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이하 미미여사)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주로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그녀의 대표작들인 '모방범','용은 잠들다','이름 없는 독','마술은 속삭인다' 등은 모두 추리 소설에 관련된 일본의 문학상을 휩쓸면서 대중들의 시선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그녀의 이런 소설들 속에서 등장하는 뒤통수 치기의 절정인 반전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정신적 마조히즘(?)을 불러올 만큼의 쾌감을 선사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추리소설의 여왕에게서 가끔씩 찾아볼 수 있는 약간은 가벼운 작품들이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마니아라서 편집부로부터 비디오 게임 금지령을 받을 만큼 게임을 좋아한 이 여왕은 이러한 게임 속의 상상력을 본인의 작품으로 우려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작품들 중의 하나가 지금부터 소개드릴 판타지 세계를 향한 동경과, 그러한 동경을 본인만의 깔끔하고 유쾌한 문체로 우려낸 수작인 '브레이브 스토리'입니다.
이미 애니메이션, 만화책, 게임으로도 발매가 될 만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브레이브 스토리는 물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미미여사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개인적으로 게임은 즐겨보지 못했지만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은 모두 본 적이 있기에 세 장르의 작품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약간씩 소설 원작의 수정을 가미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모두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를 받는 만큼 꼭 한 번 쯤은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물론 개인적으로도 추천입니다.)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주인공인 와타루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와타루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을 하겠다며 집을 나가버립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내연녀가 집에 찾아와서 어머니와 싸우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실의에 빠진 와타루에게 어느 날 새로운 전기가 나타나는데 새로 전학온 학생인 미츠루가 사실은 가상의 세계인 '비전'을 여행하는 여행자이며 비전에서 여행자의 임무를 다하여 비전의 여신을 만나게 된다면 자신이 원하는 소원 한 가지를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혼란한 가정 상황을 다시금 예전의 모습으로 바로잡고 싶었던 와타루는 주저없이 비전으로 뛰어들게 되고 판타지 세계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언제나 자신의 소설에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를 아낌없이 쏟아내는 미미여사는 이런 판타지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써내려갑니다. 현실 세계 뿐만이 아니라 비전의 세계에서마저 이루어지는 이런 외침들은 가끔 '이게 판타지 소설이 맞나?'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무너지는 일본의 가정, 현대 사회에서 고립된 인격들의 무자비한 행위 등을 비판한 부분을 읽고 있자면 판타지 소설의 탈을 쓴 사회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무거운 주제를 낭랑한 문체로 유쾌하고 빠르게 풀어가는 것이 바로 미미여사의 장기입니다. 대체로 어두운 소설의 분위기에서 미미여사는 지루함을 덜기 위한 속도감 있는 전개를 시종일관 놓치지 않습니다. 가끔은 '너무 확확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긴 하지만 그런 단점은 애교로 봐줄 수 있을 만큼 책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무던히 신경 쓴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비록 4권이라는 상당한 분량의 작품이긴 하지만 처음의 약간 지루한 도입부를 제외한다면 비전의 모험 부분에서는 손에서 책을 놓기 힘들게 하는 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미미여사의 작가로서의 가장 큰 장점인 '두껍지만 재미있고 빠르다.'가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년의 성장 소설인만큼 약간 진부하고 낮간지러운 표현이 가끔씩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이야 일본식 성장형 RPG스토리의 전형적인 점이니 딱히 익숙하신 분이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이실 수도 있겠습니다.(원피스 같은 소년 만화에서 나오는 표현보다 약간 성숙한 정도입니다.) 또한 가끔씩은 아주 당연한 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쉽게 얻을 수 있고, 이미 얻었을 수도 있는 진리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4학년 초등학생인 점에서,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는 언제나 가장 평범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시금 되새기면서 읽으신다면 결코 이 소설이 유치한 내용이라고 말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미여사가 처음으로 본인의 종교적 색채를 드러낸 구절이 아닌가로 보여지는 구절이자, 제가 가장 소설에서 좋아하는 구절로 끝을 맺겠습니다.
우리 여신의 자식이, 티끌 같은 지상을 떠나 이제 여신님께 가려고 합니다.
우리의 선조이며 근원이신 정한 빛이여, 이끌어 주소서. 여행길에 선 이 사람, 그 어두운 발밑을 밝혀 주시옵소서. 불결함을 씻고 정한 영혼을 천공의 한 자리로 맞아 주시옵소서.
작은 아이여, 지상의 아이여. 신의 뜻에 위배되는 행동을 후회하는가?
때로 다투고, 때로 언쟁하고, 허위로 가득 차, 무지몽매했던 사람의 아이로서 거듭했던 그 중한 죄를 후회하는가?
때로 속이고, 이기적이었고, 신이 주신 사람의 아이로서의 영광 앞에서 얼굴을 돌렸던 것을 후회하는가?
여기서 깊이 후회함으로써 지상의 당신의 죄는 사하였노라. 쉬거라, 사람의 아이여. 불리어 올라가는 당신을 영원의 빛과 평온이 감쌀 것이다. 베스나 에스더 홀리시아. 사람의 아이로서의 그 생은 짧았지만 생명은 영원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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