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친구인 여자사람이 있었습니다.
고양이상의 미인이었지만, 저는 그녀에 대한 작업의지가 없었지요.
지 남친에게 여우짓을 하는걸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제가 여자문제로 삽질하는 모습을 죄다 들켰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께가 저보다 넓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제 외모가 반인륜적이라는걸 저 스스로 알고있기도 했고..
그 친구를 만날 때는 항상 술복(열심히 술마실 때 입는 츄리닝)을 입고 나갔습니다.
마치 '나 이여자랑 아무 사이도 아니다.' , '나 너한테 잘보이고픈 마음 1g도 없다' 는걸 광고하듯 말이죠.
사실은, 나는 준비되어있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아예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죠.
마주하고 있으면, 제가 가진 모든 종류의 컴플렉스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느낌..
한번은 그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쓸데없이 이쁘다고.. 니가 외모가 내 수준정도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고.
너를 대하고 있으면, 현실을 강제로 느끼게 되어 스트레스 받는다고..
외모를 꾸며야 할 필요성을 느낄 때면, 무심한 척 했던 것들이 모두 가식이었다는걸 들키는 것 같아서 심장을 죈다고..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이게 자칫 잘못 들으면 무슨 절교선언같이 들릴 수도 있으니 말이지요.
켈로그김 : 그냥.. 니가 부럽기도 하고, 니가 차라리 남자면.. 싶기도 하다.
나도 남자라.. 나중에 외로워서 미칠 지경이 되면, 니 외모에 혹해가지고 연애감정이 생겨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친구 : 오.. 참아라.. 내 과거를 다 아는 사람이랑 사귀는건 싫거든?
시간이 쬐끔 흘러서, 그 친구는 사귀던 남친과 헤어지고 저는 콜라텍;;에서 만난 연하녀와 연애를 하고 있었지요.
그 친구와 같이 보는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깔끔하게 두번 튕기고 세번째 나간 자리.
귀가시간이 걸리는 순서대로 하나둘씩 탈락하고, 늘 그렇듯 저와 그 친구가 남았습니다.
친구 : 연애한다고 바쁜 척은.. 꼭 초짜들이 티를 그렇게 내요.
켈로그김 : 근데 진짜로 바쁜척 한다고 튕긴건 맞어..
친구 : 이거 미친놈 아냐? 니때문에 스케줄 뭉게졌구만.. 왜 그랬는데?
켈로그김 : 내 마음 나도 몰라.. 사나이라면 이유없이 튕길 때가 있는거란다.
..정말로 내 마음 나도 모르겠더라고요..;;
늘상 그렇듯.. 시덥잖은 연애상담을 하고 술집을 나섰습니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상황이 역전되었다는거? .. 묘한 뿌듯함과 술기운에 기분이 좀 업됐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다른 친구에게 연락해보고 술먹자고 불러내야지.. 하는 차에 친구가 말했습니다.
이전에 뜬금없는 고백(넌 쓸데없이 이쁘다는;;)을 듣고 생각해보니,
이놈이 나를 라이벌로 여기는 느낌을 받았다고..
확실히.. 꿀리기 싫은 무언가가 있긴 있었습니다.
그 것이 되도않는 라이벌의식인지, 아니면 반대로 이성으로 진지하게 여기기에 그런건지..
저는 술기운을 애써 추스리고 생각을 끌어모아 말했습니다.
"니가 헤어졌다는 소식에 난 솔직히 내심 기뻤다. 그런데, 그걸로 기뻐하는 내가 왠지 싫어졌다..
그래서 살짝 무리수를 둬 가면서 서둘러서 여자친구를 만든거다..
그리고.. 너를 향한 내 맘의 정체만큼은 정말 모르겠다고..
지나가는 남자 꼬추라도 떼서 너한테 갖다붙여보면, 내 마음을 아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너를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것이든, 아니든.. 그 마음에 너무 휘둘리지는 않을거라고.
어쩌면 우리는 끝내 사귀지 않고 이대로 지내다 멀어질 수도 있지만,
나한테 중요한건 내가 마음이 편안하고 당당한거라고..
상황에 휩쓸려서 헷갈리는 마음으로 사귀게 된다면, 나중에는 더 후회할거 같다고.."
친구는 '이게 뭔 개소리여?' 라는 표정으로, 간단히 요약해보라고 하더군요.
사람이 살면서 정말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오글거리는 말을 하는 와중에 제정신이 돌아와 급히 수습한 상황에서
그 말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바로 그렇고.. 내가 바로 그 상황..;;
"그냥.. 니가 여러모로 의식되긴 되더라.." 라고 패기없는 한마디를 했습니다.
..술은 다 깨고.. 쪽팔리고.. 민망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