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국내에 출간된 콘텐츠 및 국내에 정식 출간되지 않은 콘텐츠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제목에 [스포일러 주의]를 표시하고, 글 첫머리에도 이를 명시하여 스포일러가 존재함을 미리 알려드리니, 주의하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부터 감상을 써 내려갈 만화 '식극의 소마'는 츠쿠다 유토가 스토리를, 그리고 일명 ‘tosh’로 알려진 사에키 슌이 그림을 맡은 요리 배틀 만화입니다. 2015년 4월 현재 일본은 단행본 12권까지.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단행본 6권까지 발매되었으며, 일본에서는 4월 신작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왔습니다. 그간의 직업 특성상 저에게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요구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즐기는지라 저는 보통은 두세 개 정도의 시리즈를 정해 놓고 사서 보곤 하는데. 수많은 만화 중 식극의 소마가 눈에 들어온 데에는 제 나름대로의 이유가 몇 개 있었습니다.
클리셰를 밟아버린 히로인, 나키리 에리나
식극의 소마에서 주인공 유키히라 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히로인(여성 주인공)은 세 명 정도가 있습니다. 바로 토오츠키 학원의 입학시험장에서 처음 마주치며 악연을 이어오고 있는 나키리 에리나, 편입 이후 주인공과 자주 같은 조를 이루고 있는 타도코로 메구미, 주인공의 첫 식극 상대이고 주인공 때문에 덮밥 연구회에 들어간 미토 이쿠미. 그런데 메구미와 이쿠미는 주인공과 접점이 꽤 많고 출연 빈도도 잦은 편이지만, 나키리 에리나는 처음에 마주친 이후엔 주인공과 그렇게 큰 접점이 없습니다. 같은 기숙사 멤버도 아니고, 둘 다 토오츠키 10걸인 것도 아니며,(나키리 에리나가 10걸 중 10석. 소마는 아니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는 사이도 아닙니다. 가끔 마주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나가다가 부딪치는 엑스트라 격이 되는 일이 다반사이지요.
물론 출연 빈도가 적거나 주인공과 큰 접점이 없었던 히로인이 치고 나와 주인공과 꽤 깊게 얽히는 경우는 이전의 다른 창작물에서도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나키리 에리나에겐 한 가지 단점이자 오점이 있는데. 바로 요리만화에서, 편입을 허가하는 시험관이 되어 소마의 요리를 심사할 때 맛있는 요리를 먹고도 그 요리를 맛있다고 인정하지 않는 행동을 저지른 것입니다. 기존의 요리만화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치사한 짓을 한 히로인이지요. 물론 그 전까지의 요리만화에서 주인공에게 자신의 권위나 재력을 드러내면서 치사한 행동을 하던 악역들도 있었고, 맛있는 요리를 먹고 맛없다고 거짓말하는 악역도 있었지만, 요리를 시험하는 입장에서 – 그것도 히로인의 포지션에 있는 인물이 - 요리에 대해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는 참으로 드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황당한 건. 이런 요리만화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어긴 히로인이 출연 빈도도 높지 않은 주제에 독자 대상 인기투표에서는 거의 매 번 히로인들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죠. 적어도 미스터 초밥왕 같은 요리만화가 대세일 때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나키리 에리나라는 캐릭터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아무래도 겉으로 보면 사에키 슌이 그린 매력적인 작화의 몫이 커 보이지만, 저는 반드시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미래에 과연 어떠한 전개가 이루어질지에 대한 예정된 기대 역시 인기의 요인에 들어가 있다고 봅니다. 그녀가 달리던 차를 멈춰 세울 정도로 동경하는 요리사는 바로 유키히라 소마의 아버지, 유키히라 죠이치로이니까요. 자신이 혐오하는 주인공, 유키히라 소마의 아버지가 자신이 동경하던 그 요리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마도 나키리 에리나의 정체성은 분명히 한 번 이상 크게 변동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보면, 나키리 에리나는 반드시 클리셰를 파괴하기만 하는 히로인은 아니라고 봐야겠지요. 적어도 완벽한 요리 운운하며 소마 앞에서 그 사람의 요리 어쩌구 저쩌구 했던 것을 나중에 떠올리면 자다가 이불킥이라도 하고 싶지 않을까요? 뭐 그렇습니다.
