 없지 않나? 그래서 괜찮을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마치 '여자의 NO는 YES다' 라는 걸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다음, 여자가 계속 싫다고 해도 들이대는 거를 정당화하는 거랑 똑같은 거죠. 그리고 남자들이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그게 스스로 명확한 성희롱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 경우가 아닌 게 많습니다. 그러나 성희롱 판단에서 애시당초 남자들의 성향이 그렇다는 것은 고려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번처럼 여자의 발언으로 인한 성희롱 논란이 발생했을 때 여자들에게 불리한 남자들의 성향은 고려대상에 포함하지 않으면서, 여자들에게 유리한 남자들의 성향만을 고려하는 것은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14/11/07 10:19
윗 댓글과 비슷한 생각인데. iAndroid 님의 논파에 논리적으로 완전 설득 당했습니다. 나중에 써먹으려고 몇번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찝찝함이 남아 있는 것은 제속에 정서적인 부분이 저항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14/11/07 12:14
찝찝한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남녀문제에서 이중잣대라는건 그리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죠 인종차별과도 비슷합니다 흑인이 백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야기하는것과 백인이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야기하는것은 똑같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걸 똑같이 취급해서 받아들인다는 건 옳은게 아니라는거죠
14/11/07 02:22
진지하게 댓글을 달아보면
어디까지가 15세용이고 어디까지가 19세용이냐 문제는 원론적인 논법보다는 구체적인 사실에 입각해 풀어갈 논제라는 전제 하에 아래 글에서 이 논제에 대해 언급한 댓글들 중 마스터충달님 댓글이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따지면 이 주제에 관한 충분한 토론이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도 보이는데 꽤 많은 사람들은 5원소라는 영화가 그런 내용으로도 15금 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자신의 입장을 수정할 필요성에 직면했을 것으로 보입니다.(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가령 5원소 사례가 아주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된다는 증거를 보인다든가...)
14/11/07 03:35
저도 좀 진지하게 답변을 달아보겠습니다. (장난만 쳐서 죄송합니다;;;)
우선 원론적인 논법으로는 답이 안나오는 사안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럴 경우 결국 가치관의 문제이니 이 사람 말도 맞고, 저 사람 말도 맞으니까요. 관련해서 조금 더 언급하자면, 사실 영화 덕후다 보니 선정성에 대해서는 꽤나 너그러운 입장입니다. 실제로 영화계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변태적이거나 도덕적 관점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선정성에 대해서는 꽤나 너그러워지고 있거든요. 뭐 요즘엔 헤어노출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기도 하구요. 오히려 성적 유희만을 추구하는 포르노나 에로무비에 좀 더 가혹하다고나 할까요. 예술은 너그럽게, 유흥에는 단호하게 가고 있죠. 이런 잣대는 공중파에서도 좀 수렴했으면 좋겠습니다. 걸그룹 민망 댄스는 갈수록 심해지면서 건전한 영역(여기서 건전하다는 건 변태적이거나 도덕적 일탈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의 성담론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것은 뭐랄까 돌을 던질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기분입니다.
14/11/07 01:59
굉장히 귀찮을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굉장히 깔끔하게 쓰셨네요.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자유게시판에서 본 글 중에 가장 유익한 것 같아요.
논점 부분에서 저도 3-1의 의견을 달고 싶었으나 수많은 분들과의 소통이 두려워 포기했더랬습니다.
14/11/07 02:12
논쟁이 유의미한 것은 결단에 앞서 시간을 벌어주기 때문입니다.
