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리뷰] 또 하나의 약속(2014) - 영화를 보다 문득 부끄러워지다
"나한테는 딸이 하나 있어요. 아빠 고생한다고 돈 벌러 간 착한 딸이에요. 그 딸이 큰 병을 얻었는데.. 회사에서는 책임이 없대요."
2003년 열아홉 살의 나이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입사했던 故 황유미양은 2005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 꽃다운 스물 세 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측은 그녀의 죽음이 산업재해와 무관하다는 입장으로 일관했고 근로복지공단 또한 그녀의 아버지 황상기씨의 산재 신청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황상기씨는 산재요청을 불허한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에 불복한 채 고군분투하며 기나긴 법정 싸움을 이어갔으며 2011년 1심 재판에서 산재 인정 판결을 이끌어낸다.(더불어 항소심으로 이어진 이 재판은 현재 진행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많은 어려움 끝에 개봉한 영화가 바로
[또 하나의 약속]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재미있다
영화의 기획 의도가 훌륭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른바 무턱대고 칭송하고 찬양하며 관람을 종용하는 모습만큼 꼴불견도 없다. 영화의 기획 의도가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그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깐깐하고 차분해야 할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한 상업영화는 의무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 재미를 위해 관람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재미있다. 이 영화, 관객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이야기의 응집력과 나름의 재미와 감동을 갖추고 있다. 이른바 그 만듦새가 제법 괜찮다는 얘기다. 쓸데없는 신파로 빠져들지 않고 적절한 선을 지킬 줄 아는 감독의 무난한 연출은 기대 이상이며 주연배우 박철민을 위시한 배우들의 연기에는 자연스러움과 진정성이 담겨있다. 더불어 딸의 죽음으로 인한 가족의 사투와 법정 싸움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끌어내는 이야기의 탄력은 죽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흥미로움을 유지한다. 여기에 곁들여진 적절한 재미와 감동까지.
물론 찬찬히 뜯어보면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 초반부의 전개가 급작스럽게 점프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점, 영화의 후반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법정 싸움의 흐름이 종종 투박하게 전개되며 법정 싸움의 특유의 긴박감이나 치열한 공방의 묘미가 기대보다 부족하다는 아쉬움은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작품 전체적으로 볼 때, 실화가 주는 끈끈한 응집력과 진정성을 이야기에 잘 녹여내서 풀어냈다는 점에서 더 큰 박수를 주고 싶다. 한마디로, 이 정도면 충분히 잘 만들었다는 얘기다. 결국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우리가 의무감으로 한번쯤 봐줘야할 착하고 좋은 영화가 아니라, 작품 외적인 부분을 떠나 작품 그 자체만으로 나름의 재미와 감동을 지닌 괜찮은 상업영화이다.
한강이 아닌, 자본이 만들어낸 괴물과의 사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진성이라는 대기업과 정부기관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는 한 아버지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우선 두 작품 모두, 딸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와 괴물과의 사투라는 점에서 그렇다. 봉준호의 영화 속 괴물이 한강에서 태어난 진짜 괴물이라면,
[또 하나의 약속]에서의 괴물은 자본이 만들어낸 거대 기업과 경제 권력이다.
[괴물]에서는 주인공 강두가 딸 현서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 해보지만 주변에서 그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정신병자 취급하며 병원에 가두기에 이른다.
[또 하나의 약속]의 아버지 상구도 마찬가지다. 십억이라는 거금을 제안하며 소송 취하를 요구하는 거대 기업의 압박, 산재신청에 대한 답을 미리 정해놓은 듯한 근로복지공단의 냉랭하고 차가운 태도, 노무사 사무실에서의 한결같은 냉대, 그리고 죽은 딸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뜯어내려 한다는 주변인들의 비뚤어진 시선까지.
[괴물]의 강두만큼이나
[또 하나의 약속]의 상구의 싸움 또한 외롭고 막막하며 괴롭다. 결국 영화
[괴물]에서 괴물과의 사투에선 승리하지만 딸아이 현서는 죽음을 맞이하고 현서가 목숨을 바쳐 구해낸 남자아이를 강두가 키우며 살아가게 되는 것처럼,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딸 윤미도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거대 기업을 등에 업은 정부기관을 상대로 한 치열한 법정 싸움 끝에 상구는 딸아이의 산재를 인정받으며 재판에서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싸움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딸아이는 죽었지만 제2, 제3의 윤미가 나오지 않게 만들기 위한 그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이 땅의 멍게들을 향한 일성
결국 영화
[변호인]이 80년대 군사정권 하의 험난한 공기 속에서 한 시대를 치열하고 힘겹게 살아낸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獻詞)라면,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자본과 권력의 횡포 속에 21세기의 대한민국을 힘겹게 살아가는 혹은 살아내고 있는, 소시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모두를 위한 헌사가 아닐까. 진성 반도체라는 거대한 괴물과의 사투, 즉 거대 자본과 경제 권력의 횡포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고 끝끝내 법정 싸움에서 승리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결국 실화가 주는 진정성에서 기인한다.
제작두레를 통해 어렵게 제작되고, 적은 수의 스크린을 확보한 채로 보이지 않는 압박 속에 개봉을 했다는 이 영화를 도와야할 것 같은 알량한 의무감으로 극장으로 찾았던 나는 오히려 이 영화를 보며 문득,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아마도 영화가 기대 이상으로 재밌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태어날 때는 뇌가 있던 동물이던 멍게가 바다에 뿌리내리고 자리를 잡으면서 스스로의 뇌를 소화시키고 결국 뇌 없는 식물로 변해버린다는, 주인공의 일침어린 영화 속 대사처럼 나는 현재 어디에 뿌리내리고 살아가고 있으며 내 뇌는 얼마나 소화되지 않은 채로 잘 살아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순간이 있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지불했던 표값이 아깝지 않았다.
[특별 메이킹 영상] :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75497&videoId=42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