주인공이지만 콩라인. 유키히라 소마.
보통의 요리만화 주인공은 천부적 재능이 있든, 노력을 죽도록 하든, 아니면 둘 다이든 그 배경이 먼치킨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만화가 리얼리티의 경계를 넘어가게 되면 넘어갈 수록 현실적이지 않은 능력치인 ‘주인공 보정’도 상당히 많이 받습니다. 주인공 유키히라 소마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세 살 때 처음 주방에서 칼을 잡았고 12년 동안 주방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것도 절대 평범하지 않은 설정인데, 만들어 내는 요리의 수준도 동년배의 수준을 뛰어넘은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중학교 졸업생 정도 되는 아이가 만든 요리가 사람들을 마치 마약이라도 먹은 양 신음하고, 제정신이 아니게 만들 정도의 위력을 지닙니다. 물론 그런 정도의 경험치를 쌓아 왔으니 신입생들 중 99%가 졸업하지 못하는 학교에 편입해서 전교생 앞에서 한다는 소리가 ‘손님 앞에 서보지도 않은 사람들 상대로 질 생각은 추호도 없고, 들어온 이상 정상을 차지하겠다’인 것이겠지만요.
작중에서 유키히라 소마는 요리의 실력뿐만 아니라 위기 관리 능력 역시 발군으로 묘사됩니다. 물론 주방에서 쌓아 온 경험치가 동년배에 비해 거의 사기 수준이라는 설정 때문이고 그 설정 자체가 주인공 보정이자 클리셰이니 사용 가능한 상황 설정인 셈이죠. 그런데 이 서술은. 마치 실제의 주방에서 있을법한 상황과 맞물리며 만화니까 말이 되는 정도의 당위성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뚜껑을 열고 소금을 끼얹어 고의로 망친 고기 요리를 부족한 제한시간 안에 다시 만든다거나, 조식 메뉴 대결 때 메뉴 선정에서 완전히 실패한 요리를 손님 하나 사로잡은 뒤 정확한 시뮬레이션 및 시간계산에 의한 타임어택으로 넘어간다거나 하는 것들이지요. 이런 행동을 아무런 개연성이나 배경설정 없이 다른 요리에서 했다면 사기나 치팅이라는 말을 들었겠지만 유키히라 소마의 경우 주인공 배경 설정에서 깔아놓은 게 있으니 독자들에게는 ‘사기적인 능력’이라기보다는 ‘만화 주인공이 주방에서 오래 굴러 봤으니까 할 수 있는 무언가’로 읽히며 오히려 약간은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무엇보다. 유키히라 소마가 이미 상당히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리얼리티를 해치는 인상을 받기보다 최소한의 리얼리티를 유지하는 인물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소마 자신이 ‘콩라인’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국내 정발분은 물론이고 일본에서 발매된 분량 기준으로도 소마는 제가 보기엔 아주 훌륭한 콩라인입니다만. 그렇게 압도적인 요리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콩라인이라니 무슨 소리냐고 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실제로 소마는 지금까지 공식 식극에서는 두 번 다 이겼으며, 고의로 망친 실패작 요리를 제외하고는 만들었던 요리마다 거의 최고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건 사실이지요. 그런데 대결의 폭을 넓혀 보면 좀 달라집니다.
