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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6/04 00:22:33
Name 리듬파워근성
Subject [일반] [도전! 피춘문예] 새우 소리 1/2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P0HwI










얼마 안 남은 게 아니라 사실 이미 지났습니다.
간병인은 말을 이었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친구들이 번갈아 가며 내 무릎에 손을 얹고 일렁이는 붉은 눈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흐느끼는 어깨 떨리는 손, 담배에 불도 붙이지 못하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간병인은 산소통과 40kg도 못 되는 내 몸뚱이를 천천히 들어 뒷자리에 싣는다.



한 친구가 내 자리 창가에 손을 얹고 한참 벙긋거리다, 울음진창이 된 얼굴로 두 팔을 모아 하트를 그린다.
늙어 빠진 중년이 저 얼굴로 하는 짓거리가 참으로 서글퍼 나는 있는 힘껏 웃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의 절반이 호흡기로 가려져 있지만 전해졌으리라.
간병인이 차창을 내리고 참, 천천히들 오시랍니다. 라고 부탁해 둔 농을 했다.
은근히 만족스럽게, 나는 안심했다.



나를 똑바로 누이고 나서야 간병인은 눈물을 보였다.
나는 손을 까딱거려 괜찮다고 했지만 그가 더 서럽게 우는 바람에 힘겹게 손을 뻗어 손가락 하나를 그의 손등에 얹고 글씨를 썼다.
참 수고 많았소. 덕분에 편안했소. 그는 얼굴을 닦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커튼을 적당히 열고 큰 쿠션으로 내 다리를 대고 머리맡에 우리 세 가족 사진을 세워둔 뒤 고개를 들어 진통제 양을 조절했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고 나서야 그는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마지막 인연을 정리했다. 그는 떠났다.



커튼 옆자락부터 창틀을 지나 내 발치에까지 석양이 물든다.
황혼을 수놓는 그림자, 날아가는 몇 마리 새들이, 다른 세상에서 들리는 듯한 놀이터 아이들의 소란이,
그저 보통 날 늦은 봄 긴 저녁이 반가워 나는 기분이 나아졌다.




명심할 것. 공중에 붕 떠버린 채로 번개를 맞은 것처럼 갈기 갈기 찢겨 나가는 고통이면 확률은 절반.
반대로 무겁게 짓눌려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채로 눈조차 껌벅 못하게 되면 쇼크가 온다.
명심할 것. 쇼크가 오면 머지 않은 터이니 있는 힘을 다해 가족사진을 볼 것.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얼굴을 각인할 것. 다시 만났을 때 어색하지 않게 먼저 말을 건낼 것.
그 전에 달려가 안아볼 수 있도록 할 것.
명심할 것. 손으로 더듬어 꿈이 아님을 확인할 것. 그리고 없음.





우리는 도로 옆 오두막에서 파는 포도를 샀다. 값에 비해 양이 많았고 달았다.
포도 과수원 주인장은 자신의 포도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뒤이은 나의 질문에 그는 나즈막한 뒷산을 가리켰다.
나는 진욱 엄마를 봤고 진욱 엄마가 예의 그 은근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나즈막한 뒷산을 돌아 과수원 주인장의 말대로 두 번 좌회전 해서 아주 좁은 비포장길로 향했다.



오른쪽 엉덩이를 타고 허리를 지나 등 전체에 고통이 온다.
왼쪽으로 몸을 기울이려고 했지만 당연히 되지 않았고 오히려 왼쪽 허리의 욕창을 자극해서 고통이 다양해졌다.
허리 부근의 통증이 다리 쪽 신경을 끊어버렸는지 두 다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느낌이다.

목을 지난 고통이 머리 전체에서 휘돌기 시작한다.
나는 비명을 질렀지만 삽관 때문에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더욱 더 크게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
고통은 더욱 빠르게 휘돌아 내 얼굴 전체를 움켜 쥐었다.
허리는 여러 방향으로 수십 번 접히는 감각 끝에 찢겨 나갈 듯한 아픔이 전해졌다.
그리고 모든 고통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나는 지긋지긋한 준비를 했다.

곧바로 온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발 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고압 전류가 흐르는 느낌 속에서 모든 것이 비틀리고 뒤틀리고 구겨지고
나는 비명을 지를 힘조차 어디서 끌어와야 할 지 몰랐다.
새끼 손가락이 수 백 갈래로 찢어졌고 내 머리는 새파란 중국 식칼로 다져지는 느낌이었다.
눈알이 빠져 나와 짓이겨 질 것 같았고 배에는 수백 명의 재봉사가 달려들어 뜨거운 바늘로 아무렇게나 마구 꼬매 대는 것 같았다.
소리 없는 비명이 한참 계속됐다.



