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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04 12:52
폴록이 최초로 미술관에 변기를 들여놓은 인간이었던가요? 워홀이 상품 박스를 들여 놓은 것은 기억 나는데 말이죠.
예술의 종언을 알리는 (혹은 최후의 해체를 알리는) 두 예술가만 알아도 현대 미술을 '아는 척'하는게 아니라 정말 다 말할 수 있잖아요.(더 이상의 전환은 가능한가? 새로운 예술은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모방의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예술은 시대와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가? 따지고 보면 전부 미학의 문제네요^^) 핵심이 잘 잡힌 좋은 글인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09/10/04 13:57
慙愧님// 말씀하신 작품은 마르셀 뒤샹의 '샘'입니다. 잭슨 폴록은 액션 페인팅으로 명성을 얻었죠.
사실 드 크닝이나 폴록의 추상표현주의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표현의 형식 또한 예술의 대상이 된다고 강변했던 그들이, 사실은 평론가들과 손잡고 세상을 상대로 거대한 사기를 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미술은 존재하는 피사체의 재현을 포기하고, 피사체 자체의 존재를 부정해가며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현대 추상미술은 여기에서 나아가 표현 자체를 부정하고, 소통과 인식의 과정을 논하기 시작합니다. 미술은 이제 라캉과 보드리야르의 이름으로 인류의 삶 전반에, 표면적 일상 전체에 편재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미술의 독자적 영역의 상실 내지 병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구조주의에서 의미하는 완벽한 해체라면 할 말은 없겠지만요. 저는 미술에게 어떤 깎이고 깎이어도 남는 표현의 뼈다귀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만큼이나 오래된 미를 추구하는 문학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하는 관점 또한 음미해 볼 만한 것이겠지요. - 우리는 쓴다. 쓰여진 것으로써 말한다. 하지만 쓴다는 것과, 말한다는 것은 명백히 다른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쓸 것이다. - p. s: 허세미술의 진수는 코스가 정해져 있죠. - 르누아르전 다녀오셨어요? - (겸손하게)전 무식해서 그런지, 너무 관능적이면 질려버리는 것 같아요. 압도당한다고 하나. 하하. 전 드가가 좀 더 편하고 와닿더라구요. - 저도 사실 그냥 비싼 그림이라고 해서 갔죠 뭐(소탈한 웃음)하하. 전 클림트(혹은 실레)가 좋아요. - (클림트일 경우 : 살로메를 그린 그림이 좋다고 말한다. 키스는 유명하지만 안 와닿는다고 언급하는 것은 필수) (실레일 경우 : 자화상을 얘기하던지, 히틀러와 같은 해에 빈의 같은 미술학교를 지원했던 이야기로 진행) - 사실 막 유명하다고 하는 화가분들은 열심히 보려고 하는데 잘 모르겠고(수줍게 웃는다) 00그림은 가끔 보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내 방에 걸어두고. 그래서 몇억씩 주고 그림 사나 봐요. 프프. (이 경우 에드워드 호퍼의 고독, 윌리엄 터너의 안개와 빛, 보나르의 고양이 정도가 좋은 주제. 상대가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고, 분위기 잘 사는 화가들이기도 하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청자가 여성일 경우 프리다 칼로와 남편 디에고의 이야기 정도는 달달 외워두면 반드시 써먹을 때가 온다) 뭐... 어떤 자리에서든 보통 이런 형태로 흘러가게 됩니다. 대화의 예의를 아는 남자라면 자신만 알 것 같은 작품을 꺼내어 대화의 맥을 끊지 않는 선에서 어떤 이야기에도 유연하게 받아넘기는 것이 진정한 허세미술의 운영의 묘...일까요? 프프. 소개팅을 자주 나가시는 분들이라면 잘 나가는 책이나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부지런히 공부하기도 하지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때는 베르메르, 메이헬렌, 카메라 옵스큘러를 외우고, 다빈치 코드 때는 죠콘다 부인을 외우고... 결국, 미술은 이런 지식이나 논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추상표현을 대할 때에 대단하다는 인식에 그칠 뿐, 감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09/10/04 17:09
판님//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나, 존 케이지의 '4분 33초'와 같이 철학적 맥락 속에서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일부 현대예술의 흐름이 평론가들과 작가들의 협의에 의한 사기에 불과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예술가들이 사교계의 아이콘으로 대접받고, 작품 그 자체보다는 작품을 만든 사람의 행적에 의해 작품이 평가받는 이 아이러니를 제대로 꼬집은 명문인 듯하여 고개를 주억거리게 됩니다.
