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약장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리운전 일을 하던 일범(김인권)은 성추행 시비로 직장을 잃고 만다. 딸은 큰 병에 걸려있고, 방세는 밀려있다. 일용직 알선소를 기웃거려보지만,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는 결국 자존심을 버리고 친구의 알선을 따라 약장수, 흔히 '떴다방'이라 불리는 업체에 취직하게 된다. 일범은 처음에는 악덕 점장 철중(박철민)의 행태를 경멸했지만, 어느샌가 그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가게 된다. <어벤져스>와 같은 날 개봉한 덕에 개봉관 잡기도 빠듯한 것 같지만, 그래도 주목받았으면 하는 영화 <약장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처절하고 씁쓸한 리얼리즘<약장수>의 개봉소식은 지난주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처음 접했다. TV에서의 소개만으로는 '떴다방'을 소재로 관객을 웃고 울리는, 무난하게 유머와 감동을 섞은 흔한 한국형 망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판단하기로는 리얼리티를 강조하면 수작, 신파로 빠지면 망작이 될 거라 예상했었다. 그렇게 억지 웃음과 억지 감동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한 채로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사회 이면의 적나라한 모습을 시작부터 가감 없이 드러낸다. 셔틀 승합차가 없어 일당을 택시비로 날려야 하는 대리기사들의 모습과 막노동조차도 기술이 없으면 일감이 없는 현실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등장하게 되는 '떴다방'의 모습은, 예상 가능한 것이었음에도, 꽤 충격적이었다. 영화는 뉴스에서 보아오던 모습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떴다방의 실체에 대해 매우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었다. 그 진실 중에 하나는 떴다방은 세일즈업이 아니라 하루 4시간 할머니들에게 재롱잔치를 보여주는 일종의 쇼비즈니스라는 점이었다. 나는 <약장수>를 보기 전까지는 떴다방에서 물건을 사 오는 노인들이 뭔가 아둔하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아둔한 노인도 없었고, 그런 사람들을 날로 등쳐먹는 사람도 없었다. 이 점은 약장수라는 직업에 대한 선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며, 관객에게 '진정한 효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실 그들의 재롱잔치는 영 별로였다. 노골적인 섹스코미디이거나 이제는 목성에서조차 찾지 않는 한물, 아니 열물은 넘어간 '유모어'가 대부분이었다. 이를 두고 지적하는 것인지 한 평론가는 한줄평에서 '웃기고 울리는 게 뜻대로 된다면야'라며 별 2개라는 혹평을 하였다. 하나 나는 영화가 이 '유모어'를 통해 관객에게 웃음을 전달하고자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은 억지 웃음이 아니라, 그런 저질 개그에도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는 노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그로 인한 씁쓸함이다. 웃음을 통해 관객의 웃음기를 가시게 만드는 참으로 오묘한 장면이었다.
영화는 약장수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찾는 노인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옥님(이주실)은 검사 아들을 둔, '장한 어머니상'을 받은 지극히 이성적인 노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떴다방을 찾는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이해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나도 그런 곳을 찾는 것은 이상한 노인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깐) 그러나 아들과 밥 한 끼 먹을 수 없는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노라면, 그녀가 떴다방을 찾는 것이 과연 비난받을 행동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런 옥님에게 살갑게 다가서며, 아들조차 챙겨주지 않는 생일상을 함께해준 일범에게 옥님이 얼마나 큰 위안과 행복을 받았을지 생각하면, 그런 노인들에게 이상한 곳이나 들락거린다는 핀잔만 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그렇게 삶이 퍽퍽한 일범과 옥님의 만남을 통해 훈훈한 감동을 끌어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훈훈했던 교감은 마지막의 충격적 현실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장치로 사용될 뿐이었다... (차마 더는 설명을 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약장수>는 우려와 달리 감정 과잉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억지 웃음도 억지 감동도 없다. 그들의 웃음과 울음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떨어져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희망도 절망도 아닌 지극히 당연한 현실을 보여준다. 흔한 신파영화가 될까 봐 우려했지만, 영화는 오히려 서늘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씁쓸함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약장수>는 병든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쓴 약 같은 영화다.
[포스터에도 등장했던 분장한 일범의 모습.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훌륭한 연출, 아쉬운 시나리오앞서도 언급했듯이 <약장수>는 억지 웃음이나 억지 감동으로 빠지지 않은 채 영화 내내 서늘하고 씁쓸한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출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도, 한국 영화들이 웃음과 감동에 눈이 멀어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을 생각하면 칭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결말의 참혹함이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영화의 분위기를 꾸준히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감독은 '떴다방'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전국의 홍보관을 돌며 탐방하다 못해, 촬영지마저 실제 홍보관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게다가 엑스트라들도 실제 홍보관을 찾는 할머니들을 섭외했다고 하니 리얼리티를 위한 감독의 노력이 대단하다 하겠다. 확실히 <약장수>에서 보이는 '떴다방'의 모습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이것은 영화의 정체성일 뿐만 아니라 작품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다. 이 리얼리티 덕분에 영화는 관객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리얼리티뿐만 아니라 세세한 곳에서 드러나는 상징적인 표현들도 꽤 인상적이었다. 돈다발로 일범의 뺨을 때리던 철중의 입속에 있던 사탕은 철중의 탐욕과 비열함을 상징한다. 옥님의 손에 칠해진 매니큐어가 손톱 끝에만 머문 것은 '떴다방'의 위로가 딱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의 마음을 끝까지 물들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들뿐일 테니까. 과도한 상징을 사용했다면 되려 영화의 분위기와 충돌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 작품이 입봉작임을 고려한다면, 감독이 이러한 상징적 표현에 과욕을 부리지 않은 것은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드는 훌륭한 점이라고 본다.
