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무방당일감개 半畝方塘一鑑開 반뙤기 연못 거울처럼 열려
천광운영공배회 天光雲影共徘徊 하늘빛, 구름 그림자 함께 배회하네
문거나득청여허 問渠那得淸如許 묻노니 너는 어디서 이처럼 맑음을 얻었는고
위유원두활수래 爲有源頭活水來 근원이 있어 (源頭) 산 (活) 물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2)
작야강변춘수생 昨夜江邊春水生 지난 밤 강가에 봄물이 불어나더니
몽충거함일모경 蒙衝巨艦一毛輕 거대한 전함도 터럭처럼 가볍다네
향래왕비추이력 向來枉費推移力 이전엔 당겨 움직이려 힘들이며 애썼는데
차일중류자재행 此日中流自在行 오늘은 강 가운데 저절로 떠다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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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생의 관서유감입니다. 두 수 모두 유명하지만 첫 수가 조금 더 유명하지요. 마지막 두 연을 문답체로 엮어서 느낌이 살게 만든 것도 멋지지만, 반뙤기 작은 연못 깊은 곳에서 살아있는 맑은 물이 끝없이 솟아나와 결국 가장 크고 아름다운 것들 (하늘빛, 구름 그림자)을 자기 속에 품은 모습이 구도자의 어떤 경지를 잘 비유했다는 데서 많은 점수를 받았지요.
두 번째 수도 참 좋지요. 공부하다보면 힘을 얻는 순간이 오고(得力), 그렇게 힘을 얻으면 마음의 규모가 크게 확장되는 걸 느낍니다. 본진의 덩치가 부족할 때는 캐리어 하나 뽑는 것도 버겁지만, 한 번 스노우볼이 굴러가고 규모의 경제가 확보되고 나면 스타게이트 쫙 지어서 캐리어를 부대단위로 운영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되지요. 일전엔 올바른 사유를 하고 올바른 행위를 실천하기 위해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가듯 고생스레 노력했다면, 이렇게 한 번 에너지가 확보된 뒤에는 에스컬레이터를 탄마냥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그런 경지를 잘 비유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연작시들을 보고나서야 [아, 주희가 사기꾼이 아니었구나]하고 인정했답니다. 언제 한 번 피쟐에도 소개해야지 생각했었는데, 마침 [독서] 이야기가 흥하길래 독서? 독서? 어? 관서유감이나 이번 기회에 소개해볼까? 하고 슬쩍 발 담궈봅니다.
p.s. : 저는 독서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우월한 지식획득의 수단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해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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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성리학을 열심히 공부한건 아니지만(어떤 의미에서는 겸손일지 모르겠지만)
저 두 시는 제가 저번에 자게에 썼던 글과 의미하는 바가 아주 절묘하게 일치하는 느낌이 드는군요.
아쉽게도 그 글은 삭게로 향하였지만 이 두 시를 읽으며 제가 글을 쓴 것에 이런 의미가 있었음을 깨닫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