09/10/04 18:05
몇년전에 갔었던 오르세 미술관 전시전이 생각나네요. 고흐니, 세잔이니, 르누아르니 그런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림들을 직접 보니까
정말 신기하더군요. 뭐, 저는 지식이 딸려서 그냥 그림 보고서 '와, 예쁘다!' '우와, 물감을 이런데 떡칠해놨네.' '오오, 그림에서 광채 가 난다!' '이야, 진짜 실감나는 그림이다' 뭐 이런 식의 평밖엔...ㅠㅠ 아는게 없으니 느낀대로라도 표현을 해볼뿐입니다.
09/10/04 20:24
유유히님// 마그리트는 판님께서 언급하신 추상표현주의가 아니라 초현실주의죠. 판님께서는 마그리트를 싫어하지 않으실 것 같는데... 저만 그렇게 읽은 건가요?
개인적으로 그 시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적어도 진정성이라는 걸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이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마그리트를 좋아하는데 다른 화가들은 감성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마그리트는 이성으로 그린다는 느낌이 들어서 입니다. 하지만 판님께서 언급하신 뒤샹, 폴록 그리고 개인적으로 워홀이나 요즘 한참 주가를 올리는 데미안 허스트 같은 사람들과 중국 신흥 재벌들의 구매력으로 인해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중국 현대화가들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예술의 가치가 자본가들이 얼마에 그 그림과 작품을 사들이냐에 따라 결정되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봐도 항상 화제가 되는 건 그림의 가치보다는 그 그림이 경매에서 얼마에 팔렸냐이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의 예술적인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세상에 충격을 주고 그 충격으로 자신이 유명해지길 바라는 것 같아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실 그림이라는 것은 자기가 보기에 좋게 느껴지면 그게 최고 아닌가요? 어떤 유명세에 눌려서 그냥 좋아보이네?식의 태도는 미술을 대하는 가장 의미없는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09/10/04 20:26
사실 미술관의 작품에서 무슨 화풍을 느끼고 무슨 영감이 팍팍 오는 경우는 거의 없을 뿐더러 평론가가 아닌 이상 그런 것을 느꼈다고 있는 척 할 필요는 별로 없습니다. 여자친구가 미대 전공이 아닌 이상 그런거 잘 모르긴 매한이니까요.(미대생들도 딱히 신통찮은 친구들이 많이 있더군요.) 그냥 적당히 작품의 배경 정도만 알아두어도 좋을 듯 싶습니다.
09/10/04 21:32
몽키.D.루피님//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 단언했던 르네 마그리트와, 가게에서 소변기를 하나 사다가 '이것은 샘이다.'라고 개념정의한 뒤샹의 예술관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것은 둘 다 '지배적 담론'의 파괴입니다. 마그리트의 대표적인 작품 '겨울비'나 '백지수표'등, 초현실주의 화가로서 보여주는 신선한 시각들이 주목받았습니다만, 적어도 '파이프'에서 보여주는 인식론은 현대미술의 추상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은, 개인적으로 마그리트에 깊이있는 식견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루피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박하지는 못하겠군요. 마그리트에 대해 더 공부해 보겠습니다.
09/10/04 21:38
현대미술은 어쩔 때는 철학의 문제인 것 같아서 너무 어렵더군요. 그렇다고 중근세 미술이 쉽냐 하면은 도상학을 모르는 저로서는 어렵고. (그래도 대단한 예술 작품은 배경지식의 유무와 관계없이 감동을 주더군요. 예전 오르세미술관 전시회에서 관객들이 다 르누아르의 피아노 앞의 소녀 그림에서 몇초씩 머물러 있다 갔죠.)