죽지는 않았다. 밖은 어두웠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술을 끊으라고 했다.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끄덕였지만 우리 둘 다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는 곧이어 한마디를 남기고 영원히 떠났다. 다 용서해라. 특히 너를.



살랑거리는 커튼이 햇빛을 무책임하게 흔들어 댔던 그 수많은 낮 동안
나는 취해 있었다. 때로 의자나 벽시계를 집어 던졌고 때로 바닥에 엎드려 오랫동안 머리를 찧었다.
술에 지고 자학에 지쳐 옆으로 누워 선잠이 들 때도 나는 안식을 갖지 못했다.
그 소리가 또 귓가에서 시작됐다.



비포장도로 끝에는 식용 견 사육장이 있었다. 곪아 썩은 군내가 차 안까지 진동했다.
진욱이는 코를 막았고 진욱 엄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는 길이 끊긴 그곳부터 무리해서 차를 더 몰아 조금 더 깊숙이 있는 새우 양식장을 찾았다.

밑에 포도 파는 분이 알려 주셨어요.
비닐 앞치마를 두른 양식장 주인은 말없이 손가락을 세 개 들어 보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두 개를 들었다.

셋이 먹을 거면 2만원이래.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진욱 엄마에게 통역을 해줬다.
진욱이와 진욱 엄마는 마치 마약 거래라도 하는 것처럼 긴장해 있었다.
나도 처음 겪는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왠지 재밌었다.


양식장 주인이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나왔다.
포장이 의외로 깔끔해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검은 봉다리에 그 많은 새우를 담아서 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게 다행히도 빗나갔다.

포도박스를 넓게 펼쳐 깔고 그 위에 새우 박스를 올렸다.
진욱이는 새우 박스를 열어보고 싶어했지만
새우들이 워낙 힘이 좋아 바로 뛰쳐나간다는 진욱 엄마의 경고에 겁을 먹고 단념했다.
우리는 양식장 주인과 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진욱이가 겁에 질려 진욱 엄마가 뒷자리에 가서 진욱이와 함께 앉았다.
진욱 엄마가 아이 머리를 감싸 안아줬지만 진욱이는 안정이 되질 않았다.
저놈의 새우들이 무슨 힘이 저리 좋은지
집에 돌아가는 내내 트렁크에서 팔딱이는 소리가 차 안에까지 점령해 버렸다.
운전을 하는 나조차도 내내 거슬려 나는 새우 박스를 휴게소에 버려버릴까 하는 농담을 했다.
라디오를 켜고 노래를 틀어 봐도 타닥 거리는 저 소리가 지워지지 않았다.
고장으로 멈춰 서 있는 5톤 탑차를 눈앞에 두고 나는 급히 핸들을 꺾었다.



온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차 안에서 나는 진욱이를 불렀다.
멀리 차 밖의 진욱이는 엎드려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신발이 벗겨진 진욱이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나는 포기 하지 않았고 진욱이와 진욱 엄마를 끝없이 불렀다.
가까이서 새우 소리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자동 유리문이 열렸지만 나는 안으로 들어설 수 없었다.
호흡기를 찬 진욱 엄마는 눈알을 굴려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몰골의 나에게서 진실을 직감했다.

허공을 향한 진욱 엄마의 눈에서 끝없이 굵은 눈물이 떨어졌고
급기야 가슴을 들썩거리더니 간호사들이 달려와 코드 블루를 외쳤다.









그 수많은 낮 동안
살랑거리는 커튼이 햇빛을 무책임하게 흔들어 댔던 것처럼
굴러다니는 술병들이 아무렇게나 쌓여갔던 것처럼
야속한 수염이 내 얼굴을 뒤덮던 것처럼
고통만 남은 빈 껍데기 같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노란 목, 노란 눈, 노란 얼굴로 나는 의사를 봤다. 맥이 풀려 웃음이 터졌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웃어댔다.
두 손으로 의사 가운을 움켜쥐고 나는 정말 우스워서 웃었다.



돌 사진 작가는 이렇게 잘 웃는 아이는 처음 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유치원 선생님은 진욱이가 제일 노래를 열심히 한다며 칭찬을 했다.
태권도 학원 원장님은 진욱이가 운동에 소질이 있다고 했다.
진욱이가 대답하지 않았다. 신발은 벗겨져 양말 뿐이어서 나는 신발을 찾아 검은 물 속을 헤메었다.
맨발로 다니면 발에 상처 난다. 아빠가 신발 찾아서 갈게. 진욱아 어딨니? 진욱아 괜찮니? 제발 대답 좀 해라. 진욱아.



