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가장 힘든 포지션은 투수하고 포수입니다.
그렇다면 이 둘을 빼면 어떤 포지션이 가장 선수들의 힘을 들게 할까요?
투수와 포수를 제외하면 단연 유격수가 독보적입니다. - 투수가 닥치고 외야 플라이형 투수라면 외야수가 똥줄빠지지만 -
우타자가 좌타자나 스위치히터에 비해 많고 당겨치는 스윙을 고수하는 우타자, 결대로 밀어치는 스윙을 고집하는 좌타자라면 3루수와 함께 타구 처리에 머리가 빠질지경이며 게다가 타구의 대부분은 유격수방면으로 흘러들어갑니다. - 3루수는 타구가 유격수에 비해 덜 오지만 타구의 속도가 참..... 그렇기때문에 몸으로 타구를 막는 3루수가 존재합니다. - 병살플레이는 반드시 성공을 시켜야하고 포수가 1루주자의 도루를 저지하기 위해 2루로 송구하면 2루수와 사인을 정해서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는등 유격수라는 포지션이 감내해야하는 스트레스는 포수와 맞먹을 정도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포수와 마찬가지로 타석에서 멀뚱히 서서 아웃당한다고 해도 팬이나 감독이 뭐라 하지 못할 포지션이 바로 유격수입니다. - 그래도 장종훈급 화력을 지닌 유격수나 이만수급 공격력을 지닌 포수가 있다면 수비가 약간 뒤진다고 해도 당당히 선발라인에 이름이 들어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종훈이나 이만수의 수비력이 딸린다는 말은 아닙니다. -
결론은 이종범 사기론이군요.
그러나 이 글에 등장하는 유격수는 이종범이 아닙니다.
류중일 - 이종범, 유지현, 김민호 - 박진만 - 손시헌, 강정호, 나주환으로 이어지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 유격수 계보중 당당히 첫머리에 이름을 올리는 대선수 김재박이 이 글의 주인공입니다.
지금은 "내려올 팀은 내려온다." 라는 희대의 명언, 희생번트 "김번트" 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감독" 이지만 선수시절 김재박의 플레이는 상대 타자들을 교활하게 농락하는 유격수였으며 타자로서는 상대 배터리를 갈갈이 찢어놓는 주자로서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없을 정도였습니다.
실업야구 시절에는 데뷔하자마자 트로피 7개 - 타격, 홈런, 타점, 도루, 신인왕, MVP, 타격 삼관왕 - 를 휩쓸었으며 1982년 서울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그 유명한 개구리번트를 선보인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프로무대에서도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 5회 수상에 빛나는 기록을 남긴 선수였습니다.
이제부터 역대 최고의 유격수라 불리는 김재박의 선수생활을 다루어보겠습니다. - 프로무대 한정입니다. -
1954년 5월 23일에 태어난 김재박은 1982년 서울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가 끝난 후 MBC청룡에 입단합니다.
MBC청룡의 경우에는 그를 1년 두었다가 쓸 수 있다는 손해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명했고 야구인들 모두가 한국 최고의 유격수 김재박의 플레이를 보기위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김재박은 1982년에도 MBC에서 활약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 하지만 흑역사 -
1982 김재박 : 3경기 출장, 타율 0.000, 출루율 0.000, 장타율 0.000, 13타석 13타수, 0안타, 0홈런, 0득점, 0도루
1983년, 김재박은 모습을 드러냈고 정확한 송구력과 상대 주자들을 교묘히 속이는 플레이등 그 당시 유격수로서는 정점에 이른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MBC공격의 선봉장으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983 김재박 : 97경기 출장, 타율 0.290, 출루율 0.373, 장타율 0.399, OPS : 0.772, 433타석 373타수, 108안타, 2루타 22개, 3루타 2개, 5홈런, 46타점, 53득점, 42볼넷, 몸에 맞는 공 10개, 고의사구 2개, 34도루
타율 11위, 출루율 8위, 장타율 21위, OPS 16위, 최다 타석 2위, 최다 타수 6위, 최다 안타 6위, 최다 2루타 2위, 최다 3루타 11위, 홈런 25위, 타점 12위, 득점 4위, 볼넷 4위, 몸에 맞는 공 3위, 고의사구 10위, 도루 2위
그리고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합니다.
