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타입니다.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날씨가 좋군요..
그래서 문득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졌네요...
그러다가 무슨 필을 받은건지,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말았습니다.....
불과 수년전에 비해 요즘의 해외여행은 제주도를 가는것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홀로 여행을 떠난다 해도,
세계 어느 곳이든 인터넷에 정보가 흘러 넘치고,
조금만 발품을 팔면 저렴하고도 알찬 여행을 다녀올 수 있지요.
또한 영어를 비롯해서 외국어를 하나도 모른다해도,
각종 여행사가 마련한 적절한 패키지 상품으로 그야말로 대접받으며 다녀올 수도 있구요.
해외여행 가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있습니다.
모두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것. (배(ship)로 태클걸지 마셔욧!!)
비행기 또한 적지않은 기종이 있고,
그 중 오늘 알아볼 것은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여객기,
날으는 호텔이라 불리우는 [에어버스社 A380] 이란 기종입니다.
제가 한 번 타보고 싶어서 쓰고 있는건 함정.
시작합니다.
[AIRBUS A380]
A380의 최대 고객, 만수르 형님의 에미레이츠 항공
1. '에어버스'라는 회사와 국내 도입
에어버스는 비행기를 만드는 유럽 최대의 항공기 제조회사이나, 태생이 민항기만 만드는 민간 기업은 아닙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비행기 제조, 항공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비행산업 또한 급속도로 확장되어 가면서 각 나라의 항공산업은 정부가 군사적 목적을 포함, 주도적으로 관리해 나가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미국과 유럽의 양강 체재로 발전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미국의 항공기술이 우주산업과 더불어 유럽을 넘사벽으로 뛰어넘는 것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유럽 각국은
조심스럽게 서로의 항공산업에 대해 표면적으로 상호협력을 지향하며 하나의 컨소시엄으로 만들 움직임이 꿈틀댔고,
1990년 중반부터 미국의 보잉과 맥도널드더글라스, 록히드마틴 등이 세계 최대의 방위산업체 인수합병으로 거대한 방위업체로 변모,
위기를 더욱 느낀 유럽은 2000년 유럽우주항공방위산업체(EADS)를 출범시키게 됩니다.
어찌보면 당시 미국이 독주하다시피 한 민항기 시장에 유럽이 뛰어든 셈이기도 했지요.
유럽 한개 국가가 당시에도 천조국인 미국과 일대일 경쟁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 자회사격으로 에어버스社가 탄생하게 된 것이죠.
(실제 이 에어버스라는 이름은 1960년대 영, 프, 독 3국이 A300이라는 기종을 합작하여 만들기로 하면서부터 쓰이기 시작했지요.)
이 방위산업체 합병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나라가 프랑스이고,
그래서 프랑스 툴루즈라는 도시에 에어버스社의 본사가 위치해 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가 오직 프랑스에서만 조립되는 것은 아니었고,
영국, 독일, 스페인 등의 공장에서 각 파트별로 나눠서 생산되어지며,
2013년까지 약 600여대의 민항기가 만들어져 시장에 공급되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에어버스가 도입된 시기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북한의 함대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대함미사일인 하푼을 국내 도입하려 보잉社와 협상하고 있던 와중,
같은 하푼을 보유한 일본의 로비로 우리나라와의 협상이 결렬되고 맙니다.
할 수 없이 차선책으로 프랑스의 하푼이라 불리는 엑조세미사일을 도입하려고 프랑스 정부와 협상을 하는데,
프랑스 또한 미국과의 우방적 관계를 우려해, 미국무기 단솔손님인 대한민국에 자기들 무기를 판매하기가 껄끄러워 합니다.
엑조세미사일
그러자 당시 대한민국은 유럽의 민항기인 에어버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며,
엑조세를 팔면 에어버스도 같이 사주겠다고 협상의 히든카드이자 골든카드를 꺼내자마자,
미국의 독주로 유럽외 판매를 한 적이 없는 에어버스이자 실적부진으로 허덕이고 있던 때여서,
갑자기 프랑스는 태도를 급변하고 엑조세를 팔기로 합의하게 됩니다.
당시 도입한 A300_B2 모습, 에어버스 민항기 최초의 모델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엑조세를 신나게 도입하면서 ,
A300 또한 적잖게 사들여 대한민국의 민항기 산업의 부흥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곁에서 지켜보던 미국은,
괜히 일본의 꾐에 넘어가 당시 떠오르던 신흥국가이자 주요고객인 대한민국에,
자칫하다간 미사일뿐만 아니라 민항기도 못팔것 같아서 2년 후 바로 하푼미사일 판매를 허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린 일본 덕택에 엑조세와 하푼까지 같이 도입할 수 있게 되었지요..흐흐..