그나저나 미술관에 같이 갈 처자가 있어야 이런 메뉴얼을 외우면서 아는 척을 할텐데 ㅠㅠ
09/10/04 21:43
정말 재밌고 유익한 글이네요..
이런 글은 딴지일보식의 반말체가 더 재미있을 듯도 한데, 존대말로 풀어주시니 오히려 신선합니다.. 저같은 미술에 관한 문외한도 이런 곳에서 자주 듣다보면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되지요. 나중에 시간나면 각 미술사와 대표작품에 대해 눈을 돌려야 겠어요...
09/10/05 00:49
불같은 강속구님이 연재 해주시던 서양화 읽기가 생각나네요.
미술에 관심은 있고 지식은 없는 저로써는 이런 글들 볼때마다 너무 감사합니다.
09/10/05 11:04
판님// 오우, 늘 기억이 오락가락 하는 저를 위해 판님이 적절한 설명을 해주셨네요. 우선 감사드립니다. 판님께서 설명하신 부분을 이어서 보다 보면 저는 한 편으로 이 시점에서 루카치 미학을 통해 예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적절한' 리얼리즘이 '적절한' 구원 테크트리가 되지 않을 까 합니다. 다만 문학계에서 미술계와 균질의 움직임은 존재했고, 그것이 서양 문학꼐를 지배한다는 점은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각 예술의 움직임은 항상 시대에 따라 비슷한 움직임 혹은 관념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항상 시대냐 예술 그 자체냐를 왈가왈부하는 문제가 되어 왔으니까요. 해체는 근본적으로 시대상 또한 해체하는데 있습니다. 미술이 현실 그 자체의 모사에서 벗어나 미술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 구조주의에서 시작된 문학관은 미국으로 넘어가 뉴 크리티시즘으로 등장하게 되었죠. 네, 문학은 쓰여지는 순간 문학 그 자체로 존재하며 일체의 작가나 시대와는 관련이 없다는 관점 그것 말이죠.
이러한 관점이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효용성이 있어서 널리 퍼졌다. 라는 제가 배운 어느 교수님의 말도 생각해 볼 만 합니다만, 어쨌든 이 역시도 포스트 모더니즘의 일맥을 따라 흐른다는 것이 또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결국 루카치의 한 마디로 돌아가야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어디였더라, "우리는 모든 개별감각의 미적 발전이 현실에 대한 포괄적 반영을 지향한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역시 오락가락 하지만) 라는 일문은, 결국 지금의 흐름 역시 판님이 말하신 표현의 뼈다귀를 향한 흐름으로 가게 되어있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부는 통섭의 바람은 한 번 생각해 볼 만 하죠. 다만 우리가 바라는 모습의 통섭과는 달리, 윌슨의 통섭은 근대 계몽주의의 통섭이라는 점 때문에 그 독해에는 주의를 요하겠습니다만,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라는, 즉 시대상에 대한 물음이 예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믿음 하에 보자면 이 때는 그 '표현의 뼈다귀'는 실제한다는 결론을 향해 수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현대 예술계의 물음은 항상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느 것이 진정한 '예술' 그 자체의 역사인가? 그래서 현대의 문제는 "예술이 뭐지?" 라는 물음이 되었고, 그래서 예술은 예술의 종언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예술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다시 통섭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물음은 더 진해지죠. 아니 그래서 예술이 뭐란 거야? 결국 쳇바퀴...이래서 그 교수님이 뉴 크리티시즘의 옳고 그름 보다는 효용성을 언급하신 모양입니다. 더 나아가야 하는데 곧 시험기간이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관계로...여기서 줄이죠
09/10/06 00:13
유유히님 혹시 서양미술의 이해 그런 과목 수업 들으시는 건가요?
