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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3/12 14:49:28
Name 해피
Subject [일반]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고대녀의 대자보...

그 내용과 그녀의 처신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찌되었건 그녀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지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는거니까.


다양한 의견과는 반대로 한가지 확실한 것은

많은 대학생들이 고민하는 내용 한번쯤은 생각해 본 내용이

대자보에 분명히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한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대학교 자퇴생이다.

다른 말로는 고졸? ^^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은 충청도의 시골집에서 태어 났던 나는

풍족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 않게 자랐다.

아버지는 내가 유치원을 졸업하자 마자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상경을 택했다. 왜냐?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충청도에서는 괜찮았지만 서울 생활은 부모님에게는 참 힘든 시기였을거다.

어머니는 전업주부에서 회사원으로 다시 일을 나가셨고,

아버지도 주말없이 일하시면서 나와 어린 동생을 뒷바라지 하시기 바빴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그냥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일 밖에는 없었다.

내가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부모님은 힘들지만 웃으셨고,

그것을 보는 나 역시 뿌듯했다.


열심히 일한 부모님의 경제사정은 점점 나아졌고,

나 역시 초중고 내내 큰 사고 없이 상위권을 유지했으나...

어머니 말처럼 그렇게 영특하지는 않았나보다;;;

대학진학은 명문대를 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름 서울안에 있는 대학에서는 10위 안에는 든다는 생각에 위안을 삼긴했지만...


이때쯤에는 아버지는 어느덧 조그마한 중소기업의 사장님이 되었고,

어머니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를 할만큼 여유가 있었다.

아들은 그래도 괜찮은 대학에 갔고, 하나 밖에 없는 동생도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


충청도 시골 4인가족의 서울 상경 스토리 치고는 나름 행복한 스토리이지 않은가?

부유한 아버지, 전업주부, 인서울 대학생 아들 딸...


하지만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군에 입대하자 마자 수입 식품업을 하시던 아버지 회사는 고환율에 못이겨 부도가 났고,

우리 가족은 쫒겨나듯 월세로 이사했다.

거기에 동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라며 미대 진학을 위해 공부를 다시 시작한 시점이었다.

제일 다행이었던것은 내가 군대에 가있어서 입 하나가 줄어 있었다는 거겠지...


가정이 행복할리가 있을까?

경제사정이 파탄이 났고 빛더미에 앉았는데?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조금 나아질거라는 희망도 있었지만,

그것도 확실한것은 아니었다.

2년이 다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내 심정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

어머니는 힘든 주방일을 하러 나가셨고...그 박봉으로 동생의 학원비를 챙겨주셨다.

제대를 했으니 복학을 해야 하는데, 등록금을 낼 형편이 도저히 아니더라.

이미 등록금은 아르바이트 한두달로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결국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등록을했다.


저학년때 놀아놨으니 이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졸업해서 직장 얻고까지 계산해보니 3년이나 남았다.

집은 무너질대로 무너진 상태다.

주말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지만, 내 학교 생활비 하기도 모자라다.


이때 내가 들었던 생각은 고대녀가 대자보에 써놓은 글과 비슷하다.

하지만 대자보의 결론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타협책으로

자퇴를 택하기로 했다.


정말 하나도 빠짐 없이 모두 반대했다.

부모님은 말할것도 없고, 동생도 마찬가지다.

학교 선배, 동기, 후배 할거없이 다 나에게 뭐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여자친구가 정말 서럽게 울었다...

내 마음도 갈기 갈기 찢어질거 같았지만 결심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바로 일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하루쉬고 복지따윈 꿈도 꾸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인정도 받았고, 조금씩 여유도 생겼다.

가족 생활비나 동생의 용돈 챙겨줄 정도까지의 능력은 되더라.

다행히 동생도 그만큼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어머니도 힘든 주방일에서 조금괜찮은 사무직으로 전환하셨고.

아버지도 조금 기운을 차리셔서 지금은 다시 요식업을 하신다.


얼마전까지 매일 싸우던 부모님, 방에 틀어밖혀 나오지 않던 동생.

피곤에 찌들어 잠만 자는 오빠만 있는 집에는 조금씩 웃음이 피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우리집안이 예전만큼 정상적으로 돌아온것은 아니다.

이번 학기도 동생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나 역시 그리 넉넉치 않은 봉급이기에 생활비와 학창시절의 대출금을 갚아가기 바쁘다.


어제는 내 봉급날이라서 피자를 시켜먹었다.

