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이거 땜빵이야??"
오래전 일이다. 내가 학부생이던 시절이었으니. 하루는 여자친구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만지던 중에 내 머리에서 속칭 땜빵을 발견했다. 그녀는 귀엽다며 만지면서 땜빵땜빵 거렸다.
"내 머리에 땜빵은 없는데.."
만져보니 조그만 땜빵이 있었다. 새끼손가락으로 막을수 있는 정도의 크기. 머리카락 사이에서 만져지는 살갗의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 그때까지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던거지.
며칠후 머리를 감다가 만져본 그 자리에는 그때보다 더 큰 땜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녀석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성장해가고 있었다. 약지 손가락으로 겨우 막을수 있었다. 자주 만지면 손타서 머리가 없어지나? 뭐 이정도 생각을 했었었다. 하지만 그때 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괴물은 빠른 속도로 점점자라서 중지와 엄지 단계를 거쳐 100원짜리 동전으로도 못막게되었다. 엄지손가락까진 애교였지만 동전으로 넘어가면서부터 긴장했었다. 이 후 그 녀석은 500원짜리보다 커져 있었고, 내 머리의 왼쪽 절반이 모두 빠지기 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모자를 쓰고 다녔다. 여자친구에게 조차도 그 사실은 비밀이었다. 야구모자를 뒤로 적당히 비틀은 각도로 멋을 내며 쓰고 남겨진 오른쪽 앞머리만 살짝 내 놓았다. 아무도 설마 내가 탈모일꺼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름 스타일리쉬하게 모자를 쓰네 라고 생각했을것이다. 아니 사실은 저 녀석 재수없게 모자를 쓰는군 이었겠지만.
"오빠는 왜 언제부터 늘 모자만 쓰고 있어??"
나에게 관심이 정말로 많던 그녀는 최근 언제나 모자만 쓰고 있던 내가 궁금하다며 커다란 눈을 굴리며 물어봤다. 난 그 순간 말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나의 고민을. 난 사실 두려웠다. 갑작스레 20대 초반에 머리의 절반이 빠져나갔다면 심각한 병 아니면 최소한 남은 인생 대머리 확정이다. 얼마나 무서웠겠나. 하지만 꾹 참았다.
"모자 잘 어울리니깐.."
"그래도 안쓴거도 이쁘단 말야.. 안쓴 모습도 보여줘.."
그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내 모자를 낚아채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머리의 왼쪽 절반에 모근까지 없어져 맨들맨들하던 내 머리를 보고 모자를 낚아채기가 무섭게 울음을 터트렸다. 난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별거 아닐꺼라는 이야기와 내일 병원에 한번 가보겠다고. 믿으라고 오빠 건강하다고. 그녀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죽을 병이면 어떻게해 라며 울먹이고 있었다. 아직 살아 숨쉬고 있는 지금 생각하면 오버이지만 그땐 나도 마음이 짠했었다.
때는 이튿날. 나는 의사 선생님께 결과를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가겠다는 그녀를 억지로 떼어놓고 병원에 혼자 찾았다. 그녀는 근처 커피숍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혹시 심각한 병이면 혼자 먼저 듣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할지 아닐지도 고민했어야 했고. 물론 웃기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때는 진지했다.
이윽고 의사선생님이 내게 인자하신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영양실조에요.."
그렇다. 당시 자취인생이 너무 귀찮아서 곧잘 굶고 다녔었다. 요즘같이 부유해진 시대에 영양실조가 웬말이냐고 핀잔을 주셨다. 그리고는 두피 영양주사를 맞으면 금방 머리가 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난 머리에 20방에 가까운 두피 영양주사를 맞았고 그 한방한방은 신경이 몰려있는 머리라서 어떤 주사들보다 끔찍했다. 신기하게도 맞고나니 조금씩 모근이 올라오는 것이 이내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였다.
기쁜 소식을 그녀에게 전하러 갔다. 심각한 병이 아니라 안심하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알려주려고 했다. 좀 심각한 병인척 장난이나 쳐볼까 하다가 어제 그렇게 서럽게 울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나 더이상 울리기 싫어 솔직하게 얘기하기로 했다.
"오빠, 의사선생님이 뭐래??"
그녀는 내 얼굴을 보자 마자 급하게 물어보았다.
"숨 좀 쉬자.. 하하. 별거아냐..영양실조래. 기쁘지??"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오빠를 영양실조 같은 거에나 걸리게한 자신은 여자친구로서 실격이라며 어제보다 더 서럽게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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