에어버스社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해외판매를 시작했고 항공기 또한 재조명(어?? 써보니 괜찮네??) 받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 민항기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미국 보잉과의 양강 구도를 확립해 나가며 서로 경쟁하게 되어 기술이 더욱 발달하게 되고 가격도 합리적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덕택에 에어버스는 세계 항공사에 주목을 받아 비행기를 상당히 많이 팔게됩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당시 대한항공의 조중연 회장에게 에어버스 최초도입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훈장도 수여했지요. (별일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항공시장에서 빛을 발한 에어버스社는
현재 미국 보잉을 뛰어넘어 세계 최대의 민항기 회사로 거듭나게 되었고,
세계 최대의 A380기를 제작, 판매하면서 그야말로 현재는 모든 부분에서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2. A380 기종의 개발 및 제작배경과 테스트
- 배 경
: 1980년대부터의 항공여행의 급진적 성장과 더불어 항공기 제작업체는 보다 큰 항공기 수요에 맞게 큰 비행기 제작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 시작으로 보잉 747기가 먼저 도입되어 어느 항공사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대량 주문을 넣어 세계로 뿌려져 나갔습니다.
그 와중에 미국 911 테러로 인한 항공기 산업이 잠시 위축되기도 했으나, 어느새 다시 활기를 되찾았죠..
그리하여, 1990년대 에어버스도 비밀리에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영국항공을 필두로 최고의 엔지니어들를 위시로한 디자인 4팀을 창설,
보잉 747기 보다 다방면으로 15~20% 효율을 보일 목적으로 초대형항공기 제작설계에 돌입하게 되었고,
1994년 A3XX라는 기종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녀석은 당시 대형기인 A340 기종을 기반으로 설계되어져 갔고,
최초로 단일 갑판이 아닌 2층 레이아웃이 적용되게 하면서 설계적으로도 당시 민항기 중 최대의 크기로 제작되게 이릅니다.
2000년 12월, 비행기 설계가 어느정도 완성되어 감을 인지한 에어버스감독위원회는,
2004년 약 3조 5천억원의 예산(총 13조원정도)으로 설계에 맞게 직접 제작하게 됩니다.
제작하고 보니, 더블데크의 단면이 8자 형태인 점을 고려해 [A380]이라고 명명되어지게 됩니다. (단순하네요.)
프랑스에서 최초 공개된 A380
배에 싣고 이동중인 A380 동체
- 제작과정
: A380은 유럽 각지에 위치한 공장에서 각 파트별(앞, 중간, 뒤)로 나누어 비행기의 부품을 생산, 조립합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는 프랑스 툴루즈 공장에서 레이저 측정 시스템을 이용하여 굉장히 정교하게 조립되어지죠.
먼저 독일에서 가져온 동체 조립이 끝나면 영국에서 싣고온 각 날개를 동체와 수백개의 리벳으로 연결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착륙에 필요한 장치들을 연결하면서, 약 열흘에 걸쳐 최종적으로 완성되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비행기는 마지막으로 독일로 날아가 객실 조립을 마치게 됩니다.
그리곤 최종적으로 시판 전 비행기에 색을 입히는 작업까지 독일에서 마무리합니다.
한 대에 입혀지는 페인트는 무려 3,600L 입니다.
아시아나 항공의 첫 A380 도색과정
워낙 공장이 유럽 전역에 펼쳐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배로 여기들러 이것 싣고 저기들러 이것 싣고해서 최종적으로 툴루즈 공장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죠.
각 나라는, 자기 나라에서 최대한 많은 공정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래야 일자리 창출이 되니까요.
그러나 제작 초기에는 이러한 시스템이 가져오는 악영향도 있었습니다.
날개가 워낙 커서 날개를 옮기기 위해 도로를 새로 깔아야 했고,
각종 시설물도 교체해야 했으며 각 국가마다의 조율이 안되어 제작이 2년이나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A380 테스트기의 첫 착륙 사진
- 테스트
: 2005년까지 총 5대의 테스트기가 만들어져 각종 혹독한 테스트를 거칩니다.
그 해 4월, 4시간여에 걸친 첫 비행에서 성공적으로 이륙과 착륙을 마치게 되며,
최초의 기장인 '자크 로세이' 테스트 파일럿은 당시 착륙을 한 뒤 인터뷰에서, "마치 자전거를 조종하는 것 같았다"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해 12월, 마하 0.85의 설계순항속도를 설정하에 마하 0.96의 최고 속도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곤 2006년 에디오피아 공항으로 가면서 고도테스트를 거쳤고,
그 해 1월 콜롬비아 공항으로의 무사 도착으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하게 되고
콜롬비아 엘도라도 공항으로 가서 높은 고도 공항에서의 엔진 시동에 대한 테스트도 통과했습니다.
그리곤 2월 캐나다 이콸루이트 공항으로 가서 영하 40도의 환경에서의 혹한 테스트도 거치게 됩니다.
또한 젖은 활주로에서의 착륙실험 통과,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서의 난류형성 실험(뒤 따라오는 비행기에 어느정도 영향을 주는가) 통과,
또한 날개 강도시험에서 하중의 150%를 통과해야 하지만 145%에서 실패하여 보다 강하게 수정이 되어졌고,
853명의 승객과 20명의 승무원을 가정으로 어둠속에서 90초내에 탈줄을 하야하는 실험에서 78초로 마치게 됩니다.
