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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3/31 10:32:33
Name 서늘한바다
Subject [일반] 손끝하나
아침에 핀 벚꽃을 보고 넘 기분이 설레여서 갑작스럽게 연애담 하나 꺼내놓고 싶네요^^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행사때문에 찾아간 해남.
낮부터 얼큰하게 취기는 올라 있었고 스탭들과 뒷풀이로 막걸리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죠.

원래 술이 들어가면 잘 웃고 즐거워지는 편인데 게다가 행사가 마무리가 된다는 기분에
그 자리는 참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다가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죠.
앞으로 사회문제에 대응할 너의 입장은 뭐냐?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소신껏. 나는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대안공동체의 활성화로
내 주위의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사는게 목표다. 뭐... 이런 논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딴에는 참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고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폭풍같은 고함과 함께 "그"가 열변을 토하더군요.
"그런건 다 거짓말이라고. 다 뿌리채 뽑아버려야지 아무 소용 없어."
그의 말은 취기에 치기에.... 얼토당토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참 예뻐보였습니다. 청순해 보였고 고와보였습니다.

사회정의를 이야기를 하지만 조금은 발을 빼고 있는 저같은 사람한테는 항상 마음의 빚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기분이 싫지만은 안더군요.

그치만 저도 지기를 싫어하는 성미라 같이 소리지르며 맞대응을 했고 진짜 싸움 직전까지 갔었죠.
그런데 그 싸움조차 싫지만은 안더라구요^^

대충 술자리가 마무리 되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그와 저는 잠시 술을 깨기로 하고 숙소앞 평상에서
앉았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앉아서 이런 지런 이야기를 하는데 저쪽 끝에 있던 그가 어느새 제 옆까지 왔더라구요.
새까만 밤하늘... 버드나무인지 느티나무인지 모를 나무가 조심스럽게 살랑이고 별들은 흐릿하나마 빛을 내고...

이 나무는 뭐야? 아까 봤던 그건 뭐지? 이런 시답지 않는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도중에 문득 새끼손가락 끝에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새끼손가락이 제 새끼손가락에 살그머니 닿아있더군요. 그 어떤 스킨쉽보다도 더 두근거리고 설레였습니다.
그의 손가락과 제 손가락이 맞닿아있는 그 고작 일미리도 안될것만 같은 그 지점이 온 우주를 담은 것처럼
두근두근...  너무나 조심스럽게, 수줍게 움직이는 새끼손가락의 움직임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미로웠답니다.

두근거림을 억누르면서.. 전 도도한 여자였으니깐요^^.
"너 내일 어떻게 일어나려고 그러니. 우리 5시에는 일어나서 나가야해"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던진 말에 그는
"누나. 나 정말 다른 사람이 깨우면 못일어나거든. 그런데 누나가 깨우면 일어날거야. 꼭 일어날거야.
그러니까 누나가 나 깨워줘야해."

써 놓고 보니 참 별 말 아닌데. 열의를 담아서 거의 손을 맞잡듯이 하고서는 제 무릎에 얼굴을 묻듯이 하는 자세로
말을 하는 그를 보니..

저도 모르게...
"키스해줘.."

손끝하나의 따스함이 입술로 온몸으로 퍼지는 순간이 되더라구요.

* 연애란 이런거 같습니다. 아주 사소하게 퍼지는 따스함, 우연히라도 스치는 손길이 마음을 열게 하고
그게 시작이 되어서 함께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거 말이예요.
모두들 꽃들이 만개한 봄날... 아름다운 사랑을 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해도
그 따스한 손끝하나의 기억으로 다시한번 맘을 잡고 살아가게되더라구요.
그게 바로 사랑이 주는 힘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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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사진
14/03/31 10:35
수정 아이콘
마치 영화처럼 그림이 그려지는 기분입니다.

봄하고 어울리네요.
서늘한바다
14/03/31 13:00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남편하고 처음 연애 시작될때 기억인데.. 여전히 아련하네요^^
노련한곰탱이
14/03/31 11:13
수정 아이콘
숲들숲들...
서늘한바다
14/03/31 13:00
수정 아이콘
숲들숲들은 뭔가요?
유행어는 진짜 모르겠어요...
노련한곰탱이
14/03/31 13:05
수정 아이콘
부들부들의 변형입니다. 지니어스2에서 인강강사로 유명한 남휘종씨가 먹이사슬게임 도중 '숲-들-숲-들 가라고 했죠?'라는 식으로 같은 팀원을 갈구는 장면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서늘한바다
14/03/31 13:08
수정 아이콘
지니어스를 안봐서 ^^;;

여튼 이해됐습니다!
14/03/31 11:23
수정 아이콘
아 졸렸는데 잠이 확 깨네요. 감사합니다.
서늘한바다
14/03/31 13:07
수정 아이콘
전 남편이 제 불면증을 고쳐준 터라 남편하고의 추억을 떠올리면 항상... 잠의 세계로.. ^^
생겨요
14/03/31 11:33
수정 아이콘
달달하네요 크
요즘 봄이라서 그런지 달달한 글이 많이 보이는거 같습니다.
서늘한바다
14/03/31 13:11
수정 아이콘
조금만 더 달달해서 토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연애할 때 항상 남편은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를 마시더라구요. 참... 하는 행동이나 생긴건 믹스커피가 제격인데말이죠.
그래서 왜 그런것만 마시냐고 물었더니

"내 인생에서 달달함은 너 하나로 충분하니까..."

이건 나중에라도 써먹으시라고...말해드리는 거예요^^

정말 넘어갔었거든요.
14/03/31 13:34
수정 아이콘
엌크크크크크크 예상치 못한 크리티컬 데미지가..ㅠ
생겨요
14/03/31 19:53
수정 아이콘
으앜크크
남편분이 정말 달달하시네요
이쁜 사랑하시길 흐
키니나리마스
14/03/31 20:56
수정 아이콘
으악 현실썸툰이 요기있네 ㅠㅠ 나는 왜 뒤늦게 이 글을 클릭해서.. ㅠㅠ
옆집백수총각
14/03/31 12:06
수정 아이콘
숲들숲들..
서늘한바다
14/03/31 13:12
수정 아이콘
후후후
14/03/31 12:06
수정 아이콘
아아 이것은 신춘문예여야만 합니다...
서늘한바다
14/03/31 13:11
수정 아이콘
^^
뇌업드래군
14/03/31 12:41
수정 아이콘
글쓰신분 실화인가요?
숲들숲들....
서늘한바다
14/03/31 13:15
수정 아이콘
실화네요^^

정말 마음가는데로 몸가는데로 물 흐르듯이 시작했던거 같아요.

지금은 그 순간이 제 인생에 최고의 행운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항상 감사하고 살죠.
14/03/31 13:34
수정 아이콘
달콤달콤하네요. 캠퍼스에도 벚꽃이 피어나고 있어서 핑크빛이 만연한데 말이죠:)
꽃보다할배
14/03/31 14:17
수정 아이콘
현재면 비공비공인데 과거라고 하시니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됩니다. 여자분들이 확실히 글도 감성적으로 잘 쓰시는듯...
14/03/31 14:45
수정 아이콘
숲들숲들...
14/03/31 21:20
수정 아이콘
글이 참 산들산들 하네요...
호느님
14/04/01 08:10
수정 아이콘
괜히 봤어요 엉엉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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