인물들의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내 딸이 죽게 생겼는데, 남이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을 속이는 거야."
이 대사들은 시적이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하지만 적절한 사용을 통해 영화의 맥을 정확히 짚어주며 플롯 간의 유기성을 높여준다. 또한, 현실에 대한 함축적 표현으로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뇌리에 깊은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미시적인 부분에서는 훌륭한 모습이 보이는 영화이지만 거시적으로 바라보자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우선 일범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전형적이다. 아픈 딸과 밀린 집세라는 설정은 조금 지겹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만큼 마지막에 일범이 돌변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게 다가올 수 있었기에 오히려 통속적이라는 부분을 이용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일범과 철중의 갈등이다. 그 갈등이 '내기'라는 요소로 나타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웠다. 영화의 핵심 갈등이었다는 점에서 좀 더 현실적인 대립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거시적인 시나리오의 문제점은 클라이맥스의 충격을 황당함으로 탈바꿈시킬 수도 있다. 나는 당시 일범의 행동이 이해가 갔지만, 그의 행동이 너무 과하다고 느끼는 관객도 분명히 존재할 거라는 생각이다.
[이 장면은 훌륭했지만, 이 장면이 나오게 된 과정은 다소 아쉬웠다.]명불허전 박철민과 비약하는 김인권앞서서는 연출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약장수>의 백미는 배우들의 연기이다.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박철민의 연기력은 <약장수>에서도 여전하다. 특히 그가 연기한 철중의 이중성에 대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철중은 사람을 돈으로 보는 악인이지만,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 세일즈맨이기도 하다. 이런 이중성을 표현하는 경우 보통 앞과 뒤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예를 들면 <하레와 구우>의 구우사마...) 그런데 박철민은 앞에서도 웃고, 뒤에서도 웃는다. 그 웃음이 유쾌한 재롱이 되기도 하고, 비열한 썩소가 되기도 한다. 박철민은 그 웃음의 차이를 표현할 줄 아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김인권은 <방가? 방가!> 이후 다른 배우들이 넘보지 못하는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고, <약장수>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리고 <약장수>를 통해 연기에 대한 어떤 경지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존의 작품들에서 그에게 느껴졌던 것은 얼굴 생김새에서 나오는 패배감 혹은 우스운 모습이 대부분이었다.(김인권씨 죄송합니다...못생겼다고 머라하는 건 아닙니다. 아니 그게 맞는건가 ㅠ,ㅠ) 그러나 <약장수>에서는 경멸이나 탐욕처럼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다양한 감정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그런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강조한 감독의 연출도 이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마지막 롱테이크에서 보여준 표정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흔히 연기 본좌로 불리는 최민식의 <올드보이> 라스트 컷이나, 송강호의 <관상> 라스트 컷처럼 작품 전체를 함축하는 회한에 찬 표정을 김인권의 <약장수> 라스트 컷에서도 볼 수 있다. 얼굴을 분장한 채,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듯한 표정을 보여주는 김인권의 연기는 영화를 보며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씁쓸해할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 상당히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김인권에게 외모적 한계가 있을지언정, 연기에는 한계가 없어 보인다.
[이 장면에서 "배우는 뭔가 다르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었다.]의미있는 실버영화작년의 <수상한 그녀>나 <국제시장>, 최근의 <장수상회>까지 젊은 층뿐만 아니라 중장년층까지 노리는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 어쩌면 이 또한 한국이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약장수>가 이 영화들보다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언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들과 비교하면 <약장수>는 독보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은 쓰라린 현실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사실 <약장수>를 온 가족이 함께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지나치게 씁쓸하다. 보기 전에는 웃음과 감동이 과할까 봐 걱정했는데, 보고나니 웃음과 감동이 너무 없어서 걱정이다.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는 너무 쓴 약이다.
그래도 쓴 약은 몸에 좋은 법이다. 다른 실버영화들은 훈훈한 판타지를 보여주었지만, <약장수>는 현실을 보여준다. 지금 대한민국의 노년층은 어떤 모습인지 비난도 위로도 없이 그저 묵묵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어르신들이 이 영화를 많이 찾았으면 한다. 'OECD 노인 빈곤율 1위', '하루 4.7명의 노인 고독사'.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훈훈한 미담에 취하는 것도 좋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필요한 셈이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도 이 영화를 많이 찾았으면 한다. 세상이 바뀌었고, 유교가 낡은 것이 되자, 효(孝)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다. 영화를 보며 진정한 효가 무엇인지, 이 시대에 필요한 효의 모습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일범이 옥님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볼때 내가 대학 시절 보컬을 할 때 어머니가 "언제 한 번 우리 아들 노래 부르는 거 들어봐야 하는데..."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났다. 지금도 여자친구에게는 자주 노래를 불러준다. 하지만 아직도 어머니께는 노래를 불러드린 적이 없다... 언제 기회가 되면 부모님하고 노래방을 가야겠다.
Written by 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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