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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6/29 09:16:36
Name 밀레이유부케
Subject [일반] 자취햇수에 따른 여름철 자취생의 행동변화
1인칭으로 쓰다보니 본의아니게 반말체가 된 점 양해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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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차
혼자 산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아무도 터치하지 않는 이 나만의 공간에서의 새로운 삶이 행복하기만 하다.
하지만 밥 때가 되면 차려먹는게 무지 귀찮다. 유일하게 엄마가 그리운 순간이다.
세상은 기브앤테이크니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라고 쿨하게 생각한다.

밥 먹고 나온 모든 그릇은 싱크대에 버려둔다. 심지어 먹다 남은 음식이 그대로 담긴 그릇도 싱크대에 버려둔다.
샤워하고 몸 이곳저곳을 닦은 축축한 수건을 그대로 세탁기에 버려둔다. 양말, 묵힌 속옷 등등도 같이 버려둔다.
1주일 후 이상하게 집안에 초파리들이 날라다닌다. 컴퓨터하는데 잡아도 잡아도 한 두마리씩 모니터 앞에서 알짱거려서
무지하게 신경쓰인다. 그리고 언제인가부터 화장실에만 가면 이상한 퀘퀘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아무리 살펴봐도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모르겠다. 그냥 여름철이니 배수구에서 올라오는 냄새이려니 생각한다.

또 다시 1주일 후.. 더 이상 그릇이 없고 수건이 없어 버티지 못하고 설거지와 빨래를 하기로 한다.
싱크대로 다가가니 갑자기 초파리들이 비상을 한다. 흡사 어린이날 행사에 비둘기떼가 날아오르는 듯 하다.
배수구를 보니 쬐그만 구더기들이 득실득실한다. 그와 함께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코끝을 감싼다.
몇 번이나 솟구쳐 올라오는 구토감을 억누르며, 이제는 온갖 정체모를 곰팡이의 주거처가 된 그릇들 앞에서
과연 이 그릇을 다시 쓸 수 있을 것인가라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 앞에서 수 없이 번뇌하며 설거지를 끝낸다.

빨래를 하려고 세탁기 뚜껑을 열었다. 먼저 얼굴로 후끈한 열기가 올라온다.
보일러가 아니고 세탁기인지 뚜껑을 닫고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역시 세탁기다.
그와 함께 싱크대 앞에서 맡았던 형용할 수 없는 냄새와는 또 다른 24차원의
강력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세상엔 참 다양한 냄새들이 있구나라고 새삼 감탄한다.
뭐 빨면 괜찮겠지하고 세제를 잔뜩 넣고 세탁기를 돌린다.
냄새가 좀 났으니 마지막 헹굴 때 섬유유연제를 넣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탈수가 끝났다.
내 수건과 내 양말, 내 속옷도 끝났다.
양말이랑 속옷은 대충 원래 냄새나는거니 쓴다고 해도 수건은 도무지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이번 달은 가뜩이나 씀씀이가 헤퍼서 먹고 살기도 힘든데..
주말엔 집에 들러서 수건과 양말, 동생 속옷을 좀 가져와야겠다.





2년차
또 여름이다. 나에겐 이미 작년의 피비린내 나는 경험이 있다. 이번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설거지와 빨래를 몰아서 해야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릇 몇 개 때문에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는 것은
세제낭비이자 물낭비라고 생각한다. 빨래도 마찬가지다. 속옷, 양말, 수건 몇 개를 빨고자 세탁기를 돌리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이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여름철 전력난으로 힘들다고 하는데 나라도 아껴써야지..

밥 먹고 나온 그릇은 반드시 물로 한 번 헹궈서 쌓아둔다. 먹다 남은 음식은 반드시 쓰레기통에 버린다.
이렇게 하면 장시간 방치해도 냄새도 덜 나고 작년 초겨울까지 날 괴롭혔던 초파리도 보이지 않을꺼라 생각한다.
젖은 수건은 더 이상 세탁기에 버리지 않는다. 빨래건조대에 잘 말려서 세탁하기로 하고 이쁘게 건조대에 널었다.
양말 속옷은 왜 하루에 한 번 갈아신고 입어야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벗어놓으면 금방 마르는데..

1주가 지났다. 이상하게 올해도 초파리 몇 마리가 자꾸 모니터 앞에서 얼쩡댄다.
범인은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부턴가 가까이 가기 싫어진 쓰레기통이다.

