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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24 15:32
프랑스 혁명 이후로 출산율이 꾸준이 감소했다고 하는군요. 1871년 보불전쟁에서도 프랑스의 이런 출산율감소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보다 40년 보면 더 문제가 심각하겠죠
14/08/24 16:02
나폴레옹전쟁때만 해도 유럽의 짱개라는 별명답게 유럽내에 러시아를 제외하곤 인구수면에서 프랑스를 이길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나폴레옹이 잘나갔던 건 그의 천재성과 이런 인구수를 통해 언제든 상비군을 운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 컸었습니다. (거기다 그 당시엔 모병제를 운용하던 다른 나라와는 달리 국민병제도라 불리우는 징병제를 실시했기때문에 질적 차이는 어느정도 있어도 순간적으로 엄청난 군사수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진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폴레옹 전쟁이 결국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이어진 후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이미 그 전 그러니깐 프랑스 혁명시기부터 감소하고 있던 출산율이 나폴레옹전쟁을 통해 줄어든 인구수와 함께 문제시되기 시작합니다. 이미 19세기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쩌는 위엄(..)을 보여줍니다. 21세기인 지금 한국과 일본이 고령화사회때문에 골치아파하죠?이걸 프랑스는 19세기에 이러고 있었습니다(..) 왜 갑자기 줄기 시작했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찾아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에 대해 연구도 많이 한다는 데... 하여튼 이 고령화사회 + 출산율 감소는 2차세계대전까지 쭈욱 프랑스의 문젯거리였습니다..(독일에게 밀린건 물론이고 영국에게까지 인구수에서 밀렸던 적이 있었으니깐요 그래도 그 이후로 조금씩 출산율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14/08/24 16:11
제목 자체가 아마 어지간만 논문 주제가 아닐까 싶은데... 그냥 비스마르크 사후 언젠가는 한번 크게 터질 전쟁이긴 한 것 같습니다. 당시 외교관계 자체가 비스마르크가 아니면 설계는커녕 유지할 수도 없었을 정도로 복잡하게 짜여져 있었어서...
14/08/24 16:46
그게,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벨 에포크 시대만 하더라도 '지금 유럽 각국은 서로 너무나도 많이 얽혀 있어서 나폴레옹 전쟁처럼 전유럽이 맞붙는 전쟁은 불가능하다! 설령 전쟁이 일어나도 이는 서로 얽혀있는 것 때문에 양측 모두 피해만 볼 것이며, 따라서 합리적인 판단 하에 금방 멈출 것이다! 대신 상호 협력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는 주장이 대세였습니다.
14/08/25 02:12
합리성만 따지면 1차대전도 저렇게 길고 큰 전쟁은 안됐을 겁니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신뢰를 박살낸 전쟁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괜한게 아니죠. 차라리 2차대전은 히틀러라는 제대로 미친놈이 딱 맨앞에 있기라도 하지...
14/08/25 03:11
덕분에 이성만세 모더니즘이 박살나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고 공부하려면 머리는 아프고.. 뭐 그렇습...
근데 사실 이 계기는 2차세계대전이 더 크긴하죠. 1차세계대전을 겪고 안전장치에 전쟁 피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도 비교도 안될 스케일의 전쟁이 똻....
14/08/24 18:38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첫부분에 이해가 안되는게 있어요. 독일 황제 즉위식을 왜 베르사유 궁전에서 했을까요? 남의 나라 수도 궁전에서 말이죠
14/08/24 18:43
프랑스 털은 게 거의 독일 통일의 피날레 같은 거라서... 프랑스가 아마 저 전까지 수도가 저렇게 털린 적이 아예 없었을걸요. 프로이센 -> 독일 제2제국로 이어지는 통일 성립 후 만세삼창을 둘도 없는 적국의 궁전에서 한다는 게 엄청나게 상징적이지 않나요 크
14/08/24 23:02
위에 설명해주신 분들이 계시지만 좀더 자세히 설명해봅니다.
당시 프로이센, 그러니까 독일제국 성립 전의 독일인들은 프랑스에 대해 열등감과 악감정이 강했습니다. 왜냐하면 나폴레옹이 천년가까이 내려오던 신성로마제국을 강제로 해체시켰고 틸지트 조약 등으로 내정간섭을 아주 심하게 해버리죠. 몽골이 고려에게 한것처럼요 유명무실 하긴 했지만 신성로마제국의 후예란 역사적 사실에서 근대 독일의 민족주의가 탄생됬기 때문에 이는 당연히 프랑스에 대한 적개심이 생기죠. 게다가 인접한, 불과 반세기전만 해도 전 유럽을 휩쓸던 나라죠 따라서 철혈정책의 주목적과 희생양은 프랑스가 됩니다. 그 이후에 경과는 본문서술에 나와있고 제국을 부활히키는데에 있어서 그 제국을 망하게 한 국가의 궁전에서 한다... 엄청난 카타르시스였겠죠 상징성도 어마어마하구요 폰으로 작성하다보니 글이 조금 두서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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