용서하라는 말을 남기고 엄마는 떠났다. 특히 나를 용서하라고 했다. 나도 용서받고 싶다.
신발을 찾아 진욱이에게 가서 미안하다 잘못했다 하고 싶다. 진욱 엄마를 끌어 안고 내 탓이다 하고 싶다.
수 없이 많은 밤 동안 나는 신발을 찾아 검은 물, 검은 숲, 검은 도시와 검은 하늘을 헤집었지만 찾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귓가에서 그 소리가 시작됐다.





발톱이 빠진다. 비명을 지르면 새 발톱이 생겨나 그것도 곧바로 빠져버린다.
그렇게 수백 번 발톱이 빠지고 나면
날카로운 드릴이 무릎과 허리를 파고 든다. 드릴은 갈수록 수가 많아져 온갖 방향에서 내 몸을 꿰뚫는다.
빨리 신발을 찾아야 한다.

드릴이 내 목을 꿰뚫었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혹시 신발이 있나 더듬었지만 손가락마저 드릴에 관통되고 만다.
진동이 머리에 가득하다.
안에서부터 바삭거리며 머리가 깨져 나간다.
시야가 산산조각나고 코끝에서부터 채 썰리듯 온몸이 잘려 나간다.
아무 소용 없는 비명과 의미 없는 몸부림에 나는 비겁하게도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빌었다.

신발도 찾지 못한 비겁한 생존자 앞에 새벽이 도달했다.




젊은 여자 주치의는 가까스로 울음을 멈추고
내 휠체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했다.
그리고는 진욱이 갖다 주라며 막대 사탕을 하나 줬다.

담당 교수가 훤한 머리를 조아리며 내 손을 잡았다. 죄송하다. 안타깝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신세 많았소. 당신 탓이 아니오.
간호사들이 몰려 나와 우리를 배웅했다.
무균실을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는 다짐을 되새겼다.
가족과 있던 집에서 죽고 싶다.





그 전에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으로 우리는 향했다.
진욱 엄마가 뜨다 만 나의 미완성 목도리,
한쪽 팔이 고장 나기 직전인 진욱이 장난감,
태교 때부터 진욱이에게 매일 읽어 주었던 진주 조개 동화책,
마지막으로 의료 호스를 주렁주렁 걸친 나를 싣고 간병인은 납골묘로 차를 몰았다.



예보보다 조금 빨리 비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
외딴 편의점 앞에 잠시 차를 세우고 간병인은 기지개를 펴며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팔자 좋게 파라솔에서 맥주를 마시던 알바생이 손님을 보고 급히 따라 들어갔다.

빗방울이 툭툭 점점 강하게 차창에 묻었다.
캔커피를 사들고 나와 담배를 물던 간병인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편의점 가건물 구석 처마로 피신해서 불을 붙였다.


진욱이는 잠시 멈춰있는 것도 참지 못할 만큼 극성이었다.
항상 뛰었고 소리를 지르고 나에게 올라 탔다.
항상 나를 너무 크게 불렀다. 아빠!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진욱이를 봤고
나는 그게 민망해서 늘 조용히 좀 말하라고 타일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빨리 가자, 아빠! 응 조금만 기다려. 먼저 가지 마라 진욱아. 아빠 옆에 있으렴.
먼저 가지 마라. 어디 갔니? 진욱아 어딨니? 아빠랑 같이 가야지.

진욱이가 빗속에서 우두커니 나를 보고 있었다.
멀리 있었지만 나는 그 시선을 알 수 있다. 진욱이가 나를 부른다.
나는 호스에 뒤엉킨 손을 들어 차창을 더듬었다. 진욱아 잠깐만 기다려. 지금 간다. 아빠 금방 갈게.
손톱으로 차창을 계속해서 긁어댔지만 이 얇은 유리 하나 나는 넘지 못했다.
초록색 우비를 입은 진욱이가 계속해서 빤히 나를 보고 있었다.
빗 속에서 작은 두 손을 꽃잎처럼 펼치고.



간병인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소리에 나는 정신이 들었다.
여자 아이였다.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달려와 아이를 나무랐다.
아니, 웃고 있었나? 둘은 신나게 뛰어 놀기 시작했다. 이 빗속에서.

그 풍경을 떠나기 싫어 나는 수풀이 그들을 가릴 때까지도 한참이나 시선을 떼지 못했다.














- 내일 밤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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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5/06/04 01:37
수정 아이콘
새우요리 레시피인줄 알았습니다..
우선 댓글 달고 감상하겠습니다
에너지
15/06/04 05:04
수정 아이콘
2편 올려 주세요~
스테비아
15/06/04 08:09
수정 아이콘
ㅠㅠ잘 봤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겁고 축축해요
켈로그김
15/06/04 10:52
수정 아이콘
얼음같이 처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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