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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8/04 20:21:17
Name 삭제됨
Subject [일반] 인문학의 쓸모는 무엇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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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0fProToss
14/08/04 20:48
수정 아이콘
철학,문학,역사학,언어학,종교학
등이 한데 묶어지는데
심리학, 생물학, 경제학, 물리학, 법학 등
과 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인문학 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저 위의 것들만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4/08/04 20:59
수정 아이콘
일단은 대학에서 '인문대학'으로 분류하는 학문들이 공통점이겠지요. 하지만 대학마다 분류도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학문까지를 인문학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는 조금 분류가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굳이 공통점이라면 인간의 추상적 사유구조/조건에 대한 연구 정도가 될 텐데, 다만 사회과학/자연과학적 연구의 테두리와 어느 정도 겹쳐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런 규정이 독자적인 인문학의 규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지는 의문이 들긴 합니다.
14/08/04 21:05
수정 아이콘
이공계출신으로서 인문학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형태는 단연코 아니라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학 인문학 통폐합도 인문학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일부러 크게 많이 필요하지않은 교수자리를 만들어 그들을 위하여 학부학생을 뽑아 알아서 살게만들필요는 전혀없습니다.
인문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위치의 학문이긴하나 교수가 지금처럼 많이 있을이유가 없지요.
인문학의 학문연구소 정도로 국가에서 만들어서 지원하는게 가장 좋은 형태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부는 전혀 만들이유가 없고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대학원형태로 진학시키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국가에서 만드는 이러한 기관은 반드시 창원이나 울산과 같은 공업도시에 위치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쪽은 인문학에 메말라 있거든요 또한 그곳 기업의 적절한 지원도 함께 융합시킬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자연과학은 인문학과 매우 다른 성질의 학문입니다. 기초학문으로서 위치도 매우 다르고요. 자연과학이 이러하니 인문학이 이러해야한다 이런건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인거같습니다. 공학과 자연과학이 점차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거든요 분야 또한 융합해지고 있습니다. 탐구의 방법이나 접근은 매우 유사하고요
영원한초보
14/08/0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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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도시와 인문학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인문학의 쓸모에대한 문제네요
14/08/04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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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음 편에서 다루시겠지만, 타전공자로서 전공분야를 사회와 결합시킬 때 인문학의 쓸모를 경험하곤 합니다. 인문학은 인간과 사회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통찰을 제공해주니까요. 단순히 전공지식을 행하는 데야 전공지식 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그것이 옳은가?'라는 가치판단을 하려면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더군요.
14/08/04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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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떠오르는 쓸모로는 마케팅에서의 활용이 떠오르는군요
두 번째는 키베 떡밥으로의 쓸모 흐흐
아라리
14/08/0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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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제랑 반되대는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 싶었는데요.
인문학을 포함하여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고, 또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꼭 쓸모가 있어야만 하는 것인지, 그 쓸모를 찾아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긴 합니다.
14/08/0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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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들은 사실 쓸모라는 질문에 잘 답변을 못 합니다. 대신, 대체로 쓸모라는 기준을 학문에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글의 서두에서 적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가치를 어쨌든 설명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과제를 다른 학문들과 달리 인문학만 특권적으로 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2편에서 적을 답변은 역설적입니다. 인문학뿐만 아니라 학문 전체에서 적용될 수 있을 논의인데, 학문 자체는 정말 그 자체로는 쓸모없는 것이 맞습니다. 학문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것을 적용하여 무언가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실용적' 논의로는 학문도 발전하지 않고, 무엇보다 학문과 연관되는 실용적인 기술이나 제도도 발달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Judas Pain
14/08/0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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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역에 대해 그 영역의 용어에 대한 개념한정하기에 기초하지 않은 논리전개와 논쟁이 생산성이 있는 경우는 두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그 용어가 가리키는 본질에 대한 탐구일 경우
2. 해당 영역의 전문가 내지 상당한 소양을 갖춘 사람 간의 대화일 경우
레지엔
14/08/04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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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서 꽤 많은 생각이 있었는데(제 자신이 실용학문의 전공자라서 더 그런 부분도 있는데), '인문학의 필요성', '인문학자의 필요성', '학사 수준의 인문학 전공자의 사회적 필요성'이 서로 강하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꽤 있습니다. 좀 러프하게 말하자면 '인문학'은 전공과 무관하게 필요할 수 밖에 없는 영역이고, '인문학자'는 굳이 '컨템포러리'한 사람이 있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경우가 좀 있고, '학사 수준의 인문학 전공자'를 필요로 하는 경우는 초중등 교육 영역 이외에 딱히 크게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근데 관련된 논쟁에서 이 셋을 동치화시키는 경우가 많더군요. 뭐 현실적으로 '특정 학문 지원'이라는 것이 전공자 숫자 늘리기, 페이 늘리기, 일자리 늘리기와 연결되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14/08/0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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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차원에서는 별로 생각을 못 해봤네요.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두꺼비
14/08/0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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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을 처음 접하면서, 우선 드는 생각은 "어? 나는 아무와도 계약같은 거 한 적 없는데?"였고, 그 다음에 드는 생각은 "그런데 이 방법 외에는 이 사회와 나와의 관계를 설명할 길이 없는데?"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무런 룰도 없고 아무런 원칙도 주어진 바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자연과학에 기반한 물리체계와 그 위에서 발전한 생물체계가 있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자연과학 체계는 우리에게 너무나 아득한 세계입니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도 없고, 우리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지도 못하지요.