물론 가족들이 집에 오는 시간이 각자 달라 모두 모여 함께 먹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모두 같이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얼핏보면 가족을 위해 학업을 포기한 오빠의 이야기 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이것을 원했다? 라고 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사업이 망한 아버지를 원망한적도 있다.

더 부유하지 못한 어머니 집안이 싫어진적도 있다.

철없이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며 재수 삼수를 한 동생이 미운적도 있다.

대학생이 꿈을 찾아 공부하지 못하고 빛더미에 올리는 대학이 교육기관이 아니라 악덕기업이라 생각했고,

능력이 아닌 대학과 직장의 명함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의 부당함을 소리치고 싶기도 했다.


남의 탓을 할거없다.

이유라는 것은 결국 변명 밖에 되지 못한다.

그 어느 누구도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선택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고,

그 선택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해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그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내는 수 밖에 없다.


고대녀의 대자보에서 이런말이 있더라.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정말 수없이 들었던 말인데...

그때마다 내가 했던 말로 글을 마무리 질까 한다.

"빌게이츠랑 스티브 잡스도 고졸인데!"


Written By GMA  2010. 03. 12.


※ 편의상 반말체를 사용한 점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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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_TheMarine
10/03/12 14:54
수정 아이콘
[인증해피]란 말머리가 없어서 좀 어색하긴 하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좀 더 노력해야 겠네요.
선데이그후
10/03/12 15:08
수정 아이콘
빌게이츠나 잡스는 희대의 천재인데 비교대상으로 삼기에는 좀..
달걀껍질
10/03/12 15:11
수정 아이콘
고대 자퇴녀가 '진짜'였다면 조용히 나갔겠죠. 스티브 잡스처럼. 누가 이기나 두고보자라는 적의에 가득찬 마지막 문구에서 그냥 철없는 반골기질 성향의 '가짜'였구나 싶었습니다.
방랑청년
10/03/12 15:14
수정 아이콘
빌게이츠나 잡스는 천재인데다가 시대도 잘 타고났죠. 고대녀의 대자보는 철없는 중2병에서 아직 못벗어난 부적응자의 공허한 외침으로보이네요
남자의로망은
10/03/12 15:26
수정 아이콘
해피님의 글을 빠짐없이 읽어온 한 독자(?) 로서 이번 글을 좀 의외네요;; (머.. 여러가지 의미에서요;;)

4학년이라서 여러가지 걱정에 빠져서 좀 우울했던 저에게는 좋은 글이네요

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SNIPER-SOUND
10/03/12 15:36
수정 아이콘
대좋은 대학 정말 중요하죠.

하지만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좋은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면 꿈을 위해 올인 해야 하는 거겠죠.

하지만 생각없이 무조건 대학 대학 만 하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적성에도 않 맞는 과 에 가서 미래에 내가 무엇이 될지도 모르는 건 시간 낭비죠.
Grateful Days~
10/03/12 15:41
수정 아이콘
이런분을 보면서 나는 더 노력해야 하는구나 라는걸 느낍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__)
10/03/12 16:29
수정 아이콘
그러게 그래도대학이란말이 어떻게생긴말인지...
10/03/12 16:38
수정 아이콘
대단하십니다..존경합니다.
Korea_Republic
10/03/12 16:50
수정 아이콘
빌게이츠는 고졸이라기 보단 대학 중퇴 아닌가요?

암튼 좋은글 잘봤습니다. 저도 열심히 해야겠네요.
아름다운달
10/03/12 16:50
수정 아이콘
저도 요즘 참 나름 힘들고 생각많은 시간입니다만 님 글 읽고 용기 한소쿠리 담아갑니다.
그냥 살아가기보단 힘 내어 한걸음한걸음 좀 바지런해져볼려던 찰나에 원글님 읽고 기운내서 갑니다.
horizon~
10/03/12 17:22
수정 아이콘
남의 탓을 할거없다.
이유라는 것은 결국 변명 밖에 되지 못한다.
그 어느 누구도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선택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고....

저도 요즘 위 글과 비슷한 말을 좌우명으로 살고 있습니다.
제가 부끄럽고 반성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해피님 힘내세요~!
김성수
10/03/12 17:3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소위 S대 출신이고 저희 어머니는 고졸이십니다.
하.지.만 저는 게임회사 과장(이라쓰고 노예라고 읽는다)이고, 어머니는 중견기업 사장이십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제게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식을 쌓아만 두고 쓰지를 못한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 살래? 책좀 읽고 생각좀 해라."

