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이 내 자취방 문을 두드린 건 새벽 두 시 삼십분이었다. 쇠로 된 문짝을 주먹으로 후려치기라도 하는지, 사방에 울리는 쿵쿵 소리에 나는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거의 반사적으로 고함을 지를 뻔했지만 쿵쿵거리는 소리 사이에 섞여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때문에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선배애! 선배애애!”
아, 씨발. 상황이 파악되자 입 밖으로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으로 한 발짝 걸어갔다. 그러다 내가 덜렁 팬티만 입고 있다는 데 간신히 생각이 미쳤다. 팔월 초의 이 망할 무더위 때문에 옷이란 옷은 죄다 벗어던져 둔 것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일단 벗어놓은 반바지가 침대 옆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바지를 주워들어 가랑이에 주섬주섬 발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침대 아래 손을 넣어 꾸깃꾸깃 뭉쳐진 셔츠를 끄집어냈다. 아마도 그곳에 처박힌 지 한 달은 족히 지났으리라. 셔츠를 머리부터 뒤집어쓰자 땀과 알코올이 한데 뒤섞인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그 동안 미루고 미뤄 온 빨래는 지금 죄다 세탁기 속에 처박혀 있었고, 그 안을 뒤져 다른 옷을 꺼내 봤자 이 지독한 냄새는 똑같을 게 뻔했다. 여하튼 옷을 입고 나자 임전태세가 된 나는 기세등등하게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쉴 사이 없이 두들겨 맞고 있던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녀석의 몸이 그대로 문 안쪽으로 나동그라졌다. 쿵 소리는 아마 이마를 바닥에 찧는 바람에 난 소리일 것이다. 녀석은 몸을 두어 번 꿈틀거리더니, 죽은 게 아닌지 걱정될 무렵에 다행히 몸을 돌려 드러누웠다. 머리는 마루에, 몸은 신발 벗어두는 곳에, 다리 아래로는 현관 밖에 걸쳐둔 상태였다. 감겨 있던 눈이 게슴츠레 떠지고,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두 눈동자가 데구르르 구르더니 곧 내 얼굴에 고정되었다. 녀석의 입술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안뇽하세요오, 선배애.”
“귀여운 척 하지 마.”
나는 팔짱을 낀 채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한밤중에 평온한 잠을 침해받은 사람이 지을 법한 표정으로. 녀석의 얼굴 쪽에서 술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속이 거북해졌다.
“얼마나 퍼마신 거야, 너.”
“쪼오끔요.”
나는 말없이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녀석이 해실거리며 고쳐 말했다.
“많이요. 쪼오끔 많이. 아주 쪼오끔 많이.”
“지랄하네.”
녀석의 얼굴은 마치 타오르는 저녁놀처럼 붉었다.
“그래서, 그만큼 마셨으면 집에나 가지 여긴 왜 온 건데?”
“에에이이이이이이. 알면서어.”
두드러기가 돋는 바람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녀석의 머리를 걷어찰 뻔했다. 그러지 않은 건 오직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그렇게 하면 내 발가락이 무척이나 아플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녀석의 두 팔을 잡고 머리 위로 치켜 올렸다. 얼굴간의 거리가 몇십 센티미터 정도로 가까워지자 술기운이 훅하고 풍겨와 머리가 띵할 지경이었다. 녀석이 느물거리며 웃었다.
“얼레. 손 잡아주는 거예요?”
“닥쳐.”
나는 냉랭하게 내뱉고는 다리를 단단히 버티고 선 채 팔에 힘을 주었다. 축 늘어진 이불 같은 녀석의 몸뚱이가 조금씩 마루 위로 올라왔다. 중간에 잠시 멈춰서 신발을 벗긴 후, 다시 팔을 잡아당겨 방 한가운데까지 낑낑대며 끌고 오자 숨이 가쁘게 차올랐다.
“뭘 처먹고 이렇게 무거운 거야?”
“이슬하고, 햇볕이요오.”
“헛소리할 정신은 아직 남아 있나 보네.”
나는 손을 놓고 허리를 폈다. 녀석은 바닥에 널브러져 이미 눈을 감고 있었다. 난 한숨을 쉬고 침대 위에서 요를 말아들었다. 그리고 녀석의 배 위에 대충 던져두었다.
“거기 토하면 죽는다.”
난 지갑과 휴대전화를 반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주섬주섬 운동화를 신었다. 등 뒤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가는데요오?”
“PC방.”
“나랑 같이 있어도 되는데에.”
“안 돼.”
“왜요오오?”
“잠이나 자.”
나는 무뚝뚝하게 쏘아붙이고는 방금 전까지 녀석이 신나게 두들겨대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묵직한 철문이 등 뒤에서 닫히기 직전 녀석의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흘러나와 내 귀에까지 와 닿았다.
“안 가면 안 돼요?”
혀가 꼬이지 않은 목소리였다. 당연한 일이다. 녀석의 주량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고작 새벽 두 시 반까지 퍼마신 것 정도로 취할 리 없었다. 혼자 소주 열두 병을 퍼마셨던 그 날에도 녀석은 취한 척했지만 실제로는 멀쩡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날 녀석은 취한 척했고, 나도 속아 넘어간 척했다. 고백했다 차인 사람에게 그 정도는 해 줘야 하는 법이다. 더군다나 내가 찬 쪽이라면.
문이 철컹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다 머리를 감지 않은 지 사흘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지갑 속에는 천 원짜리 몇 장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PC방에서 일곱 시 정도까지 버티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하나 사 먹으면 딱 맞을 만한 돈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아침 여덟 시에 내 자취방 문을 열기 직전 나는 살짝 긴장했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불은 네모반듯하게 개켜져 매트리스 위에 놓여 있었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책은 책꽂이로, 옷은 옷걸이로 돌아가 있었다. 항상 회색 먼지가 살짝 앉아 있었던 방바닥도 오늘만큼은 매끈했다. 진공청소기는 먼지보관함까지 비워진 채 방 구석진 곳에 예쁘게 놓여 있었다. 다만 빨래는 그대로 빨랫줄에 걸려 있었다. 아마 속옷에 손대기는 뭣했을 테니까. 난 별 상관없으니 빨래도 좀 개켜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내가 가진 최소한의 양심에게 자리를 내 주고 물러났다. 나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카톡을 열어 보았다. 녀석이 남긴 메시지가 있었다.
‘으아아. 죄송해요.’
‘어쩌다 또 선배 집에서 잠들었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어제 제가 뭐 사고 친 거 아니에요?’
‘아무튼 재워줘서 고마워요, 선배.’
‘다시는 술 안 마실게요.ㅠㅠ’
녀석의 연기력은 언제나 그렇듯 형편없었다. 그리고 나는 속아 넘어간 척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아.’
‘하지만 술 좀 작작 마셔라, 너.’
‘다음에는 절대 문 안 열어준다.’
세 문장을 쓰고 나자 더 이상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아마도 조만간 녀석은 다시 내 자취방 현관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어디론가 도망갈 것이다. 녀석을 피해서. 분명 내 자취방인데 어째서 내가 도망쳐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작은 자취방은 우렁각시라도 지나간 듯 깔끔하게 변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우렁각시가 아니라 우렁총각이라고 해야겠지.
(계속, 혹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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