그러나 인문학은 무에서 창조된 유의 세계입니다.
실존은 허구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고, 이러한 허구와 실존 사이에서 갈길을 잃은 인간에거, 벌판을 가리키며 이것이 길이다 라고 제시해주고, 그 벌판이 길이 되도록 만든 학문체계입니다. 철저하게 인간 안에서 탄생하였으며, 자연과학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추상과 모호함으로 가득찬 상상과 관념 속에서 인간과 함께 버텨온 학문입니다.

객관적 관찰자로서 세계를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오로지 자연과학이라면, 주관적 행위자로서 필요한 것은 결단코 인문학입니다.
14/08/04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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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고 든 몇 가지 생각을 남깁니다. 정리되지 않은 단상 정도이니 그냥 슥 읽고 넘기시면 좋겠습니다.

1.
현재 한국사회에서 '인문학'은 지나치게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교양'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흔히 문사철이라 불리는 분과학문의 집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출판 쪽에서는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 발생되는 '효과'에 귀속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현재' 그렇다는 말입니다. 즉,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출판업에 오래 몸담으셨던 편집자 분께 들은 일화가 있습니다. 인문학 내 어떤 분과학문(편의상 OO라고 합시다)을 연구하는 노교수에게 원고를 받아 작업하고 "선생님, 책제목을 『OO의 인문학』으로 하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라고 여쭈었는데 그 교수님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라고 되물었다는 일화입니다. 아마 그 편집자는 인문학을 넓은 의미의 '교양' 정도로 생각했을 테고, 이는 지금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인문학 개념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적어도 십수 년 전의 '인문학'은 지금과 같은 의미를 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2.
어쨌거나 인문학의 의미가 넓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넓은 데다 추상적입니다.

그런데 개념을 분과학문 단위로 잡으면 많은 것들이 꽤 명확해집니다. 가령 '역사학의 쓸모'는 상당히 구체적이며, 대중 수준에서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역사학, 혹은 역사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으며, 역사학은 자연과학이나 공학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역사학의 연구 결과는 사회학이나 경제학의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또 가령 '언어학의 쓸모'는 자연과학이나 공학과 연계될 가능성으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철학의 쓸모'는 어떤가요? 제가 철학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현상학은 사회학이나 인류학 방법론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학이나 미학, 종교학 역시 이런 식으로 '쓸모'를 찾으면 다양한 설명이 가능할 겁니다.

