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민머리요정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야구글로 찾기뵙는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자유게시판의 글쓰기 버튼을 누른 단 하나의 이유.
바로 어제 은퇴의사를 공식보도한 송지만 선수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저의 영웅이자......
팀을 떠나서 마음을 아프게 했던 송지만 선수.
이제 은퇴하신다고 생각을 하니, 세월이 얼마나 지났나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인천에서 학교를 나온 송지만은,
송지만 선수는 황금세대라고 불리우는 92학번입니다.
박찬호, 조성민, 임선동, 박재홍, 손경수, 설종진, 정민철, 염종석, 차명주, 김종국 등......
그리고 한화에 있어서도 송지만 선수는 나름 황금세대였던 96년 입단 선수입니다.
96년 드래프트에서 한화에 2차 3순위 (전체 20번) 지명을 받고 입단했습니다.
96년 입단 동기로는 홍원기, 이상열, 심광호, 이영우, 임수민 / 좋은 활약을 보였던 선수들이 많습니다.
송지만 선수는 홍원기, 이영우, 임수민 선수와 함께 1년차부터 활약하기 시작했는데,
이들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던 것은 송지만이었습니다.
입단 첫해부터, 3자릿수 안타, 홈런 18개, 10도루 등 쏠쏠한 활약을 보였고,
이후에도 꾸준히 성적을 내기 시작했는데,
한화의 첫 우승 시즌이었던 99년 잠재력이 대폭발하며 팀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99년에는 처음으로 3할, 20-20을 기록하게 된 것이죠.
00년에는 처음으로 30홈런을 넘겼으며, 그해 올스타전에서 미스터 올스타를 수상하기도 했고,
시즌 내내 뛰어난 활약에 힘입어, 박재홍, 이병규와 함께 외야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02년에는 자신의 커리어하이인, 38홈런을 기록하며 최고타자의 반열에 올랐고,
그해에도 역시 생애 2번째, 외야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이듬해 찾아온 손목부상으로 송지만 선수는 많은 경기에 나서질 못했고,
그렇게 꾸준했던 타격도 매우 부진에 빠지며 최악의 시즌으로 1년을 마감하게 됩니다.
한화에서 활약했던 8년간, 마지막 해를 제외하고 늘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외야의 한 축에서 든든하게 수비를 맡아준 송지만 선수는,
팬들에게 황금독수리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며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입니다.
그런데......
03년 시즌이 끝난 후, 트레이드 소식이 들려왔으니.....
한화 송지만 - 현대 권준헌 / 1대1 트레이드가 단행됩니다.
송지만 선수는 마지막 해였던 03년 손목부상으로 시즌을 완전히 망치기도 했고,
이후 인터뷰에서 밝힌 것이지만, 당시 한화감독이었던 유승안 감독과의 불화로
트레이드는 직접 본인이 요청했었다고 합니다.
물론 본인은 LG로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이 소식을 듣고서 삼성에서 노장진 카드를 내세우며 트레이드를 시도했지만,
결국 김응용 감독이 다시 노장진 카드를 쓰겠다고 하여......
현대가 트레이드에 뛰어들어 권준헌를 내세웠고 이로인해 송지만 선수는 현대로 이적하게 됩니다.
(하필이면 04년이 현대 유니콘스가 기울던 시점인지라..... 송지만 선수도 참 박복합니다.)
이적 첫해 송지만 선수도 다시 재기에 성공하며 22홈런을 때려냈고,
권준헌 선수도 팀의 마무리투수로 활약하며 ERA 2.11 / 17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서로 윈윈이라는 평이 있었지만,
권준헌 선수가 04 시즌이 종료된 이후, 팔꿈치 수술을 받게되면서......
이 트레이드는 역대 한화가 최고로 손해본 트레이드로 평가받게 됩니다.
이 트레이드는 분명 유승안 감독과 김재박 감독이 서로 논의해서 주도한 트레이드입니다.
요즘같은 시대였다면, 분명 팬들이 서명운동하고 난리치면서 송지만 선수 트레이드에 반대했겠지만,
양측 모두 사정이 서로 맞아서 이루어진 트레이드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한화의 사정상, 같은해에 FA를 맞게되는 이영우 선수까지 붙잡아야하기 때문에,
같은 외야수라면 좌타자가 낫겠다는 생각을 한화에서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영우 선수는 최고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던 그 시기에....