이 대피실험 결과, 유럽항공안전기구와 미국연방항공청은 최종적으로 A380기의 최대승객 탑승자수를 853명까지 인증하여 줍니다.
그리고 2006년 9월, 에어버스社 직원을 대상으로 객실 이용 편의등을 위한 승객운반 비행실험을 거칩니다.
그리고 판매를 위한 세계 투어의 일환으로 2006년 11월 인천국제공항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고,
2007년 9월에 재방문 하면서 그 때 대한항공은 총 8대의 A380기를 주문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2007년말까지 민항기로써의 최종 안전인증을 마치게 되고, 판매를 위한 단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3. A380의 생산과 납품지연
- 생산과 납품지연
: 자, 우려되던 모든 테스트에도 성공했겠다, 이미 주문은 50여대나 받아놓았겠다,
이제 차근차근 생산해서 팔기만 하면 끝!! 일 줄로만 알았던 에어버스는 A380의 예기치 않은 생산차질로 인해,
납품이 3차례나 지연되게 되고 사상 유래없는 경영진의 물갈이와 배상문제로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이것 또한 인재.
한창 테스트기를 제작 중이던 2004년 중순,
각국에서 배송되어져 프랑스 툴루즈 공장에서 조립에 박차를 가하던 엔지니어 200명은
주문들어온 A380기 제작에 필요한 전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 냅니다.
1기를 제작하는데 90,000개 종류의 전선과 40,000여개의 커넥터가 필요했으니까요.
실제 1기를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전선의 길이는 530km입니다.
이런 엄청난 길이의 전선이 최종적으로 독일에서 제작한 동체부분과 프랑스에서 제작한 부분이 서로 맞물리지 않아버렸지요.
전선량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설계적인 결함도 겹쳐 단기간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또한 엔지니어들은 A380기에 전자회로 결함 등에서도 제작 결함이 있다고 경영진에게 보고했으나,
경영진은 이를 소홀히 생각하고는 지금은 테스트기 제작에만 힘쓰라고 일러두죠.
그래서 2005년 테스트 비행에는 성공했으나,
아니나다를까 엔지니어들이 언급한 문제가 여실히 드러나 급기야 2006년 1차 납품시기를 지키지 못하고 지연통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2006년에 130여대의 선주문이 있었고,
거기엔 에미레이트, 콴타스, 싱가폴, 버진애틀랜틱, 에어프랑스 등등 쟁쟁한 항공사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 총 43대(약 15조원)의 선주문을 한 에미레이트 항공은,
이런 납품 지연으로 인해 경영손실이 심각하다고 언론을 통해 에어버스에 소송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정확한 지연 사유에 대해 공지를 하지 않고 1년 추가지연통보를 하자,
마침내 각 항공사들은 에어버스社를 상대로 납품 지연에 따른 손배소송을 진행하였고,
페덱스와 UPS같은 화물업체들도 5조원에 달하는 수주를 취소하는 등 에어버스는 납품지연에 따른 고통을 톡톡히 치루고 있었죠.
당시 에어버스 고위관계자 - "이런 시스템으로는 우린 보잉 따라잡는데 15년은 걸릴거야...WTF"
그러나 이런 납품 지연에 대해선 어느 정도 주문항공사의 책임도 있었습니다.
항공사마다 워낙 고유 주문 요구사항들이 많고 다양해서,
부품을 표준화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고 그에 따른 품질관리도 쉽지 않았지요.
각 항공사마다 전화기, 시트모양, 시트배치, 모니터 사양, 천장재, 카펫 등등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산성이 더욱 악화되었고, 납기일정을 맞추지 못하게 된거죠.
뭐, 이런걸 예상하지 못한 에어버스社의 과실이기도 하지요...
결론적으로 에어버스社 내부에도 이런 납품 지연에 따른 적자 누적으로 인해,
1만여명을 감축하는 등 회사의 존폐의기까지 몰리고 있었으나,
독일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런 어려움을 분담하겠다고 자국민들을 달래고,
수주국가에 사과하면서 사태는 약간 진정되어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럽 언론들은 전기부품 관련등 이런 조금은 사소한 문제들로 인한 납품지연 보다,
구조적으로 유럽 16개 도시에서 부품이 제작되어 한 곳에서 조립되어지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이런 시스템이
더욱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미 이런시스템을 구축해버린걸..
- 콩 고물 : 뜻밖의 개이득
굉장히 이쁜 보잉 787-드림라이너
: 그 때, 이 반사이익을 톡톡히 얻은 미국 보잉社는,
당시 A380과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신기종인 보잉 787기의 사상 유래없는 단일기종 580여대 주문으로 호황 of 호황에 접어듭니다.
근데, 얘네들도 갑자기 너무 많은 물량이 주문되어지니까,
또 아니나다를까 전 세계 공장을 풀가동했음에도 부품 부족으로 납품이 지연되고 맙니다.
그래도, 당시 911테러로 항공산업이 급격히 위축되어 보잉社의 매출이 급감하였으나,
뜻밖의 에어버스의 삽질로 보잉은 다시한 번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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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만나요.. 2편에서 마무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