'쓸모'라는 개념을 조금 더 파고 들어가면 다시 많은 것들이 명확해집니다. 가령 '쓸모'를 '대학에서 해당 학문을 전공하고 졸업하면 취직을 할 수 있는가'라 묻는다면 많은 인문학의 분과학문들의 쓸모는 없는 것이 됩니다. 혹은, '쓸모'를 '교양 지식으로써 현실생활에 도움이 되는가'를 묻는다면 역시 큰 쓸모는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지만 '현실생활에 도움'의 측면을 따진다면 자연과학이나 공학 전공 지식 역시 현실생활에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컴공과 나온다고 컴퓨터 잘 고치는 것 아니고, 물리학과 나온다고 전기세가 줄어드는 것 역시 아니지요. 물론 약간의 도움은 되겠지만 그 정도의 도움은 '국문과 나와서 소설을 좀 더 즐겁게 읽을 수 있게 됐다'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3.
이렇게 다양한 층위에서 구성되는 '인문학의 쓸모' 논의에서 한 가지 명확한 것이 있습니다. '그 학문에 사회적 자원을 투자할 이유가 있는가' 입니다. 이 이유는 논리적으로 제시된다기보다 역사적/사회적 합의에 의해 구성됩니다. 한국보다 더 계산에 능한 미국 대학에서 인문학 연구를 할 수 있는 건 그게 지배층의 교양이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 교양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지배층의 '교양'이라는 영역이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딱히 지식으로서의 교양으로 합의된 영역이 많지 않습니다. 천자문 못 외어도 되고, 칸트 헤겔은 더더욱 몰라도 됩니다. 물론 역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있는 듯합니다. 근데 이건 역사서를 읽었는지를 따지는 게 아니고, 교과서 수준, 신문 기사 수준의 지식을 평가하는 잣대입니다. 철학에 대해서도 중등교육 수준의 지식은 대강 교양이 됩니다. 플라톤이 국가를 썼고, 칸트가 정언명령이란 걸 만들었다더라 정도만 알면 됩니다.

어쨌거나 한국에서는 이런 합의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면, 뭐가 됐든 서점에 인문학 인문학하는 책이 많이 깔리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합의'에 일정 부분 긍정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른 측면에서는 공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4.
이 논의에서 '인문학'을 '텍스트 독해(력)'으로 병치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합니다. 강유원이라는 철학 연구자는 인문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철학), 내가 살아온 사회는 어떻게 형성되어 왔나(역사), 그 역사를 사는 나는 나를 어떻게 쓸 것인가(문학)" 그렇게 인문학은 자신과 세계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좀더 인간답게 살수 있게 하기 위해, 그 인간을 질문하고, 인간을 둘러싼 세계와 그 세계가 형성되어 온 과정을 질문하며, 궁극적으론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학문이다.-

즉 단순히 인문학의 분과학문을 전공하거나, 인문학 책을 많이 읽는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질문들은 자연과학, 공학, 사회과학, 혹은 경영학을 공부하면서도 답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요컨대 책 안팎의 '텍스트'를 꼼꼼히 잘 읽어내고 그것을 자기 문제로 가져올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대중적으로 가능해지면 쓸모니 뭐니 하는 이야기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4/08/0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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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논점을 많이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크게 세 가지 생각이 드네요.

1) 이 글을 다 쓰고 글을 올린 뒤 두 번 저도 읽어보고 나서, '인문학의 쓸모'가 아니라 '철학의 쓸모'를 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저는 철학 전공자이지 인문학 전체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에, 인문학 전반의 쓸모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마 다음 글은 논의범위를 최대한 좁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글을 쓰면서도 잠깐 하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모 학교 잡지사에서, 친구가 '인문학 기획'을 몇 번이나 시도했다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얘기를 들으며 왠지 그 주제로 글을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인문학의 쓸모'라는 주제로 글을 강행했는데... 음 역시 이 주제로 글을 쓰기 힘든 이유가 다 있는 거군요.

2) 이 글에서 오히려 더 먼저 논의되어야 하는 개념은 '쓸모'입니다. 정확히 지적해주신 부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의 쓸모는 사실 사회적 차원에서이고, 개인 차원에서는 잘 모르겠습니다(그래서 저 개인에게도 어떤 효용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죽을 때쯤 알게 될까요). 다만 그 개념에 대한 규정은,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의 개념과 조금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2편으로 넘겨 도매급으로 처리해볼 생각이었습니다. 2편에서도 유용한 지적을 많이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많은 경우, 논의에서 (물론 논의의 종류마다 달라지겠습니다만) 개념적 규정도 중요하지만 그 개념의 역사적 사용 맥락을 정확히 짚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곤 합니다. 선험적인 개념의 세상에서만 살 수 없는 이상, 이러한 작업은 정확한-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은 대단히 많은 노고를 필요로 하는 피로한 작업이고, 그래서 그와 같은 생산적인 글을 써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글을 쓸 때마다 깨닫게 됩니다. 아쉽게도 위에 올린 제 글은 그와 같은 역사적 위치에 대한 조사를 별로 하지 않은 채 그냥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본 글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부분 자의적이고 혹은 실수로 빼먹은 부분도 있습니다. 인문학 개념과 관련하여 덧붙여주신 논의들에 감사드립니다.
노올자
14/08/04 22:24
수정 아이콘
'인문학'이라는 말을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는 말로 바꿔 보면 인문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좀 더 쉽게 와닿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4/08/04 22:55
수정 아이콘
사실 인문학의 기본적인 트랜드 자체가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지나친 허무주의와 회의주의에 봉착하고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의 영역에서 오히려 인문학적 물음에 대해 더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 단계에 와 있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학문이라는 것 자체의 트랜드가 바뀌는 것이죠. 따라서 인문학적 접근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걸 접근 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자세하게 구체화 시키면 인문학적 현상들을 설명하는 방식이 계량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점점 융합되고 통섭되는 과도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 흐름 속에서 도망갈 수 있는 영역이 제한적이다 보니까 위기라고 하는 것 같구요.

