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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5/13 12:34:05
Name 루크레티아
Subject [일반] 십이국기를 보다.(스포 조금 있습니다.)
최근 수작을 뛰어 넘어서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노 후유미씨의 원작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한 작품 '십이국기'입니다.

기본적으로 소설 자체가 상당한 걸작이고(현재 12권 미완 상태이며 누적 판매부수 700만부 이상입니다.) 그것을 각색하여 만든 작품이니 만큼 명작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부담감을 안고 만들었을 터인데 오리지널 캐릭터가 녹아들어가는 모습이나 무리 없는 스토리 진행, 잘 찾아 볼 수 없는 작화붕괴(애니라면 대부분 나오는 작붕...)와 환상적으로 녹아들어가는 양방언씨의 배경음악까지, 개인적으로는 카우보이 비밥 이후 최고의 작품이었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한 편으로는 복잡하지만 알고 보면 단순한 구조입니다. 작가가 직접 한 세계를 창조한 만큼 그 세계관에 대해서 알기 전까지는 약간 난해한 내용이지만, 그 세계관을 이해하면 상당히 단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십이국기 내부의 세계는 중앙의 황해와 나머지 12 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나라에는 왕과 그 왕을 보좌하는 기린이 있습니다.(여기서의 기린은 아프리카의 기린이 아니고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神獸 기린입니다.) 왕은 세습되는 것이 아니고 중앙의 선계인 황해에서 태어나는 기린이 직접 고르는 것이며 기린과 왕, 그리고 왕이 자신을 보좌하기 위하여 뽑은 신하들은 신선으로 취급되어 불로불사의 생을 누리게 됩니다.(물론 왕은 신하들을 신선의 목록인 선적(仙籍)에 올릴 권한이 있으며 빼버릴 권한도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왕과 기린만이 불로불사인 셈입니다. 단 왕과 기린, 나머지 신선이라도 목이 잘리거나 동기라는 무기에 다치면 죽게 됩니다.) 기린은 인간이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늘이 내린 신수이며 항상 인도(仁道)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왕은 영생을 누리는 대신에 인도에 맞는 정치를 해야만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기린이 실도(失道)의 병에 걸려서 죽게 됩니다. 기린이 죽은 왕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따라 죽으며 황해에서 새로운 기린이 태어나고 일정 기간동안 성장하여 왕을 다시 고르기 까지 그 나라의 백성들은 온갖 자연재해와 요마의 습격에 시달리게 됩니다. 왕의 부재는 국가의 피폐로 이어지기 때문에 왕의 존재와 그 왕의 올바른 통치가 국가 번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과 신하들은 왕과 기린에게 무조건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고두하여 그 존재를 존중함을 알립니다.

향간에 블로그의 평가에 보면 이 작품을 '전형적인 전근대적 왕실 사회의 동경'이라고 표현한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과연 작품을 끝까지 제대로 본 것인지가 의문일 정도로 작품에 대해서, 작가의 기본적인 사고에 대해서 잘 이해를 못하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겪는 고통은 단순한 여고생의 성장통이 아닙니다. 자신을 둘러싼 권위주의, 불합리와의 싸움에서 나오는 고통입니다. 작가는 단순히 소년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청소년의 성장 드라마를 쓴 것이 아니고, 왕실의 화려함에 대한 동경을 쓰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겪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자기 비하와 헛된 이상향 추구에 대한 격렬한 비판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현재의 잘못된 인식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하고 어찌 보면 조금은 과격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http://blog.naver.com/wonsay/70022585935 (원본 동영상을 퍼오는 것은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주소로 첨부합니다.)

작가의 사상이 가장 잘 투영된 장면이자 십이국기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꼽히는 경왕의 초칙 선포입니다. 음악과 성우의 박력 넘치는 연기가 맞물려 상당히 감동적이고 여운을 주는 이 장면에서 작가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합니다. 타인에게 강제로 머리를 숙이에 해서 얻어지는 권위가 아닌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하는 권위만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이야기는 현실 세계를 강하게 비판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이국기의 경국은 현실의 투영입니다. 백성들을 핍박하고 속이면서 왕을 허울뿐인 권위주의에 가두어 놓은 신하들에 의해서 경왕은 초기에 많은 번민을 겪습니다. 하지만 경왕은 직접 백성들 사이로 들어가서 함께 웃고 울고 싸우며 그들에게도 자신 스스로를 바꿀 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궁으로 돌아와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엎드려 굴종하는 자세인 복례를 폐지하고 국가의 오랜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에 들어가게 됩니다. 보다가 생각하는 것이 2002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을 보니 과연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현 정부와 권위를 낮추기 위해서 노력했던 전 정부의 대조적인 모습도 생각이 났습니다....)