MBC청룡은 후기리그에서 우승하여 한국시리즈에서 전기리그 우승팀 해태타이거즈와 경기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해태에게 0 : 4 - 그리고 1무승부 - 로 패배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손에 쥐는데는 실패합니다.
김재박은 한국시리즈 전경기에 출장해 타율 0.238, 출루율 0.273, 장타율 0.286, 5안타, 2타점, 1도루를 기록합니다.
1984년, 3할을 기록한 김재박은 이 해에도 MBC공격의 선봉장으로서 활약했고 유격수로서도 정점의 수비를 보여주게 됩니다.
1984 김재박 : 91경기 출장, 타율 0.300, 출루율 0.370, 장타율 0.423, OPS : 0.793, 392타석 343타수, 103안타, 2루타 11개, 3루타 5개, 7홈런, 37타점, 53득점, 36볼넷, 몸에 맞는 공 5개, 고의사구 1개, 26도루
타율 8위, 출루율 10위, 장타율 14위, OPS 13위, 최다 타석 12위, 최다 타수 11위, 최다 안타 4위, 최다 2루타 26위, 최다 3루타 5위, 홈런 16위, 타점 15위, 득점 6위, 볼넷 12위, 몸에 맞는 공 12위, 고의사구 15위, 도루 4위
그리고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2년 연속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합니다.
1985년, 김재박은 생애 최고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또한 해태의 김일권의 도루부문 타이틀 수상을 저지하면서 도루부문 타이틀도 차지하게 됩니다.
또한, 재미있는 뒷 이야기가 하나 존재하는데 1985년 7월 27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vs 삼성라이온즈전에서 구원투수로 등판, 0.2이닝동안 공을 던지고 구원승을 얻어낸 것 입니다.
그리고 김재박은 자신만의 슬라이더를 만들어내 앞으로 LG에서 주력 선발투수로 성장할 김태원과 정삼흠에게 자신의 슬라이더를 가르쳐준 적도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김재박은 포수로서도 한번 출장해 OB의 1루주자 신경식의 도루를 저지한 적도 있습니다.)
1985 김재박 (투수) : 1등판, 0선발, 0.2이닝, ERA : 0.00, 1승(1구원승) 0패 0세이브, 0K
1985 김재박 (타자) : 100경기 출장, 타율 0.313, 출루율 0.382, 장타율 0.393, OPS : 0.775, 431타석 377타수, 118안타, 2루타 15개, 3루타 3개, 3홈런, 36타점, 54득점, 39볼넷, 몸에 맞는 공 5개, 고의사구 1개, 50도루
타율 6위, 출루율 9위, 장타율 18위, OPS 14위, 최다 타석 8위, 최다 타수 8위, 최다 안타 4위, 최다 2루타 18위, 최다 3루타 12위, 타점 23위, 득점 11위, 볼넷 17위, 몸에 맞는 공 16위, 고의사구 15위, 도루 1위
3년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도루부문 타이틀까지 차지했습니다.
1986년, 그동안 무리가 쌓였고 나이도 이제 적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재박은 조금 주춤합니다.
1986 김재박 : 102경기 출장, 타율 0.264, 출루율 0.336, 장타율 0.363, 447타석 386타수, 102안타, 4홈런, 67득점, 38도루
그래도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그래도 김재박이라는 평이 나왔습니다.
1987년, 방망이실력은 다시 예전처럼 회복되었지만 10여개 초반에 머무르던 실책수가 - 1983년은 19개 - 갑자기 21개로 늘어난데다가 삼성의 신인 유격수 류중일이 김재박 못지않은 활약을 보이며 김재박은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합니다.
1987 김재박 : 100경기 출장, 타율 0.283, 출루율 0.354, 장타율 0.373, 448타석 399타수, 113안타, 1홈런, 53득점, 33도루
1988년, 30대 중반에 들어선 나이로 인해 조금씩 발이 느려지고 방망이에서도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지만 그래도 꾸준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해에는 빙그레의 장종훈에게 밀리며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합니다.
1988 김재박 : 99경기 출장, 타율 0.267, 출루율 0.313, 장타율 0.330, 447타석 409타수, 109안타, 2홈런, 49득점, 25도루
1989년, 김재박은 선수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18개의 홈런을 때린 빙그레의 장종훈을 제치고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를 탈환했으며 1985년 이후로 가장 많은 도루를 기록했습니다.
이 해에 김재박이 차지한 골든글러브는 5번째이자 마지막 골든글러브였습니다.