아 그런데 제 입장은 전적으로 아카데믹한 차원에서의 논점이고, 만약 인문학의 세속적 쓰임에 대해서 묻는다면 뭐... 전혀 다른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겠죠.
소독용 에탄올
14/08/0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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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에서도 '계량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대답할 수 없는 주제들이 많은지라,
인문학에서 다루는 영역들이 계량적인 방법으로 융합될 가능성은 생각보다 높지 않습니다.

당장 제가 몸담고 있는 분과학문인 사회학에서 엄밀한 '실증주의'의 전제 위에서 '사회'에 대해 연구한다고 할때,
가용한 수단은 '네트워크'정도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14/08/05 01:45
수정 아이콘
당연히 인문학과 관련된 논제들을 계량할 수 있는 방법 자체는 없고 인간의 인지 능력으로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불가능한가 라는 논제에 대한 대답도 사실 진화심리학이나 뇌과학, 인지심리학 등등의 학문을 바탕으로 논의가 진행되겠죠. 실제로 에드워드 윌슨이 사회학에 생물학을 융합 시킬 수 있다고 의견을 지시한게 거의 반세기 전인데 네트워크 밖에 통섭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비약 같습니다. 사회를 설명 하는 학문이 사회학 하나만 있는게 아니니까요.
소독용 에탄올
14/08/05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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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만이 '사회'를 설명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회학' 내부에서 추구되는 '실증주의'가 현 시점에서 갖는 '측정'상의 한계가 있다는 말을 드리는 겁니다.
애초에 '사회'라는 개념을 이론적-구체적 수준에서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충분히 측정가능할 정도로 잘 조작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지라 , 사회학에 생물학을 융합시킨다고 해서 이 방향으로 측정한계가 늘어날것 같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분과학문으로서 사회학영역에서 대가라고 불리는 양반 중 '사회' 개념을 안쓰는 양반도 있을 정도로, '사회'가 뭔지 엄밀한 '실증주의' 하에서 측정가능할 정도로 잘 합의된 정의 자체가 없습니다.
14/08/0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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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사회가 아니라 사회현상이라고 해야겠네요.

사실 오해의 여지가 너무 많게 위의 글들을 써놔서 어디서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사회라는 복잡계를 계량적으로 분석 하는 것 자체에 대한 시도는 저 역시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윗 댓글에서 인문학과 관련된 논제들에 대해서 계량적 해법을 제시하는건 아마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건 사실 그런 의미도 포괄하고요. 하지만 그게 곧바로 통섭의 여지가 없다는 부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회현상에 대해서(가령 폭력, 범죄, 육아, 교육, 지적 능력의 차이 등등), 진화심리학은 어느정도의 성과를 보여왔고 사실 학문 자체로서도 정말 눈부신 발전을 보이고 있는 상태죠. 사실 이러한 성과가 없었으면 통섭같은 얘기는 잠꼬대 같은 소리에 불과했을 겁니다. 사회 현상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진화심리학이 성과를 보인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은 그 성과자체의 내용도 있겠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생명체로서의 개인의 인지구조의 형성이라는 미시적 접근을 통해서 사회적 현상이라는 거시적 차원의 설명을 아주 일관된 형태로 제시할 수 있다는 점 입니다. 경제학으로 말하면 거시경제의 미시적 기초 같은거고, 물리로 말하면 통일장 이론 같은 거죠.

