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 너의 검은 눈을.
골똘히 오롯이 나를 비추는 그 두 눈을.
내가 너의 눈을 보듯, 너도 나의 눈을 보고 있구나.
나는 부끄러운 것이 많다.
네가 보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겐 상처이자 고통이다.
원망하고 싶지는 않지만 마음대로 되지가 않더라.
모든 것이 내 탓임을 뼈저리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나는 여전히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너의 입가가 궁금하다.
얼굴은 창이며 또한 기록이지.
내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을 수 있다면, 그래 그것은 이 얼굴이 나의 역사이며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 역시, 네 얼굴의 흔적들이 궁금하다.
특히 너의 그 입가가.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그 입가가 궁금하다.
그러나 너는 말이 없구나. 나처럼.
너에게서 나를 본다.
내가 너를 선택했을까? 아니면 네가 나를 알아봤을까?
다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첫 눈에, 혹은 운명적으로 이런 말들을 믿지 않아.
대신 그 후의 일들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너의 눈 속에, 고통과 슬픔이 보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분노와 증오는 보이지 않는다.
입가와 목의 상처도 너는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구나.
네가 나보다 낫다.
정말로 네가 나보다 낫구나.
너는 현명해 보이니 나에게 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는 자상해 보이니 나를 이끌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어쩌면,
내가 너에게 괜한 기대를, 괜한 상상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제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철쭉이 흐드러진 것을 보았다. 아찔할 정도로 많아서 나는 봄의 잔인함에 고개를 떨구었다.
영원히 해는 뜨지 않을 줄 알았다. 영원히 눈은 녹지 않을 줄 알았다.
나는 차를 돌려 이곳에 왔고 너와 눈이 마주친 후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디로 가게 될까?
내일 이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있니?
나에게 내일이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공포였다.
내일로부터 도망치려 난 발버둥을 쳤다.
술에 의지해 살았던 날이 있었지. 증오에 온 마음을 내던졌던 날도 있었지.
모든 걸 포기한 채 하염없이 울었던 날도 있었지.
되돌리고자 발악했던 날도, 바로잡고자 몸부림 쳤던 날도 있었다.
다만 어제는 너를 만났고 오늘은 너를 만나러 왔다.
“꼬비 데려가기로 하시겠어요?”
나는 신분증을 내고 몇 가지 간단한 질문에 답을 했다.
서류를 작성했고 정신과 치료중 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몇 장의 지폐를 꺼내고 연락처를 기재한 뒤 나는 꼬비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눈이 부시다.
오늘은 4월 어느 날,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지 1년 하고 9개월 어딘가 쯤 되는 날이다.
가자.
피투성이 둘이서 끌어안고 어떻게든 살아보자.
어쩌면 언젠가, 이 봄이 반갑게 느껴질 날도 오겠지.
그러려면 일단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맛있는 것부터 먹자.
택시가 서지 않아 나와 꼬비는 집까지 한참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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