그리고 이 해의 김재박은 단, 1경기차이로 간신히 6위에 머무를 정도로 폐허가 된 - 특히 선발진 - MBC의 희망이었습니다.
1989 김재박 : 101경기 출장, 타율 0.286, 출루율 0.380, 장타율 0.345, OPS : 0.725, 425타석 357타수, 102안타, 2루타 8개, 3루타 2개, 3홈런, 27타점, 64득점, 53볼넷, 몸에 맞는 공 4개, 39도루
타율 13위, 출루율 8위, 장타율 27위, OPS 22위, 최다 타석 15위, 최다 타수 17위, 최다 안타 13위, 최다 3루타 24위, 득점 3위, 볼넷 8위, 몸에 맞는 공 18위, 도루 2위
1990년, 그동안 몸담고 있던 팀 MBC는 LG그룹에 인수되면서 LG트윈스로 이름이 바뀌었고 신바람을 달리면서 1위에 올라 한국시리즈에 직행했습니다.
그리고 삼성라이온즈를 4 : 0으로 꺾으면서 처음으로 우승컵을 손에 쥐게 됩니다.
김재박은 LG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으나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내리막길을 걷던 그에게 더이상 방망이 실력을 기대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깔끔한 수비실력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1990 김재박 : 109경기 출장, 타율 0.239, 출루율 0.306, 장타율 0.289, 431타석 381타수, 91안타, 2홈런, 49득점, 14도루
한국시리즈에서 김재박은 전경기에 출장해 타율 0.286, 출루율 0.444, 장타율 0.286, 4안타, 2득점, 3도루를 기록했습니다.
1991년, LG는 순식간에 추락했고 - 타선이 주저앉아 버림 - 게다가 백인천 감독의 사퇴로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노쇠화에 접어든 김재박의 입지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1991 김재박 : 82경기 출장, 타율 0.263, 출루율 0.343, 장타율 0.332, 292타석 247타수, 65안타, 0홈런, 34득점, 15도루
결국 시즌이 끝나고 LG구단은 김재박을 강제로 은퇴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선수생활을 더 오래하고 싶었던 김재박은 구단의 은퇴권유에 반발했고 결국 초유의 무상트레이드사태를 겪으며 태평양돌핀스로 가게 됩니다.
1992년, 김재박은 새 팀 태평양에서 시즌 초반에는 10여경기 연속안타를 때려내며 활약했지만 결국 30대 후반의 나이로 인한 체력문제로 인해 쉽게 지쳐버렸고 예전의 실력을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1992 김재박 : 82경기 출장, 타율 0.221, 출루율 0.299, 장타율 0.272, 311타석 276타수, 61안타, 1홈런, 36득점, 10도루
그리고 1992년 시즌이 끝나고 김재박은 은퇴하게 됩니다.
통산 966경기 출장, 타율 0.273, 출루율 0.346, 장타율 0.353, OPS : 0.698, 4070타석, 3561타수, 972안타, 2루타 148개, 3루타 26개, 28홈런, 321타점, 512득점, 364볼넷, 몸에 맞는 공 45개, 고의사구 14개, 284도루(7위), 희생타 74개, 희생플라이 25개, 실책 134개(15위)
김재박이 10년간 남긴 기록입니다. 이 외에 도루부문 타이틀 1회 수상,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 5회 수상, 10년 연속 두자릿수 도루가 김재박이 남긴 또다른 기록입니다.
포스트시즌과 올스타전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 선수생활 시작부터 은퇴할때까지 계속 올스타전에 출장했습니다. -
포스트시즌
9경기 출장, 타율 0.257, 출루율 0.350, 장타율 0.286, 41타석 35타수, 9안타, 0홈런, 2타점, 2득점, 5볼넷, 4도루
올스타전
15경기 출장, 타율 0.190, 출루율 0.230, 장타율 0.259, 61타석 58타수, 11안타, 1홈런, 6타점, 5득점, 3볼넷, 3도루
기억속의 모습과 기록지위의 기록이 잘 매치가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격수부문에서 그만큼 골든글러브를 많이 수상한 선수가 없으며 - 박진만이 5회로 동일 - 박진만이라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유격수를 길러냈습니다.
그리고 몇몇 잊혀지지 않는 모습을 남겨준 김재박.
그라운드에서 수비자세를 취하고 서있는 유격수 김재박은 그 어떤 유격수보다 믿음직스러울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