그런 점에서 더 과학적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더 과학적이라고 그게 더 우월하고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데카르트는 중요하지만 데카르트의 송과선을 현대에 와서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없죠. 칸트는 중요하지만 칸트의 12범주를 진지하게 미는 사람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후기구조주의나 해체주의도 현대에 와서 인간의 언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자 저절로 문자 그대로의 진지한 해석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지금의 주류과학이 진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의 주류과학 역시 언젠가는 무언가에 의해서 대체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패러다임과 트랜드의 문제죠. 진리라는 것 자체가 너무 요원한 것이 애초에 학문이기 때문에.

사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애초에 이런 트랜드의 쉬프트가 없었으면 왜 인문학이 위기겠느냐 하는 겁니다. 인문학이 위기라는건 한국의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라 몇십년 전부터 전세계적인 현상이었는데요. 과거에 인문학이 학문의 주류로서 트랜드를 주도하던 위치를 유지했다면 위기일리가 없겠죠. 하지만 그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쓸모 없는 것"이라는 치부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인문학이 살아남으려면 지금의 주류와 통섭하는 방법 밖에 없고 그게 아니라면 주류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으로 도망쳐야 한다고 표현한게 첫 댓글의 내용입니다.

P.S 이 정도의 길이의 댓글을 모바일로 썼다가 로그인 풀리는 바람에 2번 씩이나 날려서 피시방 와서 씁니다ㅠㅠ... 추가로 아래 댓글에 팟저님이 거신 링크의 구밀복검님의 댓글이 인상 깊네요. 그 분의 말씀대로라면 합의가 없다에 방점일 찍는다는 것 자체가 인문학의 기능상 한계를 말하는 것이라; 저 보다는 조금 더 나간 스탠스를 견지하고 계시지만 읽어볼만한 댓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8/0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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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이라는 '개념'자체도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사회현상 자체가 '분과학문 합동연구'를 당연히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회현상을 연구함에 있어 이미 '분과학문' 사이에서 간학제간 연구가 일상화된 상황에서(사회학자만 해도 정치학자, 경제학자, 보건의학자, 심리학자, 물리학자 등과 공동연구를 하곤 합니다..... '정책', '사회정책'처럼 애초에 '모호한 성격'을 지니는 '간학제간 접근'으로 출발한 영역도 있고요), 현재의 상황을 말하는건지, 아니면 그이상을 말하는건지 잘 모르겠거든요.

PS. 한국에서 '인문학의 위기'는 다소 어색한 표현입니다.
마치 인문학이 과거의 어느시점에서 '흥'했다가 위기를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애초에 자리잡은적이 있는가 의심스럽고, 더욱이 흥한적 없는 인문학이 새삼 '위기'를 경험할리는 없다고 봅니다.
사실 최근에 대두되는건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으로 '생계유지'를 할 수 있는 '자리'의 재생산의 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14/08/0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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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한국 내에서의 돈 벌이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기초과학 자체도 위기죠. 그리고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인문학이 메인이었던 적이 있느냐고 한다면 반문한다면 그래도 예전에는 적어더 세상을 이해하는 한 방식으로서 어느정도 실질적인 설명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믿음은 존재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회학 같은 경우는 간학문적 성격 뿐만 아니라 실용학문적 성격 역시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기초학문인 인문학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제 논증과는 좀 거리가 있는 주제 같습니다. 실용학문이야 사회의 근간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한 자기 몫을 기지죠. 의학이나 법학에 대해서 세상을 이해하는데 본질적인 해답을 주지 못하므로 위기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협업과 통섭은 좀 다른 개념인걸로... 통섭은 분과학문 간에 학문적인 다리를 놓는거죠.
소독용 에탄올
14/08/0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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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실질적인 설명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는지 자체가 의문시 될 수 있습니다.
이전엔 해당하는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현재는 감소한 것인지, 이전엔 해당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다수라고 '믿었'는데 현재는 아닌지, 해당하는 믿음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내지 못한것이 문제인지, '재생산'하지 못한것이 문제인지도 불분명 하고요.