공식 식극에서 비공식 식극으로 넘어가 보면, 승리가 없습니다. 한 번은 상대인 잇시키 사토시 선배가 실력을 숨겨서 무승부, 다른 한 번은 맛으로는 패배였지만 비공식 식극의 참관자들인 토오츠키 학원의 졸업생들이 난입해 무승부가 되었지요. 그리고 아버지와의 대결은 또 어떻습니까? 국내에 출시된 6권 분량까지 아버지와의 요리 대결은 490전 0승 490패. 게다가 스플릿 판정패조차 없는 일방적인 판정패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대중식당 유키히라의 2인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일본에서 이미 발매된 가을 선발 시나리오에서 주인공은 최종 대결까지 올라갔지만 공동 2위에 머무릅니다.
자. 정리합니다.
공식식극 ‘2전’ ‘2승’ 0패
비공식 식극 ‘2전’ 0승 ‘2무’ 0패 대중식당 유키히라의 ‘2인자’
가을 선발 본선 대회 공동 ‘2위’. 참고로 가을 선발 본선 대회의 2위는 소마를 포함해 ‘2명’.
이쯤 되면 훌륭한 콩라인 아닌가요? 게다가. 유키히라 소마의 아버지 유키히라 죠이치로(사이바 죠이치로) 역시 토오츠키 학원 10걸의 제 2석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유키히라 소마는 ‘2대째’ 콩라인. 즉 콩라인 오브 콩라인의 자질을 띠고 태어난 셈입니다. 재력이나 혈연을 이용해 아예 대결 대상에도 끼지 않은 비현실적인 인물이나. 본 실력을 조금도 발휘하지 않은 채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 누군가에 비하면 얼마나 현실적인 모습인가요. 이건 마치 수많은 예능인 중에 홍진호를 보면서 동질감을 찾는 e스포츠 팬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마치며
물론 식극의 소마를 제가 주의 깊게 보는 이유가 두 주인공의 의외성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우 익숙하고 구매 욕구를 자극시키는 그림체, 저마다의 개성이 살아 있는 주인공, 익숙하지만 재미있는 히로인들과 조연들의 모습 등등. 그 밑바탕에는 그 전까지 만화라는 분야에서 흥행해 왔던 공식과 아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식극의 소마만의 맛을 내면서 독창성을 부여하는 – 요리로 표현하자면 마치 숨김맛이나 향신료 같은 –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런 여러 요소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이 만화가 흥행 콘텐츠가 되는 데에 기여했습니다. 식극의 소마는 12권까지 발매된 지금 단행본 및 소설 판매 부수가 누계 600만 부를 돌파했고 애니메이션도 나왔으니(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여러 가지 의미로 부담스러운 장면들이 꽤 많더군요) 혹시나 갑자기 식상해지거나 거한 삽질이라도 하지 않는 한 앞으로 적어도 수십 권 또는 그 이상은 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제가 주목하고 있는 건.
나키리 에리나의 잘난체는 과연 언제 주인공 앞에서 무너질 것인가.
소마의 아버지 죠이치로와 토오츠키 학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과연 소마는 10걸 안에 언제 들어갈 수 있을까. 들어간다면 제 몇 석까지 차지할까.
뭐 이런 정도입니다.
(누구와 이어질까는...... 뭐 이어지든지 말든지 내 알 바 아닙니다.)
이상으로. 식극의 소마에 대한 소개 및 감상글을 마칩니다.
- The x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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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느낀 건 작품을 관통하는 큰 아역이 없는 점, 위에 말씀하신대로 질질 끌지 읺은 점이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승부나 문제의 대한 긴장이 있자, 악행 저거 어째 에 대한 긴장이 없어서 조금 마음 편하게 지켜보게되죠. 그러면서도 긴장감 있고요. 특히 앨리스에 경우 악역포스처럼 등장하더니 바로 뽀로통한 모습을 보여주는 갭이 매력적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등이 거의 이래요. 그리고 뭐 저도 소마 아버지와 소마 에리나의 만남이 기대됩니다. 소마 아버지 졸업 못 했다하는데 1화에서 말한 대사로 보면 언급이 없는 소마 어머니 때문은 아닐런지요