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읽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관련한 책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시공간"에서 "과거"나 “미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복잡한 설명은 빼더라도 (어차피 저부터도 이해를 못하고...--;;;) 재미있을 만한 내용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써 봅니다.
“과거”와 “미래”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 봅시다.
정의 1.
우리가 “과거”와 “미래”를 정의할 때 현재의 사건을 기준으로 해서 현재의 사건보다 이전에 벌어진 모든 사건들을 “과거”라고 정의하고 현재의 사건보다 나중에 벌어질 모든 사건들을 “미래”라고 정의한다면 아마도 그렇게 복잡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과거”나 “미래”를 말할 때 적용해 온 정의이기도 합니다.
정의 2.
그런데 만약 “과거”와 “미래”에 대한 정의를 좀 바꿔서 “과거”는 “이전에 벌어진 모든 사건들 가운데 현재의 사건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 있었던 것들”로 정의하고 “미래”를 “앞으로 벌어질 모든 사건들 가운데 현재의 사건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들”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말만 좀 복잡하게 바뀌었을 뿐 위에서 정의한 내용과 아무런 차이도 없을까요?
대한호...는 아니고 대역으로 나온 큐리오시티 로버...--;;;
한 번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2018년에 우리나라에서 화성으로 탐사 로버를 보냈습니다. 촌스럽지만 이 로버의 이름은 대한호라고 하지요. 대한호는 2018년 6월 1일 오전 10시 45분에 거친 화성의 빅토리아 크레이터 옆에 무사히 착륙해서 화성 탐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전제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화성은 워낙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지구와 화성 간에는 실시간 통신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구에서 화성으로 보내는 정보나 화성에서 지구로 보내는 정보는 발신에서 송신까지 10분이 걸립니다(실제로는 10분 보다 좀 더 걸리지만 편의상 정확히 10분이 걸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2018년 6월 11일 오전 8시 55분 화성 탐사선 대한호의 카메라에 화성인이 포착됩니다. 대한호는 지체 없이 이 정보를 지구의 통제실로 전송합니다. 그런데 9시가 되자 한국에 있는 통제실에서 로버의 통제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은 티타임을 갖기로 하고 통제실을 떠나서 옆에 있는 휴게실에서 맛있는 모닝커피를 즐깁니다.
2018년 6월 11일 오전 9시에 통제실의 직원들이 휴게실에서 여유로운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 5분 전 화성의 표면에서 탐사 로버 대한호가 화성인을 카메라에 포착한 사건은 과거일까요? 과거가 아닐까요?
위의 정의 1을 적용한다면 8시 55분에 화성인을 포착한 사건은 통제실 직원들의 티타임 사건에 대해서 과거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적으로 5분 먼저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의 2를 적용한다면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분명 화성에서 화성인이 포착된 사건은 시간적으로는 통제실 직원들의 티타임 사건보다 먼저 발생했지만 9시에 벌어진 통제실 직원들의 티타임 사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사실 9시에 휴게실에서 커피를 즐기고 있는 통제실 직원들은 그 시점에 자신들의 로버 대한호가 화성인을 포착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대한호가 8시 45분에 화성인을 포착했다면 이 정보가 통제실로 들어온 시각은 오전 8시 55분이 될 것이고 아머 거의 틀림없이 통제실 직원들은 9시에 티타임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통제실 직원들 가운데 누군가가 8시 46분에 급하게 국장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세기의 특종을 알렸다면 직원이 국장님에게 전화를 건 사건에 대해서 8시 45분에 화성에서 화성인이 포착된 사건은 분명히 “과거”일 것입니다. 화성인 발견 사건이 직원이 국장에게 전화를 건 사건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다시 원래의 경우로 돌아가서 통제실 직원들이 오전 9시에 휴게실에서 티타임을 가진 사건과 5분전 화성에서 대한호가 화성인을 카메라에 포착한 사건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고 따라서 화성인이 포착된 사건이 티타임 사건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므로 정의 2에 따르면 직원들이 티타임을 갖는 사건을 기준으로 화성에서 화성인이 포착된 사건은 “과거”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미래”를 생각할 때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2018년 6월 11일 오전 9시 10분에 화성 탐사 로버 대한호의 모션 제어 장치가 고장나서 대한호가 갑자기 일정한 속도로 직진을 시작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속도로 직진할 경우 15분 거리에 가파른 낭떠러지가 있어서 만약 대한호가 중간에 멈추거나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칩시다. 즉,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오전 9시 25분에 대한호는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합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통제실이 이러한 정보를 알게 되는 시간은 오전 9시 20분입니다. 자, 이런 경우 오전 9시 25분에 대한호가 화성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는 사건은 9시 20분에 통제실에서 대한호의 모션 제어 장치의 이상을 발견한 사건에 대해서 “미래”일까요? “미래”가 아닐까요?
역시 여기서도 정의 1를 적용한다면 대한호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사건은 통제실에서 대한호의 이상을 알게 된 사건에 대해서 “미래”일 것입니다. 통제실에서 이런 급박한 상황을 인지하게 된 후 5분 뒤에 발생하게 될 사건이니까요.
하지만 정의 2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통제실에서 9시 20분에 급하게 화성 탐사 로버 대한호에 “시스템 종료” 명령을 송신한다고 해도 대한호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그 명령은 9시 30분에나 대한호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그때에는 이미 대한호는 낭떠러지로 추락해서 산산조각이 나버렸을 것입니다. 정의 2를 적용하면 9시 20분에 통제실에서 대한호의 이상을 인지한 사건에 대해 5분 뒤 대한호가 화성의 낭떠러지에 추락하는 사건은 “미래”가 아닙니다. 현재의 사건이 미래의 사건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으니까요.
만약 문제의 낭떠러지가 대한 호에서 고장이 발생했을 당시 대한호로부터 21분 거리에 있었고 통제실에서 9시 20분에 이상을 인지하고 즉시 “시스템 종료”명령을 전송해서 대한호가 9시 30분에 낭떠러지 앞에서 멈춰 섰다면 9시 20분에 통제실에서 대한호의 이상을 인지한 사건에 대해 9시 30분에 대한호가 화성에서 멈춰 선 사건은 “미래”가 될 것입니다. 현재의 사건이 미래에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상대성 원리가 적용되는 시공간에서는 정의 1의 “과거”나 “미래”보다는 정의 2의 “과거”나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군요. 아무튼 이 세계는 보면 불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