'분과학문' 사이의 학문적인 다리에, 간학문적 연구 이상의 구체적인 양상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14/08/0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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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믿음 자체는 예전이 훨씬 강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터 그 믿음이 깨지기 시작했느냐는 보는 사람이나 관점마다 다르겠죠. 지금 우리는 과학적 세계관에 종속되어있지만 실제로 과학으로 만물을 다 설명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형성된건 적어도 뉴튼 이후죠. 과학 혁명 이전에는 철학과 과학이 분과학문으로서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하는 것 조차 사실 어렵다고 생각하구요. 따라서 그 당시까지만 해도 철학이 곧 과학이고 과학이 곧 철학인게 됩니다. 믿음이 있을 밖에 없죠. 마치 프레이져의 황금가지에서 나오는 원시부족들이 현대인들에 비해 미신을 더 잘 믿는것과 같은 이치니까요. 비약이 좀 심하지만...

그리고 통섭의 사례로는 위에서 언급한 진화심리학이 있죠. 뭐 행태경제학도 예시가 될 수 있고요. 사실 저는 통섭이라는 말이 굉장히 과대평가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윌슨의 주장도 사실 너무 나간 부분이 많아서; 아래 realise님의 댓글에서 언급 됐듯이 과학이 인문학적 영역을 그냥 치고 들어오는 경우를 보고 통섭이라고 칭하는 사례도 흔하죠. 따라서 통섭되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인문학에도 어느정도 과학적 토대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14/08/04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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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뇌과학을 흡수하여 진화하고 있죠.
14/08/05 01:59
수정 아이콘
사실 모든 학문의 총아인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과학의 성과는 철학의 도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여태까지 그래왔구요.

그래서 이를 진영논리로 파악하는건 참 웃기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철학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면 어느쪽이든 진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어떤 특정한 분과학문에서 그런 새로운 활로를 실질적으로 개척하는가에 있어서 전통적인 인문학 계열은 힘을 많이 잃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말그림
14/08/0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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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과학문들이 극도로 발달하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많아졌지만 각 학문을 연결해줄 수 있는 어뎁터들은 점점 옅어지는 추세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것들이 통섭 혹은 융합이라고 불리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분과학문들이 특화된 탓에 융합하거나 통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인문학이 이런 융합과 통섭에 있어서 어뎁터의 역활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학문들은 인간을 위한 것이고 인문학은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기존의 인문대학 체제는 지금의 현실이 보여주고 있듯 대부분 해체되고 교양대학 쪽으로 변화해갈 것이라고 봅니다. 분과학문들을 융합할 수 있는 매개학문으로서 인문학이 아마 대세가 되지 않을까합니다.
14/08/0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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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실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의 앞으로의 방향도 이 쪽입니다. 다음에 쓸 글에서는 이러한 통합적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현행 인문대학 체제에는 여러 변화를 초래하겠지만요.
말그림
14/08/05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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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아마 독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뭐라해도 인문학은 독서에서 시작하니까요. 특히 교양으로서 혹은 통합적 학문으로서는 더더욱 독서가 중요해질 겁니다.
14/08/0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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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자로서 한말씀 드리면 고객가치를 만들때 가장 중요한 것이 고객, 즉 인간입니다. 인간을 모르고 고객에게 가치를 제안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럼 인간을 알기 위해선 어떻게해야할까라는 의문이 생길때 바로 인문학 서적을 찾습니다.

시대의 변화에따라 인간이 변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보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부분에서 인문학은 꼭 필요한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마케팅도 결국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에 인문학은 마케터들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영원한초보
14/08/0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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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가 강한 발언으로 넷상에서 욕을 많이 먹긴하는데
이 분 강연의 핵심은 독설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분 강연 좋아합니다.
14/08/05 01:39
수정 아이콘
어떤 관점에서 다음 글이 진행될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인문학 없는 인문학 열풍"은 "독서 없는 독서 열풍"처럼 실체가 없을 뿐더러
이 사회의 속물적인 경향을 대변하고 있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논의들은 창의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인문학이란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실천적으로
고민해 본 적도 없는 자들이 학문의 상아탑 근처에서 허접한 책들을 쌓아두고 독서를
많이 했다고 자랑하는 현상으로도 나타납니다. 진짜로 철학책 한권을 제대로 독파하려면
한 달도 턱없이 모자랄 수 있겠지요.