행동은 영원한 과거이고 말은 영원한 미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결국 자기 입장을 결단하고 어떤 행동을 선택합니다. 따라서 논쟁 중에는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 하에서 볼 때, 어떤 틀도 분명하지 않아 생긴 대규모 논쟁에서 논점의 다양함과 그에 따른 무지를 겸허히 인정하는 것은 프로 구경꾼의 덕목이겠지만 아마추어 논자의 덕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리가 개최한 콜로세움에서 구경꾼들의 환호와 야유를 뒤로하고 꼴사납게 뒤엉키라고 내몰려진 초보 검투사에 붉과합니다. 그러니 무지에 대한 겸허함 따위는 잊고 자신의 논리를 갈고 닦으며 만인을 제압하기 위해 끝까지 밀어붙이다 쓰러져야 할 것입니다. 그 말의 탁월함이 아니라 그 말의 어리석음 덕분에 나약한 견해를 소거하며 진리에 봉사하는 키보도 워리어의 피는 그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주먹은 커녕 말로써도 싸우지 않는 비겁한 구경꾼들의 지적 스릴을 위해 뿌려지기 때문입니다.
14/11/07 02:36
이 댓글에서
"'따라서' 논쟁 중에는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의 '따라서'는 적절한 연결어인데 비해 "'이런 관점 하에서 볼 때', 어떤 틀도 분명하지 않아 생긴 대규모 논쟁에서 논점의 다양함과 그에 따른 무지를 겸허히 인정하는 것은 프로 구경꾼의 덕목이겠지만 아마추어 논자의 덕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의 '이런 관점 하에서 볼 때'는 자연스런 연결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논쟁이 '편협을 피할 길 없는' 결단에 앞서 시간을 벌어주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탐구해야 할 장'이라면 모든 가능성을 탐구해야 하기 때문에 '겸허'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는게 오히려 자연스런 귀결일 것입니다. 그걸 '구경꾼의 덕목'이라고 일축하는 것은 이런 전제 하에선 부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오히려 첫번째 문단에서 등장한 '결단하고 행동하는 자'가 세번째, 네번째 문단에서 '아마추어 논자'로서, '초보 검투사'로서 재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리 앞에서 너무나 초라한 인간이 감히 어떤 입장을 택해 남과 다툰다는 자체가 하나의 결단이자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제 하에서만 '겸허한 비겁함'이 '구경꾼의 덕목'일 뿐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근데 이건 사실 '토론 없는 취존'이 아니라 '겸허한 토론'을 취하자고 하는 본문과 같은 결론입니다.
14/11/07 03:37
논쟁이 벌어주는 시간은 편협을 피할 수 없는 결단과 행동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결단과 행동이란 것에 이러한 관점의 방점이 찍혀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에선 행동으로서의 결단에 신중해야 하고 토론에선 논쟁이 끝나면 돌이킬 수 있는 말로서의 입장을 결단해 보는 것이 덕목일 것입니다. 애초에 틀이 없어 생기는 대난전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말싸움은 시뮬레이션이므로 대난전에서 플레이어1은 만인에 대항해 자기입장을 결단하는 사고실험을 전개할 수 있으니까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실제의 결단에 앞서 얻을 것을 얻어가는 것은 플레이어들의 싸움을 총합해서 관전하는 구경꾼들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물론 싸움이 끝난 전사자들도 그렇겠지요. 댓글은 애초에 논쟁은 논쟁 그 자체나 논자 1인 또는 논자들 그 자신만으론 의미의 완성이 안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승리가 아니라 패배로 진리에 소거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토론의 겸허함을 인식하길 요구하고 있고, 이점과 본문이 요구하는 겸허한 토론은 겸허함을 매개로 토론에 대한 각자의 다른 가치부여를 보여준다 할 것입니다. 저는 겸허한 토론을 신뢰하지 않고 토론의 겸허함을 신뢰합니다. 구경꾼으로든 논자로든 그러합니다. 저는 결론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논쟁의 본질적인 가치를 믿습니다.
14/11/07 13:02
pain 님이 얼핏 토론자의 독단처럼 보이는 결단의 덕목을 옹호하고자 하는 점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 두 개의 댓글에서 pain 님께서 이 초보 검투사가 콜로세움으로 들어서는데 걸어둔 제약이 얼마나 많은가 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검투사는 (1) 무엇보다 먼저 이 말싸움이 '시뮬레이션'임을 알아야 하고(그걸 모르는 졸렬한 자의 한 예: https://ppt21.com../?b=8&n=49352 ) (2) 논쟁의 의미는 자기 혼자만으론 완성이 안됨을 알아야 하며 (3) 논쟁은 패배자들의 시체의 산을 쌓으면서만 진리로 접근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가지 점을 아는 자라면 사실 '겸허한 토론자'라고 불리는데 별 지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부족하나마 자신의 입론을 내세우길 결단한 자가 여전히 이런 제약에 매이는 이유는 달리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제대로된 토론을 위해서, 토론자는 자신의 입론을 진지하게 관철하는 것 뿐 아니라, 토론장에 똥을 싸지르지 말아야 할 의무도 지는 것입니다.
