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그럴께 명량해전이 일어나기전에 도망을 쳐버러셔 결국 임진왜란이 끝나고 잡혀 참수를 당했으니까요.
그런데 재미난건 명량해전에서 승리를 이끌 13척의 배가 남아있던건 배설의 공이 지대했다는거지요.
주로 칠전량해전에서 원균이 개박살나자 배설이 원균의 말을 무시하고 12척의 배를 이끌고 도망갔다고 알려져있는데 실록에서는 오히려 적선 8척을 깨부수는 유일한 성과를 낸게 배설입니다. 적이 야습을 가할때 김완과 함께 맞서싸우기도 하고 원균이 먼저 도망치자 도망치지않고 남은 경상우수영 배를 이끌고 돌아갑니다. 이때 배전이 보전한 병력과 배가 명량해전의 조선수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배설이 이렇게 뒷수습을 안했다면 명량해전의 대승은 있기도 힘들었죠.
배설 말고도 다른 배들도 알아서 도망가고 임지첨사 홍견 같은 경우는 10척 넘게 데리고 도망갔다가 명량해전 이후에야 수군에 복귀합니다.
그걸보면 배설이 겁이나서 도망갔다고 할 수는 없겠죠.
8월 18일
회령포에서 배설이 끌고 도망쳤던 전선 10척을 입수하여 그나마 수군의 구색을 갖춤.
여기까지만 끝났다면 배설은 아마 칠전량해전의 참패를 잘 수습해서 명량해전의 대승의 기반을 닦은 뛰어난 장수로 기록되었을겁니다.
실제로도 이순신은 배설에 대해 딱히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 심복인 권근과 교체될때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그걸 보면 나름 유능한 장수였다고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인데
배설은 칠전량패전 이후 공공연히 조정과 전쟁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고있었습니다.
교서에 절하기를 거부하고 조정과 전쟁에 반감을 대놓고 드러내며 많이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27일 을유, 맑다.
배설이 와서 만났는데, 많이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수사는 어찌 피하려고만 하시오!"라고 하였다.
─ 이순신, 『정유일기』 7월 27일.
혹자는 PTSD라고 하네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칠전량해전의 참패를 겪고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원균을 대장에 두어 전쟁을 말아먹게한 조정에 대한 반감이 그대로 맺힌게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다 이순신은 13척으로 133척을 이기자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배설로서는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라는 생각이 들겠죠.
이순신도 원균처럼 부하들을 다 사지로 보낼려고 하냐 라는 의심이 들었던것일수도 있습니다.
결국 배설은 도망칩니다.
이순신은 이에 대해 일기에 그냥 한줄로 담담하게 '배설이 달아났다' 라고 만 썼습니다.
여기서 재미난건 배설이 왜군 점령지대를 거의 단신으로 돌파해버렸다는겁니다. 나름 후덜덜한 인물입니다.
이후 전쟁이 다 끝나고 1599년 배설은 사로잡혀 참수됩니다. 이때 사람들을 모아두고 반란 음모같은 이상한짓을 꾸몄다가 조정이 배설의 부친과 형제를 붙잡아 인질로 잡은 후 배설을 체포해서 처형했습니다.
공황장애가 있었던걸로 보이고 또 조정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었던걸로 보입니다.
뭐 사실 배설의 모습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합니다. 13척으로 133척과 맞서 싸우라니 아무리 봐도 무모하고 말도 안되는 전투라고 밖에 볼수없고 이미 배설은 칠전량해전에서 대장의 삽질로 큰 참패를 맛본경험이 있죠. 그때문에 전쟁에도 회의가 생기고 두려움도 생기고 더군다나 13척으로 133척을 이기자는 이순신은 그냥 적진으로 돌격하자는 원균과 똑같이 보였을겁니다. 또 대장이 부하들의 목숨을 다 날려버리는구나 라고 생각했겠죠.
막말로 사지를 벗어나 간신히 살아나왔는데 이번에 또 13척으로 133척과 맞서 싸우라고 하니 아니 이 xx가 라는 소리가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배설의 모습은 그래서 일반적인 반응으로 보이고 그래서 더더욱 이순신이 일반인의 범주를 넘는 위대한 인물이라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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