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작 음악 듣는 걸 싫어하시고 이명 때문에 시끄러운 걸 못 견디시는
아버지 때문에 그 전축에서 음악이 나오는 날은 그리 자주 있진 않았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결혼 후, 고향이던 부산에 친구와 가족을 모두 두고 타향살이를
하시게 된 엄마는 남편과 자식 말고는 딱히 따로 즐길만한 일들이 없으셨으리라.
지금 생각해보면 , 누나를 임신 했을 때, 하나뿐인 언니를 보러 이모가 서울에 다녀가시다 돌아가신 이후 더욱 외롭고 힘드셨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집에 당시에 유명했던 조용필이나 몇몇 가수들의 레코드판이 있었지만
집안 일과 할머니 수발 및 병원을 모시고 다녀야 했던 엄마가 가끔이나마 틀며
제일 좋아하는 가수라고 말하신 것은 언제나 송창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부터 송창식의 노래는 꽤나 많이 듣고 자랐다. 하지만 레코드판의 표지(?) 말고는 그 사람을 티비에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까, 엄마가 그토록 좋아하신다는 송창식이 티비에 나온 다는 방송 편성표의 신문기사를 보고 엄마는 사용할 줄도 모르시는 비디오를 가지고 녹화를 누나와 형에게 부탁하며 기다리고 기다리셨다.
그리고 마침내 송창식이 티비에 나왔다.
그런데 어릴 때 부터 그토록 많이 듣던 목소리와 다르게(?) 티비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모습은
살찐 얼굴에, 탈모가 진행되는 산발, 게다가 기괴하게 생긴 한복을 입고
노래를 부를 때, 눈을 감고 입술을 떠는 기인의 모습이었다.
누나와 형, 그리고 나는 엄마가 그리 좋아하시는 가수를 티비로 처음 보시는 순간임에도
어렸기 때문일까 , 계속 그 모습을 비웃으며 깔깔거리고 웃어댔다.
엄마는 난처해 하시면서도 그래도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야 라고 하시며
' 한 번도 노래하는 걸 직접 본 적이 없네...' 라고 조용히 되네이셨던 것은
학교도 가기 전의어린 내게도 뚜렷이 각인 되었다.
그리고 어느 덧, 그렇게 철없이 웃어대던 삼남매는 30대를 훌쩍 넘었다.
서른 살이 되기 훨씬 전부터, 나는 틈틈이 인터넷으로 송창식의 공연을 찾아보았으나
공연은 커녕 어디 외딴 무인도에서 콘서트를 했다는 기사나 가끔 나올 뿐이었다.
그래도 가끔 트윈폴리오나 다른 가수들과의 협연이 있었지만
그 때 마다 엄마는 티켓 값이 비싸다고 거절을 하셨고,
나 역시 쉽게 티켓값을 낼 경제력이 없어서 그냥 한번 묻고 넘기는 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놀러와 란 프로그램에서 세시봉 특집을 방송했다.
엄마는 그 때도 바쁘셔서 못 보신 걸 케이블 VOD 구매를 해서 앉혀놓고 보여드렸더니 너무나도 좋아하시더라.
그 방송 뒤로, 엄청난 열풍이 불어서 티비에도 공연으로도 송창식은 예전에 비해서 훨씬 자주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안 좋았던 집안 일들과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시고 있던 엄마는 수 차례 내가하는 권유를 계속 거절하셨다.
재작년 쯤이었던가.....
집안 문제로 우울증(이었다고 생각한다)처럼 보이는 엄마의 모습에 또 다시 콘서트를 가보라고 말을 했다.
안 좋은 일들로 항상 날카로워져있던 엄마는 내가 그런 류의 얘기만 꺼내도 항상 화를 바로 내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했다.
"엄마 송창식도 이제 곧 70이 다 되고, 엄마도 60 중반이 돼, 그 사람이 언제까지 노래할 지 아무도 모르고
엄마가 언제까지 공연을 보러 갈 수 있을 지도 몰라"
라고 혼날 각오로 말을 했더니, 의외로 선뜻 그럼 예약해보라고 하신다. 그래서 제일 비싼 자리로 두 장을 끊고,
같이 갈 사람들을 물색했다. 아버지야 당연히 귀가 아프시다느니 라고 거절하실 테고
만에 하나 같이 가시더라도 평생 엄마가 좋아하시는 것들을 무시하곤 하셔서, 같이 가도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실 건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막내아들인 나는 엄마랑 같이 있으면 서로 들쑤시는 지라 결국, 엄마가 가장 편안히 여기는 누나에게 부탁을 해서
조카는 내가 대신 보고 둘이서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40년.....
엄마가 그토록 좋아하는 가수가 데뷔한 지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엄마는 40여년 동안 한 번도 그 가수의 공연을 본 적이 없으셨다.
그 날 밤, 11시가 다 돼서야 엄마는 집에 돌아오셨고
나는 평생 엄마의 그런 표정을 본 기억이 없었다.
환갑이 넘으셔서 그렇게 설레고 상기된 표정이라니...
엄마는 너무 벅차서 소감도 제대로 말을 못 하셨고
새벽까지 흥분하셔서 잠을 못 이루셨다.
어려서는 외증조부, 외조부님들 때문에 집에서도 노래를 못 부르고 들으시고
결혼 후에는 남편 때문에 맘껏 음악도 제대로 못 들으시더니
마침내 환갑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가신 게 안타까워서
나도 그 날은 잠을 못 이뤘다.
예전에 한창 음원이 불법으로 다운받는 게 당연시(?) 되던 시절에도
엄마가 원하는 곡들은 돈주고 받아야 한다며 거절했던 일도 기억이 나서 더 그랬다.
한곡에 고작 몇 백원 하는 걸 그 때는 왜그랬는지....
그래서 이제는 엄마가 차에서도 들으시라고 유료로 usb 에 다운받아 맘껏 좋아하는 음악을 듣게 해드렸다.
그 사소한 것들인데도 엄마는 너무 행복해하신다.
어릴 때 내가 듣던 송창식의 노래를 이제는 조카가 듣고 따라 부른다.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시는 송창식을 두 번째로 보러 가시는 날이다.
그리고 이 번엔 엄마와 둘이 가는 것은 나다.
나도 아버지처럼 음악에 그리 관심이 없어서
공연이란 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얼마전까진 공황장애 때문에 극장이나 공연장 같은 건
더욱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엔 같이 갈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나도 엄마가 그리 좋아하시는 공간에 한 번은 같이 있고 싶었다.
10시가 넘어서야 공연이 끝났다.
엄마는 오늘도 잠을 못 이루신다.
그리고 나도 잠을 못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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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쯤 어머니랑 같이 조용필 콘서트 보러 간 기억이 나네요
처음으로 직접 본다고 좋아하셨지만 정작 보고오시더니 사람만 많고 조용필 얼굴도 안 보인다고 별로라고 하신 기억이..
축구장에서 콘서트하는 조용필의 위엄이랄까.. 정말 사람은 개미만하게 보이는 자리였어요.;
그 뒤로는 그냥 CD로 음악만 들으시네요
흐믓한 이야기네요.
요즘 집사람이 자기 어렸을 때 듣던 음악이라면 조용필 이선희 음악을 핸드폰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부엌에서 설걷이 하면서도 듣는데 너무 행복해 보입니다. 행복이란 참으로 어찌보면 쉬운 것인데, 남들 행복만 따라다니다 보니 내가 뭘하면 행복한지 잘 모르고 살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