2주가 지났다. 간만에 집 대청소도 하고 설거지 빨래도 하기로 했다.
이곳저곳을 깨끗히 쓸고 닦았다. 이 정도면 훌륭한 자취생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모인 쓰레기를 보니 그 동안 잘도 이런 먼지 구덩이에서 살았구나하고 생각한다.
쓰레기통으로 다가갔다. 그 동안 대충 던져놓은 쓰레기들이 주변에 널부러져 있다.
뚜껑을 열었다. 익숙한 냄새가 올라온다.
내 기억 저 너머에 아득히 남아있던 작년 싱크대에서 맡았던 바로 그 냄새다.
그와 함께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새까만 점들이 사방으로 퍼진다. 초파리떼다.
순간 악상이 떠올랐다. 작곡가들은 이런 식으로 작곡을 하는건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제목은 초파리의 비행이 좋을 것 같다.

싱크대로 갔다. 역시 작년처럼 냄새가 심하게 난다거나 곰팡이의 주서식처가 되었다거나
이런 현상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까이 다가가니 또 한 번 내 머리 속에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 초파리의 비행이다.
배수구를 보니 구더기가 득실득실하다. 여름이 정말 싫어진다.

세탁기를 열어봤더니 이상하게 수건이 안보인다.
양말, 속옷도 그 동안 아껴 쓴 덕분에 빨아야할만큼 쌓이지 않았다.
수건이 왜 안보일까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잘 모르겠다.
그 동안 매일 씻었지만 2주전부터 빨래 건조대에 널려있는 수건들의 모습이
변화가 없는 것에 대해 조금 의심이 들었지만 귀찮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다만 얼마전부터 여직원들이 어디서 수건 썩는 냄새가 난다고 수근거리던 걸 들었는데
매일 샤워하는 난 아니니까라고 생각했었지만 나 때문인거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차
여름이 정말 싫다. 신경써야할게 겨울에 비해 너무 많아진다.
그치만 이미 나에겐 다년간의 경험이 있다. 올해는 반드시 승리하리라.

작년에 깨달은 바가 있다. 아무리 그릇을 헹궈두고 남은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려도 초파리가 창궐한다는 사실이다.
좀 더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고민하다가 작년에 빨래에서 얻은 교훈을 식습관에 도입하기로 한다.

어차피 이따가 또 먹을꺼 굳이 그릇을 씻을 필요가 있을까..
설거지가 쌓일 이유가 없다.
먹다남은 음식은 최대한 잘게 썰어서 변기에 버린다.
사람 몸을 한 번 거쳐서 들어가나 바로 들어가나 똑같은 거라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변기에 버리지 못할 종류의 음식물쓰레기는 반드시 비닐봉지에 넣고 밀봉해서 버린다.
아직 아파트의 다른 아줌마들처럼 음식물쓰레기통을 따로 만들어두고 매일 가져다버릴 내공은 안된다.

젖은 수건은 더 이상 빨래건조대에 널어두지 않는다.
나의 청결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위해 문고리 같은 곳에 널어둠으로써 쓴 수건과 깨끗한 수건을 구분한다.
양말과 속옷 문제는, 아껴입기신공은 아무래도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아서 포기하고, 모아서 빨다가
빨기 귀찮으면 한 두 개씩 사서 입은 것들이 이제는 한 달을 버텨도 새 양말과 새 속옷이 있을 정도로 모였다.
뿌듯하다. 역시 난 천재가 아닐까하고 흐뭇해한다.

1주일이 지났다. 모니터 앞에 초파리가 알짱거린다. 불길하다.
혹시나해서 싱크대에 가봤더니 배수구에서 스멀스멀 초파리들이 올라온다. 구더기도 드문드문 보인다.
배수구 청소라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2주일이 지났다. 병원이다.
급성 장염으로 어제 새벽에 폭풍설사 끝에 탈수증 기미가 보여서
엄마한테 전화하고 난리를 쳐서 응급실로 실려왔다.
역시 같은 그릇에 2주는 무리였나보다.
퇴원하고 집에 왔더니 통장 아주머니가 왠 쓰레기봉투를 들고 고레고레 소함을 지르신다.
총각이 혼자 사니 이해는 하는데 이러면 안된다는 둥.. 쓰레기 봉투 안에 검은색 봉다리는 100퍼센트라는 둥..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고 가셨다.  

여름이 싫다..





4년차
음식물쓰레기통을 구입했다. 더 이상 여름이 두렵지 않다.
그 날 생긴 음식물쓰레기는 자기 전에 산책삼아 바로바로 갖다 버린다.
싱크대 배수구와 화장실 배수구엔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펄펄 끓여서 부어준다.
이렇게 하면 초파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생활의 지혜도 얼마 전에 생긴 여자친구로부터 터득했다.
그리고 설거지는 나의 동반자다.
왜 우리네 어머님들이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시는지, 설거지는 쌓이면 쌓일수록 하기 싫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데
무려 4년이 걸렸지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여전히 빨래는 몰아서 하려고 하지만 틈틈히 여자친구가 와서 해준다고 하니 마냥 행복하다.