14/11/07 13:17
예, 가장 재미난 구경거리는, 자기 자신의 구경거리를 만드는 광경이니까요.
커뮤니티에 들어선 이상 우리 모두는 익명의 커뮤니티 방문자를 위한 구경거리/컨텐츠를 제공하며 구경거리/컨텐츠에 봉사해야한다는 암묵적 이념에 부분적으로나마 동의했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님께서 지적하신, 자칫하다간 놀이터에 똥 지릴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우리가 쉬이 잊는 전제를 항시 명심해야할 하나의 이유가 되겠구요.
14/11/08 14:28
제가 토론자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자유라기 보단 엄격함일 겁니다.
자체적인 소화력을 넘어서 논쟁에서 누군가 똥을 싸는 것은 제어되어야 하지요. 이점에서 제가 프로 구경꾼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고 endogeneity님을 신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14/11/07 10:15
와~ 한줄 한줄 자간의 의미와 뜻을 이렇게 정리잘 하시는 분을 참 오랜만에 보는것 같습니다.
엉성하게 뭉뚱그려서 이해하는 제 머리가 못하고 있는게 뭔지 알겠네요. ^^
14/11/07 12:57
뭐,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란 연결어 사이에 비약된 구절을 제 나름의 오독으로 말미암아 끼워넣자면,
[본문에서 논하는 태도가 선 지점을, 구경꾼이 아니라 검투사 역시 인지하게 되면, 그건 구경거리로서 가치 또한 사라지기 십상이다. 가당찮은 고양감조차 제대로 불어넣기 위해서 검투사는 자신의 책무를 진지하게 믿어야하니까.] 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judas pain님께서 적으셨을 구절은 실제론 이와 뉘앙스가 좀 다르긴 할 겁니다. 아무래도 전 구경꾼에게 이입했고, 그러나 아마 pain님께선 검투사에게 이입하셨을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러해야하는 건 아니긴 하고, 보다 자주 님께서 지적하신대로 토론장에 똥지리는 것과 같은 파국으로 끝나기 마련입니다만... 아주 일부, 지극히 소수의 경우일지언정 이러한 도취감으로 말미암은 덕에 이를 수 있는 전일성이 있으니까요. 물론 뭐, 순전히 감정 상태에서만 존재하는 진리일 뿐이고, 그조차 언뜻 비추었다 사라지기에 일리조차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보다 쉽게 "네 공상 속 자위에 불과하다"란 폄하 앞에서 딱히 대꾸할 거리도 잘 없긴 합죠.
14/11/07 13:16
두번째 댓글을 보면 pain 님은 '검투사'와 '구경꾼'은 사실 한 인간의 두 가면으로도 성립 가능하단 점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싸움이 끝난 전사자들' 같은 경우가 그렇죠. 이들은 싸움이 끝나고서 검투사인 자신의 생전 싸움을 구경꾼으로 보게 될 사람들이죠. 그리고 토론의 가치를 '소거법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점'에서 찾는다는 전제에서 보면 사실 검투사는 언제나 구경꾼으로서의 자신을 떠올려야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검투사의 칼엔 사실 날이 빠져있거나, 적어도 발에 족쇄를 차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근대 서구 자유주의 문헌에선 이 구경꾼은 아주 빈번히 출몰합니다. 애덤 스미스의 '공평무사한 관찰자' 라든가 롤스의 '반성적 평형 상태' 등. 포퍼의 과학철학은 과학자에게 자신의 이론에 대한 예단을 가급적 멀리할 것을 권하는 윤리학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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