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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텔레비전을 터뜨려 버린 이는 빌리라는 이름의 동양계였다.
이름은 빌리, 나이는 30대 초반이나 정확한 나이를 알진 못했다. 그와 같이 살던 그의 아버지가 이름 말고는 별다른 사실을 알려주지 못한 채 ‘그들’에게 잡아먹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알려준 몇 안 되는 이야기에 의하면 빌리라는 이름을 가진 그가 동양계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의 어머니가 중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아버지는 히스패닉계였다.-의 말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는 빌리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릴 때 “그놈들”에게 잡아먹혔다고 한다.
“그들” 아니, “그 새끼들”은, 바로 의식이 하드디스크에 백업 되고 남은 사람들의 빈 껍데기였다.
21세기 말, 영혼 -사람들은 쉽게 이를 영혼이라 불렀지만 사실 그것이 영혼이라는 증거 또는 증명은 어디에도 없다.- 을 디지털화하여 백업할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되고부터 유한한 육체를 버리고 반영구적인 하드디스크로 의식을 이주시키는 행위가 열병처럼 유행하기 시작됐다.
그것도 싼값에,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유혹은 인류 역사상 있었던 그 어떤 사건보다 강력히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일부 자연주의자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낙원으로의 이주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이들은 물론 더는 고통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가진 자들 역시 무엇보다도 죽지 않는다는 말에 기꺼이 지상의 이득을 포기했다.
세상은 순식간에 열병처럼 변해갔다, 사람들은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는 간데없이 의식을 뽑아내는 기계 속으로 마치 강가의 쥐떼들처럼 뛰어들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낙원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이없게도 의식을 뽑아내는 전기 신호에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 소수가 있었다.
빌리의 부모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흔히 들 “노마드”라 불리는 이런 사람들은 갑자기 변한 세상에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사람이 곧 그렇듯 이내 적응했다, 갑자기 넓어진 세상을 떠돌며 이곳저곳에 방치된 생필품과 식량, 가솔린을 따라 유랑했다.
빌리는 그런 노마드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부모를 잘 못 만난 탓으로 낙원으로 가지 못하게 된 것이지만 빌리는 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철이 들고부터 그런 생각을 머리에 담을 여유는 없었으므로.
그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인지는 알 방법이 없으나, 빌리의 아버지는 종종 그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린 선택 받은 사람들이다, 어느 누가 세상의 끝을 볼 기회를 얻을 수 있겠나, 이제 이 세상에는 가난도 차별도 없다. 인간이라는 것이 떠나버린 세상이 얼마나 이전과는 다른 곳인지 이전보다 평화로운지 아마 너는 잘 모를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 태어난 빌리는 아버지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빌리가 아버지의 말을 알아들을 나이가 될 무렵, 빌리는 적어도 한 가지는 아버지의 말이 틀렸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머무르는 세상이 더는 평화롭지 않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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