더 이상 모니터 앞에 초파리가 얼쩡거리지 않는다.
드디어 나는 승리했다.




P.S. 이 글은 어디까지나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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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아들
10/06/29 09:18
수정 아이콘
씁쓸한 미괄식이군요.
10/06/29 09:20
수정 아이콘
결론은 여친을 사귀어라
10/06/29 09:21
수정 아이콘
여친이 나오는 순간 픽션인것을 직감했습니다.
어흐으응
10/06/29 09:21
수정 아이콘
씁쓸한 미괄식이군요. (2)
10/06/29 09:27
수정 아이콘
음?? 이상하다...
누가 내 얘기를 여기다 써논거지????
10/06/29 09:31
수정 아이콘
아....괜히 읽었어.....
The HUSE
10/06/29 09:50
수정 아이콘
자취한지 7년이 넘어가는데,
여름이 특별히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다만 혼자인게 쓸쓸할 뿐... ㅠㅠ
ThinkD4renT
10/06/29 09:57
수정 아이콘
다년간 혼자 살아본 저의 경험으로는 모든 자취생활의 해결책은 여자친구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남자가 아무리 깔끔하게 치우려 노력해도 여친이 한번 놀러 오는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아..너무 많네
10/06/29 10:30
수정 아이콘
집떠나 자취한지 16년차..
이젠 누가 오면 제 영역을 침범당한 것 같아
불안초조해요
10/06/29 10:45
수정 아이콘
역시 픽션이네요...
pErsOnA_Inter.™
10/06/29 11:20
수정 아이콘
마지막 한줄만 픽션이라고 생각하고 싶습셉습..
켈로그김
10/06/29 11:36
수정 아이콘
10년차의 팁 하나 가르쳐 드리자면,
음식물 쓰레기는 크게 2가지로 처리 가능합니다.

국물 및 작은 건더기는 변기에 버리시고,
큰 건더기, 야채 찌꺼기, 썩은반찬 등등은 냉동실에 얼려놨다가 한번씩 버려주면 됩니다.
머릿돌
10/06/29 12:09
수정 아이콘
바나나 2개 먹다 힘들어서 버린채로 음식물 통에 넣어두고 뚜껑을 열어논채 하루 외출하다 들어오니 왠 허리케인이 집에서 불길래
뭔가 했더니 초파리떼..였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네요.. 아직도 집에 네댓마리가 보이긴 한데.. 박멸은 불가능 한거 같습니다.ㅠ
전.... 혼자니까요.....ㅠ 음식은. 과일은 먹지 않습니다... 라면과 햇반만이 초파리로부터 해방입니다.
10/06/29 13:12
수정 아이콘
1년차로 공감하다가 마지막줄에서 픽션이라 생각하고 싶습셉습..
10/06/29 14:13
수정 아이콘
음식물 쓰레기는 봉지에 담아서 냉동에 넣어두세요. 썩지 않아서, 냄새가 나지 않고 벌레도 꼬이지 않습니다.
축구사랑
10/06/29 15:53
수정 아이콘
후반부 여친 이야기만 없었어도 참 재밌있게 읽을 뻔했는데.....흑
야탑이매서현
10/06/29 17:25
수정 아이콘
3년차까지 재밌게 읽다가 4년차에서 갑자기 기분 확 상했네요.
저만 그런건 아니겠죠??
이끌림
10/06/29 22:12
수정 아이콘
픽... 션 맞죠?? (땀삐질)
제 경우에는 집에서 부모님과 살때보다 자취할 때 훨씬 깨끗하고 부지런히 살았어요.
3년 간의 자취 생활로 빨래 및 설거지, 청소, 요리 등 왠만한 집안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대학 졸업 후, 부모님과 살고 있는 지금은 라면 하나 끓여 먹기도 귀찮아요. 아흑
별마을사람들
10/06/29 23:33
수정 아이콘
17년차...술병, 술캔(?),술 플라스틱(!)을 치우는게 귀찮을 뿐...흐흐
비소:D
10/06/30 02:05
수정 아이콘
저도 음식물쓰레기는 봉지에 담아서 창밖에 내놓습니다.
엄마가 왜 그 귀찮은 설거지를 미루다가도 그날안에는 하고 아무대나 벗어놓은 옷을 잔소리하는지 알아가는거죠
그렇지만 1~3년은 2년안에 해결봤어야 하는것 아니냐능~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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