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 첫 글이 이런 류의 글이라니...
이건 저의 경험이 아니라 제 친구의 경험입니다.
그러나 삼인칭 시점으로 담담히 사건의 개요를 짚어가기엔 이런 역사적인 경험이 단순히 글만으로 상황을 접하는 분들에게 확실한 추체험이 안될거라고 생각해서 친구의 경험을 나의 시점으로 가져와서 일인칭으로 풀어갈려고 합니다.
혹시 오해하실까봐 본인의 경험은 아닙니다. 여기서 궁서체로 이 부분을 강조하면 오해가 생기니 이쯤에서 그치고...
다만 이런 사실이 알려진다 하더라도 제 친구는 깍일 사회적 명성이 있는 자도 아니고 이 친구의 장점은 자기가 희생하더라도 남들이 즐거우면 된다는 아주 좋은 마인드를 가진 친구라서 제가 소재따위가 없어서 친구를 팔아먹는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만... 친구야 정말 미안해!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기분이 꿀꿀해서 또는 우울해서 수업을 째고 싶은 날도 아니었고 뭔가 멋진 약속이 있어서 설레던 그런 날도 아닌 그 수 많은 나날중 누구나 느끼는 그런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다만 늦게 자는 습관땜에 이른 시간의 아침수업을 싫어하는 저로써는 적지 않은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쳐 아침수업을 뺀 요일이었기 때문에 특정시간을 엄수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품위없이 허둥지둥 서두르는 꼴들을 보면서 속으로는 '딱한 자들이로고'라는 생각으로 불쌍히 여기면서 세상의 만물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있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학교까지는 꽤 먼거리지만 다행히 한방에 가는 좌석버스가 있고 단지 버스배차간격이 긴 단점이 있지만 여유롭게 커피한잔을 뽑고 요즘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지만 버스정류장에서 담배피는 일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던 시대고 혼자만 있기에 호기롭게 담배를 피면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카페인과 니코틴의 앙상블을 느끼면서 내면에 몰입할때쯤 버스가 왔고 올라타니 그날따라 유독히 자리가 없더군요. 그렇지만 다년간의 축적된 경험으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시내에서 많이 내리기 때문에 전후좌우를 살피면서 그런 사람이 좌우와 전후로 골고루 집중된 곳으로 과학의 확률에 기반했지만 행동은 노자의 무위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한국의 사회,정치,경제,국방,문화 전반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가던중 역시 예측한대로 자리가 났습니다.
다만 그 자리가 다들 아시다시피 차바퀴위의 자세가 안 나오는 안쪽자리였지만 나말고 다른 경쟁자들도 많아서 그냥 앉아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물론 옆자리에 예쁜 아가씨가 앉아 있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지난 밤에 공부를 할려고 했다가 잠시 휴식을 가진다는 핑계로 한 피시게임이 길어진 관계로 피곤한 육체를 견디지 못한 저는 나 자신도 모르게 잠깐 졸았는데 문득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가 느껴졌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요인이 아니라 내부에서 오는 요인이었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반이상은 온 거리지만 애써 무시하기엔 평범한 신호는 아니었고 이제껏 살아온 인생의 모든 경험을 총망라해서 진지한 판단을 내리려고 집중하면서 몰두하다 보니 어느 순간 위협의 요소가 사라지는 겁니다. 결국 사분의 삼은 왔고 위협의 요소가 사라져서 조금의 불안은 있지만 참기로 결정을 했죠.
그렇게 설마하면서 버스가 도착하기 10분쯤 찾아온 위기는 원시시대에 인간이 겪을 법한 순수한 공포라는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평소 운도 좋아서 군대도 테니스병으로 편하게 보낸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칠거라고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변명이 아니라 버스의 바퀴위라는 자리의 특수성이라는 영향도 꽤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살다보면 다들 이정도 경험쯤은 있기 마련이라 극복할수 있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시작했죠.다만 그 당시 인간들이 어찌 해볼수 없다는 재앙을 만들만큼 내장활동이 나에게 주는 준엄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판단의 영역을 벗어났던거죠.
개인적인 시간으로 삼십분이 흐른것 같지만 그 시간동안 식은 땀이 날만큼 특정 근육의 긴장과 이 긴장을 적절히 조절하는 마인드 컨트롤이 처절하게 싸웠고 버스에 내리는 순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적지않게 남아있는 오르막길의 제법 긴길이 있지만 그 길 사이에 건물들이 적당한 간격을 이루고 있어서 어떻게던 해볼수 있었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나 자신을 극복했다는 교만함이 생겨서 걸음을 남들보다 빠른 템포로 가져갔지만 그 몇초의 심적우위가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은 금방 느꼈습니다.
