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농땡이 칠만큼 쳤으니 다시 또 노예질을 해야겠죠....... 빨리 글을 써, 글을 쓰란 말이야
1984년에서 1985년까지의 기간을 다룹니다.
절취선----------------------------------------------------------------------------------------------------------------------
1984년, 시즌 전 - 정확히 표현하면 1983년 시즌 후인 11월 17일 - 삼미를 뒤흔드는 트레이드 한건이 벌어집니다. 주축투수 임호균과 롯데의 우경하, 권두조, 박정후, 김정수를 트레이드한 것입니다.
임호균은 이 트레이드 사실을 알고 강하게 반발, 삼미그룹 김현철 회장에게까지 찾아가 항의를 합니다. 하지만 결국 박종환 롯데단장과 강병철 감독의 설득으로 롯데자이언츠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1984년 롯데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한 축을 담당합니다.
여담으로 롯데로 간 임호균은 1984년에 롯데가 삼미와 맞붙은 20번의 경기중 7번의 경기에 등판해 3완투승 1패를 기록하며 확실한 응징을 했고 장명부에게도 완투승을 거두며 삼미 킬러로 거듭납니다.
위의 트레이드가 성사된 이유는 우선 장명부와 임호균사이에 보이지않았던 알력때문이었습니다. 인천의 간판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삼미슈퍼스타즈내에서도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로서 활약하던 임호균과 30승을 올리면서 에이스로 활약한 장명부. 하지만, 장명부는 팀내에서 선수들이 임호균을 전적으로 따르는데 불만이 많았고 그 점은 결국 두 선수 사이에 보이지않는 불화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이유로는 장명부가 투수코치로 나서면서 자신이 직접 투수를 키워내겠다는 자신감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위와같은 이유로 임호균은 롯데로 롯데에서는 4명의 선수가 삼미로 오게된 것입니다. 하지만, 권두조를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썩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임호균은 위에서 서술했다시피 1984년 롯데의 우승을 이끄는 한 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한 1984년. 하지만 장명부는 1983년의 장명부가 아니었습니다. "30승을 하면 1억을 주겠다." 라는 허형 구단주의 약속을 믿고 실제로 30승을 올렸으나 구단쪽에서는 "문서화된 조항이 아니다." 라고 1억지급을 거부했고 허형 구단주가 사비 몇천만원을 장명부에게 주었으나 실망한 장명부는 결국 태업을 벌이게 됩니다.
일단, 1984년 장명부의 성적을 살펴보겠습니다.
1984 장명부 : 45등판, 25선발, 261.2이닝, ERA : 3.30, 13승(11선발승, 2구원승) 20패 7세이브, 145K
200이닝을 넘게 던지고 - 최동원에 이어 2위 - 두자릿수 승수를 올렸지만 이미 장명부는 예전의 장명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장명부가 키워내려고 했던 투수 정성만, 박정후, 신태중은 14승 27패로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내었습니다. - 그나마 정성만이 8승을 올리며 선전 -
그나마 타선에서도 양승관의 부상, 김진우의 부진이라는 악재가 겹치며 삼미는 작년의 돌풍을 이어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정구선이 타율 0.293, 홈런 12개, 46타점을 기록하며 타선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1984년 5월 5일에 vs 해태타이거즈전에서 해태의 "혹성탈출" 방수원에게 첫 노히트노런이라는 기록의 희생물이 되는 등의 부진은 여전했고 결국 전기리그 18승 30패 2무로 6위, 후기리그에서도 20승 29패 1무로 6위, 도합 38승 59패 3무로 종합순위 꼴찌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장명부와의 연봉문제, 백인천의 거취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게 됩니다.
백인천은 옷을 벗었으나 장명부의 경우에는 일이 상당히 골치아프게 되었습니다. 일단, 2가지 사항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장명부가 20승에 못 미치는 성적을 올렸을 경우 그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는 것, 나머지 하나는 연봉삭감.
장명부는 벌금에는 동의했지만 연봉삭감에는 법정까지 가겠다며 강력히 반발합니다. 간신히 장명부의 연봉을 삭감하며 일을 매듭지었으나 결국 장명부는 삼미슈퍼스타즈에 마음이 떠나버리게 됩니다.
1985년, 3월 30일의 개막전에서는 승리했으나 그 후, 3월 31일부터 지긋지긋한 연패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장명부, 정성만, 정은배등등 팀내의 주축투수들을 내보내도 모조리 패배했고 이 연패의 늪을 헤어나올 기미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3월 31일 vs 롯데전부터 4월 29일 vs 롯데전까지 무려 18연패, 그리고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최다연패기록. 타 팀들은 오히려 "삼미에게 지면 망신이다." 라는 각오로 전력을 다해 승부했고 삼미는 도무지 이길 기미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김진영 감독은 조건부 휴가라는 명목하에 지휘봉을 놓았고 구단 프론트 직원은 "차라리 나를 때려서 화가 풀린다면 나를 때려라." 라며 팬들에게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끝은 보였으니....... 4월 30일 vs MBC전에서 최계훈이 6안타 완봉승으로 팀을 연패의 나락에서 건져낸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삼미그룹은 구단을 청보그룹에 팔아버렸고 전기리그에서는 삼미슈퍼스타즈라는 이름을 쓰지만 후기리그에서는 청보핀토스라는 이름으로 팀을 운영하게 됩니다. - Pinto는 조랑말 또는 얼룩말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팀의 마스코트를 그린 그림을 본다면 조랑말....... -
전기리그 삼미슈퍼스타즈의 전적은 15승 40패로 압도적인(?) 꼴찌였습니다.
후기리그부터 새로이 출발한 청보핀토스는 복귀한 김진영 감독의 지휘하에 거침없이 질주, 한때는 후기리그 2위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막판에 페이스가 떨어지며 24승 30패 1무로 후기리그 4위에 머무릅니다.
종합순위는 39승 70패 1무로 또다시 꼴찌.
장명부는 11승 25패를 기록. 작년에 자신이 세운 단일시즌 최다패 기록을 또다시 넘어섭니다.
마지막회에 계속됩니다.
모든 기록은 아이스탯(www.istat.co.kr)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