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 분은 이미 다 아실 테고, 안 보신 분들은 어차피 모르고 봐야 더 재미있을 테니 스토리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시대와 장소를 봤을 때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일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의외로 현대적인 감성이 지배하는 영화입니다. 구도 자체는 지극히 전형적이지만 그 구도를 움직이는 캐릭터들의 설정은 여러 모로 그 당시에 어울리는 전통적인 인물상과는 상반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배경만을 고전 하이틴 로맨스에서 차용한 트렌디 드라마의 두시간짜리 축약판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철저히 젊은 여성을 타겟으로 삼고 있는 영화니 영리한 수라 보입니다. 이 영화가 노리는 건 복고의 충실한 고증이 아니라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거니까요.
가장 큰 걸림돌은 배우들의 연기가 아닌 외모입니다. 이종석씨야 어느 정도 능청스러운 연기로 세련된 이미지가 충청도의 촌스러움과 상충되는 지점을 극복하고 있지만 박보영씨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 부분은 영화의 커다란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일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설정부터 캐릭터의 억센 성격까지 그 어느 하나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으니 말이죠. 영화의 메인 헤로인에게 몰입할 수가 없으니 이들이 펼치는 밀고 당기기 자체가 붕 떠버립니다.
영숙과 중길, 소희 사이에서 펼쳐지는 삼각관계가 별다른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 것도 로맨스로서의 이 영화가 가지는 약점입니다. 막상 치열하게 스파크가 튀어야 할 장면을 대충 때워버려서 영화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예정된 해피 엔딩으로 스리슬쩍 넘어갑니다. 항상 무언가가 생략된 듯 허전하거나 갑작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이건 이 영화가 그럴 싸한 ‘그림’에 더 치중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혐의가 짙게 까리는 부분입니다.
이종석씨의 연기는 꽤 준수합니다. 초반 캐릭터를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 조금 작위적인 설정들이 있지만, 그런 부분들을 제외한다면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높아보입니다. 물론 이건 중길을 다면적으로 그려낸 시나리오의 공도 있을 겁니다. 사실,바람둥이의 개과천선보다는 성장통을 겪는 부분에서의 연기가 훨씬 더 좋습니다. 물론 영화가 로맨스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지 않으니 배우가 밀도 있게 애정을 표현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긴 하지만요.
상업 영화로서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고, 목표한 완성도를 완수해 낸 느낌입니다. 강동원, 김수현 만큼의 신드롬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극장 내에서 이종석 앓이의 증거를 사운드로 체감할지도 모릅니다.(시사회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남성분들은 여성분들과 같이 가서 이 영화를 보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랍니다. 영화가 끝난 후 오징어로 변모할 확률이 아주, 아주 높습니다.
스포일러 포함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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