"리딩으로 리딩하라"라는 책을 읽으면서 속으로 실소를 금하지 못했는데, 저자의 엄청난
독서량과는 별개로 실제 읽은 내용에 대한 조악한 이해 때문이었습니다. 저자는 세계의
위인들은 인문학 독서를 통해 그러한 성취를 이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 역시 꾸준히 독서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제가 스티브 잡스보다 인문
독서를 더 하지 않았을까 의심도 하지만 저는 잡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즉 이러한 주장은 부처님을 믿으면 각종 시험에 패스할 거란 주장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책을 팔기 위한) 저자의 순진한 주장의 이면에 인문 독서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가리키는 의외의 면이 있습니다. 위에서 어떤 분이 말씀하셨듯이 철학,문학,역사학,언어학,
종교학 같은 것들이 왜 하나로 묶여질 수 있는가... 이상하지요.


인문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학문입니다.
인간 그 자체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고 움직이게 하기 위함이지요.
인간을 움직여서 지배하거나, 인간을 움직여서 근본적으로 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의 프리즘이나 틀거리로 이해
하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불가해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어떤 커리큘럼, 특정한 방식, 정상과학이
강요하는 교과과정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 방식을 한정 지을 수 없습니다. 단 하나의 금언이나 단
하나의 문학 작품이 인간본성을 꿰뚫게 해주고 시대와 역사를 넘어서는 이해를 섬광처럼 던져
주기도 하지요. 반대로 수많은 인문 독서를 통해서 이러한 이해에 다다르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지배계층들이 왜 인문학 공부를 하는가? 그리고 왜 피지배 계층을 직능적인 독서에만
머무르게 하는가? 저자는 "성공" 관점에서 인문학 공부를 역설하고 있는데 대부분 우리에게 있어
인문학의 공부는 실제적으로는 무용지물입니다. 우리는 자신 하나를 건사하기 위해 노동을 파는
자들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인문 공부를 하고 싶다면 이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은
"지적인 욕망"에 철저히 기대어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그 지적인 욕망을
가끔 허영이라 부릅니다.

원래 인문학은 잉여로운 자의 학문이었고 지배의 학문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자가
계층상승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었지요. 그러나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에겐 반대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굉장히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위대한 철학자가 한마디 했지요. '물고기는 평생 물에서 살지만 물에 대해서 대체 뭘 알겠는가?'
엽기토끼
14/08/05 03:29
수정 아이콘
훌륭한 직관과 통찰이 스며있는 글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학문적 관점에서 볼 때, 자연과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치판단의 영역에서 벗어났고, 사회과학 또학 경제학을 필두로 수학적이고 통계학적 연구 방법들을 활발하게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는 인문학과의 접점이 점점 더 옅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고, 이러한 추세가 역진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토머스 쿤이 오래전에 지적한 것처럼, 현재의 사회과학이 우러러보는 자연과학 또한 권력이나 주관과 같은 현실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본문에 언급하셨지만, 비록 인문학이 학문의 '토대'는 되지 못할지라도, 그 '토대'를 비판하고, 단단하게 하며,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메타학문으로써 여전히 유용하고 또 필요하다고 봅니다. 주류경제학의 대전제인 인간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면서 최근 많은 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는 행동경제학이란 분야가 그 사례입니다. 행동경제학의 문제의식이 근본적으로 보자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인문학적 상상력에 기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인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 혹은 변화하게 될 방향도 이 부분이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학문적 차원에서 말이죠.
14/08/05 06:47
수정 아이콘
어제 친구들이랑 전어회에 소주한잔 하고 일찍 자는 바람에...
이런 좋은글을 놓쳤군요. 잘 읽었습니다.

일단 인문학이 꽤나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인문학이 뭐다 라고 콕 집어 이야기하기는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당장 인문학중에 범위를 좁혀서 철학만 해도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은 그 궤를 완전히 달리 합니다. 그럼에도 인문학이라고 불리는 학문들의 근본 위기는 그 학문이 인문학,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경쟁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거의 무용하다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학문에서 초기의 인문학은 현실적인 학문으로 다루어졌습니다. 실재의 세상을 이해하고 현실적인 대처를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학문이었습니다. 사계절의 변화, 인간의 행동, 자연에 대한 이해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서 매우 강력한 도구 하나가 철학으로부터 분리됩니다. 그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그리고 이 과학적 관점이 제대로 실재의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역할을 한 시기 자체가 비교적 최근에서야 일어난 일이고, 여기서 일어난 발견들은 사실상 인문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지금이 그 과도기인 거죠.