왠지 그런 삘이 전해져옵니다. 흐흐. 피지알에서 복습하시면서 나중 여친에게 써먹을 미술상식들을 다시한번 외워보는 시간을 가지시는 건 아닌지, 불경스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만 아니시겠지요. ^^ 다 저희를 위해 알려주시고 또 그림에 대해 담론(!)을 나눠보고자... 그나저나 저도 정말 그림이라고 하면 꺼뻑 넘어갈 정도로 좋아하진 않지만 꽤 많이 좋아하고 나름 썰을 풀어놓을 정도는 됩니다만 언제나 느끼는 건 그림은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판님께서 쓰신 허세미술의 정수 재밌게 읽었습니다만 저는 본시 그런 허세따위 떨 수 없는 촌스러운 인간인지라 미대를 졸업하신 화실선생님께도 모네 그림 별론데, 느낌도 별로 없고, 복숭아색도 별로고... 이딴 말들을 늘어놓기도 하고 그랬었죠. 특히나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반감을 가지기도 했고 예술과 사기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겠다고 화가가 업이신 분에게... 못할 말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아 물론 그 분 작품을 두고 한 건 아니지만 어찌보면 현대 미술을 하는 분들에 대한 모욕(헉)일수도 있으니... 하지만 저처럼 하찮은 것의 악평따위야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느낌을 계속 간수하며 살다보면 조금씩 나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아진다기보다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된다고 할까요. 현대 미술가 중에 로스코라는 작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제가 싫어했던, 큰 벽면에 검은색 칠해놓고.. 끗. (장난하냐... 라고 말하고 싶지만 무슨 평들에는 절대무를 경험할 수 있는 로스코의 어쩌고 저쩌고) 그런 건 나도 하겠다, 라는 일반사람들의 평가를 끌어내기 십상인 작가죠. 그런데 그렇게 싫어하던 로스코의 작품을 영국에서 직접 볼 기회가 있었는데 (런던 테이트 모던에 가면 로스코 룸이 있습니다) 정말 오바+진상 이라고 여겼던 스탕달신드롬이 대략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위에 많은 분들께서 미학적인 이야기를 적어놓으셨지만 또 그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름이 마그리트인데 전 개인적으로 마그리트를 싫어합니다. 생각해보니 그 작자가 처음부터 싫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뭐 마그리트가 저한테 해꼬지한 거도 아닌데 싫을 이유는 없습니다만... 주변에 보면 그림에 별로 관심은 없고 책을 많이 읽은 식자형 친구들이 좋아하는 화가로 마그리트를 잘 꼽더군요. 미술을 교양으로 삼고 대화에서 빠지지 않으려고 주워섬긴 친구들 있지 않습니까. (아 물론 마그리트를 좋아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이렇지 않죠! 오해는 마십시오) 그림 전시회 한번 안가고 붓 한번 제대로 놀려본 적 없고 그림 그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마그리트는 좋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마그리트 그림의 해석이 신선하게 다가와서, 이상하게 괴물같이 그리는 피카소보다 나아보이고 모나리자를 좋아해요라는 촌스러운 발언을 하려니 조용필의 모나리자가 떠올려서 차마 못하니, 마그리트 좀 독특하다 싶어 좋아하는 것도 같더라구요. 물론 그런 마그리트 작품의 매력을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전 공부쟁이들이 좋아하는 마그리트가 매력이 없더군요. 뭘 아직 잘 모르는 저에게 마그리트는 그림으로 철학을 한 양다리쟁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림이 언제부터 식자들만의 향유물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림은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크레파스로 도화지 색칠하는 어린아이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굳이 알아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앎이 감상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에 대항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앎에 우리는 너무 갇힌다는 생각을 합니다.) 진짜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는 정말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로마의 어느 교회에 있는 카라바조의 어느 그림을 보려면 1유로를 넣어야 합니다. (그러면 조명이 켜지지요) 그 1유로가 전혀 아깝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조명이 꺼질 때까지 화가가 그려낸 작품에 눈을 못떼는, 순수하게 그림 좋아하는 바보들도 있습니다. 전 그런 바보들이 당당하게 자기 감상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하네요. 미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중3 국어 교과서에서 떠들 때는 언제고 이런 예술 작품 앞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느낌도 이야기하지 못하게 된 걸까요... 아 그리고 제 글은 왜이리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는지. 개인적으로 서울에서 가장 소중한 곳은 서울시립미술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르노아르전은 가지 않았지만 그 전에 한 전시들은 좋은 게 너무 많았어요. 모네, 고흐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는 알차고 괜찮은 게 많은 것 같습니다. (뭔 얘기를 쓰려고 했던 건지 까먹었네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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