자연스럽게 걸음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일이었고 그렇다고 버스에서 제일 먼저 내린 저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어쩔수 없이 사람들이 지나가도록 가로수 앞에서서 시간을 보는척하면서 사람들이 지나가길 바랄뿐...
그 억겁의 시간이 지난후 아주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하면서 이미 같은 버스에 탄 사람들은 모두 저를 앞질러 갔기에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남을 의식하는 것이 사치일만큼 한 걸음을 떼기 조차도 어려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순간 뭔지모를 액체가 한쪽다리로 타고 흘렀지만 바둑으로 치면 만방,야구로 치면 콜드게임만은 피해야 했기에 한걸음 한걸음 첫번째 건물로 다가갔습니다. 평상시엔 아무 생각없이 지나간 건물이었지만 그 건물은 건물전체가 영업을 안하는 건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길가에서 볼일을 볼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을인을 새겨가면서 그 건물을 지나쳐서 드는 생각은 아무집이나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하지만 가정집이 있는 곳도 아닌 곳이라 그럴수도 없고 학교근처의 건물들이 그렇듯 아침일찍 여는 곳이 잘 없죠.
다음 건물은 일층에 중국집이 있었는데 아직 영업전이라 건물전면의 셔텨도 안 열렸지만 건물 옆 계단을 통하면 그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기에 계단으로 들어가서 문을 두드렸죠.
다행히 문은 열리고 홀안으로 들어가니 주인아줌마가 이 시간에 뭐할려고 이런 표정으로 바라보더군요.
"죄송한데 화장실 좀..." 제 얼굴을 보더니 아줌마가 결코 평범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눈치를 채더군요. 그러면서 계산대 근처를 찾다가 화장실 키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아주머니가 다급한 심정으로 자기 아들을 부르니 아들은 아무 생각없이 홀 안쪽에서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다녀온 아이에게 물으니 얘가 기억을 못하더군요.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저의 바디랭귀지를 파악한 아주머니는 거의 황건적 30명은 단칼에 날려버릴 엄청난 포스의 기세로 얘를 다그칩니다. 평소에는 다정한 엄마가 엄청난 기세로 얘를 다그치니 얘의 입장에서야 뭔 죄야 있겠습니까는 얘가 그 기세를 못이겨 울어버리던 군요.
평범한 하루의 개인적인 상황이 나와 아무관계없는 삼자의 울음으로서 번지고서 순간 드는 생각은 인간은 역시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상황자체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 건물의 3층이 나가고 난 뒤 3층의 사무실과 화장실키를 잠시 중국집 아줌마가 관리하는 상황이어서 아줌마의 통큰 양보로 3층의 화장실 키를 겟할수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열쇠를 가지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발을 옮길때마다 순수 액체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유체역학적인 흐름을 느끼고서 임시방편으로 계단 난간을 팔만의 힘으로 3층으로 올라가는 괴력을 보였습니다.3층 화장실을 열고 들어갔지만 이미 상황은 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듭니다.
바둑으로 치면 만방이요. 야구로 치면 콜드게임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문명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선 작업을 해야 합니다. 어차피 사용안하는 화장실이라 문을 굳게 잠그고 바지를 벗습니다.
여러분은 "삼각팬티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을 아십니까?"
빨래를 하고 나서 뽀송하게 말린 삼각팬티의 무게감이 아닙니다.
싸구려 분식집의 우동이 아니라 정통일식집에서 먹을때 젓가락으로 느끼는 면발의 묵직함과는 다른 그 이상입니다.
그 팬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감이 오십니까? 순간 당혹감과 분노와 자괴심이 섞여서 마음의 고요한 평화가 오더군요,
때마침 화장실의 건물 뒷편으로 난 창이 보이던군요. 그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밭이더군요.
그 순간 모든 것은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잇 거름이나 되어라!" 그렇게 나의 짐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자연을 벗어나서 살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자세한 상황묘사는 독자들의 정신건강을 해칠만큼 위협적이라서 생략을 합니다.
팬티와 양말이 없어지고 바지의 특정부분이 물로 인해 색상이 짙어졌다는 것을 제외하곤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바지가 마를때까지 집으로 돌아가기도 애매한 상황이고 바지가 마를때까지 수업을 날려먹었습니다.
그나마 다음 수업은 친한 친구들이 안 듣는 수업이고 바지는 마른 상태였기 때문에 양말이 없음으로 저의 상태를 짐작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수업을 들을 마음이 안 들더군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그 평범한 하루는 흘러갔습니다.
이제껏 살아온 경험과 지식으로 판단하기에 인생에는 자기의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험난함이 있습니다.
최상의 상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도 있는 것이 인생이니 예측하거나 속단하지 마시고 순간 순간 반복되는 평범한 의사결정이 때로는 인생의 위기도 되니 평범한 하루는 어떤 면에선 평범한 하루가 아닐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