물론 사실 몇몇 전통적인 인문학자들은 이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를 보입니다만, 인문학이 실재의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경쟁력이 없다는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인문학중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 상당 부분이 멀지 않은 시기에 학문으로서는 완전히 해체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인문학이라는 분류 자체가 사라지고, 유용한 부분만 남아 각 학문의 한 분야로 떨어져 나갈 거라고 보구요. 과거에 철학이었던 부분은 지금 수많은 분과학문으로 떨어져 나와 과학, 경제, 정치, 사회 등의 독자적인 학문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요.

이 경쟁력이 없다는 문제 때문에 현대의 인문학은 세상에 대한 이해라는 전통적인 관점은 포기하고 독자적인 생존 방법을 모색합니다. 과학적 성과를 완전히 거부하거나, 성과의 틈새에서 나이브한 주장으로 이어나가고 있죠. 그 것은 인문학이 발전해야 일베가 없어지고 사람들이 인간 본연을 모습을 찾아 도덕적으로 올바른 세상으로 변한다는 주장으로 사실상 퇴행, 도피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라는 꽤나 강력한 반례가 존재하고 있고 오히려 인간 본연의 모습은 28사단의 사건, 아래 김해여고생 사건에 더욱 더 가깝습니다. 인문학이 인간을 도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 자체도 사실 근거가 애매한 주장이고 차라리 이쪽으로는 법이 비교할 수도 없이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죠. 아니면 통섭이라는 개념을 들고 와서 인문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정작 윌슨의 통섭은 오히려 자연과학에 의한 전통적 인문학의 해체를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애플의 인문학도 우리의 기술자, 경영자들이 만들어낸 인문학(사실은 상품성)이죠. 대중들은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인문학이 무엇인지 전혀 모릅니다. 인문학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중요하기 때문이다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이 글의 조회수가 그 것을 대변한다고 보구요.

인문학에게 솔직히 아쉬운 점은 그들이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죠. 분명히 계량적인 분석 자체가 가지는 한계점이 있고 이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량적인 분석에 익숙하지 않은 인문학은 오히려 자신들이 반박하는 각 분과학문의 한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상태에서 우리가 너희 학문의 한계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하면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이지요. 마치 인간의 본성에 대해 우리가 답을 주겠다. 라면서 프로이트와 라캉을 들고 나오는 것 과 같은 거죠. 오히려 이 한계에 대한 대답은 인문학이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각 학문 스스로가 한계를 이해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습니다. 위에 나오는 행동경제학이 그런 분야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섭은 사실상 전통적인 인문학의 해체를 이야기하고 여러 다른 학문적 성과 위에 새로 인문학을 써야 된다는 이야기죠.

앞으로 본 글이 어떻게 흐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결국 인문학의 분야는 크게 축소될 것이고 인문학은 결국 과학적 성과안에서 논의를 펼치거나(자유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또는 과학이 말 해 줄 수 없는 부분(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각 학문 분과-법철학, 정치철학, 경제철학, 과학철학같은-로 분리 흡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것도 아니면 인민의 아편으로 남거나요. 쓰신 대로 학문의 기초가 아니고 오히려 인문학이 앞으로는 다른 학문을 발빠르게 따라가야 하는 것이고 자연과학이 인문학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이 것을 거부하는 인문학은 살아남지 못 하겠죠. 그리고 인문학 축소에 대해 인간성 상실, 비인간적인 세상 등으로 대표되는 반발은 사실 군자의 도를 버리고 어찌 서양 오랑캐놈들을 따른단 말이냐... 의 현대버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14/08/0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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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pt21.com../?b=8&n=48142

얼마 전...이라봐야 작년이긴 한데, 그맘때 이와 관련해 논담이 한차례 있었습니다. '구밀복검'님 말씀이 인상깊더군요.
14/08/0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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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글을 보면서 구상한 글이 맞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일에 치어 그리 깊은 글이 아닌데도 7-8개월이나 걸려서 쓰게 되었네요. 다음 편도 빨리 써 봐야 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게 될지...
'구밀복검'님의 글도 그렇고, 바로 위의 Realise 님의 댓글도 그렇고, 전통적 인문학이 더 이상 인문학의 패러다임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뼈아픈 지적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인문학자들이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드는데... 아직 딱 정답이 떠오르지는 않는군요.
14/08/0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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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을 궁금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어떻게 전개해나가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가능하면 빨리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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