그리고 꼭 이 말을 덧붙이시죠.
"돈도 못버는 놈이~"
10/03/12 18:06
수정 아이콘
대학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지, 목표가 되는 순간 지금 이 사회의 악순환의 굴레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죠.
이런 말 하는 저도 그 대학이란걸 들어가기 위해 스물셋 먹어서 입시 준비 중이지만요. 다만 대학이 목표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수단이 되도록 노력해봐야죠.
10/03/12 18:53
수정 아이콘
멋지네요.
맨날 신발 이야기 올리셔서 이런 뒷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대학보다는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려는 자세가 훨씬 중요한 거죠.
어디 가서 뭘 하시더라도 그 자리에 꼭 필요한 분이 되실 것 같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
4EverNalrA
10/03/12 19:17
수정 아이콘
조용히 추천 누릅니다.
10/03/12 21:15
수정 아이콘
할 게 없으면 조용히 대학 나와서 묻어가는 평범한 삶이라도 살아야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딸린 식구가 있다면 진지하게 고민해서 결정해야 되겠지요.
아직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세상이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김성수
10/03/12 23:25
수정 아이콘
저 역시 대학교 자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1학년에 재학중이고 학기초인데 벌써부터 느낌이 옵니다.

제가 대학을 가고자 했던 것은 하나의 꿈이있고 그 꿈에 도달하기 위한 공부를 좋은 곳에서 받고자
딱 이거 하나 였습니다.

애초에 취직같은 것은 생각해본적도 없고, 오로지 꿈만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대학오니 수업이 고등학교때와 별반 다른게 없더군요.

수업시간에 배우는 내용들은 모두 책으로도 배울 수 있는 교육이 너무 싫었던 저는..
그래도 조금 기대 했었는데, 창의는 얼어죽을 왜 혼자 해야 할 공부를 강의 시간에 같이 하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어쨋든 그 대자보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많은 대학생들이 고민하는 내용 한번쯤은 생각해 본 내용이] 딱 이 내용이였습니다.
물론 저는 대학교1학년이고 고등학교때부터 중학교때부터 쭉 교육에 대한 생각을 해왔었고 저 생각을 매번 갖고 있었던 입장입니다. 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갈까 말까 정말 망설였지만 갔습니다. 저는 그 고민이 고3 입시 때 정말 휘몰아쳤습니다.

글이 엉망이됬는데 어쨋든 더 높은 학교로 편입을 준비해서 편입 한번해보고 그래도 영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두는게 정답같습니다. 물론 얼마 안 가서 자퇴 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제가 초등학교때부터 키워온 꿈을 [그래도 대학은] 하면서 이리저리 들러 붙는데 아무리 그래도 진짜 현실은 도전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매번 느낍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착한사람이고.
제가 사람을 볼때는 '꿈에 대한 간절함이 있느냐'를 봅니다.
무지개곰
10/03/13 00:35
수정 아이콘
세상이 더럽다고 해서 세상에 나가지 않고서 어떻게 세상을 깨끗하게 하겠습니까 ..

제 짧은 생각으로는 부조리함 가운데 그 것을 밟고 일어서는 사람이 그 부조리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LightColorDesignFram
10/03/13 01:18
수정 아이콘
게임을 하든 도박을 하든 살다보면 미래가 없더라도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할 때가 있죠.
빌게이츠 따위(?)를 떠나서 해피님이 하신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그사람들이 훌륭한 사람인건 확실하지만, 꼭 그렇게 되어야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죠.
마술사
10/03/13 09:12
수정 아이콘
빌게이츠는 MIT 다니다가 중퇴했죠?...
DynamicToss
10/03/13 09:48
수정 아이콘
솔직히 말해서 대학에 배우는 과정은 의과대학 치의예과 공학도 아니라면 전부 책으로 알아서 배울수 있죠 특히 사회과학 쪽은 교수님은 전공책 읽는 경우 많답니다.
무한낙천
10/03/13 19:37
수정 아이콘
남의 탓을 할거없다.
이유라는 것은 결국 변명 밖에 되지 못한다.
그 어느 누구도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선택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고,

멋지네요..
10/03/13 20:51
수정 아이콘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사항에서 최선이라고 고민해서 한 일일테죠.
아무 고민없이 남들 다 다니고 있으니 대학생활내내 철없이 지내다가 막상 졸업때 되어서야 이게 아닌데 하는 일 많은데요.
자기가 뭐를 해야 겠단 결심만 섰다면 20대에 대학졸업장 따는 것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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