명작이라고 불리우지만 걸작이라고 부르고 싶은 애니, 비밥과 더불어 제 인생 최고의 애니로 꼽고 싶은 만큼 상당한 감동과 여운이 있는 애니였습니다. 소설이 완결이 나지 않아서 애니 역시 미완의 작품으로 남았는데, 소설이 별로 완결 될 확률이 없다고 하니 애니 역시도 마찬가지일 듯 싶습니다...마지막으로 ost를 작곡한 양방언씨는 정말...대단하다고 할 밖에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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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덩이
10/05/13 12:40
수정 아이콘
OST가 정말 좋죠. 저도 좋아하는 애니입니다.
모모리
10/05/13 12:41
수정 아이콘
나온 소설만이라도 모두 애니화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시청률이 별로였다고 하죠? 2기가 나올 확률이 낮다고 들었습니다.
10/05/13 13:13
수정 아이콘
제발 부탁이니까 소설 완결이라도 좀.. 현기증 나려고 해요 ㅠㅠ
10/05/13 13:33
수정 아이콘
덕분에 좋은 작품 하나 알게 되었군요-! ^^;
KnightBaran.K
10/05/13 13:41
수정 아이콘
정말 재미있죠....흑기린은 어찌되었는지 궁금해요. ㅠ_ㅠ
저에게는 No.1 애니였습니다.
소원을말해봐
10/05/13 13:52
수정 아이콘
십이국기. 저한텐 군대가기전에 마지막으로 봤었던 애니네요.
보면서 주인공이 새로운 세계로 갔을때 느꼈던 것들이 앞으로 군대가서 느낄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
십이국기 생각하니 군대 제대한지도 한참 됐는데도 그냥 기분이 더러워(???)지네요...
(십이국기가 더러운게 아니라 그때 당시 제가 처했던 상황이)
마음속의빛
10/05/13 14:33
수정 아이콘
전 이 애니를 보고 소설책 전권 구입했습니다. 소설과 애니 내용에 결정적인 차이는 주인공 혼자 십이국의 세계로 왔느냐
이계 판타지 매니아 애와 남자 애랑 같이 왔느냐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용상의 전개를 비교해봐도
소설이 압도적으로 좋은 거 같더군요. 스스로 깨닫는 것도 많고...

구입한 책 중에 가장 후회 없는 소설... 그러나 소설 구하기가 어렵고, 대형 도서관이 아니면 보기 힘드므로
애니메이션만으로도 상당한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을 보시면. 지금도 경왕은 암살에 매일 시달리고 있어요.. 불쌍한 주인공..
실비아스
10/05/13 14:45
수정 아이콘
정말 좋아하는데... 완결이 안나와서ㅠㅠㅠㅠ
십이국기도 어찌보면 이세계 고교생 진입물인데 현실적인 이세계 진입물이었죠. 그나마 말은 통했지만 맨날 생고생하고 쫓기고, 그나마 있다는 무기는 맨날 주인공 휘드르려 치고... 경왕이 라크슌을 안만났으면 어찌됬을지^^;
타이키 편을 좋아하긴 하지만,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타이키편) 한국판 책을 봤을땐 좀 욱했어요. 책 한권짜리를 두권으로 나눠서 내다니...-_-+ 이 엄청난 여백들 어쩔거니 출판사 네 이놈들!
이글 본 김에 십이국기나 다시 봐야겠네요.
10/05/13 15:01
수정 아이콘
'황혼의 물가 새벽의 하늘'편에서는 작가가 세계관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뭔가 설명하기에 급급한 듯하고 산만했습니다.

그러니까 도남의 날개 편이라도 어떻게 애니화 좀...
10/05/13 15:18
수정 아이콘
그래서 언제 완결 나나 기다리다가 요즘은 잊고 살고 있었습니다..
Grateful Days~
10/05/13 15:41
수정 아이콘
공국 깡패여왕을 보고싶어.. ㅠ.ㅠ
에텔레로사
10/05/13 16:22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도남의 날개 편이라도 어떻게 애니화 좀...(2)
柳雲飛
10/05/13 17:32
수정 아이콘
마성의 아이 가지고 계신분 공유 좀 부탁드립니다.
도저히 구할수가 없네요.. ㅠ.ㅠ
10/05/13 19:23
수정 아이콘
저 초칙 선포하는 부분을 저도 제일 감명 깊게 봤어요.
십이국기는 애니로 봐도 원작 소설로 봐도 정말 여러모로 다 좋은데
한가지 단점이라면 대체 언제 연재분이 나올지 모른다는거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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