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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4/25 11:01:35
Name 제리드
File #1 Cyworld.jpg (127.2 KB), Download : 58
Subject [일반] 스승의 날의 추억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스승의 날 당일도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일찍부터 학교 일과는 시작되었다.
요즘은 촌지 문제 등 때문에 스승의 날에 휴업을 하는 학교가 많다고 한다.
산구석에 쳐박힌 우리학교는 시설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촌지라던지 부정은 많이 없었다.
우리 반은 2학년 4반. 달마도를 닮아서 별명이 달마인 담임 선생님의 너그러움 아래 모인 사고뭉치들로 유명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일찍 학교를 오니 옆 반(2학년 5반)이 분주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바로 스승의 날 이벤트였다. 그제서야 오늘이 스승의 날인 것을 알았다.
5반은 창문마다 색색깔의 색지를 오려 붙이고 풍선에 별도 준비해서 매달았다. 칠판에는 온갖 '선생님 사랑해요' 등의 메시지가 가득했다.
반장 녀석은 근처 파리바게트에서 근사한 케익을 사오더니 촛불 켤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대단한데, 라고 생각하고 우리반을 들어가보니, 황량했다.

"야! 우리도 뭐 해야 되는거 아냐? 너무 비교되는데"

아무리 선생님이라그래도 내심 바라실 텐데, 더구나 옆 반에서 요란하게 행사를 하니 몰랐다고 넘어가기도 그렇다.
반장이었던 녀석을 쿡 찌르니 "그런가?" 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뭔가를 가져오는가 싶어서 보니 양초다. 옆 반에서 얻어왔단다.

"우리도 케이크 하나 사서 잘라드리지 뭐"

하더니 1층 매점에서 500원짜리 도넛을 하나 사와서는 그 위에 초를 막 꽂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옆의 친구가 마시던 음료수를 뒤통수 강타 후 뺏아서 구색을 맞췄다.
칠판에 선생님 사랑해요도 크게 써놨다.

"선생님 나이가 몇이시지? 모르니까 다 박아 그냥!"

...해서 완성된 것이 위의 사진이다.
선생님은 아침 조회 시간에 교실에 들어오시더니 저걸 보시고는 그냥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나가버리셨다.
우리들의 정성이 부족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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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실습중인 예비 교사입니다.
사립 학교다 보니 예전의 선생님들이 많이 남아 계셔서 반갑네요
오늘 실습이 끝났습니다.
인사차 예전 담임 선생님을 찾아뵙고 얘기를 나누던 중 위의 에피소드가 생각나 찾아보니 싸이월드에 저 사진이 있군요!
동기놈들 하고 얘기하니 다들 저럴때가 있었지 하고 빵 터지네요. 하하~
학교란 결국 어찌어찌해도 대체할 수 없는 추억거리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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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패삼겹두루치기
14/04/25 11:19
수정 아이콘
요새는 스승의 날이라고 특별한 것 없다고 하더라구요.
부모님들이 아이들편으로 조그마한 먹을 것 사들고 가게 하는 건 애저녁에 촌지 취급 당해서 없어졌고 아이들끼리 장난식으로 여러 이벤트 준비 하는 것도 사라진지 한참 되었다는군요. 이게 맞는방향인것 같기도 한데 뭔가 아쉽기도하고 뭐 그렇네요. 선생님 되셨다니 축하드리고 좋은 교육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제리드
14/04/25 11:57
수정 아이콘
아직 된건 아니고 실습생입니다 올해 4학년이에요 흐흐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알킬칼켈콜
14/04/25 11:22
수정 아이콘
갓 스무살 되고 아직 철없을 때 선생님한테 우르르 찾아가서...20명이서 병문안용 오렌지주스 세트 하나 들고가서 냉면이랑 만두 20인분 얻어먹고 왔던 기억이...어이구 철딱서니들 하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크크크
14/04/25 11:24
수정 아이콘
스승의 날... 케잌이나 선물 같은 것도 다 필요 없고 노래와 찬사도 필요 없으니 그 날 하루 만이라도 욕 좀 안먹고 싶네요. 스승의 날 나오면 촌지 바라고 애들 나오란다고 욕 먹고 재량 휴업일 걸면 애들 맡길 데 없는데 지들 좋자고 쉰다고 욕 먹고... 다른 기념일들은 적어도 좋은 면들을 봐주려고 노력하던데 스승의 날은 조용히 방심하고 있다가 욕 먹었던 적이 많아서 스승의 날이 다가오는게 가끔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임고 보셔야 할텐데 교생 실습에서 좋은 기운 많이 받아가세요. 교생 실습 때 애들이 예뻐보여야 합격한다고 해요. 아이들과 좋은 시간 되셨길 바랍니다.
14/04/25 11:33
수정 아이콘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남중3학년때였습니다.
한참 똘끼로 똘똘뭉친 애들이 특별한 이벤트를 해주자고 한게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반장이 사온 케이크를 얼굴에 던지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계란들을 하나씩들고 던졌습니다.

참 못됐죠...
14년이 지났지만 죄송스러워서 잊혀지지 않네요
14/04/25 11:48
수정 아이콘
흐흐 중학생의 패기란...^^
14/04/25 14:44
수정 아이콘
제가 그 선생님이었으면 그 날 집에 돌아가서 울었을 것 같네요. 아이들은 순진하고 그래서 잔인한 행동을 너무 쉽게 하지요. 다만 웃음거리로 삼을 추억으로 가지고 계시지 않다니 다행입니다.
14/04/25 16:39
수정 아이콘
네 후기를 알려드리면
그 즉시 담임선생님께서는 조퇴를 하셨고
우리반만 따로 하루종이 학생부장 선생님께 혼이 났었습니다.

다들 고등학교 3학년때 모여서 스승의날에 찾아갔다는 소식을 듣긴 들었는데
전 다른지방 학교에 다니느라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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