병풍파동으로 군대에 끌려갔고, 복귀해서 어깨 수술을 받은 이후에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은퇴를 하게 되죠.
결과적으로 한화의 이 선택은 최악의 선택지가 되버립니다.
송지만 선수는 현대로 이적한 첫해, 바로 22홈런을 때려내며 건재함을 과시했고,
여러 타순을 소화하며 이적 첫해에, 현대 유니콘스의 우승을 함께하며 생애 2번째 우승반지를 끼게 됩니다.
이후 현대는 박진만, 심정수가 이적을 하게 되면서 팀의 주축이 흔들리게 되자,
송지만 선수는 팀의 중심을 지키는 그런 선수가 되었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송지만 선수는 꾸준한 선수였습니다. 뛰어난 성적은 아니더라도 꾸준한 성적....
05년 FA 대상자로 대박을 노릴수 있던 그런 시기에,
현대의 재정악화가 겹치면서, 현대는 3년 18억이라는 평범한 계약을 제시했고,
이에 다른 구단을 알아보려 시장에 나왔지만......
삼성은 심정수를 노렸고, LG에서는 무관심, 롯데는 4년 21억을 제의했지만 옵션이 이상한 탓에 거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현대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고......
3년 18억에 FA 계약을 했는데, 07년까지 현대가 구단을 운영하게 되면서,
히어로즈로 계약이 넘어가버려서, 이전 계약들이 다 무효화.....
송지만 선수의 마지막해 연봉은 공중분해가 되버립니다 ㅠㅠ
팀이 넥센으로 바뀐 이후에도, 송지만 선수는 꾸준히 팀의 중심을 지켜줬습니다.
넥센은 2012년이 되서야, 이택근 박병호 강정호라는 강타선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 라인이 완성되기 이전까지, 송지만 선수는 중심타선을 지키며 꾸준히 활약했습니다.
꾸준한 활약이라는 것은 기록으로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타격누적기록의 상당부분이 KBO기록의 고지에 올라와있습니다.
홈런왕을 차지했거나, 명확한 타이틀을 가져간 적은 없지만,
20홈런을 7번이나 기록하기도 했고,
도루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서 박재홍 선수보다 기록이 앞선 선수이기도 합니다.
1870안타, 311홈런, 327 2루타, 3,186루타, 1,019득점, 1,030타점 등......
이렇게 많은 누적기록을 가지고 있음에도,
00년 장타율 1위에 오른 것을 제외하고는 타이틀이 단 1개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무관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가장 저평가된 선수가 송지만 선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송지만 선수가 이렇게 저평가받은 이유는 몇가지로 설명드릴 수 있는데,
전성기라고 부를수 있는 한화이글스 시절에는,
역대급 타고투저의 시즌들이 계속되었고, 이승엽, 심정수같은 괴물타자들이 미친 활약을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송지만 선수의 기록들은 조금 묻힌 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박재홍, 이종범, 이승엽, 양준혁, 심정수 등......
같은 세대로 활약했던 수많은 타자들이 송지만 선수보다 더 임팩트있는 활약을 했으며,
이들은 타격지표의 상징이 되었던 선수들이기에, 송지만 선수보다 더 강렬하게 팬들에게 기억된 그것이겠지요.
어깨도 강하고 수비도 잘하는 외야수였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강견의 3심의 임팩트에는 조금 미치지 못했으며,
또 이들에 비해서 더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송지만 선수는 성실함, 그 특유의 꾸준함으로 이겨냈으며,
송지만 선수의 성실함은 모든 선수들로부터 존경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뛰어난 타자들은 존재했습니다.
천재성을 가진 선수들이 있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최고의 타자 반열에 오른 선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재성도, 뼈를 깎는 노력도 꾸준함을 가져다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꾸준하다라는 것, 단순히 그저그런 성적으로 꾸준한 것이 아닌,
팀에서 어느 역할을 쥐어주어도, 반드시 자기 역할을 해내며,
꾸준함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 이면의 모습이 있었기에......
송지만 선수는 그 꾸준함으로 동료 선 후배 선수들과 팬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마침내 최고가 된 선수 송지만.
이제 코치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고 인터뷰를 통해서 밝히셨는데,
선수생활동안 그랬던 것처럼,
후배 선수들에게도 좋은 지도자로 야구역사에 오래 기억되길 바랍니다.
R25PECT, Adieu No.25 송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